편안한 자리/* 심향(心香)

세미원(洗美苑)의 하루

月波 2008. 7. 19. 23:36

 

세미원(洗美苑)의 하루

 

관수세심 관화미심(觀水洗心 觀花美心) 이라 ..... 물을 보면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면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 세미원(洗美苑)에 연꽃이 한창이란다. 백련도 홍련도 한창이고 수련도 형형색색 그 예쁨을 자랑하고 있단다. 진흙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이니 정갈하기 그지 없고, 그 꽃처럼 마음을 아름답게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세미원(洗美苑)이라 ..... 마음을 씻고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뜰이요 동산일진대, 그대로 쫓아 따르기만 하면 되리라. 세미원 가는 길은 열려 있으되 그 때가 따로 있으니 오래 전부터 제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7월의 중순이니 연꽃의 단아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으리라.

 

태풍 갈매기의 북상으로 새벽부터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씨를 무릅쓰고 두물머리로 간다. 두물머리 가는 길은 비가 잦은 셈이다. 지난 봄에도 그러했었고. 세미원에는 백련, 홍련, 수련이 피었다가 지기도 하고, 빗속에 머리를 숙이기도 하고, 새 꽃봉오리를 내밀기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제 때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열리는 날이다. 개심(開心)하는 날이 개화(開花)하는 날이리라.

 

세미원에는 연꽃을 주제로 한 선인들의 시가 곳곳에 걸려 있다. 그 중 소치(小癡) 허유(許維,1808~1893)의 연화부(蓮花賦)가 자주 눈에 띈다. 소리내어 읊조려 본다.

                            

     봄물이 연당에 가득한 듯 싶더니 / 벌써 여름 그늘은 축대를 덮었구나

     차(茶) 나무에 꽃이 떨어지니 / 연잎의 꼭지가 이어터지네

     맑은 연 그림자에 달빛 어리고 / 향기를 바람결에 실어 멀리 날아가네

 

내친 김에 하나 더 소치(小癡) 허유(許維)의 연화부(蓮花賦)를 한 구절 더 읊어 보자.

 

     어떤 연꽃은 기대고 / 어떤 연꽃은 기울어

     반쯤은 봉우리 지고 / 반쯤은 피어

     천연스런 그 자태 / 한가롭게 흔들리네 

 

하지만, 두물머리답게 강가에서 유유자적 살아가던 옛 선비의 시 한 수가 더욱 마음을 풀어헤치게 한다.

 

     청류벽에 배를 매고 백운탄에 그물걸어

     자 넘은 고기를 눈살같이 회쳐놓고

     아이야 잔 자주 부어라 무진토록 먹으리

 

옛 사람의 풍류가 이러했거늘, 강물과 연꽃들이 함께 어울려있는 이 두물머리에서 오늘 날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진솔한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세미원에서 빨래판이 놓인 산책길을 밟으며 수련과 연꽃을 보면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마음을 씻고 진흙속에서도 맑게 피어나는 연꽃의 아름다움을 닮으려는 관수세심 관화미심(觀水洗心 觀花美心)의 삶을 그려본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두물머리의 연꽃에 빠져 있다가 발길을 돌이킨다. 궂은 날씨로 수종사에 들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비오는 북한강변 드라이브와  개성집 만두전골과 빈대떡도 일품이었다. 다음 주 날씨가 맑으면 카메라 제대로 챙겨 세미원에 다시 가자고 아내는 성화다. 불감청고소원이다. 그 때는 석창원에도 들러야지.

 

 2008. 07. 19.

 세미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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