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 100을 다녀온지 이틀이 지났다. 48시간이 넘는 긴 휴식을 취하고 이제서야 몸을 회복하고 13시간 56분에 걸친 빛고을 100Km
울트라 장정을 반추, 정리해 본다.
1. 프로로그 : 긴 여정을 앞두고
<6월 12일 아침>
긴장탓인지 아침에 잠이 일찍 깬다. 전 날 저녁, 배낭을 꾸리느라 일찍 잠자리에 들지 못했으니 수면이 부족하다. 홍원의님은 충분한 수면을
권했는데....... 빛고을 가는 버스속에서 눈을 붙여보지, 뭐.......
<6월 12일 11시 정각>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선다. 조용히 치루고 싶었던 생애 첫 울트라 도전이다. 그러나, 출정을 며칠 앞두고 있었던 스포츠 투데이와의 인터뷰가 모든
것을 만천하에 공개한 모양이 되었다. 그래서 빛고을을 향하는 발걸음이 보통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는데...... 한편으로는 그 신문기사가 오히려 반드시 완주해야겠다는 의지를 더욱 불태우게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 좋다.
한번 옹골차게 도전해보자. 70여명에 달하는 사랑의 1m 1원 운동 후원자들이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지않은가 !
<6월
12일 오후>
빛고을 가는 길에 주로(走路) 사전답사를 한다. 42Km 지점(백양사 나들목)에서 98Km 지점까지 56Km를 버스로
둘러본다. 양고살재, 솔재로 연결되는 방장산 길이 장난이 아니다. 이 건 뛰기는 커녕 걸어서 오르기도 벅찬 급경사 오르막이 몇Km씩
이어진다.
이런 고개를 밤새워 6개씩이나 오르내려야 한다니, 출발 전부터 기가 팍 꺽인다. 그렇다면, 양재천에서 탄천을 따라 분당
오리역을 왕복했던 울트라 연습주 코스가 잘못된게 아닐까? 차라리 청계산이나 남산 언덕훈련을 더 했어야 옳았지 않는가? 초보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2. 13시간 56분의 울트라 여행
(1) 민주의 문을 나서며
6월 12일 저녁
7시, 드디어 출발 시간이다. 국립 5. 18묘지를 참배하고, 400여명의 참가자들은 일제히 민주의 문을 출발한다. 아직은 날이 훤하다. 달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둘러본다. 모두들 힘찬 발걸음이다. 달리다보니 앞뒤로 강마의 님들이 많이 보인다. 동료애를 느끼며 출발의 긴장감도 사라지고
위안이 된다.
수곡길을 지나 우치로에 접어들면서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다. 육신은 조금씩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가지만 영혼은 이제
깨어나는 아침이다. 오늘 밤은 달도 없단다. 그믐이 가까우니 내일 새벽녘에 가서야 눈썹모양의 그믐달을 볼 수 있겠지.......
어느 새 10Km지점 원촌사거리를 지난다. 한재골 정상을 향해 완만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몸이 완전히 풀려 오르막을 달리는
발걸음에 탄력이 붙는다. 출발부터 동반주해온 정 제용님이 바짝 따라붙는다. 아직 체력이 넘친다.
14Km지점, 약수터를 지나면서
한재골 정상까지 2Km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약수는 내일 새벽 이 길을 돌아오며 맛보기로하고 길을 재촉한다. 모두들 이마에 랜턴을 켜고,
삼삼오오 언덕길을 걸어오르고 있다. 밤새 넘어야하는 6개의 가파른 고개중 첫 번째 고개이다.
두런두런 정제용님과 많은 얘기를 주고
받는다. 오리를 왕복하는 다섯차례의 50Km연습주의 대부분을 함께 호흡하며 발을 맞추었으니, 서로의 마음을 읽는데는 제법 익숙해져있다. 이렇게
함께 51km지점의 관문을 제한시간내에 통과하자고 서로 다짐한다.
