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 대한 원력(願力)으로
- 2007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서
2007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출발선에서
(1)
3시간 53분 14초,
결코 짧지않은 또 하나의 105리 여행이 끝났다.
스물 한 번째의 풀코스 마라톤,
개인 최고기록보다 30분 가량 늦었지만 아쉬움이나 부끄러움은 없다.
춘천으로 가는 길
한 동안 가지 않을 핑계를 찾았었지.
위도가 보이는 의암호에서
중도포기할 구실을 생각하다가,
소양대교를 건너 넓고 망망한 길에서는
걷고 싶은 유혹에 휩쓸릴 명분을 구하고 있었고.
그 순간순간의 갈등을 넘고
마라톤에 대한 평소의 믿음과
내면 깊숙히 자리한 깊은 원(願) 하나로
42.195 Km, 105리의 긴 여정을 끝내고 피니쉬 라인에 선다.
절정의 단풍에 빠져 춘천 의암호를 달리는 2만여명의 달림이들 사진 : 조선일보
(2)
삼악산의 단풍은
예년의 붉음에 못미치지만 봄꽃보다는 아름다웠다.
호수에 비친 달림이들의 모습은
바람에 미동도 않는 수초(水草)보다 더 진지했다.
단풍과 호수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길에서
모두가 절정(絶頂)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초반 5Km 언덕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스스로에게 부끄러워 했고,
15Km 지난 깔딱고개에서
차마 하늘을 볼 수 없어 발끝만 보고 뛰었다.
하프라인을 통과하며
서상교의 긴 오르막을 염려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믿고 춘천댐에서 소양교로 내달렸다.
35Km 지난 마(魔)의 벽
소양대교에 불어오는 바람은
오늘따라 왜 역풍인지 원망스럽기조차 하고
문득 광야에 홀로 선 기분이다.
그래도 핑계, 이유, 명분을 버리고
피니쉬 라인을 향하여 가야한다.
마음 속 깊은 곳의 간절한 염(念)을 안고
즐겁게, 끝까지, 뛰어야 한다.
드디어 결승선,
그 숱한 환호도,
가슴 짜랏한 전율도 느껴지지 않지만,
마라톤에 대한 나의 신조를 깨뜨리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는데,
우연히 마주친 박교수가
내 마음 아는듯 환한 웃음을 건넨다.
(3)
42. 195Km,
앞지르는 무수한 달림이들이
준비하지 않은 아픔을 일깨웠지만,
그 때마다 이름을 불러주고 토닥거려주던 강마의 님들
처음부터 35Km까지 내내 동반주해준 정산
내내 마음으로 함께 달린 사랑하는 아들녀석 .....
그래, 너에 대한 원력(願力)으로 달렸구나.
너가 있어서
한 발자국도 걷지않고 뛰어서,
42.195Km의 마지막 피니쉬 라인까지,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게 달릴 수 있었구나.
앞으로도 이 모토는 지켜지리라.
뛴다, 끝까지, 즐겁게 !
수능대박!
2007.10.28. 한티골 다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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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발 - 10Km : 51분 19초
10Km - 20Km : 51분 56초 (1시간 43분 15초)
20Km - 30Km : 55분 18초 (2시간 38분 33초)
30Km - 40Km : 60분 21초 (3시간 38분 54초)
40Km - 결 승 : 14분 20초 (3시간 53분 1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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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산에게 비쳐진 내 모습>
수지침을 맞는 동안에 그는 가고 없다.
불안한 그를 위해 오늘은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과 나의 페이스대로 달리자 하는 생각, 두 생각은 모호하다.
거친 숨소리와 일그러진 얼굴을 보면 그와 끝까지 가야 할 것이고 그가 나를 앞서면 그를 릴리즈 해야 할 것이다. 집중력을 잃지 않고 견인과 릴리즈의 임계치까지 가 보자.
위태롭게 지쳐가고 있고 우리는 말이 없다.
고통에 익숙한 그의 고통을 바라보면 정작 나의 고통은 가벼운데 30키로를 넘어서면서 나의 고통은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고 그의 고통은 가벼워 보인다.
- 35Km까지 동반주하며 나를 견인했던 정산의 완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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