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쿠시마屋久島
- 조몬스기 : 7,200년된 삼나무
- 시라타니운스이 계곡(白谷雲水峽)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원령공주> 배경
[영화-다큐멘터리] 시간의 숲 - 박용우/타카기 리나 , 감독 송일곤
[EBS] 休 마음을 내려놓다 - 규슈 제 2부 <시간의 숲>을 걷다
(*) 인천->(후쿠오카) -> 가고시마 -> 야쿠시마
(*) 야쿠시마 - 온대와 열대가 교차하는 지역으로, 1년 365일 중 350일 이상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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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시마(屋久島), 이 섬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8년 전이었다. 일본 가고시마현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건넨 명함에는 기이하게 생긴 나무 한 그루가 인쇄돼 있었다. 야쿠시마에 있는 7200년 된 삼나무라 했다. 7200년…. 그 까마득한 세월을 살아온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그때부터 야쿠시마는 '언젠가는 꼭 한 번 가 보고 싶은 곳' 목록의 앞순위에 올랐다.
몇 년이 흘러 후배가 책 한 권을 선물했다.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꽤 인기 있는 미스터리 작가 온다 리쿠가 쓴 <흑과 다의 환상> 이라는 소설이었다. 미스터리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시큰둥했는데, 배경이 야쿠시마라는 말에 냉큼 책을 펼쳤다.
야쿠시마에 있는 7200년된 삼나무
석기시대부터 존재했던 삼나무라는 뜻으로 '조몬스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과거와 현재,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야기에 꼼짝없이 매료됐다. 특히 작가 특유의 감수성으로 묘사된 야쿠시마는 당장에라도 가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밥벌이의 엄혹함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여행은 이상하다. 각 장소마다 갈 타이밍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흑과 다의 환상> 의 한 구절이다. 내 마음을 들뜨게 한 것도, 그 마음을 진정시킨 것도 온다 리쿠였다. 그 말을 믿고 때를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최근에 송일곤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시간의 숲> 을 봤다. 한 편의 영화를 끝낸 배우 박용우는 야쿠시마로 여행을 떠난다. 그의 여행에는 일본 여배우 타카기 리나가 동행한다. <시간의 숲> 은 야쿠시마에서 보낸 두 사람의 10일간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96분짜리 다큐멘터리는 솔직히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대체 이 기분은 뭐지?' 싶은 뜨거운 뭔가가 끓어올랐다.
야쿠시마의 숲은 고요하고 경이롭다. 그리고 침묵의 여운은 길고 강렬하다
수천 년을 이어 온 숲의 시간 속에서 인간의 시간 따위는 왜소하고 부질없어 보였다. 야쿠시마에서 자라는 삼나무의 나이테에서 인간의 일생은 한 뼘도 되지 않았다. 그런 숲에서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는 드라마는 애초부터 가당찮은 이야기였다. 숲은 고요하고 경이로웠다. 그 경이로움은 침묵으로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시간의 숲> 은 숲의 이야기 대신 숲의 고요함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였다. 하지만 침묵의 여운은 길고 강렬했다.
때가 된 것 같았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7200년 된 삼나무가 보고 싶었고, 미스터리와도 같은 그 숲이 궁금했고,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고요함 속을 걷고 있을 '내'가 수시로 오버랩 됐다. 야쿠시마를 갈 타이밍은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왔다.
가고시마의 후지산 '가이몬타케'의 도도한 자태
지난 6월 초 인천공항을 출발해 일본 가고시마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면 가고시마시와 야쿠시마를 잇는 고속선 터미널로 곧장 이동했다.
일본의 근대화를 견인했던 사츠마번의 다양한 역사 유적들, 하루에도 몇 번씩 분화를 하는 활화산 사쿠라지마, 텐몬칸거리 특유의 활력, 사탕수수 거래를 독점하면서 만들어진 달콤하고 매혹적인 전통과자들, 흑돼지를 사용해 만든 일본 최고의 돈카츠와 샤브샤브 등 가고시마에는 관광객의 발길을 붙들어 맬 것들이 무궁무진하지만, 이번만큼은 뒤도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오로지 야쿠시마만 생각했다. 늦은 점심을 해결할 도시락 하나를 챙겨 배에 올랐다.
▲ 가고시마항과 긴코만
가고시마항과 야쿠시마의 미야노우라항을 연결하는 고속선은 하루 7번 왕복한다. 중간 기착지 없이 직행할 경우 1시간45분이 걸린다. 가고시마항을 출발한 고속선이 한참을 달린 것 같은데도 여전히 좌우로 육지가 보인다. 바다가 가고시마 내륙 깊숙이 들어앉았기 때문이다. 이를 '가고시마만' 혹은 '긴코만'이라 부른다. 전체 운항시간 중에서 이 바다를 벗어나는 데만 절반이 소요된다.
긴코만(錦江灣)은 예로부터 도미, 샛줄멸, 날치, 보리새우 등의 수산물이 풍부했다. 지금은 방어와 잿방어 양식으로도 유명하다. 긴코만의 방어와 잿방어는 도쿄에서조차 으뜸으로 친다. 예나 지금이나 가고시마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바다인 셈이다. 특히 긴코만은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발원해 충청남·북도를 돌아 군산만으로 흘러드는 '금강(錦江)'과 같은 한자를 쓰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도 왠지 친숙한 느낌이 드는 바다다.
▲ 긴코만에서 바라 본 가이몬타케의 도도한 자태
오른쪽 창 너머로 가고시마의 후지산이라 불리는 '가이몬타케'의 도도한 자태가 보이면 만을 벗어날 때가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그리고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왼쪽 창 너머로 규슈의 땅끝인 '사타곶'이 보인다. 이제부터 넓디 넓은 동중국해가 펼쳐진다.
굳이 이런 사전지식이 없어도 지금까지 항해한 바다와 앞으로 항해할 바다가 다르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다. 방금 전까지 강물처럼 잔잔하던 바다가 갑자기 사납게 변한다. 거친 파도가 수시로 창문을 두드리며 사람을 놀라게 한다. 바다의 심중은 인간이 헤아리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여간 변덕스럽지 않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럴 때는 그저 바다에 모든 것을 맡기고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는 것이 요령이다.
잠깐이지만 꽤 깊은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배가 미야노우라항에 완전히 정박한 다음 일행이 깨우고서야 잠에서 깼다. 아마도 몇 년을 벼르던 야쿠시마를 드디어 본다는 설렘에 간밤에 잠을 설친 탓이리라.
▲ 미야노우라항은 한적했고 야쿠시마의 숲은 구름 속에 그 흔적을 감추고 있었다
미야노우라항(宮之浦)은 전형적이라 할 만큼 작고 한적한 항구였다. 일본 최고의 강수량을 자랑하는 동네답게 하늘은 잔뜩 찌푸린 표정이다. 낮게 깔린 구름 때문에 규슈 최고봉이라는 1936m의 '미야노우라다케'는 고사하고, 30여 개나 되는 1000m 이상 되는 봉우리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해상의 알프스'라는 별칭을 가진 야쿠시마의 웅장함은 끝내 구름 속에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느긋하게 항구에서 서성거릴 여유도 이유도 없다. 어차피 자연의 일정은 인간의 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하지만 자연의 무심함을 경험적으로 아는 인간은 어떻게든 해결 방법을 찾기 마련이다. 미야노우라항에서 5분쯤 걸어가면 '야쿠시마 환경문화촌 센터'가 있다.
▲ 대형 스크린으로 먼저 만나는 야쿠시마는 오랜 기다림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환경문화촌에서는 매시 20분마다 가로 20m 세로 14m에 이르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야쿠시마, 숲과 물의 심포니'라는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 약 25분간 상영되는 다큐멘터리에는 야쿠시마의 웅장한 자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실제와 거의 동일한 스케일을 보여주는 화면에 그에 어울리는 배경음악과 내레이션까지 더해져 사뭇 감동적이다. 비록 어설프긴 해도 한국어 자막까지 있어 나름 도움이 된다. 상영이 끝나고 불이 켜지는 순간 '그래, 내가 이 꼴을 보자고 그 세월을 기다렸고, 그 먼 길을 달려왔구나!'라는 확신이 절로 들었다. 비록 구름에 가려 실제의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이 정도 영상이면 첫 만남 치고는 손색없는 수준이다.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 아열대·온대·한대의 모든 특징 갖춰
야쿠시마는 마그마가 굳어서 생긴 화강암이 해저 폭발로 융기해 생겨난 섬이다. 그러니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폭발의 괴력이 대체 얼마나 대단했기에 이토록 거대한 돌덩어리를 해발 1936m나 밀어 올렸는지,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이렇게 높이 솟아오른 덕분에 야쿠시마는 아열대, 온대, 한대의 모든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다.