그 때 정산(正山) 송영기님이 어둠속에서 잽싼 걸음으로 앞질러
나아간다. 먼저 간 줄 알았는데, 왜 이제냐고 물으니 배가 아프다며 달리 별말이 없다. 컨디션이 안좋아 보이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오랜
친구인 정산(正山)이 말을 아끼니 왠지 마음이 무겁다.
(2) 월성리에 대한 기억들
21시 정각, 출발후 정확히
2시간만에 16Km지점인 한재골 정상에 오른다. 정산(正山)은 내리막에서 앞으로 치고 나간다. 오르막에서 지체한 시간을 벌려고 내리막에서 내빼는
솜씨들이 모두 대단하다. 지금 이렇게 달려 내려가는 길이 내일 아침에는 85Km를 지나 가장 힘든 시기에 오르막으로 다가오리라는 사실을 모두들
알고 있는 건지.......
20Km지점 월성리 연동마을을 지나면서 개짖는 소리가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고 있다. 어렸을 때의
사연으로 개를 유난히 무서워하는 정산(正山) 송영기, 그는 지금 개짖는 소리에 아랑곳없이 잘어디쯤 가고 있겠지...... 풀벌레 울음소리,
개구리 울음소리가 개짖는 소리에 파묻힌다. 늦은 밤인데도 마을 주민들이 제법 나와 응원을 해준다. 어둠 속에서도 시골의 훈훈한 인심을 피부로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내일 아침에는 80Km지점인 여기를 지나며 얼마나 기력을 유지하고 있을지 ......
마을 구멍가게를 지나
몇 백미터를 달렸을까? 람세스 김종복님을 만난다. 손에는 아이스 바가 들려있다. 구멍가게에서 샀단다. 역시 경험자가 노련하다. 어두운 밤 시골
마을을 지나며 아이스 바를 찾아 살 수 있는 여유가 왕초보인 나에겐 아직 없다.
어둠 속에서도 내 마음을 읽었는지 먹던 아이스 바를
그대로 내게 내민다. 체면을 차릴 여유가 없다. 덥썩 받아 입으로 넣는다. 온 몸에 퍼지는 이 냉기(冷氣) ! 힘이 불끈 솟는다. 자, 달리자.
CP1을 향하여 !
(3) 백양사를 떠나는 아쉬움
출발한지 3시간 35분만에 31.5Km지점인 백양사 만남의
장소에 도착한다. 20Km이후 제법 속도를 낸 셈이다. Check Point 1이다. 먼저 온 사람들은 속속 제 2 CP를 향해 달려가거나,
간식을 먹고 식수를 보충하며 다음 갈 길을 준비한다.
강마의 박경수님이 먼저 돌아 나가는 것이 보이고, 박상학님이 먼저 도착해
식수를 보충하고 있다. 내 뒤에 바로 김 종복님이 도착하고, 곧 정제용님이 달려온다. 정산(正山)은 앞섰는지 뒤쳐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아이스 바로 더위를 식히면서 10분정도 강마의 후미그룹을 기다린다. 그러나, 낮에 답사한 방장산을 생각하니 더 이상
백양사에서 지체할 수 없다. 마냥 기다리기가 불안하다. 아쉬움을 남긴 채 갈길을 재촉한다.
람세스님은 아내 이영희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내심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백양사를 거의 빠져 나와 백양사역으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이제 막 백양사로 진입하는 한 무리의 강마팀들을 만나
힘을 외쳐준다. 남대장이 인솔하고 있으니 안심이다.
CP 2인 백양사역을 향해 달리는 길의 대부분은 평탄하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이마에 붙힌 불빛이 서로의 길잡이가 되어 달린다. 그러나, 마냥 평지만 있겠는가?
38.5Km지점에 곰재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미리
겁먹고 있는 방장산에 비하면 곰재쯤이야 약과라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안하다. 람세스님이 동반주하며 이런 저런 코치를 해주니 한결 마음의
부담이 덜하다.
이제 날을 달리하여 6월 13일의 새벽을 달린다. CP 2인 백양사역 사거리를 새벽 0시 10분에 통과한다.
