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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산(4)

月波 2006. 8. 30. 22:40

 

산의 철학, 산의 미학
 
 
산이 좋아 산에 갔더니
 
 
옛 선인들의 산수 자연을 향한 예찬은 유별나다 못해 유난스럽기까지 하다. 옛 선인들의 문집을 들춰 보면 으레 한두편의 山水遊記와 만날 수 있다. 산수유기란 글자 그대로 고인이 직접 산수 간을 노닐며 견문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는 연도의 풍정과 눈앞의 경관을 꼼꼼히 옮겨내는 섬세한 관찰의 기록이 있고, 자연 앞에 선 인간의 왜소를 돌아보는 겸허가 있다. 마치 솜씨 좋은 사진 작가의 필름을 마주 한듯 가보지 않은 봉우리와 골짝을 안방에 누워 유람하는 臥遊의 淸福을 누릴 수도 있다.
 
또 글을 읽어 보면, 이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던 것인지 메모만 하고 다녔던 것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꼼꼼하고 치밀한 기록 정신과 만나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몇 백년 전 그 산 속 어딘가에 있었던 절간의 규모나 유적의 보존 상태를 알 수 있고, 골짜기 조그만 암자에서 솔잎만 먹으며 용맹정진 하던 눈 맑은 승려도 만날 수 있다. 봉우리의 이름이 지어진 유래가 적혀 있고, 산 비탈의 모습 능선의 굴곡을 눈 앞에 선히 그려볼 수 있다. 예전의 등산로와 장비가 어떠했으며, 산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잘 나타나 있다. 산수유기는 말하자면 옛 선인들의 踏山記인 셈이다.
 
柳宗元의 유명한 〈永州八記〉는 그가 좌천되어 永州 땅에 쫓겨 와 있던 시절, 울적한 심회도 달랠 겸, 공무의 여가에 틈만 나면 주변의 산수간을 소요하며 노닐던 일을 기록한 글이다. 다음은 그 가운데 〈始得西山宴遊記〉의 일절이다.
 
 
금년 9월 28일에 法華寺 西亭에 앉았다가 西山을 바라보고 비로소 기이하게 여겨 마침내 하인을 시켜 湘江을 건너 染溪를 따라 잡초 덤불을 찍고 무성한 풀을 살라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야 그만 두게 하고, 더위 잡고 올라가 걸터 앉아서 노닐었다. 무릇 여러 고을의 땅이 모두 깔고 앉은 자리 아래로 펼쳐져 있어 그 높고 낮은 형세의 솟아오르고 움푹한 것이 개미둑 같고 구덩이 같았다. 尺寸에 천리를 빽빽히 쌓아 놓은듯 가리워 보이지 않음이 없었다. 푸르고 흰 빛으로 둘려 있어 멀리 하늘 가와 더불어 사방을 둘러봐도 한결 같았다. 이 뒤에야 이 산이 특출하여 흙무더기를 쌓아 놓은 것 같은 작은 산과는 類가 되지 않고, 유유하게 맑은 기운을 갖추었으나 그 끝간 데를 얻을 수 없고, 아득히 조물주와 더불어 노닐되 그 다함을 알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술잔을 당겨 가득 따르고 거나히 취하여 해가 지는 것도 알지 못하였다. 푸르스름한 땅거미가 먼데로부터 밀려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일지 않았다. 마음은 엉겨 붙은듯 형체는 놓여 사라진듯 萬化와 더불어 하나가 되었다.
 
 
西山의 정상 위에서 永州의 여러 고을을 굽어 보면 지금껏 보아왔던 산들은 모두 흙무더기를 쌓아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사방 천리의 시야를 尺寸에 압축시켜 놓은듯, 산은 개미둑 같고 골짝은 구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 호연한 경계 앞에 그는 돌아옴을 잊고서 저 멀리서 땅거미가 밀려와 눈 아래 펼쳐진 경물을 지워 버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마저 지워 버릴 때까지 그대로 앉아 있었다. `心凝形釋` 마음은 그대로 엉겨붙어 찾을 길이 없고, 형체는 그대로 기화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 `萬化冥合` 하는 物我의 일체감을 황홀하게 맛보았던 것이다.  
 
