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자리/* 여백(餘白)

두 곳의 전시회를 보고

月波 2007. 2. 21. 22:05

 

 

두 곳의 전시회를 보고

 

오후 한나절 틈을 내어 두 개의 전시회를 둘러보고 왔다. 하나는 <문화적 기억 - 야나기가 발견한 조선 그리고 일본>이라는 테마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민예(民藝) 전시회이고, 또 다른 하나는 프레스센타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보도사진 50주년 특별전>이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눈에 비친 조선예술의 아름다움(美)을 살피려던 당초의 계획에, 마침 인접한 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보도사진전을 덤으로 본 셈이 되었다. 함께한 정산(正山)과 오랫만에 무교동 낙지맛을 보는 횡재(?)까지 했으니 심신이 모두 배부른 알찬 하루였다.

 

 

 

야나기 무네요시를 통해 살핀 미학(美學)

 

1977년 여름, 나는 해인사 대적광전 앞의 3층석탑을 그저 무덤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탑의 기저(基底), 기단(基壇)과 탑신(塔身)의 구분조차 못하던 때였으니, 그 탑이 3층인지, 5층인지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시절이었다. 오늘 그 3층석탑 앞에서 중절모를 손에 들고 있는 1916년의 한 일본청년을 사진으로 만났다. 그리고, 그의 눈에 비친 조선 예술의 혼을 요모조모 더듬어 보았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 그는 누구인가? 야나기는 한국미(韓國美)를 논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미학자이며 실천가라는 사실은 그가 일제시대에 조선민족미술관을 세우고 많은 저술활동을 통해 조선의 미를 일깨우는 역할을 한 것으로  충분히 드러난다. 그러나, 그 반대로 그가 우리 문화예술의 정서를 소위 한(恨)의 정서 또는 비애(悲哀)의 미(美)로 부른 장본인이며, 문화재 유출의 핵심인물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오늘 그것을 논하거나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지 않았다. 그 입장이 어떠하든, 야나기의 자취에서 느껴지는  문화적인 삶, 열정과 사상은 매우 돋보였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기에 선입견없는 관람을 통해 놓치고 있던 우리 예술의 참모습을 조금이나마 찾아보려고 했다. 누가 뭐래도 우리 문화예술은 충분히 아름답다. 그것이 20세기이든, 21세기이든. 그것이 야나기가 이렇게 표현했든, 저렇게 묘사했든 ..... 충분히, 차별적으로 아름답다.

 


회유오오이도다완

Bowl with ash glaze , 15th century, 16x10.3cm

 

아름답다(美)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美)에 대한 개념은 정신과 인간을 강조하는 동양적인 미와, 물질과 기술을 중시하는 서양적인 미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같은 동양에서도 자연과 순수함, 평화와 해학을 강조하는 한국의 미는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할 때 독특함을 지닌다고들 한다. 이들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민예품의 조형적 특성을 살필 때 우리의 차별적 가치가 돋보이리라 본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란 다분히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좋은 것(善)과 쓸모(有用)있는 것'이 아름다움으로 대변된다. 이러한 아름다움(좋아하는, 쓸모)의 개념은 시대나, 지역, 국가의 문화적 배경과 개인의 취향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은 지적이며 겸양하는 것이 미덕이나 서양은 당당하게 내세우는 것이 아름다움으로 인식된다. 야나기의 눈으로 본 한국, 조선의 미가 색다르게 표출되듯이, 오늘 만난 여러 종류의 도자기의 유약과 그 덧칠하는 방법이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으리라.

 

야나기가 수집했던 조선 민예품에 이어 일본 민예품을 둘러보면서, 과자상자에 담긴 일본의 섬세한 미를 달리 느낀다. "과자상자를 보면 속의 과자가 얼마나 맛 있는지 알 수 있다. 과자상자를 얼마나 정성들여 만드는가? " 여기에 또 다른 일본이 갖는 동양적 아름다움을 맛본다. 둥근 모양을 한 무색무채의 연적(硯滴)에서 꾸밈없고 순수한 조선 선비의 혼을 느끼듯이.

