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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북정맥03 - 성거산 줄무덤에 잠든 영혼들

月波 2012. 6. 17. 21:30

 

[금북정맥 03]

금북, 그 마루금의 인문학 - 성거산 줄무덤에 잠든 영혼들

 

1. 산행 개요 

 

(1) 일시 : 2012년 6월 17일(일)

(2) 구간 : 성거산 성지-성거산-태조산-취암산-고려산-황골도로

(3) 거리 : 21Km

(4) 시간 : 08시간 55분

(5) 동행 : 성원, 이튼, 월파 (봄여름가을겨울 산악회 21명과 함께)

 

2. 산행 후기 

 

코끝을 스치는 상큼한 숲 향에 버스 속의 새우잠에서 깬다. 새벽 2시다. 산객山客의 이마에 하나 둘 랜턴이 켜지며 성거산聖居山 천주교 성지聖地의 적막寂寞을 깬다. 지난 산행의 말미末尾에 초여름의 녹음綠陰이 싱그러웠던 이곳을 잠시 산책했었지. 가슴 아픈 이곳의 역사가 꽃잎 하나, 나뭇잎 하나에 담겨 있었지. 순교자들의 줄무덤이 눈에 아른거린다. 

 

마루금 잇기를 시작한다. 군사시설이 성거산 정상부를 차지하고 있어 그 정상(579.1m)을 오를 수는 없다. 도로를 따라 우회한다. 그 길에서 동행하는 이튼(제용) 아우와 여기 천주교 성지의 줄무덤에 잠든 영혼들을 생각하며, 이 땅에 천주교가 전래된 이후 100여년의 박해사迫害史를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는다.

   

소위 진산사건珍山事件이라 불리는 신해박해(1791년, 정조 15년)가 그 시작점이다. 그 이후 소위 천주교 4대박해라 불리는 신유박해(1801년, 순조 1년), 기해박해(1839년, 헌종 5년), 병오박해(1846년, 헌종 15년)를 거쳐, 프랑스 함대가 침공했던 소위 병인양요의 빌미를 제공한 병인박해(1866년, 고종 3년)에 이르기까지 카톨릭 전교傳敎의 고난사苦難史가 오래된 영화처럼 머릿속에 떠오른다.  

 
신해박해의 1차적 본질은 조선의 국교國敎인 유교 사상思想과 천주교 의식儀式의 충돌이다.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을 거부하는 일은 당시로서는 유교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었으리라. 그 이후 신유, 기해, 병오, 병인박해를 거치며 천주교 박해는 붕당을 형성한 소위 시파와 벽파의 정치적 대립으로 더욱 심화되었다. 

 

여기 성거산 성지는 신유박해부터 병인박해까지 고난을 피해 숨어들었던 초기 천주교 신자들의 은신처이자 피난처였으며, 특히 병인박해로 성거산 아래 소학골을 비롯한 여러 은신처가 발각되어 23명이라는 많은 순교자가 발생했던 곳이다. 그 순교자들을 비롯한 여러 유무명 순교자의 줄무덤이 있어 그 아픈 역사를 대변하고 있는 곳이다. 

 

이 땅에 외래종교가 전래되며 기존 신앙과의 갈등과 융합의 과정을 겪었다. 불교가 전래되며 토속신앙과의 충돌로 이차돈의 순교가 있었다. 사찰의 주 법당 뒤편에는 토속신인 산신山神을 모신 산신각이 있다. 기존 신앙과 외래 신앙이 만나는 일종의 융합점일 것이다.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유교 의례와 그것을 우상偶像 숭배로 여겼던 천주교 교리 간에 융합점을 찾으며 천주교 전교傳敎도 뿌리를 내려온 셈이리라. 

 

어둠 속에서 성거산 표지석을 찾아 잠시 가쁜 호흡을 고른 후, 성거산의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태조산을 향해 마루금을 걷는다. 새벽안개 자욱하다. 숲은 묵묵히 산객山客을 맞아주고 산객은 그 몽환夢幻의 수채화에 점점 빠져든다. 

 

성거산 성지의 줄무덤

 

 

 

이후의 산행 족적足蹟

선두그룹과 함께 태조산(太祖山, 919.8m)에 오른다. 고려 태조 왕건에 얽힌 설화가 있는 곳이다. 금북의 산길에서 태조 왕건과 관련한 인문학을 논할 기회가 또 있을 게다. 정상에 8각정이 있다. 그런데, 누군가 팔각정 2층에 텐트를 치고 자고 있다. 여기서 잠시 눈 붙이려 했는데 ..... 선두 대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행을 앞서 걷는다. 달리다시피 빠른 걸음이다. 숲 향에 취했던 것일까? 

 

날이 밝아온다. 무아지경無我之境으로 걷다가 취암산(鷲巖山, 321m)에서 잠시 쉰다. 식사를 하며 일행들은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앞서 걷는다. 경부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숲으로 들었다가 돌고개에서 식수를 보충한 후 줄기차게 걷는다. 햇살이 뜨거워지기 전에 산행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조급한 생각이 더욱 걸음을 재촉했지 싶다.

 

햇살 가득한 고려산(高麗山, 307.2m)의 4각정자에서 비로소 발걸음을 멈추고 눈부신 숲을 카메라에 담는다. 오늘의 첫 사진이자 마지막 사진이다. 카메라의 눈에 비친 그 빛을 다시 내 가슴에 담았다. 숲 너머에 깔끔한 하늘이 보였다. 그 사이로 해맑은 어린 아이의 눈동자가 비쳤다. 돌고개에서 식수를 보충할 때 만난 대여섯 살 소녀, 그 해맑은 아이에게 홍삼양갱을 하나 더 건네주고 올걸.

 

산행 종착지인 황골도로에 도착해 시원한 맥주 몇 잔 마시며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으니, 정확히 1시간 후에 일행들이 동시에 도착한다. 

 

 

2012. 6. 17. (일) 여름 날 저녁에

천안天安의 산야山野에서 돌아와

월파月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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