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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 원천석의 치악산

月波 2012. 6. 18. 21:52

 

[길위의 인문학] 치악산 숨어 김매며, 태종의 발걸음 세번 물리치다


   원주=김도연·소설가

   조선일보 입력 : 2012.06.18 03:09

 

 

여말선초 隱士 원천석을 찾아 - '벌의 잘록한 허리' 터에 봉분, 원주·횡성서 역사·전설 들어


16일 운곡(耘谷) 원천석(1330~?) 선생을 찾아 원주로 가는 길은 초록이 한창이었다. 원천석 선생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은사(隱士)다. 스스로 지은 그의 호 운곡은 골짜기에서 김을 맨다는 뜻이라고 한다. 고려가 저물어가던 무렵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라는 말을 남기고 원주 치악산으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평생 숨어 살았다. 태종 이방원이 그런 그를 만나려고 세 차례나 찾아왔지만, 더 깊은 산속으로 몸을 피했다고 한다.


국립중앙도서관·조선일보·교보문고가 공동주최하는 '길위의 인문학' 탐방객 80여명과 함께 찾은 운곡 묘소는 특이했다. 한문학자 최상익 강원대 명예교수 설명에 의하면 봉요혈(蜂腰穴) 자리라고 한다. 벌의 잘록한 허리 부위에 묘를 썼다는 얘기다. 아니나 다를까. 거대한 벌 형상 산자락에 소박한 봉분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무학대사가 점지해준 자리란다.

 

묘비에는 조선 후기 문신 허목의 묘갈(墓碣)도 새겨져 있어 궁금증을 더했다. 벌의 둥그런 등 위에 옹기종기 앉아 운곡과 무학대사, 허목, 그리고 태종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듣는 탐방객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묘역 주변에는 바위들이 자연 그대로 자리하고 있는데 가까이 다가갔다가 깜짝 놀랐다. 벌집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정말 봉요혈이었다.

 


 길위의 인문학 탐방단원들이 강원도 치악산을 찾아

여말선초의 은사(隱士) 원천석의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작가 이승하씨

 

 

다음 행선지는 태종과 운곡의 사연이 서려 있는 치악산 남동쪽 마을 강림이란 곳이었다. 날은 여름인 것처럼 뜨거웠다. 먼저 도착한 장소는 각림사(覺林寺) 터였다. 태종이 어린 시절 각림사에서 운곡에게 글을 배웠다고 전해진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태종은 각림사에서의 날들을 각별하게 여겨 세 번째로 운곡을 찾아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운곡은 태종을 만나기를 거부했다.

각림사 자리는 우체국 건물과 교회, 민가가 지키고 있었다. 최상익 선생이 한마디 거들었다. "세월이 가면 이렇게 변하는 거 아닙니까." 왕의 수레가 멈추었다는 태종대, 그 왕을 피해 숨어든 고깔바위 변암(弁岩), 왕에게 다른 길을 일러준 뒤 물에 빠져 죽었다는 할미의 전설이 서린 노구소(老��沼)를 지나니 어느새 산그늘이 깊어졌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늘 새로웠다. 홍인희 작가의 구수한 입담, 사비를 들여 탐방객들에게 잡곡세트를 선물한 원주부시장, 횡성군과 도로공사 사람들, 옛사람의 발자취에서 현재를 돌아보는 눈 맑은 탐방객들…. 산골짜기 비탈밭에서 김을 매던 운곡 선생이 허리를 펴고 빙그레 웃으며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