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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참선정진(參禪精進)

月波 2005. 8. 7. 17:57
달리는 참선정진(參禪精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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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5/07
Category 달리기
6월 12일 열리는 빛고을 100에 신청을 해놓고 머리를 짓누르는 중압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가야하는지? 참선하는 마음으로, 3000배하는 염(念)으로 간절히 훈련에 임하는 길 밖에..... 그러나 그게 어디 뜻대로 되는 일이던가?

오늘(5월 7일)은 오리역을 왕복(50Km)하는 울트라연습주가 있는 날이다. 오늘로서 네번째 연습주 참가다. 이미 생활의 리듬을 금요일 밤에 맞춰놓고 지내지만 오늘은 여러가지 이유로 컨디션이 영 아니다. 한마디로 꽝이다. 그래도 땡땡이를 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래, 나가자, 영동5교로 !!!!!

저녁 8시가 되자 영동5교에서는 함께 스트레칭이 시작된다. 스트레칭이 끝날 무렵 영동 2교에서 출발한 팀들이 달려와 합류한다. 자, 출발이다. 오리를 향해 오리가 아닌 백이십 오리의 울트라 연습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 연습은 실전같이, 실전은 연습같이 ! 송 영기님이 힘을 넣어주는 구호다.

양재천을 벗어나 탄천에 접어들자 아카시아 향이 꼬끝을 찌른다. 조물주는 참 고맙기도 하시지. 어두운 밤이나 훤한 대낮을 가리지 않고 이렇게 향기를 맡을 수 있는 후각을 주셨으니..... 수서쪽으로 향하는 주로변에는 꽃내음과 달리는 사람들의 향이 어우러져 한바탕 진동을 한다.

그런데, 몸이 이상하다. 3Km지점을 지나고, 4Km지점을 지나도 몸이 풀리지 않는다. 점점 종아리근육이 뭉쳐온다. 이틀 전 박달산 산악달리기때 나타났던 증상과 같다. 이러다가는 도저히 더 이상 뛸 수가 없다. 이 일을 어쩌나? 울트라 연습주 참가 네번째에 중도탈락이라는 오명을 남겨야하나? 영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 넘의 술이 항상 문제라니까..... 뭐 술에 원수진 일 있다고 새벽 3시까지 마셔댔나? 하기야 열심히 달리기를 하니 몸에 술이 술술 받고, 주량은 늘고, 자 부어라 마셔라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거 술이 문제인지, 달리기가 문제인지 분간이 안된다. 닭이 먼저야, 달걀이 먼저야? 엉뚱한 생각을 해가며 고통을 참아간다.

오늘따라 제일 앞줄에서 달리고 있으니 슬그머니 꽁무니를 뺄 수도 없고..... 선두에서 함께 발맞춰 달리는 정제용님이 나의 이런 사정을 제일 먼저 눈치채고 자꾸 말을 걸어온다.
"조금 가면 풀릴겁니다." "천천히 함께 가죠 뭐....." " 그래도, 나중에 42Km, 풀코스 지점 지나면 쌩쌩 앞으로 달리실텐데요 뭐....." "지난 번처럼 버려두고 혼자 달리시면 안됩니다"
나의 고통을 잊게 해주려, 중도포기를 막으려, 힘을 불어 넣어주려고 자꾸 말을 걸어온다. 참으로 고맙다. 그래, 끝까지 달리는거다.

서울과 성남의 경계를 지나 서울공항 옆으로 쭉 뻗은 탄천변으로 접어든다. 우레탄으로 넓게 잘 포장된 길이다. 무릎에 와 닿는 충격이 한결 덜하다. 이 길은 달릴 때마다 마음을 넓게 해준다. 툭 터인 벌판에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탄천을 따라 달리는 맛이란 여름 날의 소나기같은 시원함을 안겨준다.

오늘 저녁에는 달도없고, 어둠 속에 탄천을 거슬러 오르던 팔뚝보다 더 큰 물고기(숭어였던가?)들의 요동침도 안보인다. 모두 잠자러갔나? 보름을 지나 하현을 향해가니 몇시간 기다려야 오늘은 달이 하늘에 걸릴것 같다. 10Km지점을 앞두고 뭉쳤던 종아리 근육이 조금씩 풀려감을 느낀다. 몸전체의 피로감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성남의 만나교회를 지나면 길은 본격적으로 분당으로 접어든다. 멀리 보이는 분당의 불빛이 장관이다. 탄천 양안으로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달리는 길에는 갈 수록 사람이 많아진다. 산책하러 나온 가족들, 인라인을 즐기는 젊은 친구들, 열심히 주로를 달리는 사람들..... 밤 10시가 가까워오는데 분당을 지나는 탄천길은 활기가 철철 넘친다. 달리는 걸음에 힘이 붙는다.

