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계산 새벽 달리기 *
- 청계산에서 2시간 55분 (05:10 - 08:05:00) 동안 17km 크로스컨트리 훈련 실시 (페이스 :
10'18"/km, 속도: 5.83km/h)
- 남대장과 세욱님이 함께하다.
- 울트라 배낭, 반팔과
런닝팬츠, 몬트레일 운동화 착용
..............................................................................................
(1) 05:00 양재천의 새벽을 가르며
새벽의 영동 2교 아래 양재천 풍경은? 밤새 돗자리를 깔고 양재천 변에서 열대야를 피한 가족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다. 참 행복해 보인다. 집 밖, 길거리에서 잠을 자도 저렇게 행복할 수 있다면...... 모두 한 마음 먹기에 달려있겠지? 금강경에서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고 일깨우고 있지....... 머무름이 없는, 한 곳에 집착하지 않는 그런 마음을 내기가 그리 쉬운 것일까?
소리없이 새벽을 가르며 오늘 크로스컨츄리 멤버가 모인다. 영동 2교 아래에는 남대장이 먼저 와 스트레칭을 하고있고, 곧 이어 세욱님이 도착한다. 최 세욱, 그는 참 대단한 사나이다. 만난지 미처 3년이 되지 않았지만 푸근한 정이 가슴에 느껴진다.
그는 이 번 추석 무렵에 300Km가 넘는 거리의 동서횡단을 준비하고 있다. 얼굴에는 언제 보아도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에 강마의 7 To 7을 총 준비하고 있다. 밤새워 12시간동안 양재천을 달릴 달림이들이 모습이 그려진다. 금년에는 자봉을 하기로 약속했으니 함께 달릴 수는 없고......
(2) 05:10 셋이서 시작하는 크로스컨츄리
오늘은 영동2교를 출발하여 양재 시민의 숲, 화물터미널, 청계산 옥녀봉, 매봉, 만경대, 석기봉, 이수봉을 거쳐 옛골까지 크로스컨츄리를 계획하고 있다. 줄창 달리면 3시간 안에 끝낼 수 있을거다. 그러나, 지난 4개월의 훈련공백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무리한 도전인지 모르겠다. 이 새벽에도 25도를 넘는 더위 속에서.......
영동 2교를 출발, 양재 시민의 숲을 거쳐 교육문회회관, 양곡도매시장에 이르기까지 30여분을 달린다. 시민의 숲에는 여름 숲 특유의 내음이 코끝을 찌른다. 새벽이라하여도 열대야이니 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화물터미널을 지나면,서울과 경기도의 분기점에 옥녀봉을 오르는 길이 있다. 물 한모금하고 산을 오를 준비를 한다.
소위 빡세게 오르막을 뛰어 올라 봐야지 ! 거침없이 올라야지 ! 체력에 여유가 있으면 새들이 놀라지 않도록 숨소리를 죽이며 뛰어볼까? 이 정도면 만용이라 해야할거다. 그래. 몸과 마음을 낮추고 천천히 달려보자.
(3) 05:40 그들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
완만한 오름길이 시작된다. 숨소리도 가볍게 천천히 달려오른다. 앞의 남대장과 최세욱님은 잘도 달린다. 10분쯤 오르막 숲길을 줄곧 달렸을까? 숨이 가파오며 나는 더 이상 달리기가 힘들다. 혼자 뒤로 쳐진다. 마음을 비운다. 체력껏 달려야지. 동아대회이후 월 1회 백두대간 하는 것이외 일체의 달리기등 훈련을 접었으니 자업자득이다. 준비하지 않은 자의 아픔이라고나 할까?
옥녀봉 오르는 중간의 깔딱고개에서 남대장과 최세욱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왠지 미안하다. 훈련에 방해를 하는 것 같아서.... 나 신경쓰지 말고 먼저 가라고 해도 중간중간 쉬어가며 나를 데리고 가는 그들의 마음이 고맙다. 훤히 잘 아는 길이니 체력껏 알아서 하겠다해도 나를 데리고 가는 그들의 마음이 고맙다.
내가 오늘 목표한대로 완주한다면 그들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 덕이리라. 그래, 힘을 내어 갈 수 있는데까지 달려보자. 달리기란 늘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내 다리의 튼튼함, 내 심장의 강인함, 내 의지의 굳건함으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성원해주는 주위의 도움으로 늘 완주하는 것이거늘 ........