▲'야쿠시마 환경문화촌 센터'에서는 표고차에 따른 동식물의 수직분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직경 30km에 불과한 작은 섬에 길이 2000km에 이르는 일본열도를 수직으로 세워 놓은 것과 같은 식물들이 분포하고 있다. 한 마디로 일본열도의 자연환경이 옹골지게 채워진 거대한 자연사박물관과 다름없다.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된 야쿠시마에 대한 일본인의 각별함은 여기서 비롯된다. 아마도 한국인이 제주도와 한라산에 대해 가지는 애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선형의 경사로로 설계된 환경문화촌의 전시공간은 야쿠시마의 이러한 자연환경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살펴보면 좋겠지만, 어차피 내일이면 현장을 직접 본다. 다큐멘터리만으로도 예습은 충분하니 굳이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다.
대신 한 곳을 더 둘러볼 필요가 있다. 야쿠시마를 야쿠시마답게 만드는 삼나무, 이름 하여 '야쿠스기'다. 이 야쿠스기를 테마로 한 박물관이 따로 있다. 무릇 아는 만큼 보이고 본 만큼 느낀다 했다. 야쿠시마의 숲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건 몰라도 야쿠스기에 대한 예습은 필수다.
박물관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니 기발한 지도 한 장이 눈에 띈다. 야쿠시마는 거의 원형에 가까운 오각형의 섬이다. 여기에 착안해 시계처럼 1시부터 12시까지 12방위로 위치를 표시했다. 섬을 운행하는 대부분의 차량에 이런 지도가 붙어 있다.
▲시계처럼 12방위로 표시된 야쿠시마의 지도는 섬 내 주요 관광지의 위치와 이동시간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섬 면적의 90%가 숲이고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해안가 주변 10%에 불과하다. 이를 따라 섬을 일주하는 130km의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따라서 12방위로 표시된 지도는 현재의 위치와 목표지점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울러 한 지점에서 다음 지점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10분 내외라 이동시간까지 얼추 짐작할 수 있다.
일테면 이런 식이다. 야쿠시마에 처음 상륙한 미야노우라항은 1시 방향에 있고 목표 지점인 '야쿠스기자연관'은 4시 방향에 있다. 따라서 섬을 1/4 정도 돌아가고 시간은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버스가 미야노우라항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잔뜩 찌푸린 날씨는 기어이 비를 쏟아 냈다. 바닷물이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오르다 야쿠시마의 숲에 부딪혀 내리는 비라고 했다. 수평선과 하늘은 경계가 흐릿하고, 숲은 짙은 안갯속에 그 흔적을 감추고 있었다. 버스 창문을 열고 심호흡을 하니 물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가 가슴 속 깊이 파고들었다. 궂은 날씨와 달리 더없이 청량했다.
여행은 이제 시작이다. 나는 지금 야쿠시마에 있고, 나는 아직 이 섬에 볼 일이 많다.
덧붙이는 글 |
3박4일 동안의 야쿠시마 여행기는 앞으로 총 5회에 걸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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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0년짜리 나이테, 상상이나 해봤나?
[일본 야쿠시마 여행기 ②] 수령 1000년 이상된 삼나무 '야쿠스기' 자연관
13.07.09 09:33 l최종 업데이트 13.07.19 14:17l
박상현(drlandy)
▲ 야쿠스기자연관의 입구는 삼나무 군락이 마치 거대한 조형물처럼 관람객을 맞이한다.
1989년 개관한 '야쿠스기 자연관'은 야쿠스기(屋久杉)의 생물학적 특징은 물론이거니와 이 나무에 의지해 살아 온 야쿠시마 사람들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먼저 간단한 상식부터 확인하기로 하자.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나무가 삼나무와 편백나무다. 일본어로 삼나무는 스기(杉), 편백나무는 히노키(檜)라 한다. 생김새가 비슷해 나무에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이 봐서는 그 나무가 그 나무 같다.
내구성과 내수성이 강해 예로부터 고급 건축재와 가구용으로 많이 사용됐다. 일본의 전통 신사와 사찰의 신축과 보수에는 대부분 스기와 히노키를 쓴다. 특히 편백나무로 만든 '히노키탕'은 온천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 으뜸으로 친다. 나무 욕조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과 은근한 피톤치드 향은 가히 명불허전이다.
삼나무는 가고시마현 야쿠시마에서부터 아오모리현 쓰가루반도에 이르기까지 거의 일본 전역에 걸쳐 분포한다. '아키타스기' '다테야마스기'처럼 독특한 특징과 대규모 군락을 이루는 경우에는 지역 명칭이 붙기도 한다. 야쿠시마의 경우 인공림이 아닌 천연림 가운데 가장 큰 삼나무 군락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야쿠스기'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야쿠시마에 있다고 해서 모두 야쿠스기라는 이름을 갖지는 않는다. 오로지 1000년 이상 된 삼나무만 야쿠스기라 부르고, 1000년이 되지 못한 삼나무는 '고스기(小衫)'라 한다. 마치 80대가 즐비한 경로당에서 60대는 어른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삼나무의 평균 수명이 500년임을 감안하면, 야쿠스기의 가치와 중요성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인 특유의 섬세함과 기발한 아이디어는 특히 박물관과 테마파크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교육과 학술적 성격을 가진 박물관이 전시 기능에 치중하는 반면, 오락적 성격이 강한 테마파크는 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온갖 종류의 테마파크를 만드는 일본은 박물관에 테마파크와 같은 오락적 성격과 다양한 체험을 접목시키는 경우가 많다.
▲ 삼나무로 만든 블록을 끼워 맞춘 야쿠스기자연관의 바닥
관람객이 박물관을 둘러보는 내내 야쿠시마 삼나무를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연출됐다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감을 활용해 야쿠스기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야쿠스기 자연관 역시 마찬가지다. 이 박물관의 진정한 가치는 입구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모든 관람객은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입장한다. 적잖은 규모의 박물관에서 굳이 이런 거추장스러운 방식을 택한 것은 바닥 때문이다.
박물관 내부의 모든 바닥은 삼나무를 벽돌 모양으로 가공해 마치 퍼즐을 맞추듯 끼워 놨다. 일체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말 그대로 '끼워' 놓은 것이다. 관람객이 삼나무의 감촉을 직접 느낄 수 있게끔 말이다. 그러니 이러한 의도에 충분히 부응하자면, 신발만 벗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아예 양말까지 벗어 버리는 것이 좋다. 이 비싼 바닥재를 언제 또 밟아 보겠는가.
전시물 가운데 관람객을 처음 맞는 것은 '생명의 가지'라는 이름이 붙은 길이 5m, 무게 1.2톤에 이르는 거대한 나뭇가지다. 7200년을 살았다는 '조몬스기'의 일부분이다. 2006년 내린 폭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 것을 헬기를 이용해 옮겨 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걸 조사해보니 나뭇가지의 수명만 무려 1000년이 넘었다. 1000년의 세월을 버텨 온 가지가 고작 눈 때문에 부러졌다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나뭇가지라고 얕보지 마시길... 천 년을 살았어요
▲ '생명의가지'로 이름붙여진 이 거대한 조몬스기의 나뭇가지는 천 년의 세월을 살아왔건만,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그만 부러지고 말았다
사실 조몬스기의 수령이 7000년이 넘는다는 것은 '사실'이라기보다는 '바람'에 가깝다. 나무가 처음 발견된 1966년과 이후 진행된 조사에서 추정 수령이 최소 4000년이라는 점이 근거가 됐다. 석기(조몬)시대부터 존재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조몬스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가장 과학적인 측정값은 2170년 이상이라고 한다. 더 정확한 수치는 나무의 중심부까지 시료를 채취해야 얻을 수 있는데, 이는 나무의 보호를 위해서 시도하지 않고 있다.
안 하는 것인지 못 하는 것인지 그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조몬스기의 정확한 나이는 조몬스기가 쓰러지기 전까지는 미궁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조몬스기가 현재까지 발견된 야쿠스기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삼나무라는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1660년을 살다 베어진 야쿠스기의 나이테에는
나무가 살았던 시절의 역사가 촘촘하게 표시되어 있다
'생명의 가지'를 시작으로 야쿠스기 자연관은 야쿠스기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맡아보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흥미진진하게 구성돼 있다. 특히 조몬스기의 실제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대형 파노라마 사진, 1660년의 나이테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실물 야쿠스기, 삼나무를 벌목할 때 사용한 톱과 각종 연장, 1930년대 야쿠시마의 숲에서 삼나무를 벌목하며 살던 주민들의 모습을 기록한 영상물 등이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그중에서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전시관 한 쪽에 쌓여있는 '히라기'와 짚으로 엮은 쌀가마였다. 히라기는 가로 50cm, 세로 10cm 크기의 나무판자를 말한다. 이는 너와집의 지붕으로 쓰인 너와와 같은 역할을 했다. 섬 면적의 90%가 숲으로, 농사지을 땅이 절대 부족했던 야쿠시마는 에도시대(1603~1867)에 쌀 대신 히라기를 세금으로 바쳤다. 또한 이를 팔아 쌀과 생활용품을 구했다. 히라기 2310장을 쌀 한 섬으로 환산했다. 당시 쌀 1섬은 60kg 정도였다. 지금의 가치로 따지면 적게는 수백 배에서 많게는 수천 배까지 차이나는 비대칭적 교환이었다. 바로 여기에 야쿠시마의 숲과 사람들의 슬픈 역사가 서려있다.
