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
- 군에 입대한 아들에게 쓰는 엄마의 편지
아들아, 엄마다.
이제 논산훈련 거의 끝나고, 수료식 기다리고 있겠네.
고된 훈련에 체중이 많이 줄어 몸짱이 된것은 아닐까? 많이 보고 싶고, 궁금하다.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손편지도, 독수리 타법의 인터넷편지도 더 자주 보낼걸, 아쉬움이 남는다.
아들아,
아빠 서재에서 골라 읽었던 어느 수필가의 글이 생각난다. 천천히 한번 읽어 보지 않겠니?
마른 침으로 우표를 붙이던 기억이 있습니다. / 혀로 느껴지는 우표 뒷면의 매끈한 감촉과 종이풀 냄새, /
그리고 밤새 지우고 쓰고를 반복했던 / 편지 한 통을 들고 / 빨간 우체통 앞에서 망설이던 때가 /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원종성, 빨간 우체통 중에서>
그렇구나. 옛날에는 그랬단다.
이제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인터넷으로 초고속 배달이 되는 세상이지만.
밤새 편지 고쳐쓰는 정성, 우표에 침 바르는 애틋함, 빨간 우체통 앞의 두근거림도 없이 살아가고 있었구나.
그런데, 이 번에 너를 논산 훈련소에 보내고 그 정성, 애틋함, 두근거림이 되살아났단다.
꾹꾹 눌러쓰지 못하고, 급히 날려쓴 손편지에는 뭐든지 빨리 알려주고 싶은 엄마의 애틋함이 담겼고,
또박또박 두 손가락으로 두드려 쓴 인터넷편지에는 한 자 한 줄 엄마의 숨결과 정성이 담기더라.
몇 년 전 아빠와 함께 갔던 지리산 벽소령의 빨간 우체통이 생각난다. 너도 아빠와 지난 여름 지리산 종주 때 보았지?
실제로 편지를 부치거나 받지 않지만, 그 우체통은 산행객에게 소리없는 정겨움을 나눠주고 있었지.
너의 논산 훈련소 입소로 이제 너와 엄마의 마음 속에 빨간 우체통이 들어와 있는 것 같지 않니?
힘든 훈련하는 동안, 너에게 쓴 편지 속에 엄마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담겨있으니 엄마는 행복해.
벽소령산장의 빨간 우체통
아들아,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3주간의 의정부 카투사(KATUSA) 훈련은 논산 훈련보다 그 강도가 좀 더 세다고 하던데 ......
그래도 우리 아들은 잘 할거라 믿어.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이니까.
이제 손편지나 인터넷편지도 배달이 안되니, 전화로 목소리 들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리마.
이미 엄마의 마음은 논산에서 의정부로 가는 기차길 옆에 서 있다.
KTA에서의 전화를 기다리며
2009년 9월 15일(화)
엄마가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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