산은 이렇듯 우리에게 호연한 기상을 품어준다. 金馹孫은 〈頭流紀行錄〉에서 天王峰 日出을 마주한 감회을 이렇게 묘사한다.
 
 
辛亥日 여명에 해가 暘谷에서 돋는 것을 보았다. 맑은 하늘은 닦아논 거울 같아, 서성대며 사방을 바라보니 아득한 만리에 대지의 숱한 산들은 모두 개미 둑일 뿐이었다. 묘사는 곧 韓昌黎가 南山詩를 지을 때와 같고, 마음은 공자께서 東山에 오르심에 부합하였다. 두서없는 회포가 일어나 티끌세상을 굽어 보니 감개가 뒤따른다. 산의 동남쪽은 옛 신라의 땅이요, 서북쪽은 옛 백제의 땅이다. 어지러운 모기떼가 항아리에서 일어나 스러지듯, 애초부터 꼽는다면 얼마나 많은 영웅들이 이곳에 뼈를 묻었던가?
 
 
명나라의 吳廷簡은 일찍이 黃山을 유람한 뒤, "반생 동안 본 산들은 모두 흙더미, 돌무더기였을 뿐이다"라고 했다는데,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맑게 개인 하늘 위로 해가 뜨자 발 아래 늘어선 많은 산들은 모두 개미 둑같이 보일 뿐이었다. 공자는 동산에 올라가 노나라가 작은 것을 알았고, 태산에 올라서는 천하가 좁은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저 발아래 티끌 세상에서 옛 신라 백제의 싸움이 벌어지고, 그 오랜 세월에 수도 없는 영웅호걸들이 뼈를 묻는 동안에도 산은 언제나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우뚝 솟아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영웅호걸이란 것도 항아리 위를 앵앵거리다 마는 모기 떼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자연 앞에 선 인간은 언제나 왜소함을 느끼게 될 뿐이다. 
 
丁若鏞은 〈遊瑞石山記〉에서 무등산의 의연한 모습을 마치 巨人偉士가 말없이 웃지도 않으면서 조정에 앉아 있어, 비록 움직이는 자취는 볼 수 없어도 그 功化가 사물에 널리 미치는 것과 같다고 하며, 벼락과 번개, 구름과 비의 변화가 항상 산 허리에서 일어나 자욱히 아래로 향해 내려가지만, 산 위는 그대로 푸른 하늘일 뿐이니 그 산의 높음을 알 수 있겠다고 하였다. 이어 "가운데 봉우리의 정상에 서면 날 듯이 세상을 가볍게 보고 홀로 가는 생각이 들어, 인생의 苦樂은 마음에 둘 것이 못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나 또한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며 산위에서 느끼는 호연한 기상을 술회한 바 있다.
 
또 백두산 유람에 오르는 申光河를 전송하는 글에서는 大地는 언덕과 평지와 늪지가 섞여 이루어진 덩어리일 뿐으로, 혹 우뚝히 웅장하게 솟아 수천리에 서리어 뭉쳐 있는 뛰어난 산이 그 사이에 있으니, 그 까닭은 이로써 한 지방을 진압하고, 온갖 영이하고 기괴한 것들을 간직하여 만물이 우러러보는 대상이 되게 하고자 함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같이 중요한 산을 일반 백성들은 관심밖에 두고서 한 번 돌아보지도 않으며 "저것은 무엇하는 것이냐"고 말하니, 이는 또한 壤蟲 즉 버러지일 뿐이라고 잘라 말하였다.  
 