5시간동안 41Km를 달려왔으나 아직 체력에 이상이 없어보여 안심이다. 어쩌면 제 1관문(CP 3)인 51Km지점에서의 Cut Off에 대한
부담으로 긴장상태로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4) 방장산으로 날아든 문자 메시지
42Km 백양사 나들목을
지나니 낮에 답사한 눈에 익은 길이 나타난다. 서서히 완만한 오르막이 시작되어 방장산 양고살재까지 두차례의 심한 오르막을 맞이한다. 제
1관문까지 남은 9Km중 7Km가 가파른 오르막인 셈이다. 이번 울트라 100의 승부는 여기서 판가름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는지라 두려울 것은 없다. 배낭의 끈을 조여 매며 마음을 다시 다진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
1관문 제한시간(7시간)인 새벽 2시까지는 CP 3에 도착해야한다. 앞으로 1시간 40여분 동안에 9 Km의 거리이니 계산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앞을 가로막고있는 방장산이 어느 정도의 시간에 길을 비켜줄지 가늠을 할 수 없다. 낮에 본 그 길,
걷기조차 힘든 가파른 언덕길은 사람을 주눅부터 들게 했다. 차라리 주로 답사를 않고 모른채 어둠속에서 오르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하지
않았을까?
창원에서 온 마라토너를 만나 함께 얘기하며 경사로를 오른다. 나처럼 울트라 100에 첫 도전이란다. 주로 사전답사를 하지
않았기에 전방경게를 생각할 틈도 없고 오로지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길 뿐이란다. 그래. 그거야. 한 발 한 발 오르는 거야. 600만을 넘어
800만을 향하는 그 길도 한 발자국씩 내딛는거야. 어느 새 송창식의 토함산이 콧노래가 되어 흥얼그려나온다. 한 발 두 발 걸어서 올라라 ~
~
이심전심, 힘든 구간을 달리는 줄 아는지 여기저기서 응원의 문자 메시지가 휴대폰으로 들어온다. 딸 아이와 아들 녀석은 새벽
1시가 되도록 잠을 안 자고 응원이다.
" 고통이 다 빠져 나갈때까지, 새벽하늘이 이마를 적실 때가지, 열심히.... 별, 달의
힘을 모아 보냅니다 -강마 "
" 아빠 힘내세요 - 귀여운(?) 아들 "
" 새벽에 가서 Hi Five 짝짝 소리나게 하고, 뜨거운
포옹...... -아내"
" 힘드시더라도 조금만 더 달리면 100Km가 될거예요. 몸 생각이 더 중요한 것 잊지 마시고요 - 차칸 딸
"
" Dad Good Luck ! "
쉽사리 정상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던 방장산의 양고살재는 주위의의 뜨거운 응원에
힘입어 새벽 1시20분, 내 발 아래에 있었다.
이제 내리막 길 2Km를 달리면 된다. 일단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고 람세스님과 함께
51Km지점을 향해 내리막을 힘껏 달린다. 드디어 새벽 1시 33분, 출발한지 6시간 33분만에 제 1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5) 다시 시작하는 후반 레이스
제 1관문에는 이미 100여명쯤 되어 보이는 선두주자들이 와 있다.
강마의 박 경수님, 인 병학님이 보이고, 백양사 근처에서 행방을 놓쳤던 정산(正山)이 먼저 와 있다. 20Km지점을 통과할 때 190여번째라고
카운트했는데, 나도 꽤 많은 사람을 추월해 달려 온 셈이다. 주로에서 상당한 거리를 동반주 해 온 김 종복님이 내 페이스가 빠르다고 코칭해온
생각이 난다. 이제 후반 49Km를 어떤 페이스로 운영해야 하나?
우선 양말을 벗고, 대회본부에서 준비한 죽 두 그릇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뚝딱 해치운다. 발가락에 테이핑을하고 출발을 준비하는 사이 강마의 여러 님들이 속속 도착한다. 그러나, 아직 보이지 않는 강마
회원들이 상당수 보인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 새벽 2시 Cut Off시간이 다가오는데 ........