지붕을 얹는 데 사용된 히라기는 2310장이 쌀 1섬과 맞먹는 가치였고,
그만큼을 만들기 위해서는 뒤에 보이는 크기 만큼의 야쿠스기가 필요했다
에도시대 일본을 지배하던 도쿠가와 막부는 지방 영주(다이묘)들의 자치권은 인정하면서도 강력한 중앙집권 체재를 유지하기 위해 몇몇 정책을 시행했다. 그중에 '참근교대'(산킨코다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전국에 걸쳐 260명 내외의 영주가 있었는데, 이들은 1만 석 이상의 토지와 군사력 그리고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다. 도쿠가와 막부는 영주들이 행여 반란이라도 도모할까봐 가족의 일부를 에도(도쿄)에 인질로 잡아두고, 영주들 역시 정기적으로 에도에 머무르도록 했다.
요즘 같은 시절에야 수행원 몇 명 데리고 신칸센이나 비행기 타고 오가면 그만이지만, 당시에는 사정이 달랐다. 영주가 에도까지 행차하자면 따라 움직이는 관료와 수행 인력만 수십에서 수백에 이르렀다. 고향과 에도에 두 집 살림하랴, 정기적으로 에도에 행차하랴, 자연스레 각 지역 영주들의 살림살이는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재정 지출이 많아지니 군비 확충 따위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덕분에 도쿠가와 막부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265년간 유지할 수 있었고, 에도는 이미 그때부터 인구 100만이 넘는 메트로폴리스로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막부의 사정과 달리 몇몇 영주들은 재정이 어려워져 파산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특히 에도와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의 영주일수록 이동비용이 많이 들어 재정 압박이 심했다. 도쿠가와 막부는 충성심이 강한 영주는 도쿄와 오사카 가까운 곳에 비교적 비옥한 토지를 나눠주고, 충성심이 의심되는 영주는 변방으로 보냈다. 규슈는 당연히 변방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남쪽인 가고시마는 변방 중에서도 변방이었다.
1년 고생해서 번 돈을 길바닥에 뿌리다니
▲ 에도(도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사츠마번은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마미군도와 류큐국을 차례로 정벌하고 야쿠시마의 삼나무 벌목을 강화했다
당시 가고시마는 '사츠마번'이 지배하고 있었다. 사츠마번의 영주가 에도로 한 번 행차하는데 소요된 비용은 지금의 물가로 약 50억 원 정도였다고 한다. 260개 영주들 가운데서도 최고 수준이었다. 지역 주민들이 열심히 농사지어서 번 돈을 1년 내내 길바닥에 뿌리다가 망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거듭된 전쟁과 참근교대로 심각한 재정난에 처한 사츠마번은 결국 '침략과 착취'라는 수단을 동원한다. 우선 가고시마에서 각각 400km와 600km 떨어진 아마미군도와 류큐국(지금의 오키나와)을 차례로 정벌했다. 류큐국을 거점으로 조선·중국·네덜란드 등과 밀무역을 하고 다음으로 아마미군도에서 생산되는 사탕수수를 독점했다.
당시 사탕수수 즙을 응고시켜 만든 흑당은 가장 비싼 식재료였다. 사츠마번은 작물을 키울 수 있는 아마미군도의 모든 땅에 사탕수수를 재배하도록 했다. 심지어 멀쩡한 논밭까지 갈아엎었다. 노동착취에 식량을 재배할 땅까지 잃었으니 아마미군도 사람들의 생활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지역 사람들은 당시를 '흑당지옥'이라 표현할 정도로 치를 떤다.
▲ 오로지 톱과 도끼만으로 거대한 야쿠스기를 쓰러트리는 것은 목숨을 건 노동이었다.
하지만 가진 것이라고는 숲밖에 없어던 야쿠시마 주민들은 이 일에 메달릴 수밖에 없었다
야쿠시마의 상황 또한 이와 비슷했다. 야쿠시마에는 삼나무의 벌목을 독려했다. 에도시대 주요 건축물의 신축과 보수에는 대량의 히라기가 필요했고, 야쿠스기로 만든 히라기는 최고의 건축자재였다. 사츠마번은 쌀 대신 거둔 히라기를 도쿄와 쿄토로 가져가 비싼 값에 팔았다.
안전 장비는커녕 톱과 도끼가 도구의 전부였던 시절, 해발 600~1000m에 이르는 숲으로 들어가 둘레는 10m가 넘고, 높이는 수십 m에 이르는 거목을 벌목하는 일은 목숨을 건 노동이었다. 하지만 히라기의 수요가 늘수록, 사츠마번의 재정난이 가중될수록 착취는 심해졌다.
그때마다 야쿠시마 주민들은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야 했고, 그때마다 수천 년을 살아 온 야쿠스기는 차례차례 쓰러져 갔다. 2310장이 쌓인 히라기 더미와 1섬의 쌀가마는 그 혹독했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야쿠스기 자연관을 둘러보고 나니 야쿠시마의 숲과 조몬스기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다. 이제 열 시간 남짓 지나면 지난 8년 동안의 기다림이 현실이 된다는 생각에 살포시 긴장되기도 했다. 더불어 새벽부터 정신없이 움직이느라 쌓인 피로가 그제야 몰려왔다. 뜨거운 온천에 몸을 담그고 싶어 서둘러 숙소로 이동했다.
1만4000명에 이르는 주민의 90%가 관광업에 종사하는 야쿠시마에는 섬의 규모에 비해 충분하고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다. 특히 등산객들을 위한 저렴한 민박과 여관이 많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의 보상으로 그리고 조금 특별한 이유로 첫날밤은 약간의 사치를 부리기로 했다.
30만 평 대지에 있는 호텔, 대단하구나
바다에서 바라 본 야쿠시마 이부스키호텔의 전경
건물 뒷편을 호위하듯 버티고 서있는 산이 모쵸무다케다
야쿠시마의 12방위 가운데 5시 방향에 위치한 이와사키호텔은 30만 평의 대지에 고작 125개의 객실 밖에 없는 리조트호텔이다. 바다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모쵸무다케가 마치 호텔을 호위하듯 버티고 선 모습이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건물을 제외한 나머지 대지는 모두 산책을 위한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그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정원 내로 제법 큰 자연 폭포가 흐르고, 대규모 귤 농장을 거느리고 있을 정도다.
로비로 들어서면 우선 거대한 야쿠스기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야쿠스기를 실물 그대로 재현한 이 작품은 호텔 내부 4층 높이까지 뻗어 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모쵸무다케가 병풍처럼 버티고 섰다. 다큐멘터리 <시간의 숲>에서 박용우와 타카기 리나가 처음 만났던 장소다. 나는 한류 드라마에 빠진 일본 아주머니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녹색의 파노라마는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선명했다.
여기서는 그저 하염없이 숲을 바라보고 바람을 맞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객실에 짐을 풀자마자 바로 온천으로 달려갔다. 노천온천에 몸을 담그니 긴장은 풀어지고 피곤은 눈 녹듯 사라졌다. 그렇게 5분을 담그고 있으니 바람이 불어온다. 멀리 동중국해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과 숲을 타고 내려오는 차가운 바람이 수시로 교차한다. 바람이 맛있다. 바람에 실려 오는 바다의 향기도 숲의 향기도 그렇게 각별할 수가 없다. 아주 오래 그 바람을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 마시고 또 마셔도 질리지 않는 바람이었다.
조몬스기를 만나러 가는 길은 만만찮은 여정이다. 등산로를 출발해 가는 데만 5시간, 왕복으로 9~10시간이 소요된다. 숲의 낮이 언제 막을 내리고, 숲은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그래서 등산객은 가능한한 출발을 서둘러야 한다. 오전 5시에는 숙소를 출발해야 안전한 하산을 기약할 수 있다.
내일을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왠지 오늘밤은 잠을 청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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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 묵은 나무 표정, 본 적이 있으세요?
[일본 야쿠시마 여행기 ③] 연간 강수량 1만mm...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2013. 07. 22 09:00
박상현(drlandy)
야쿠시마의 조몬스기로 향하는 철길
새벽 4시. 평소 같으면 상상도 못할 시간에 잠에서 깼지만 그럼에도 여유가 없었다. 씻는 둥 마는 둥 옷가지만 대충 챙겨 입은 채 방을 나섰다. 호텔 정문에는 우리 일행을 등산로 입구까지 데려 갈 버스가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 직원들이 아침 도시락과 점식 도시락이 든 봉투 하나씩을 나눠준다.
야쿠시마의 숲에는 몇몇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편의시설이 없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준비는 등산객의 몫이다. 야쿠시마의 숙박업소에서는 어디 할 것 없이 전날 예약하면 도시락을 준비해 준다. 행여 깜빡해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등산로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에는 새벽 일찍부터 도시락을 판매한다.
