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철학미학

정민의 산(5)

月波 2006. 8. 30. 22:39

 

산의 철학, 산의 미학
 
 
산의 잠언록
 
 
象村 申欽이 野人으로 묻혀 지낼 때, 옛 선인들의 글 가운데 마음에 와 닿는 글귀를 메모해 둔 것이 있는데, 이름하여 `野言`이라 하였다. 다음 인용은 이 어록 가운데 몇 개를 추려 본 것이다. 산 속에 묻혀 사는 野人의 삶이 담백하면서도 청정하게 그려져 있다. 토막토막의 말이 행간으로 이어져 `세상을 사는 지혜`를 일깨워 준다.
 
 
봄날이 무르익어 숲으로 들어가면 꼬불꼬불 숲속으로 산길이 통해 있고, 소나무 대나무 서로를 비추이고 들꽃은 향기 가득 산새들은 지저귄다. 이러할 때 거문고 안고 바위 위에 올라 앉아 두 세 곡 연주하면 이몸은 아득히 洞中仙 畵中人일세.
 
구름은 희고 산은 푸르다. 시내는 흘러가고 돌은 서 있다. 꽃은 나를 맞이하고 새는 노래 부른다. 골짜기는 메아리로 대답하고 나무꾼은 노래한다. 사방이 온통 적막해지니 내 마음 절로 한가해지네.
 
차 익어 향기 맑을 제 길손이 찾아오니 이 아니 기쁠소냐. 새 울고 꽃이 질 땐 아무도 없다 해도 마음 절로 유유하다. 眞源은 맛이 없고, 眞水는 향이 없네. 
초여름 園林에서 이끼 낀 바위 앉았자니, 대 그늘엔 해도 어느새 뉘엿하고, 오동나무 그림자 사이 구름이 돌더니만, 산 구름 건듯 일어 보슬비 서늘킬래, 평상에서 낮잠 청하니 꿈 속 또한 상쾌해라.
 
마음에 맞는 벗과 산 꼭대기 걸터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 지치면 바위 가에 하늘을 보고 누워 푸른 하늘 흰구름이 半空에 떠도는 모습 보며 흔연이 유유자적. 
 
대나무 책상 창가에 놓고 부들자리 깔고 앉으니, 높은 뫼엔 구름 들고 그 아래론 맑은 시내. 울타리엔 국화 심고 집 뒤엘랑 원추리를. 언덕 가득 꽃이 피어 지나는 길을 막고, 버들은 대문 앞을 버티고 서있구나. 굽은 길엔 자옥한 안개 주막으로 이어지고, 맑은 강에 해가 지니 漁村에는 고깃배라.
 
서리 내려 낙엽 질 때 성근 숲에 들어가 나무 뿌리 위에 앉으니, 나부끼는 단풍잎은 옷 소매를 점찍누나. 들새는 나무 가지 사이로 사람을 구경하니, 황량하던 땅이 맑고 드넓어지네.
 
서리 진 뒤 시내 바위 물 위로 드러나고 못물은 맑고도 고요히 잔잔한데, 깎아지른 바위 절벽 고목엔 덩쿨 지고, 물에 비친 그림자를 지팡이 짚고 서서보니, 내 마음 어느새 해맑아지네.
 
산에 삶이 비록 좋아도 얽매이는 마음 있으면 시장이나 진배 없고, 書畵를 즐김이 우아한 일이지만 탐내는 마음 있게 되면 장사치나 다름 없다. 술 마셔 취함이 즐거운 일이지만 남 하는대로 하면 감옥이나 한 가지요, 친구와 노님이 유쾌한 일이라도 俗流와 사귄다면 苦海가 따로 없다.
 
오직 독서만이 이롭고 해가 없다. 溪山을 사랑함이 이롭고 해가 없다. 꽃과 대나무, 바람과 달을 감상함이 이롭고 해가 없다. 단정히 앉아 고요히 침묵함이 이롭고 해가 없다.
 
문 닫아 걸고 마음에 맞는 책 뒤적이기, 문 열고 마음에 맞는 벗 맞이하기, 문을 나서 마음에 맞는 경치 찾아가기, 이것이 인간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깊은 산 높은 집엔 화로 香이 필요하지. 물러난 지 오래되면 좋은 것 다 떨어져. 늙은 松栢 뿌리와 잎, 그 열매를 짓찧어서 단풍나무 기름과 섞어 한 알 씩 태워주면 또한 淸苦함에 보탬이 있으리라.      
 