(4) 06:10 옥녀봉,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옥녀봉 오르는 길에서는 몇몇 연로한 산행객을 만난다. 산아래 동네 주민들로 보이는 그들은 매일 산을 오르는지 여유도 있어보이고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산길을 펄쩍펄쩍 뛰어 오르는 우리를 보고 그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옛날 박대통령 시절 같았으면 124군부대, 김신조 부대의 공비라도 출몰한 것으로 생각했을텐데....... 그리 놀라는 기색이 없다. 하기야 요즘 산에는 크로스컨츄리하는 달림이들을 자주 볼 수 있으니 이상할 것도 없으리라. 아니면 그 노인장들의 관심밖의 일인지도 모르고 ......
옥녀봉에는 옥녀가 살고 있을까? 오늘 우리는 그 옥녀를 만날 수 있을까? 엉뚱한 생각을 하며 숲길을 오른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종종 써먹는 나만의 잡생각 주법이다. 길가에 누워있는 묘 하나를 지나며 살아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한 고비를 넘기니 옥녀봉이 발아래에 있다.
원터골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지나 수백계단의 매봉 오르는길을 본격적으로 오른다. 달리지 못하지만 걸음은 제법 빠르다. 숨이 헐떡이지만 처음 옥녀봉 오를 때와는 달리 컨션이 많이 좋아졌다. 제법 몸이 풀린 셈이다.
(5) 06:40 매봉에서 맛보는 청마(靑馬)의 행복
매봉에는 남대장과 최세욱님이 먼저 와 기다린다. 젊은 산행객들이 다수 보이고 모두들 아이스 바가 입에 물려있다. 저 꿀맛 !!!!! 정상에 있는 박스속에서 드라이아이스에 싸진 아이스바를 꺼내 최 세욱님이 나에게 건넨다. 주인도 없는데 잘도 꺼내 먹는다. 1,000원을 박스속에 집어넣는다.
산사람들의 거래는 순수하고 솔직하다. 드라이아이스가 입가에 붙지만 아이스바는 꿀맛이다. 언젠가 목요 야간 산행을 하면서 맛있게 아이스바를 꺼내먹던 생각에, 키드키득 웃음이 난다. 매봉지기, 아이스바 파는 그 젊은 청년을 언제 만나고 싶다.
매봉, 언제 올라도 가슴이 툭 틔는 곳이다. 여기 오를 때마다 큰 소리로 외치는 청마 유치환의 시가 있다. "행복"이다. 매봉의 정상석 뒤에 그 행복이 이렇게 새겨져있다.
내 아무것도 가진 것 없건마는 /
머리 위에 푸른 하늘 우러렀으매 /
이렇듯 내 마음 행복되노라.
항시 푸른 하늘 우르르고 있으면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라랴? 그것으로 흡족하면 참다운 무소유의 행복을 느낄 수 있지싶다.
(6) 07:00 만경대에 올라 왕안석을 생각하다
매봉을 떠나 만경대로 향하는 발걸음은 제법 가볍다. 크로스컨츄리하며 뛰어 오르던 산길이 능선주행으로 바뀐 셈이다. 백두대간을 하며 걸어온 능선주행법이 빛을 발한다. 부지런히, 빨리 걷는 주법으로 산행을 한다. 군부대가 설치된 정상부 바로 아래, 9부 능선의 암봉위에 오른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암봉의 꼭대기에 서서 서울대공원, 경마장등 과천일대를 굽어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중국 북송시대의 문필가인 왕안석이 시안(西安: 서안) 남쪽에 있는 종남산(種南山)에 올라 읊었다는 시 한수를 읊조려본다.
終日看山不厭山 (종일간산불염산) ---종일토록 山을 봐도 山은 싫지 않다
買山終待老山間 (매산종대노산간) ---아예 山을 사서
山에서 늙어갈까
山花落盡山長在 (산화락진산장재) ---山 꽃 다 진다해도 山은 그냥 그 모습
山水空流山自閑 (산수공류산자한)
---山 물 다 흘러가도 山은 마냥 한가롭다
굳이 산시성(陝西省:섬서성)) 시안(西安: 서안) 의 종남산까지 갈 필요없이 이 산 저 산 바라만 보아도 즐겁기만 하다. 봄꽃, 여름숲, 가을잎, 겨울눈을 함께하며 사시사철 겉모습이 변해도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여여하게 서 있다. 마냥 그 모습 그대로 .......
만경대에서 석기봉으로 가는 길은 미답의 신 루트로 내려간다. 수십번의 청계산행에서 처음 시도하는 코스다. 수직 바위틈으로 내려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다. 이런 길에 자신을 잃으면 고생이지만, 자신감만 가지면 재미가 쏠쏠하다는 남대장의 얘기가 귀에 들어온다. 그럴듯하다. 신나게, 암벽사이로 뚫린길로 하산을 한다. 나도 이 정도면 수직절벽 타고내리는데 있어 다람쥐급(?)은 되겠지? 다음 산행에서 이 코스를 거꾸로 한번 올라와 봐야지.