야쿠시마 숲 들어가자, 계곡의 엄청난 수량과 거친 소음
예상대로 새벽 어스름을 뚫고 비가 내렸다. 애당초 맑은 날씨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여기는 야쿠시마. '일주일에 8일, 한 달에 35일' 비가 내린다는 동네다. 그나마 가장 적게 내리는 해안가의 연 평균 강수량이 4000mm, 숲 속은 고도에 따라 8000~1만mm까지 내린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연 평균 강수량은 1275mm이다. 그러니 야쿠시마에서 맑은 날을 기대하는 것은 대책 없는 낙천주의자거나, 전생에 혹은 평소에 복을 엄청 지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저 이 비가 폭우로 변하지 않기만을 바랄 따름이다(물론 이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조몬스기로 향하는 여정은 빗속을 뚫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호텔을 출발한 버스는 약 40분을 달려 '아라카와등산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일행은 선 채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새벽부터 입맛이 있을 턱이 없지만 생존을 위해 열심히 구겨 넣었다. 빗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굵어졌다. 비옷을 꺼내 입는 등 나름 열심히 채비를 했지만 과연 얼마나 버텨줄지 다들 걱정스런 눈치다.
조몬스기 등산코스 개요
해발 600m에 위치한 아라카와등산구에서 조몬스기까지의 거리는 약 11km, 표고차는 700m 정도다. 시작점에서 8km까지는 벌목한 삼나무를 운반하던 산림철도가 깔려있다. 철길을 따라 걷는 이 코스는 경사가 완만해 산행이라기보다는 산책 수준이다. 본격적인 산행은 '오카부보도입구'에서 시작되는 약 2.5km 구간. 평소 운동량에 따라 힘들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이 코스에는 야쿠스기의 대표선수에 해당되는 유명한 삼나무를 차례로 볼 수 있어 수고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야쿠시마의 숲은 시작부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등장하는 계곡의 엄청난 수량과 유속 그리고 거친 소음이 여간 사납지 않다. 마치 절집의 입구에서 잡귀의 범접을 막고 중생을 정화시켜주는 사천왕상을 연상케 한다. 그 이름조차도 뱃사람들이 거친 바다를 일컫는 '황천(荒天 아라카와)'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황천길'의 그 황천(黃泉)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야쿠시마 사람들은 이 거친 계곡 때문에 전기를 얻는다. 1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계곡물을 이용한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아라카와 계곡은 이방인의 간담을 서늘하게할 정도로 사나웠다
철길을 1시간쯤 걸으면 고스기타니 초중학교가 있던 터에 닿는다. 잡초만 무성한 학교 터는 대충 봐도 만만찮은 규모다. 1920년대에 조성된 이 마을에는 한때 500명의 주민이 살 정도로 번성하다 1970년 국가 주도의 벌목 사업의 축소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못나서 살아남은 야쿠스기가 그렇게 고마울 줄이야
17세기부터 본격화된 벌목은 20세기 중반까지 계속됐다. 사츠마번의 재정난을 덜어 주었던 야쿠시마의 삼나무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근대화의 밑거름이 됐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가 재건의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
300년 넘게 진행된 벌목으로 섬 면적의 80%가 훼손됐다. 1993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될 당시에는 훼손되지 않은 20% 정도만 지정됐다. 만약 그 20%라도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야쿠시마의 오늘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1910년대에 만들어진 산림철도는 야쿠스기를 운반하는데 사용되었다
천 년을 넘게 버텨 온 야쿠스기의 운명 또한 이와 비슷하다. 예뻐서 봐 준 것이 아니라 못나서 살아남았다. 곧게 뻗지 않은 삼나무는 수령이 아무래 오래되어도 목재로서의 가치가 없었다. 곧고 높게 자란 야쿠스기는 어김없이 잘려 나갔다. 그래서 살아남은 야쿠스기는 둘레에 비해 생각보다 키가 크지 않고 그 생김새 또한 하나같이 기괴하다.
별 볼일 없는 내 처지에 빗대니 과하게 감정이입이 된 탓일까? 못나서 살아남은 야쿠스기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그러니 지금 좀 잘났다고 고개 빳빳이 들고 거들먹거릴 일이 아니다. 세상사 세옹지마라는 말이 이 숲에 서면 절로 수긍이 간다.
고스기타니마을 터를 지나 30분쯤 걸으니 갈림길이 나온다. 이정표를 보니 왼쪽 오솔길을 따라 90분 정도를 걸으면 '시라타니운스이계곡'에 닿는다고 한다. 조엽수와 야쿠스기 그리고 초록의 이끼로 뒤덮인 이 계곡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야쿠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라고 하는데, 빠듯한 일정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야쿠시마의 숲은 고요했고, 그 고요함은 전혀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이었다
이것은 하나의 의견인데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고요함이다
산은 고요하다
밭은 고요하다
흙은 고요하다
벌이가 안 되는 것은 괴롭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필요한 것은
고요함이다
해발 700m 지점을 지나니 본격적인 야쿠시마의 숲이 펼쳐졌다. 숲은 고요했다. 일본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야마오 산세이는 고향인 도쿄를 떠나 1977년 가족과 함께 야쿠시마의 숲에 정착했다. 2001년 숲의 일부가 되기까지 그는 농부이자 시인으로 살았다.
'이것은 하나의 의견인데'라는 겸손함과 '벌이가 안 되는 것은 괴롭지만'이라는 솔직함, 야쿠시마의 숲을 노래한 시인의 현학적이지 않은 태도가 오히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야마오 산세이는 숲을 찾는 인간들에게 '결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걸을 것, 잡담을 삼가고 침묵을 지키며 걸을 것'을 당부했다. 그러면 생명이 깃든 모든 것으로부터 '참다운 나(가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 했다.
그러고 보니 야쿠시마의 숲에서는 신사나 도리이를 발견할 수 없다. 일본에는 '야오요로즈가미(八百万神)'라는 말이 있다. 신의 숫자가 800만이나 된다는 소리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곳곳에 크고 작은 도리이와 신사를 세운다.
▲ 야쿠시마의 숲은 그 자체로 신(神, 가미)이고, 숲을 이루는 모든 것이 신神의 일부였다
수시로 땅이 갈라지고, 시뻘건 용암이 터져 나오고, 거센 폭풍우가 몰아친다면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까? 간단하다. 하늘과 땅과 바다 그리고 조상, 심지어 동물에게 까지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경외하게 된다. 경외하는 모든 대상은 '가미(神)'가 되고 신에게 생존과 농사의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이것이 원시신앙이다. 원시신앙이란 신에 대한 의례를 통해 재앙을 물리치거나 공동체적 결속을 다지는 일체의 행위를 일컫는다. 이러한 원시신앙이 수천 년 간 이어져 온 것이 바로 일본의 신도(神道)다.
따라서 신도는 일본이라는 사회와 문화 그리고 개인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일본에서 신도는 종교이자 도덕이며 생활로서 태고적부터 존속해온 일본의 전부이자 일본인의 '삶' 자체다.
그런데 야쿠시마의 숲에는 신에게 의지하기 위한 그 어떤 상징물도 없다. 숲 자체가 신이고, 그 숲을 구성하는 모든 죽은 것과 산 것이 신의 일부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야마오 산세이가 '참다운 나'를 두고 '가미(神)'라고 한 것이 그제야 이해가 됐다.
침묵하며 걷기, 고요함을 깬 것은 사슴
그의 당부대로 서두르지 않고, 잡담도 않고, 침묵을 지키며 묵묵히 걸었다. 숲이 나를 받아줄지 어떨지는 몰라도 숲의 일부가 되어 보기로 했다. 어쩌면 생애 최고의 광경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출발한 여정이었건만, 이미 나를 스쳐가는 모든 것들이 생애 최초이자 최고의 풍경이었다. 숲의 일부가 되지는 못했을지언정, 어쨌거나 나는 그 숲에 있었다.
▲ 제 땅에 살고있는 사슴들은 인간을 경계하지도, 그렇다고 굳이 가까워 지려고도 하지 않았다
고요함을 깬 것은 사슴이었다. 저만치서 두 마리의 사슴이 부스럭 거리며 나타났다. '원숭이 2만, 사슴 2만, 사람 2만', 오래전부터 야쿠시마를 상징해 온 말이다. 한번 보이기 시작한 사슴은 그 후로 수시로 출몰했다. 2만이나 되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많았다. 사슴은 인간을 경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본의 유명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닳아빠진 녀석들처럼 먹을 것을 구걸하지도 않았다.
이곳은 본래부터 녀석들의 땅이었고, 인간은 잠시 스쳐가는 나그네에 불과했다. 사슴도 인간도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각자에게 허락된 길을 갈 뿐이다.
3시간쯤 걸으니 8km에 이르는 철길이 끝났다. 본격적인 산행을 앞두고 '오카부보도' 입구 산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한 나로서는 강한 흡연의 욕구가 일었다. 일본 역시 제법 깐깐한 금연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흡연자에게 관대한 나라다. 국립공원이나 유명 관광지의 경우 제한적이지만 흡연이 가능한 장소를 마련해 두고 있다.