 
許筠의 《閑情錄》에도 선인들의 산수자연을 향한 깊은 애정이 빚어낸 주옥같은 金言들이 실려 있다. 산 속의 삶을 예찬한 몇 대목을 손길 따라 추려본다. 이 어찌 공해에 찌든 우리의 가슴을 시원히 적셔주는 淸凉散이 아니겠는가.
 
 
마음이 지치고 몸이 피곤하면 낚시대를 던져 고기를 잡고, 옷자락을 부여 잡아 약초를 캐며, 도랑물을 터서 꽃에 물을 주고, 도끼를 잡고 대나무를 가르며, 더움을 씻고 손을 닦고, 높은 데 올라 사방을 둘러보며 이리저리 거닐며 노닐면 오직 뜻에 맞으리라. 밝은 달이 떠올라 맑은 바람 불어 오면 가고 멈춤에 얽매임이 없게 되니, 耳目과 肺腸이 모두 내가 주인이 된다. 외롭고도 아득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다시 어떤 즐거움이 이것을 대신할 지 모르게 된다.
 
산이 고요하니 낮인데도 밤과 같고, 산이 담백하면 봄산도 가을 같다. 산이 텅비게 되니 따뜻해도 추운 듯 하고, 산이 깊고 보니 개인 날도 비오는 날 같다.
높은 산에 오르고 깊은 숲에 들며 굽이치는 시내를 찾아간다. 그윽한 샘물과 기이한 바위는 아무리 멀어도 가보지 않음이 없다. 가서는 풀을 헤치고 앉아 술병을 기울여 잔에 따른다. 취하면 서로 베고 눕는다. 마음에 지극한 바가 있으니 꿈 또한 같은 운치로 이어진다.
 
오래된 거문고 하나, 책 한 권을 주머니에 메고 술병을 들고 가고 싶은대로 간다. 마음에 느낌이 일어나면 문득 기쁘게 시를 읊조리고, 흥에 따라 술 마시며, 가고 머묾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지친 새가 둥지에 깃들자 흘러가던 구름은 골짜기를 감싼다. 석양이 산기슭에 걸리고 달이 띠집 위로 떠오르면 사방벽은 고요하고 창문은 환하다. 취해 돌아와서 자재로이 읊조리며, 羲皇의 거처에 누워 無何有의 나라에 노니노라면, 마침내 내가 즐거운지 즐겁지 않은지조차 알지 못하게 된다.
 
명아주 지팡이에 나막신 신고 깊은 골짝 큰 시내를 왕래하면서,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소용돌이 치는 여울을 바라보며, 맑은 못을 감상하고, 아슬한 다리 위를 거닐며, 무성한 나무 그늘에 앉았다가 그윽한 골짝을 찾아가며, 높은 봉우리에 오른다. 어찌 이를 즐기지 않고 죽으랴.
 
 
이상 옛 선인들의 산을 향한 뿌리 깊은 애호와 사랑의 뒤안을 살펴 보았다. 굳이 어려운 논설보다는 선인들의 따뜻한 육성을 들려주고 싶었다. 그들에게는 결코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겸허가 있었다. 돈벌이의 목적을 위해 자연을 황 폐화시키는 만용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먼발치에서 산을 바라보며 산과 닮아가고, 그 늠름한 雄姿에서 삶의 길을 되새기며, 이따금 산에 올라 산의 일부가 되는 물아일체의 삶을 지향했을 뿐이었다.
 
오늘의 인간은 무섭다. 국토자연은 날로 황폐해 가고, 개발을 앞세운 무분별한 파괴는 백두대간의 허리를 자르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자행하고 있다. 이러한 파괴는 인간의 탐욕이 그치지 않는 한 도를 더해갈 모양이니 안타깝다. 이글을 쓰는 지금도 저 청정한 가야산에서는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염불 소리가 끊임 없이 들린다 한다. 황령산 기슭에선 불도저 소리가 요란타 한다. 조상들이 경배하고 사랑했던 이 福地를 다 파괴하고서 훗날 우리는 무슨 면목으로 후손들과 마주할 것인가? 노산 이은상 선생의 〈조국강산〉 가운데 두 수를 적어 맺음에 갈음한다.
 
 
대대로 물려 받은 조국강산을
언제나 잊지 말고 노래 부르자
높은 산 맑은 물이 우리 복지다
어느 곳 가서든지 노래 부르자
 
 
겨레여 우리에겐 조국이 있다
내 사랑 바칠 곳은 오직 여기뿐
심장에 더운 피가 식을 때까지
즐거이 이 강산을 노래 부르자
.                
 
 
[한양대 정민교수 한국한문학 홈페이지에서 선생의 글을 나누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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