일찍이 司馬光은 "등산에도 도가 있다. 천천히 걸으면 피곤하지 않고, 튼튼한 땅을 딛으면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산을 오르는 도는 곧 인생을 살아가는 도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曺植은 〈遊頭流錄〉에서 登山과 下山의 일을 두고
 
 
당초 위쪽으로 오를 적에는 한 발자국을 내디디면 다시 한 발자국을 내딛기가 어렵더니, 아래쪽으로 달려 내려올 때에는 단지 발만 들어도 몸이 저절로 흘러 내려가는 형국이었다. 이것이 어찌 善을 좇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고, 惡을 좇는 것은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른바 《明心寶鑑》의 `從善如登, 從惡如崩`의 말을 새삼 환기함으로써 산을 오르내림에 있어서도 자기성찰의 고삐를 놓지 않는 진지한 삶의 자세와 만나게 된다. 또 함께 산을 오른 동행이 말을 타고 혼자 채찍을 휘둘러 먼저 정상에 올라 부채질을 하고 있자, 한 걸음 한 걸음 비오듯 땀을 흘리며 정상에 오른 曺植이 "그대는 말 탄 기세에 의지하여 나아갈 줄만 알고 그칠 줄은 모르니, 훗날 능히 의로움에 나아가게 되면 반드시 남보다 앞서게 될 것이다. 참으로 좋지 않은가?"라며 은연 중에 나무라는 대목은 이들의 山水遊記가 단지 거나한 遊山의 흥취만을 예찬코자 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다음은 우리나라 산수유기의 걸작인 朴齊家의 〈妙香山小記〉의 한 대목이다.
 
 
古木이 절벽에 기댄 채 말랐는데, 우뚝함은 귀신의 몸뚱이 같고, 서리어 움츠림은 잿빛 같았고, 껍질 벗음은 마치 늙은 뱀이 벗어놓은 허물 같았으며, 대머리가 된 것은 병든 올빼미가 걸터앉아 고개를 돌아 보는 것 같고, 속은 구멍이 뚫려 텅 비었고 곁가지는 하나도 없었다. 산에 의지한 돌은 검고, 길에 깔린 돌은 희며, 시내에 잠긴 돌은 청록빛이었는데, 돌들끼리 비벼 표백되고 깔리어 그런가 싶었다. 돌빛은 핥은듯 불그스레 윤기가 나고 매끄러웠다. 한 필 비단 같은 가을 햇살이 멀리 단풍 나무 사이로 펼쳐지자, 또 시내가의 모래는 모두 담황색인듯 하였다. (중략)
 
우러러 土嶺을 보니 오리 쯤 되겠는데, 잎진 단풍 나무는 가시와 같고 흘러내린 자갈 돌은 길을 막아선다. 뾰족한 돌이 낙엽에 덮였다가 발을 딛자 비어져 나왔다. 벌렁 나자빠질 뻔 하다가 일어나느라 손을 진흙 속에 묻고 말았다. 뒤에 오던 사람들이 웃을까봐 부끄러워 단풍잎 하나를 주어 들고서 그들을 기다리는 체 하였다.
 
萬瀑洞에 앉으니 석양이 얼굴에 비추인다. 거대한 바위는 산 마루 같은데 긴 폭포가 바위를 타넘고 흘러 내려온다. 물굽이는 세 번을 굽이쳐서야 비로소 바닥을 짓씹는다. 물줄기가 움푹 들어갔다가 소용돌이를 치며 일어나는 모습은 마치 고사리 순이 주먹을 말아 쥔 것 같고, 용의 수염 같기도 하며 범의 발톱 같기도 하여 움켜쥘 듯 하다가는 스러진다. 내뿜는 소리가 흘러 내려 하류로 서서히 넘치더니, 주춤하다가는 다시금 내뿜는데 마치 숨을 헐떡이는 것만 같다. 한참을 가만이 듣고 있으려니까 나 또한 숨이 차다. 이윽고 잠잠해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듯 하더니 조금 있자 더욱 거세게 쏟아져 내린다.
 