나와 같은 처지인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산장 후미진 곳에서 담배를 피웠다. 아이러니 하게도 고요함에 매료되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숲의 공기를 그때서야 실감했다. 청량하고 향기로웠다. 내 언제 다시 이런 곳에서 다시 담배를 피워 볼 수 있을까 싶어 연거푸 두 개피를 피웠다. 하지만 위험했다. 지금까지 마셔왔던 것과 차원이 다른 공기는 복부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흡입력이 전혀 달랐다. 공기 좋은 곳에 있으니 담배 따위가 얼마나 백해무익한지 절로 실감할 수 있었다.
▲ 뿌리를 땅 속으로 내리지 못한 야쿠스기는 수천년의 세월을 거치며 나름의 생존방식을 터득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 일행은 채비를 갖추고 다시 걸었다. 경사가 제법 심하고 길도 험했지만 그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지나 온 길이 예고편이라면 진짜 풍경은 지금부터다. 천 년이 넘은 야쿠스기가 차례로 나타났다.
삼나무의 평균 수명이 500년인데 반해 야쿠스기가 천 년을 넘게 사는 것은 척박한 환경 때문이다. 섬 전체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인 야쿠시마는 토양의 깊이가 평균 30cm 밖에 되지 않는다. 멀리서 날아 온 약간의 흙이 섬을 덮었고 오래전 죽은 식물들이 다시 그 위를 덮었다. 그렇게 쌓인 토양에서 야쿠스기는 뿌리를 내렸다. 죽은 것을 딛고 살아야하는 야쿠스기는 제 욕심을 차리기보다 염치 있는 삶을 택했다. 성장을 최소화함으로써 숲의 환경에 적응했다. 야쿠스기자연관에서 본 1660년 된 야쿠스기 나이테의 중심부는 0.1mm에 불과했다.
▲ 수백년전 잘려나간 야쿠스기의 그루터기에서는 새로운 삼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다음 세대에 성장한 삼나무들이다. 인간에 의해 잘려나간 야쿠스기의 그루터기와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야쿠스기에는 온통 이끼가 끼어 있었고, 그 이끼 위로 새로운 삼나무가 자랐다. 제 어미의 품에 뿌리를 내린 형국이다. 어미를 품고 자란 삼나무는 성장이 빨랐고 곧게 자랐다.
수령이 천 년이 되지 않은 고스기(小衫)는 대부분 이렇게 성장한 것이다. 죽은 것들이 만든 토양에서 어미가 자랐고, 죽은 어미를 딛고 다음 세대가 성장을 거듭했다. 야쿠시마의 숲은 이렇게 만들어졌고, 이 숭고한 생명의 대물림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고작 100년을 사는 인간의 처지에서 야쿠시마의 숲이 경이로운 것은 바로 이 광경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숲에서는 겸손 따위를 언급하는 것조차 겸손하지 않게 느껴진다.
8년 동안 상상했던 조몬스기, 이 느낌은 뭐지?
▲ 윌슨그루터기 속에서 올려다 본 야쿠시마의 숲
해발 1000m에 이르니 '윌슨그루터기'가 나타났다. 1900년대 초반 미국의 식물학자 윌슨 박사에 의해 발견됐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약 300년 전에 잘려나간 2000년 된 야쿠스기의 흔적이다. 중심부가 썩어서 비어있고 그루터기 아래를 통해 나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내부에서 하늘을 올려다 볼 때 하트 모양이 보여 유명해진 그루터기이기도 하다.
밑동의 지름만 4m인 윌슨그루터기의 내부 면적은 다다미 8조 규모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몇 조'라는 식으로 방의 넓이를 다다미의 갯수로 표현했다. 다다미 두 장이 대략 한 평에 해당된다. 4평쯤 되는 다다미 8조는 꽤 넓은 방을 의미한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공간에 대해 '뻥'을 칠 때는 '다다미 8조'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 세상에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이 이런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까?
윌슨그루터기를 지나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빗속을 뚫고 숲길을 걸은 지 꼬박 4시간. 정신은 더없이 맑고 충만했지만 속은 비어 있었다. 대자연의 경이로운 풍경 속에서도 인간의 배고픔은 어김없다. 다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주먹밥에 몇 가지 반찬이 전부였지만 꿀맛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익숙하고 정겨운 냄새가 감지됐다. 일행 중 한명이 시중에 판매되는 깻잎 무침을 챙겨와 나누고 있었다. 해발 1100m의 야쿠시마의 숲에서 먹는 깻잎무침이라니! 깻잎 두 장에 그렇게 감격할 줄은 미처 몰랐다. 행여 야쿠시마를 가실 분들은 꼭 한번 고려해 보실 것을 권한다.
식사를 끝내고 해발 1200m에 이르니 '다이오스기(大王杉)'가 나타난다. 수령 3천년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조몬스기가 발견되기 전까지 야쿠시마에서 가장 오래된 삼나무였고, 그래서 '대왕'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었다. 이미 대왕의 자격을 누리고 있는 상태에서 그 보다 오래된 나무가 나타났으니 나무는 나무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꽤 난처했을 것이다.
다이오스기를 뒤로하고 밥심에 의지해 마지막 에너지를 쏟았다. 저 멀리서 웅성거림이 느껴졌다. 경사를 오르니 웅성거림은 탄성으로 바뀌었다. 조급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숨을 고르고 계단을 올랐다.
▲ 조몬스기는 이곳에서 나를 수천년 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깊은 산속에서 느닷없이 만난 백발의 노인과도 같았다. 옅게 드리워진 안개는 분위기를 한층 몽환적으로 만들었다. '이건 대체 뭐지?' 8년 동안 상상했던 모습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굉장히 거대한 무언가를 상상했던 것에 비해서는 왜소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어떤 기운과 감정이 자꾸만 나를 끌어 당겼다. 안개가 걷히니 노인의 표정은 점점 선명해졌다. 조몬스기가 지나 온 시간의 흔적은 크기가 아닌 그 표정에서 드러났다.
수피, 지금껏 이런 나무의 표정은 본 적이 없다. 그동안 봐 왔던 흑백으로 찍은 수많은 인물사진이 스쳐 갔다. 명암의 대비가 선명한 흑백사진은 세월의 흔적과 스토리를 짐작케 하는 힘이 있다. 수천수만 장의 사진이 마치 모자이크처럼 조몬스기의 수피로 날아와 박혔다. 역사, 조몬스기는 그 표정으로 지나 온 역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이 표정 앞에서 나무가 7000년을 살았느니, 3000년을 살았느니 하는 것은 부질없었다. 관건은 시간의 길이가 아닌, 시간의 깊이였다. 이 척박한 곳에서 나홀로 인고의 세월을 버텨 온 나무였기에 가능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은 한없이 인자해 보기기도 했고, 때로는 무서워 보이기도 했다. 그 심중을 헤아리는 것은 애당초 불가했다. 그저 바라보고, 또 바라만 볼 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 이 속깊은 노인의 심중을 헤아리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 종일 노인의 표정을 바라보고 싶었으나, 이제 그만 내려가란다. 잠시 그쳤던 비는 폭우가 되어 다시 내렸다. 감정을 수습하고 작별 인사를 할 틈도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지나 온 길만큼 다시 가야하는데 비의 양이 심상찮았다. 연 평균 강수량 8000~1만mm는 그제야 실감이 났다.
오후가 되니 숲은 빠른 속도로 어두워졌다. 이미 온 몸은 젖을 대로 젖어 있었다. 원숭이 가족이 나타나 작별 인사를 한다. 달리 비를 피할 곳이 마땅찮은 숲에서 저 녀석들이나 나나 이 무슨 고생인가 싶다.
그래, 어차피 삶은 고행이다. 고행은 고행인데 정신은 왜 이다지도 맑은 것일까? 몸은 천근만근이고 다리는 풀릴 대로 풀렸는데, 이 가볍고 충만한 기분은 대체 뭔가. 이 맛에 그 험난한 고행의 길을 마다하지 않는 걸까? 빗속에서 별 쓸데없는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다들 들떠있다. 숲을 오를 때는 그렇게 침묵하던 일행들이 숲을 내려갈 때는 침묵을 놓았다.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말을 해야 했고, 고단함을 잊기 위해서라도 말을 해야 했으며, 점점 식어가는 몸을 추스르기 위해서라도 말을 해야 했다.