상당수의 강마 여성멤버들이
안보인다. 함께 오랫동안 훈련해 왔는데 아쉽다. 아마도 작년대회보다 앞당겨진 Cut Off시간, 더운 날씨, 방장산 오르막이 시간조절에 차질을
빚게한 것이리라. 새벽 2시의 Cut Off결과를 보고 새벽 2시 4분 정산(正山), 람세스님과 함께 솔재를 향해 길을
오른다.
이제 후반전이 시작되는 셈이다. 30여분의 휴식과 두 그릇의 죽으로 채운 에너지 덕분에 가파른 솔재를 성큼성큼 20분만에
오른다. 그 가파르기가 양고살재보다 더하지 싶은데 다행이다.
정상에 오르니 나 혼자다. 앞서 내리막을 달리기 시작한다. 지금부터는
지금가지 달려본 경험이 없는 거리를 달리는 셈이다. 새로운 거리에 도전하는 것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금곡 영화촌을 지나 달리다가
잠시 쉬는데 정산(正山)이 달려와 말없이 앞서 나간다. 참 이상하다. 이번 대회에 임하면서 오랜 시간 함께 훈련하고 30년 가까이 친구로
동고동락 해왔는데, 어제 오늘 주로에서 영 말이 없다.
어디 컨디션이 안좋은 것인가? 긴장탓인가? 어디 한 번 따라가보자. 앞서간
정산(正山)을 잡으러 배낭을 둘러맨다. 람세스님에게 먼저 간다 인사하고...... 중간에 쉬고있는 박경수님, 인병학님을 말없이
앞질러서.......
03시 10분, 제 4CP인 60Km지점을 통과한다. 지금부터 높낮이가 없는 평탄한 길을 10Km이상 달려야
장성에 도착한다. 어찌보면 쉬운 길같이 보이지만 후반부의 평지 직선주로 10Km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서서히 사람을 지치게 만들 것이다.
어찌되었던 묵묵히 달려 가보자. 괘씸하게도 말없이 앞서간 정산(正山)을 잡으러.......
60Km를 지나도 별로 힘든 줄을
못느낀다. 그간의 훈련량이 크게 모자라지는 않았나보다. 하기야 아직은 모를 일이다. 작년에 여기를 완주한 강마의 선배들이 한결같이
80Km이후에서 다 만날테니 무리한 주로운영을 삼가라고 충고했는데........ 내 입장에서 지금까지의 주로운영이 오버페이스인지, 끝까지
감내해낼 수 있는 페이스인지 알 수 가 없다.
65Km를 지났을까? 앞서가던 정산(正山)이 속도를 늦추고 걷기 시작한다. 힘든
모양이다. 내가 "힘 !" 하고는 앞서 달려간다. 조금 있으니 정산(正山)이 다시 따라와 앞지른다. 여전히 정산(正山)은 말이 없다. 서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동반주하는 형태가 전개된다.
(6) 여명속에 걷는 아침, 80Km를 향하여
드디어
새벽 4시 28분, 70Km지점인 CP 5에 정산(正山)과 함께 도착한다. 도착사인을하고 음료와 간식을 먹으며 10여분이상 휴식한다. 찬물에
세수도하고 여명속에 다가오는 아침을 맞을 준비를 한다.
미숫가루를 타마시며 그제서야 정산(正山)은 말문을 연다. 아직도 말문을 닫은
이유를 모르지만 극도의 긴장감과 컨디션 부조였지 싶다. 정산이 말문을 열어서 다행이다.
새벽하늘에는 빛을 잃은 그믐달이 걸려있다.
다음에는 휘영청 밝은 달빛아래 마음껏 달려보고 싶다. 이름 그대로 moonwave ~ ~ ~ 를 즐기며 ....... 그러면 월광소나타가
되는건가?
기력을 회복해 말문을 연 정산(正山)과 도란도란 얘기를 하며 야은삼거리를 지나 80Km지점 월성 삼거리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완만한 오르막이 지속되는 정말 지루한 길이다. 초반이면 힘차게 뛰어 올랐을 길인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체력이 서서히 떨어져
언덕을 뛰어 오르기가 벅차다.