바지를 정갱이까지 걷어 부치고 소매는 팔꿈치 위로 말아 올리고 두건과 버선을 벗어 깨끗한 모래 위에 던져 두고 둥근 돌에 엉덩이를 고여 고요한 물가에 걸터 앉았다. 작은 잎이 떳다 가라앉는데 배쪽은 자짓빛이고 등쪽은 누런 빛이었다. 이끼가 엉겨 돌을 감싸니 이들이들 한 것이 마치 미역 같았다. 발로 물살을 가르자 발톱에서 폭포가 일어나고, 입으로 양치질 하니 비는 이빨 사이로 쏟아졌다. 두 손으로 허위적 거리자 물빛만 있고 내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눈꼽을 씻으며 얼굴의 술기운을 깨노라니, 때마침 가을 구름이 물 위에 얼비쳐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는구나.
 
 
실감나다 못해 황홀한 묘사가 아닌가.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가볼 길 없는 妙香山의 구비구비가 마치 눈 앞에 펼쳐진듯 생생하다. 그대로 한폭의 그림이요, 한편의 시가 아닌가. 다시 한 대목을 보자.
 
 
禁환 스님과 더불어 《法華經》의 火宅의 비유를 강론하였다. 스님은 오십 여 세로 誦經은 잘 하지만 사람과 마주하는 것은 꺼리는듯 했다. 그 형인 慧信 또한 중이 되어 極樂殿에 거처하는데 불경의 조예가 禁  보다 낫다 한다. 내가 물어 보았다.
 
"중 노릇이 즐거운가?"
"제 한몸을 위해서는 편합지요."
"서울은 가보았소?"
"한번 가보았지요. 티끌만 자옥히 날려 도저히 못살 곳 같습디다."
내가 또 물었다.
"대사! 환속할 생각은 없소?"
"열 둘에 중이 되어 혼자 빈 산에 산 것이 40년 올씨다. 예전에는 수모를 받으면 분하기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면 가엽기도 했었지요. 지금은 七情이 다 말라버려, 비록 속인이 되고 싶어도 될 수도 없으려니와, 혹 속인이 된다 해도 무슨 쓸모가 있답니까? 끝까지 부처님을 의지타가 寂滅로 돌아갈 뿐입지요."
"대사는 처음에 왜 중이 되시었소?"
"만약 자기가 願心이 없다면 비록 부모라 해도 억지로 중 노릇은 시키지 못하지요."
 
이날 밤 달빛은 마치도 흰 명주 같았다. 탑을 세 바퀴 돌고 술도 한 순배 하였다. 먼데 바람소리가 잎새를 살랑이니 쏴-아 하고 쏟아내는듯 쓸어내는듯 하였다.
 
 
客愁에 잠을 못 이루던 서울 선비가 탑 둘레를 맴돌다가 초로의 스님과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다. 명주를 펼쳐놓은 듯 희고 고운 달빛, 바람은 쏴-아 물결 소리를 내고, 도도한 흥취는 몇 잔의 술로도 잠재울 수가 없다. 먼지만 날려 도저히 사람 살 곳이 못됩디다 하고 스님은 고개를 내젓는다. 환속을 말하는 짓꿎은 농담에는 七情이 다 말라버렸다고 대답한다. 달빛 아래 담소의 광경이 꿈 속 같이 아련하다. 朴齊家는 〈妙香山小記〉를 이렇게 맺는다.
 
 
무릇 유람이란 흥취를 위주로 하나니, 노님에 날을 헤이지 않고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머물며, 나를 알아주는 벗과 함께 마음에 맞는 곳을 찾을 뿐이다. 저 어지러이 떠들썩 하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니다. 대저 속된 자들은 禪房에서 기생을 끼고 시냇가에서 풍악을 베푸니, 꽃 아래서 향을 사르고 차 마시는데 과일을 두는 격이라 하겠다. 어떤 이가 내게 와서 묻는다.
"산 속에서 풍악을 들으니 어떻습디까?"
"내 귀는 다만 물 소리와 스님이 낙엽 밟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요."
 
[한양대 정민 교수 한국한문학 홈페이지에서 선생의 글을 나누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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