출발점을 두어 시간 앞두고는 슬슬 저체온증 증세를 보였다. 누군가 초콜릿을 나눠 준다. '오, 마이, 갓!' 달콤함이 이렇게 따뜻하고 감사한 줄 미처 몰랐다. 단 음식을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앞으로는 초콜릿을 사랑하기로 했다. 버스에 오르니 비로소 모든 것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정말로 간절한 것이 있었다. 누군가 달걀 하나 푼 컵라면을 내민다면 영혼을 팔고서라도 바꾸고 싶었다. 11시간 동안의 긴 여정의 감동과 깨달음은 그렇게 세속적인 욕망 앞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 깨달음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숲에 있었고, 그 기억은 아마도 평생 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아무 것도 변한 것도 달라진 것도 없다. 나는 다시 떠날 때와 다름없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 숲에 있었고, 조몬스기의 표정을 봤다. 그 기억만큼은 평생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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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다큐멘터리] 시간의 숲 - 박용우/타카기 리나 , 감독 송일곤
[EBS] 休 마음을 내려놓다 - 규슈 제 2부 <시간의 숲>을 걷다
야쿠시마屋久島
- 조몬스기 : 7,200년된 삼나무
- 시라타니운스이 계곡(白谷雲水峽)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원령공주> 배경
(*) 인천->(후쿠오카) -> 가고시마 -> 야쿠시마
(*) 야쿠시마 - 온대와 열대가 교차하는 지역으로, 1년 365일 중 350일 이상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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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수의 여행이야기] 천 년 삼나무의 섬 ‘야쿠시마’
몇 년 전 죽기 전에 가고 싶은 곳 100군데를 정했다. 핀란드의 오로라, 페루의 마추피추, 인도의 암리차르 황금사원, 중국 황궈수폭포 등. 가까운 일본은 34번을 다녀왔지만 여전히 가보고 싶은 곳이 많다. 그 중에 야쿠시마는 단연 제 1순위였다. 연강수량 1만 밀리미터로 일본에서 비가 가장 많이 내린다는 섬. 풍부한 강수량과 온난한 기후가 키워낸 수천년 수령의 삼나무 숲과 이끼의 땅. 그곳 야쿠시마로 향했다.
야쿠시마를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규슈 최남단의 가고시마까지 비행기를 타고, 다시 야쿠시마까지 국내항공을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비용 문제라든가, 날씨 탓으로 가고시마에서 야쿠시마까지는 페리를 이용했다. 대략 4시간 40분. 30분이면 올 거리를 페리로 느긋하게(?) 도착했다. 야쿠시마는 울릉도 세 배 정도의 면적에 섬의 90%가 산악 지대다. 게다가 해발고도가 0미터에서 약 2,000미터에 이를 만큼 폭넓은 고도차 덕분에 산정에서는 고산식물이, 평지에서는 아열대식물이 자란다.
야쿠시마는 1년 365일 중에 366일이 비가 내린다는 섬. 아니나 다를까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7200년(최대 추정치) 된 조몬스기(繩文杉)를 비롯해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된 2,000그루의 야쿠스기(屋久杉·1000년 이상된 이 섬의 일본 삼나무 거목을 칭하는 말), 미야자키 하야오가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 각색한 애니메이션 ‘모노노케히메’(원령공주)의 배경이 된 신령스러운 숲의 계곡 ‘시라타니운스이쿄(白谷雲水峽)’ 등. 아름다운 숲과 완벽하게 보존된 태곳적 자연을 품고 있는 섬은 그렇게 조용히 나그네를 맞이했다.
야쿠시마를 찾는 이는 대부분 조몬스기 코스 트레킹을 한다. 산중엔 등산로 표식과 이정표가 잘 설치되어 있지만 현지 가이드와 함께 하는 것이 좋다. 폭우나 짙은 안개가 끼는 등 기상 악화로 자칫 조난당하는 경우가 많다. 숲 자체도 워낙 우거져 기온이 낮은 데다 날씨마저 변화무쌍해 가벼운 트레킹 코스임에도 장비만큼은 완벽하게 갖춰야 한다. 특히 비를 막아줄 방수복과 배낭덮개, 모자, 장갑은 필수다.
하산하기를 2시간 정도 하면 신타카쓰카산장(新高塚小屋)이 나온다. 60명이 머물 수 있는 무인산장인데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다. 이곳에는 식수를 구할 수 있다. 이 산장에서 1시간정도 하산하면 수령 7,000년, 나무 높이 25.3m, 둘레 16.4m 즈음 되는 조몬스기가 있다. 차로 갈 수 있는 곳까지 가고도 다섯 시간을 걸어야만 만날 수 있다. 이곳을 내려가면 서로 부부같이 붙어있는 부부삼(夫婦杉)과 옹삼(翁)을 볼 수 있으며 또한 거대한 윌슨 그루터기(윌슨이라는 서양인이 발견하여 이름을 붙였다)가 있다.
여기부터 날머리까지는 2시간 남짓 8㎞의 삼림 철도를 따라 걸어야 한다. 이 철길은 에도 시대에 건설되어 1910∼1970년까지 삼나무를 운반했지만 지금은 비상용 도로로 관리되고 있다. 왕복 9시간이 걸리는 조몬스기 대신 가까운 곳의 삼나무들을 만나러 가는 사람들은 여기를 이용하면 편하다.
장원수
전 경향신문 기자, 여행 칼럼니스트
스포츠 서울
2012-10-08 11:16 입력
http://cample.sportsseoul.com/cample_news_read.php?article=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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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년 쌓인 이끼와 삼나무숲 … '원령공주'가 태어난 곳
[중앙일보] 입력 2013.04.19 04:00
일본, 이곳① 세계자연유산 규슈 야쿠시마
2013년은 일본 여행의 해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엔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이태 전 동일본 대지진의 충격이 어느 정도 가셨다는 정서적 안정이 하나고, 앞으로 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이는 엔화 약세 현상이 다른 하나다. 일본정부관광국 서울사무소 정연범 소장은 “이미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수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전 수준을 회복했으며 올해는 사상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week&이 이번 달부터 ‘일본, 이곳’ 기획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다. week&은 한 달에 한 번씩 일본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뻔하고 흔한 일본 여행은 사양한다. 지난해만 해도 한국인 200여만 명이 일본을 다녀왔을 만큼, 일본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여행지여서다. week&이 엄선한 ‘일본, 이곳’ 첫 회는 일본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야쿠시마(屋久島)다.
여행을 떠나는 동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에 끌리기도 하고, 책을 읽다 밑줄 그은 구절에 설레기도 한다. 때로는 영화 한 편이 메마른 가슴에 청량한 바람 한 줄기를 불어넣는다.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가 그랬다. 이 영화를 본 뒤로, 그러니까 일본영화 최고의 흥행 기록을 쓴 이 애니메이션 영화의 배경이 일본 남쪽의 외딴 섬이란 사실을 알고 난 뒤로 야쿠시마는 언젠가는 꼭 밟아야 할 이름이 되었다. 마침 올해는 야쿠시마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 된 지 20주년 되는 해다.
밑동만 남은 삼나무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간다. 나무 안은 여남은 명이 들어가도 넉넉할 만큼 넓다.
구멍 뚫린 하늘은 마침 하트 모양이다. 추정 수령 3000년이라는 윌슨 그루터기 모습.
1914년 어네스크 헨리 윌슨이라는 미국인이 처음 발견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섬 자체가 동물원 … 사람 겁 안내는 사슴과원숭이
야쿠시마는 규슈(九州) 남쪽 도시 가고시마(鹿兒島)에서 남쪽으로 60㎞를 더 가야 나오는 작은 섬이다. 면적이 500㎢이니까 제주도 4분의 1 크기다. 섬의 90%가 산이라고 하니 섬이 곧 산이라 해도 맞고, 해안선 빼고는 전부 숲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규슈에서 가장 높은 산 미야노우라다케(해발 1935m) 주위로 해발 1800m 이상 봉우리 7개가 어깨를 맞대고 있다. 깊은 산맥이라는 뜻의 오쿠다케(奧岳)다. 야쿠시마에서는 이 깊고도 높은 산중에 신이 산다고 믿는다.
야쿠시마에는 ‘사람 2만 명, 사슴 2만 마리, 원숭이 2만 마리’라는 말이 내려오지만, 현지 공무원에 따르면 인구는 1만4000명이 조금 넘고, 사슴과 원숭이는 각각 6000마리 정도로 추산된다. 그래도 놀라웠다. 숲을 걷다가 야생 사슴과 원숭이를 수시로 만났다. 녀석들은 사람을 겁내지 않았다. 야쿠시마에서는 인간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아는 눈치였다.
야쿠시마에는 ‘한 달에 35일 비가 온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비가 많이 내린다는 뜻이다. 연 강수량은 해안지역이 평균 4000㎜, 오쿠다케가 평균 1만㎜다. 일본에서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지역이 야쿠시마다. 하여 야쿠시마 여행에 좋은 계절은 봄이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섬에는 태풍이 줄 지어 들이닥친다.
하지만 야쿠시마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삼나무다. 그것도 1000년 이상 묵은 삼나무다. 야쿠시마에서는 1000년 이상 묵은 삼나무를 ‘야쿠스기(鹿兒杉)’라 부른다. 삼나무 평균 수명이 500년 안팎이라는데, 이 섬에는 2000그루가 넘는 야쿠스기가 산다. 17세기부터 일본 본토의 사찰과 신사를 짓는다고 수많은 삼나무를 베어냈는데도 이만큼 남아있다.
그래, 야쿠시마는 이 정도 되는 섬이다. 전체가 거대한 산인 섬이고, 비가 하도 많이 내려 전체에 이끼가 낀 섬이고, 1000년 넘게 사는 나무가 숲을 이루는 섬이다. 이 정도는 돼야 일본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이고, 1500만 명 가까운 일본인이 관람한 영화의 배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 이와사키 호텔 객실은 오션 뷰보다 마운틴 뷰가 더 비싸다. 이유는 창문 앞에 모초무다케가 떡 하니 버티고 서 있어서다.