(7) 07:30 목숨을 두 번이나 건졌다는 이수봉
이른 아침인데도 이수봉 가는 길에서 몇몇 산행객을 만난다. 나만 일찍 나온 줄 알았는데 새벽을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 나에게 자극이 된다. 새벽 일찍 나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석기봉에서 이수봉 가는 길은 크로스컨츄리 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하지만 달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겯는다.
드디어 이수봉이다. 지난 겨울 아내와 둘이서 이수봉을 오르며 만났던 어느 모녀의 "오뎅 이야기"로 잠시 땀을 식히며 이수봉의 아침을 즐긴다. 그 때 그 딸은 엄마에게 정말 속았다고 생각했을까? 딸을 속이는 어미는 없는 법인데 ...... 나중에 오뎅 한 그릇 잘 먹었겠지?
이수봉, 조선시대 정여창이 시대의 아픔을 미리 내다보고 낙향하여 여기 초막을 짓고 살며, 그의 스승 김종직과 김굉필이 연루된 두 번의 사화에서 목숨을 건졌다해서 이수봉이라 부른단다. 이수봉 정상에는 이수봉지기가 먼저 올라와 빗자루로 주변 청소를 하기에 여념이 없다. 배낭에서 오이를 꺼내 셋이서 나눠먹고 이내 옛골로 하산을 서두른다.
(8) 08:05 옛골로 달리는 크로스컨츄리, 무릎이 온전할까?
이수봉에서의 머무름은 잠시, 옛골로 내려가는 완만한 능선길을 택해 본격적인 산악 달리기가 시작된다. 곳곳에서 많은 산행객들을 만난다. 열심히 산길을 달리는 우리를 그들은 신기한듯 힐끗힐끗 쳐다본다. 아랑곳 하지 않고 줄곧 달린다. 내리막 달리기에 무릎이 온전할까? 작년 청풍명월 충주에서의 산악마라톤이 생각난다. 오 모, 홍 모, 송모, 지 모..... 모두 빡세게 달렸지.
이 길은 매주 목요야간 산행에서 이수봉으로 거꾸로 올라가며 빡세게 오르막 훈련하는 코스다. 오늘은 내리막길을 달리니 한결 수월하다. 그래도 몸에서는 땀이 비오듯한다. 8시가 지나 옛골에 도착해 해장국집에 들어서니 냉수 생각밖에 없다. 친절한 주인 아줌마 덕에 얼음 냉수 한 통을 게눈 감추듯 마시고 또 한 통을 시킨다. 오늘의 크로스 컨츄리는 여기서 접기로 한다. 이른 아침부터 30도를 오르내리니 열사병은 피해야지 ........
(9) 09:00 해장국에 곁들이는 소주 잔, 기막히지요
옛골의 해장국 집, 수없이 옛골을 찾았지만 이 해장국집은 처음이다. 해장국에 걸치는 소주 한잔 , 이것도 꿀맛이지. 셋이서 소주 한 병을 시켜 두 잔씩 나눠 마시고나니 한 잔이 남는다. 누가 마실까? 아니면 한 병 더 시켜 나눠 마실까?
소주 병과 소주 잔에는 고도의 상혼(商魂)이 숨어 있다. 아니 상혼이라 부르기에는 아쉬운, 고급스런 마케팅 전략이 담겨있다. 소주 한병은 일곱 잔이 나오도록 술병과 술잔이 설계(?)되어 있다. 셋이서 나눠 마시면 한 잔이 남고, 넷이서 나눠 마시면 한 잔이 모자란다. 그래서 또 한병 추가로 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 병으로 끝나는 법은 좀체 드물다.
우리는 한 잔을 남기기로 하고, "소주 추가"를 부르지 않기로 한다. 마케팅 대가의 의도에 반하는 셈이다. (사실 남은 한 잔은 나와 세욱님이 사이좋게 나눠 마셨다) 크로스컨츄리후의 소주잔이 온 몸을 날아갈 듯 가볍게 만들어주니 이 보다 더한 행복이 있으랴?
옛골에서 버스타고 삼호물산으로, 그기서 세워둔 자동차를 타고 프리죤(Free Zone)으로...... 이름 그대로 나만의 자유지대다. 다시 사우나에 땀흘리고, 샤워하고, 한 숨 자고, 쉬다가 집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50분이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니 이것저것 다하고도 아직 오전이다.
"부지런히 움직인 당신, 지금부터 가족을 위해 봉사하라" 그럼, 그래야지. 오후에는 더위에 지친 딸과 아내에게 오리 보양식이나 먹여볼까?
'마라톤 여행 > * 크로스 컨츄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딛고 일어선 것은 - 엄홍길을 만나다 (0) | 2007.06.18 |
---|---|
광교산-청계산 우중주 (0) | 2005.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