체력을 아끼며 천천히 가기로 정산(正山)과 의견을 모은다. 이제 굴러서 가더라도 제한시간내에 완주할 수
있다. 천천히 즐기며 가자. 뒤를 돌아보니 달려오는 주자기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토닥토닥 걷고 있을 뿐이다.
길가에는 아침 일찍
들일을 하러 나서는 촌부들이 하나씩 눈에 띄고, 간간히 먼지를 일으키며 자동차들이 지나간다. 정말 오르막길이 지루하다. 걸으면 발바닥이 아프고
뛰면 무릎에 통증이 온다. 무릎보다 발바닥 아픈 것을 더 못 참겠다. 그래 서서히 뛰자. 6시 05분, 80Km 지점 제 6CP를 달려서
통과한다. 한재골 급경사 오르는 초입에서 즐길 아침 식사가 기대된다.
80Km를 지나며 걸음에 오히려 자신감과 탄력이 붙는다.
쇠잔해가던 기력이 회복되어 감을 느낀다. 한재골 계곡의 맑은 아침공기가 생기를 북돋우고 있는지 모른다. 정산(正山)과 함께 오르막을 줄기차게
뛰어오른다.
(7) 다시 넘는 한재골, 저기 끝이 보인다
간밤에 달려 내려온 한재골을 다시 오르는 일은
정말 만만치 않다. 이런 급경사인 줄 미처 모르고 어두운 밤길을 달려 내려왔으니..... 다행히 빛고을님이 준비한 따뜻한 찰밥과 된장국 한
그릇에 힘을 얻어 길을 오른다. 방울토마토 맛도 정말 쥑여 주었지...... 백두대간 길에 단골메뉴로 정산(正山)이 준비해온 방울토마토, 오늘
새벽 한재골 계곡에서 빛고을님이 준비했을 줄이야......
오전 7시 05분. 드디어 한재골 정상에 다시 선다. 멀리 산 아래 아침
햇살을 맞아 잠에서 깨어나는 빛고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직도 15Km의 거리가 남아 있지만 힘든 고비를 다 넘겼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내쉰다. Finish Line에 기다릴 아내에게 처음으로 전화를 걸어 안심을 시킨다.
이제 내리막이다. 어제 밤에 그냥
지나쳤던 한재골 약수터에 들러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인다. 이제 제법 아침햇살이 따갑게 내리쬔다. 마음이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누가
울트라를 한계를 견뎌내는 고난의 여행길이라 했던가? 90Km지점을 향해 달리는 마음은 가뿐하기만하다.
92Km를 지나자
정산(正山)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비장의 준비물을 꺼낸다. 천으로 꽁꽁 싼 물병을 꺼내더니 나눠 마시잔다. 아니! 이건? 보냉(保冷)이
되어 찬기를 느낄 수 있는 홍삼꿀물이다. 순간에 생기가 돈다. 거기에다가 다시 홍삼 절편까지....... 홍삼 절편을 씹으며 94.5Km CP
7을 향해 걷는 발걸음은 가볍기만하다. 이렇 귀중한 것을 정성들여 준비해준 그의 아내 박미원님이 고맙기만 하다.
(8)
Finish Line을 향하여
94.5Km CP 7에서는 스탶들이 미리 축하인사를 건넨다. 모로 누워서 가더라도 이제 Finish
Line을 밟을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담긴 메시지다. 당초 생각은 천천히 갈 생각이었는데 5Km를 남겨놓고 모두 열심히 달린다. 정산(正山)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하고 천천히 달린다. 이제 마지막을 향해 여유롭게 달려보자.
아내에게서 전화가 온다. 어디쯤 왔느냐고? 이런
스피드라면 아직 30분은 더 달려야 할텐데...... 조금 속도를 내기로 한다. 어느듯 Finish Line을 2Km를 앞둔 산책로로 접어든다
모두들 달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이런 속도라면 14시간 안에 완주할 수 있을 것같다. 시간에 대한 욕심을 지금껏 내지 않았는데 마지막에 속도를
낸다.