2 야쿠시마에는 6000마리가 넘는 사슴이 산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3 7200년 묵었다는 삼나무 조몬스키를 보러 가는 길은 다양한 모양의 나무를 구경하는 일이기도 하다. 생선 대가리 모양의 삼나무도 있다.
4 하야오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의 무대가 된 이끼 숲. 시야가 온통 푸르다.
봄에도 검푸른 녹음 … 숲의 정령 나타날 듯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야쿠시마는 푸르지 않았다. 차라리 거무튀튀했다. 이른 봄인데도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검푸른 녹음을 섬은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래서였나 보다. 이 산자락 안, 깊은 계곡에서 ‘원령공주’를 구상한 하야오 감독은 소년과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화영화를 만들면서도 환하거나 밝은 그림을 보여주지 않았다. 순수 자체인 대자연과 이에 맞서는 인간의 대결은 내내 우울하거나 기괴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시라타니운스이코(白谷雲水峽). 우리말로 하면 흰 구름과 물의 계곡쯤 되겠다. 물소리 요란한 계곡을 따라 4.2㎞를 올라가니 어처구니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위에도 이끼, 가지에도 이끼, 줄기에도 이끼, 길에도 이끼가 켜켜이 앉아있었다. 누천년 세월을 거치며 내려앉은 이끼의 초록은 마침 내리는 빗물을 머금어 허공까지 번져 보였다.
‘고케무스모리(苔むす森 · 이끼 숲)’라 불리는 이 계곡에서 하야오 감독은 사슴신 시시가미가 사는 신성한 연못의 영감을 얻었다. 어디선가 숲의 정령 고다마(木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타날 것 같았다.
시라타니운스이코에도 야쿠스기가 있었다. 니다이스기(二代杉)는 어미와 자식 2대에 걸친 나무다. 야쿠스기가 무더기로 잘려 나가던 시절 이 나무도 밑동만 남고 베어졌다. 남은 밑동에 씨앗이 뿌리를 내렸고 긴 세월이 흘러 자식 나무도 야쿠스기가 되었다. 니다이스기의 수령은 2500년이었다.
그러니까 이 깊은 계곡에서도 나무를 베어 간 것이었다. 계곡을 따라 난 길이 옛날 나무를 옮기던 길이었다. 쌀을 구하기 어려웠던 야쿠시마 사람들은 삼나무를 베어 히라기(가로 50㎝, 세로 10㎝의 나무토막) 2310장과 60㎏쯤 되는 쌀 한 가마와 맞바꿨다. 옛날 야쿠시마는 나무를 팔아 밥을 먹었고 지금 야쿠시마는 나무를 지켜 돈을 번다. 야쿠시마 주민의 90%가 관광업에 종사한다.
천 년 묵은 나무의 비밀은 척박한 땅
야쿠스기 중에는 7200년을 살아 ‘조몬스기(繩文衫) 라고 불리는 나무가 있다. ‘조몬’이 석기시대란 뜻이니 그만큼 오래 살았다는 뜻이다. 야쿠시마는 1993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는데, 섬의 20%쯤 되는 산악지역만 인정받았다. 그 20% 지역만큼은 벌채가 없었다. 조몬스기가 그 20% 지역에 살고 있다.
조몬스기를 보러 가는 길은 길고 길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등산로 입구까지 40분 동안 버스를 타고 가서 그때부터 5시간 산을 올라야 조몬스기를 만날 수 있었다. 왕복 9시간, 하루에 꼬박 22㎞를 걸어야 하는 산행이었다.
조몬스기를 보러 가는 길에는 산다이스기(三代杉)도 있었다. 3대째 내려오는 나무. 산다이스기의 추정 연령은 3500년이었다. 윌슨 그루터기는 밑동만 남은 삼나무인데, 구멍이 뚫린 밑동은 지름이 4m가 넘어 사람 여남은 명이 들어가고도 남았다. 월슨 그루터기의 나이는 3000년이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조몬스기는 높이가 25.3m이고 둘레가 16.4m여서 아무리 카메라 각도를 조정해도 전체 모습을 담기가 어려웠다.
야쿠시마의 나무는 하나같이 크고 오래됐고 신비스러웠다.
그런데 야쿠시마 삼나무는 무슨 비밀이 있어 이리도 오래 사는 걸까. 야쿠시마에서 13년째 산악가이드를 하고 있다는 하야시다 노부아키(林田信明·52)에 따르면 비가 많이 내려서도 아니고 숲이 깊어서도 아니었다.
야쿠시마는 해저 화산이 터지면서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융기해 생긴 섬이다. 화강암에 오랜 세월 흙이 덮이면서 그 흙에 나무가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뿌리는 단단한 화강암을 뚫지 못했다. 야쿠스기도 마찬가지였다. 야쿠스기는 얄팍한 흙으로부터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만 받아먹었다. 야쿠시마 환경문화촌 센터에서 확인한 야쿠스기의 나이테는 0.1∼0.2㎜였다. 1년에 0.1㎜씩 자랐다는 얘기다. 이 정도면 자란 게 아니다. 버틴 것이다.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려고 나무는 욕심을 버렸다. 그래서 1000년 세월을 살아남았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여행정보
야쿠시마 가는 시간이 확 당겨졌다. 매일 오전 9시30분 인천에서 출발하는 후쿠오카행 아시아나항공을 타면 일본 국내선 항공기를 이용해 야쿠시마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 후쿠오카에서 야쿠시마행 비행기를 갈아탈 때 대기시간은 2시간15분이다. 규슈 남쪽의 가고시마까지 가서 야쿠시마행 배를 타면 3박4일 이상 필요하지만, 이와 같은 여정이면 2박3일로 일정을 줄일 수 있다.
여행박사(tourbaksa.com)가 이 일정으로 2박3일 야쿠시마 상품을 내놨다. 조몬스기 트레킹, 시라타니운스이코 트레킹 등 야쿠시마 주요 명소를 둘러보고 이와사키 호텔에서 묵는다. 1인 140만원부터. 070-7017-2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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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카와보도(楠川步道)로 오르다 보면 이런 독특한 야쿠스기를 줄줄이 만난다. 뿌리가 세 갈래로 뻗은 산본아시스기(三本足杉), 세 그루가 창처럼 자라는 산본야리스기(三本槍杉), 둘레 3.1m에 키가 22m나 되는 야쿠스기의 뿌리가 터널을 형성한 구구리스기(くぐり杉), 윗가지가 7개로 뻗은 나나혼스기(七本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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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원령공주’ 배경 된 삼나무 숲 계곡엔 태고의 신비가 가득
동아일보/ 조성하 기자
기사입력 2012-03-30 03:00:00 기사수정 2012-03-30 14:49:02
시라타니운스이쿄의 협곡트레킹 거의 막바지인 해발 900m 산중에서 만나는 ‘고케무스모리’라는 이름의 개울과 숲. 하늘을 가린 울창한 수풀로 주위가 어두운 데다 서로 뒤엉킨 채 자라는 나무, 개울의 돌과 바위를 온통 뒤덮은 초록 이끼로 마치 숲의 정령이 나타날 듯한 신령한 느낌을 받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모노노케히메’(원령공주)의 배경이 된 바로 그 숲이다.
《3주 전 규슈 최남단의 가고시마. 기온이 20도에 육박하며 봄기운이 넘쳐났다. 일본항공(JAC)의 봄바르디어 DHC-8-400기는 163km 남방의 야쿠(屋久) 섬을 향해 바다 위 6000m 상공을 날고 있었다. 좌석 68개에 프로펠러 추진의 중소형 비행기. 활주로가 짧은 섬에 운항하기 딱 좋은 중거리 기종이다. 기내엔 빈 좌석이 없었다. 일본인 수학여행단도 20여 명 보였다.
야쿠 섬이 아열대라곤 하나 겨울엔 방문객이 뜸하다. 1000m 이상 산악엔 영하 15도까지 기온이 떨어지는 등 사계절이 분명해서다. 이들 역시 나처럼 봄이 오기만 기다렸다가 비로소 섬을 찾는 여행자일 것이다.》
88m 높이에서 화강암 벽을 타고 추락하는 두 줄기의 오코폭포. 일본 100대 폭포 중 하나다. 야쿠 섬 서부 해안에 있는 세이부임도의 평화로운 모습. 원숭이와 사슴이 한가로이 봄볕을 쬐고 있다. 비행기가 바닷가 활주로에 안착했다. 이륙한 지 30분 만이다. 뱃길로는 제트포일이 2시간, 페리로 4시간 40분 걸리는 이 섬. 공항은 시골 버스터미널 같다. 수하물 벨트도 없어 일일이 가방을 들어 바닥에 놓았다.
예약한 택시에 오르자 60대 운전사가 낭보를 전한다. 어제까지와 달리 오늘부터 며칠간은 맑다는 예보다.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있을까. 비가 ‘한 달에 35일’ 내린다는 야쿠 섬이니. 산정엔 연간 1만2000mm가 내리고 어지간한 곳도 4000mm 이상 내리는…. 일본 최다 강우지역이 바로 여기다.