 


무유호추(无有好醜) -미와 추를 넘어서

Calligraphy by Soetsu Yanagi, 1955, 35.5x36cm

 

일민미술관을 나서며, 옛 동아일보 사옥과 그것을 개조한 일민미술관의 모습을 되돌아 본다. 누군가 이런 화두를 던졌었지. 건축물의 원래 모습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이 본원적인 질문에 일민미술관은 실체로서 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민미술관은1926년에 신축되어 동아일보의 사옥으로 쓰이다가 1996년에 리노베이션(Renovation)을 거치면서, 80년이 지난 오래된 타일과  근래의 유리벽이 만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를 온전히 기억함으로써 <오래된 미래>를 복원하고자 했던 본래의 의도가 제대로 투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번 3월의 동아 마라톤에서는 청계천을 달리면서 일민미술관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쳐다봐야겠다.

 

 

세계보도사진 50주년 특별전에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꾸거나 속이지 않고, 실수와 혼동없이 응시하는 것은 모든 창작물보다 그 자체로 더 고귀하다.  - Francis Bacon(1561-1626)

(The contemplation of things as they are, without substitution or imposture, without error and confusion, is in itself a nobler thing than a whole harvest of invention)

 

매년 한 작품씩, 50년에 걸친 50편의 사진, 그 사진들에 비친 번떡이는 눈매는 모두가 간절했다. 그것이 삶에 대한 목마른 갈증이었든, 평화애 대한 간절한 소망이었든, 모든 것이 살아 있었다. 그 사진들은 그 때, 그 자리에서 그 표정을 여과없이 제대로 담았다. 창조함이 없이 보이는 그대로, 카메라의 눈으로 담았다.

 

‘존재 그대로의 사실(Things as they are)’이라는 표현에 보도사진의 특성이 잘 함축되어 있다. 특별한 부연설명 없이도 사진 그 자체로써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힘, 이것이 보도사진이다. 지구촌 곳곳의 사건사고와 서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도사진을 통해 함께 감동하거나 가슴아파하면서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

 

1964년 4월 키프로스 가지버람

터키 여성이 그리스 터키 전쟁의 희생자인 남편을 울음으로 애도하고 있다.

돈 맥컬린(영국, 옵저버/퀵/라이프)

 

그런데, 보도사진전의 수상작은 한결같이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나오는 것일까? 사선을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대재앙이 일어난 곳의 사진이 수상작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바로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은 그들의 혼을 통해 투시된 높은 생동감 때문일까? 

 

아름다운 자연을 담은 사진보다, 훈훈한 정이 넘치는 가족의 모습보다, 아낌없이 베푸는 사랑의 터전보다, 그 처절한 현장의 사진에 사진 평론가들이 더 의미를 두는 것이 그 생동감 때문인가? 아니면 그것도 일종의 센세이셔날리즘인가? 과연 그것이 올바른 인식이요, 그 사회의 관습인가? 아니면 그들만의 묵시적인 약속인가? 보도사진전을 보고나오며 씁쓰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좀 더 부드럽고도 따뜻한, 그래서 인간미 넘치는 삶의 사진이 수상작으로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을 안고서 발길을 무교동 낙지골목으로 옮겼다. 오랫만에 코끝에 땀방울이 송송 맺히도록 매운 낙지 한 접시에 옛 추억을 더듬으며 일상으로 돌아왔다.

 

친구야, 고맙다. 이런 기회에 종종 전화주게나. 오늘 같은 메뉴는 많이 취하면 취할수록 마음이 풍성해지는 법이니.

 

1987년 12월 18일 한국 구로동 

한 어머니가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참가한 아들이 체포된 후 시위진압 경찰에게 애원하고 있다

안토니 수아우(미국, 블랙 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