저 멀리 Finish Line이 보이는 산책로 끝지점에 이르자 아내가 마중을 나와 있다. 손목을 잡고 함께 달린다. 새벽길을
달려 서울서 광주까지 달려온 아내의 마음이 곱다. 드디어 Finish Line을 통과한다. 아 ! 13시간 56분의 대 장정, 빛고을 울트라
100에서 생애 첫 100Km 울트라 도전이 성공하는 순간이다.
3. 에필로그 : 빛고을 100의
여운들
빛고을 100을 준비하고, 완주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몇 가지 생각과 기억에 남는 분들을 떠올려 본다.
우선
달리기란 참으로 정직한 운동이란 것을 이 번 완주를 통해 다시금 느꼈다.
충실히 훈련한 만큼 좋은 결과로 보상받고, 훈련을 게을리
하면 그만큼 고통이 본인에게 돌아온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빛고을에서 재확인했다. 출발 전의 여러가지 불안감이 있었지만, 그 동안의 훈련은
그대로 달리는 여정에 묻어서 나타났다.
매주의 청계산 목요산행, 월 2회의 백두대간 산행은 방장산을 비롯한 수없는 언덕을 오르는데 상당히
효과적인 훈련이었다는 생각이다. 또한 다섯 차례에 걸쳐 했던 양재천에서 분당오리를 왕복(50Km)하는 연습주는 거리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100K를 달릴 수 있는 지구력과 스피드를 유지시켜주는 좋은 훈련이었다.
그간 앞에서 훈련을 리더해 준 남 대장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강마의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다음으로 울트라 마라톤이 결코 고통을 쥐어 짜는 과정이 아니라, 여러 달림이들과 함께 달리기를
통해 즐거움을 연출해가는 여정이라는 사실이다.
흔히 60Km이후에 느끼는 한계와 고통을 참아가는 과정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밤을 새워 달리는 100Km의 장정은 한 걸음 한 걸음이 한계돌파의 과정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고통을 견뎌내 가는 과정만이
아니다. 오히려 정신적 카타르시스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봄이 맞으리라.
이번 빛고을 100을 통해 나는 정신적으로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스런 순간에 대한 기억이 특별히 없다. 그것은 내가 특별히 강한 신체구조나 훈련된 역량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달리는 동안 스스로를
조절하여 어떻게 마음을 편안히 가질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문제였지 싶다.
매 걸음에 담긴 800만을 향한 간절한 열망과 이웃사랑에 대한
주위의 격려가 오히려 고통을 즐거움으로 변환시키는 힘을 주고 용기를 북돋우어 주었다.
또한 함께 달리며 서로를 격려해주는 많은
달림이들이 정신적으로 Fun Run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번 빛고을 100동안 강마의 정 제용님, 람세스 김종복님과 정산(正山)
송영기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오리를 왕복하는 수차례의 훈련주에서 발을 함께 맞추었고 빛고을에서는 초반 20km지점까지 서로를
격려하며 완주에 대한 의지를 다녔던 정 제용님, 언제나 나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또한, 초기 20Km에서 51Km까지 약 30Km를
사실상 동반주하며 조언해준 람세스님, 후반 65Km지점에서 95Km지점까지 약 30Km를 함께 마음을 나누며 울트라 첫 도전자로서 서로를
의지했던 오랜 친구 정산(正山)이 있었기에 고통없는 즐거운 울트라가 가능했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달리기는 혼자만의 운동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위한 달리기가 되어야한다는 사실의 깨달음이다.
이번 빛고을 100을 계기로 사랑의 1m1원 운동에 참여함으로써
개인적으로는 달리기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단순히 나의 건강을 위해 달리기 시작했던 일이, 이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달리는 일로
바뀌어져 있고, 이 일에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을 보내주는 많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쁘다.
이번에 1m 1원 사랑의 달리기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후원해주신 70여명의 후원자들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그들이 있었기에 불가능해 보이기만했던 100 Km의
울트라 첫 완주가 가능했고, 13시간 56분의 긴 여정이 한결 즐거운 일로 가슴에 새겨져 있다.
빛고을 100에 관심을 가져주신
주위의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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