그래도 섬에서 비를 탓하는 이는 없다. 7200년(최대 추정치) 된 조몬스기(繩文杉)를 비롯해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된 2000그루의 야쿠스기(屋久杉·1000년 이상 된 이 섬의 일본 삼나무 거목을 칭하는 말)’ 미야자키 하야오가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 각색한 애니메이션 ‘모노노케히메’(원령공주)의 배경이 된 신령스러운 숲의 계곡 ‘시라타니운스이쿄(白谷雲水峽)’ 등 이 아름다운 숲과 완벽하게 보존된 태곳적 자연이 그 엄청난 비의 소산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나흘 내내 빗속에서 취재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온 터였다.
섬 대부분 험준한 산악
야쿠 섬(500km²)은 울릉도(72.9km²)의 7배, 서울(600km²)과 엇비슷한 면적이다. 결코 작다 할 수 없는데도 섬인데도 평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미야노우라다케(1935m)를 중심으로 험준한 산악이 섬을 덮은 형국이어서다. 섬 자체는 화산이 아니다. 근방 화산섬에서 분출할 때 해저 지각변동으로 마그마가 애초 섬의 지각을 뚫고 나와 그 위를 덮어 형성됐다. 화산암으로 구성된 해안과 달리 화강암으로 이뤄진 내륙의 산악이 그걸 말해준다. 섬 전체 모습은 둥그스름한 오각형인데 횡단도로는 없고 일주도로(100km)만 있다. 주민(1만4000명)도 주로 해안에 산다.
야쿠 섬이 세상의 관심을 끈 건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다. 물론 그 대상은 야쿠스기였다. 섬은 일본 삼나무(Cryptomeria japonica)의 남방한계선으로 이 울창한 수림은 상상을 초월한 거대 강수량의 소산이다. 그중에도 삼나무―‘히노키’라는 편백나무를 포함해―특히 1000년 이상 된 노거수가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큰 키다. 햇빛을 독차지하니 우점종이 될 수밖에. 둘째는 비雨다. 습기 많은 곳의 나무에는 나무진이 많다. 덕분에 심재가 단단해지니 병해에 강해 오래 산다. 그렇다고 이 섬 전체가 세계유산은 아니다. 1000년 이상의 남벌에도 목숨을 부지한 노거수가 집중된 고산 능선지대(섬 산지의 20%)만 등재됐다.
야쿠 섬을 찾는 이는 크게 두 부류다. 왕복 5시간의 시라타니운스이쿄와 10시간의 조몬스기 코스 트레킹에다가 섬 서부 해안의 자연유산 등재 숲길(세이부임도·西部林道)을 드라이브하는 통상의 여행자가 하나고, 산에서 야영하며 능선을 남북으로 종주(3박 4일)하는 산악 트레커가 있다.
나는 여행자 일정을 좇아 4일간 체류했다. 섬에는 산악가이드가 150명가량 활동 중이지만 한국어 가이드는 없다. 그래서 영어가 가능한 일본인을 고용했다. 산중엔 등산로 표식과 이정표가 잘 설치돼 가이드 없이 트레킹하는 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건 날씨가 정상적일 경우. 폭우나 짙은 안개가 끼는 등 기상이 악화될 땐 다르다.
물이 불어난 계곡을 건너다 사고를 당하거나 등산로를 벗어나 우회하다가 조난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숲 자체도 워낙 우거져 기온이 낮은 데다 날씨마저 변화무쌍해 가벼운 트레킹 코스임에도 장비만큼은 완벽하게 갖추기를 권한다. 특히 비를 막아줄 방수복과 배낭덮개, 모자, 장갑은 필수다. 가이드 중에는 아예 장화를 신고 산을 오르는 이도 있었다.
원령공주를 찾아 숲의 계곡으로
미야노우라는 섬에서 가장 큰 마을. 가고시마와 이웃 섬을 오가는 페리와 직행 제트포일이 당도하는 항구다. 시라타니운스이쿄는 여기서 포장된 임도로 17km 떨어진 산 중턱에 숨겨진 계곡이다. 자그만 주차장 앞의 매표소(300엔)가 입구. 해발고도는 610m였다. 계곡은 해발 900m까지 4.2km 이어진다. 약한 경사에 거리도 적당해 누구나 가볍게 다녀올 만하다. 반환점은 다이코 바위(해발 1050m). 최고봉인 미야노우라다케를 위시해 주변 산이 한눈에 조망되는 전망 포인트다. 여기까지가 5km인데 오르는 데 2시간 55분, 내려오는 데 2시간 5분 걸린다고 안내판에 쓰여 있다.
초입의 계곡은 싱거웠다. 숲이 좀 더 우거진 것 외엔 우리 산 어디서고 만날 수 있는 작고 가파른 바위계곡이어서다. 하지만 500m쯤 가서 현수교를 건넌 뒤부터는 달랐다. 해발 750m에서 만난 ‘니다이오스기(二代大杉)’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높이 32m에 둘레가 4.4m나 되는 거대한 야쿠스기인데 고사해 썩은 삼나무(一代杉)의 갈라진 틈에 뿌리를 내렸다. 일대목과 이대목의 관계는 부모 자식과 다름없다. 죽기 전 이대목에 양분을 나눠주며 생장을 돕기 때문이다. 수명이 다해 스러지면 그걸 딛고 이대목이 생장해 일대목을 대신한다. 간혹 삼대목도 발견된다. 1000년 이상 사는 스기에서나 볼 수 있는 진기한 현상이다.
길은 걷기에 좋다. 화강암 조각이 거미줄처럼 흙 위로 노출된 뿌리 사이사이로 잘 놓여서다. 이 길은 ‘구수카와보도(楠川步道)’라고 불리는데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에도시대에 사쓰마 번(가고시마 현 서부) 영주는 하도 가난해 거둘 쌀이 없는 이 섬 주민들에게 삼나무를 잘라 세금 대신 바치라고 했다. 그래서 섬 남자들은 깊은 산에 들어가 거대한 야쿠스기를 베어 미야노우라 마을까지 끌고 내려와야 했는데 이 길이 그 노역로다.
야쿠 섬의 노거목은 ‘히라기’(궁궐 사찰 신사의 지붕을 잇는 널빤지)로 다듬어져 공납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쇼군 당시(1560년) 교토의 대찰 건축에 사용된 후 남벌이 금지된 메이지유신(1868년)까지 300년간 사찰과 신사, 궁궐 건축에 쓰일 목재로 끊임없이 남벌됐다. 몇 그루 남지 않은 노거수를 이제는 발품 팔아 찾아다니며 감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그렇게 태어났다. 물론 발길 닿지 않는 능선과 절벽 등엔 아직도 1000년 이상 된 노거수 삼나무가 2000그루가량 남아 자연유산으로 등재돼 보호받고 있지만.
구수카와보도로 오르다 보면 이런 독특한 야쿠스기를 줄줄이 만난다. 뿌리가 세 갈래로 뻗은 산본아시스기(三本足杉), 세 그루가 창처럼 자라는 산본야리스기(三本槍杉), 둘레 3.1m에 키가 22m나 되는 야쿠스기의 뿌리가 터널을 형성한 구구리스기(くぐり杉), 윗가지가 7개로 뻗은 나나혼스기(七本杉)….
이런 나무를 쳐다보며 쉬엄쉬엄 오르는 우거진 숲길. 그 숲의 주인은 노루(사슴)와 원숭이인 듯했다. 섬에 포유류라고는 6종뿐. 해칠 것이라고는 사람뿐인데 사람도 건드리지 않으니 그 수가 각각 2만까지 늘었다. 원숭이는 무리 지어 나무 위에서 동백꽃을 따 꿀을 발라 먹느라 바빴다. 사슴은 가만히 서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응시하다가 깊은 숲으로 사라졌다. 어떤 사슴은 1m 앞에 다가가도 졸음 겨운 눈으로 햇볕을 쬐며 꼼짝하지 않았다.
드디어 다다랐다. 모노노케히메의 배경이 된 신령스러운 숲의 모습을 한 작은 계곡이다. 계곡은 돌은 물론이고 하늘을 덮은 나무로 온통 초록빛이다. 나무며 돌을 뒤덮은 진초록 빛의 이끼 때문이다. 햇살 강한 대낮인데도 너무도 울창한 숲의 계곡은 어두웠고 거기에 이끼에서 발산되는 초록빛과 원시성으로 인해 신비로움까지 감돌았다.
사실 이끼는 이 섬의 숲 전체를 뒤덮고 있다. 일본에서 발견된 1300종 이끼 중 600종이 여기에 있을 정도다. 비가 아주 많이 내린 직후엔 이끼 낀 바위계곡으로 물이 흘러 영화 속 연못 풍경을 자아낸다고 한다. 그래서 ‘모노노케히메 계곡’이라고 표시했었는데 영화제작사인 지브리 스튜디오가 이의를 제기해 지금은 ‘고케무스모리’(苔むす森 - 이끼가 자라는 숲)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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