18Km지점 근처 분당 중앙공원으로 접어드는 길목을 지나면 잘 다듬어진 휴식공간이 나타난다. 우리들의 두번째 휴식처다. 지난 주에 지용님이 간식을 준비하고 기다렸던 곳이다. 그거 정말 자봉의 극치였다.
오늘은 연습주가 있다는 것을 눈치 챈 탄천검푸 소속 김 영수님이 음료와 바나나를 한 아름 안고나와 나에게 힘을 더해준다. 백두대간길에서, 주로(走路)에서, 사무실에서, 어디서 만나던 그는 늘 자신감이 가득하다. 음료와 쵸코파이, 치즈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새로 장만한 자전거를 타고 김영수님이 오리까지 가는 길을 선도한다. 중앙공원 입구에서 25 Km 반환점까지 가는 길은 자연 그대로의 탄천정취를 느낄 수 있는 멋진 코스다. 정자동을 지나 서울대 분당병원으로 접어드는 탄천변은 언제 달려도 환상적이다. 어쩌면 이 길이 있기에 매주 오리로 향하는 연습주가 기다려지는지도 모른다. 모르는 사이에 달리는스피드가 빨라진다. 뒤에서 " 너무 빨라요! 천천히,천천히! " 를 외친다.

개나리가 활짝 핀 봄날이나, 맑은 개울이 흐르는 비온 후의 여름날이나, 단풍이 익어가는 가을 날 오후, 잔설과 얼음이 남아있는 겨울철 한낮..... 언제 와도 미금동을 흐르는 탄천길은 멋있을거다. 주변의 아파트만 없었으면 이 길은 아마 미국 북서부의 올림피아 반도의 숲길에서나 느낄 수 있는 정취를 갖고 있다. 이제 막 달리기에 입문한 아내와 함께 이 길을 달리고 싶다.

오리를 1Km쯤 남겨둔 지점에 이르자 뒷줄에서 달리던 주자들이 서서히 주력에 맞게 앞으로 치고 나온다. 나는 원래 스피드를 유지한다. 근육은 풀렸지만 피로감은 회복되지 않아 스피드를 내었다간 돌아갈 길을 장담할 수 없다.
드디어 오리다. 처음의 연습주때와 달리 갈수록 영동5교에서 오리까지 25Km의 길이 가깝게 느껴진다. 아직 돌아갈 25Km가 남아 있지만 악전고투하면서라도 50Km연습주를 끝낼 수 있을거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개인적 사정으로 중도하차한 몇 사람을 제외하고, 25Km 반환점을 돌아 서울로 향한다. 모두 8명이 남아 지금부터 반본회귀(返本回歸)의 도(道)를 터득하러 나서는 것이다. 말이 없더라도 어둠속에서 서로의 눈빛을 통해 완주를 다짐한다. 초반에 근육뭉침으로 고생하며 중간탈락의 쓰라림을 겪어야하는 고민을 할 때와 달리 그런대로 버틸만하다. 최선을 다해보자.

오리에서 양재천으로 돌아오는 길은 자세히 보면 완만한 경사를 따라 서서히 달리게 되는 내리막길이다. 탄천이 서서히 흘러 한강으로 접어드니까, 느낄 수 없을 정도이지만 내리막 길은 분명하다. 초반에 워낙 고생해서 그런지, 내리막 길이라는 생각에서인지 반환해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꽤 가뿐하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었지만 정신력으로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서울대 분당병원을 지날 무렵 앞에서 자전거로 선도하던 김 영수님에게 먼저 들어가 쉬라고 권한다. "모두 힘! " "김 영수님 감사!"를 번갈아 외친다. 하늘에는 이제사 하현달이 보이고, 달빛아래 모두들 말없이 달린다. 토닥, 토닥, 토닥, 토닥 ...... 말이 없어도 발검을 소리만 들어도 이심전심으로 서로를 느낄 수 있다. 눈빛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달린다.

분당 중앙공원을 지나고, 야탑을 지나 성남으로 접어든다. 이제 주로에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워진다. 서울공항 남단 길을 접어들며 멀리 아스라히 서울의 불빛을 확인한다. 말없는 진군은 계속된다. 이 진군의 본질은 무엇인가? 수도(首都) 탈환작전인가? 본성회귀 수도(修道)인가? 3,000배를 하듯 한 걸음, 한 걸음 우리의 참선정진(參禪精進)은 계속된다.

새벽 2시 15분, 출발한지 정확히 6시간만에 오리를 찍고 영동5교로 돌아왔다. 몸은 반본회귀(返本回歸)를 이루었는데, 마음에 닦은 도(道)는 어떠한지? 다음 주에도 행선(行禪)을 하며 백이십오리의 수도(修道)여행은 이어질 것이다.

마지막까지 완주대열에 동참해 연습주를 함께한 송영기, 정제용, 신정호, 이채우, 이종만, 임산호님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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