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여행/* 마라톤 완주기

K형에게 부치는 편지 - 춘마를 다녀와서

月波 2008. 10. 27. 18:19

 

 

K형에게 부치는 편지

      - 진정한 마라톤은 30Km 이후부터 시작되더이다

 

 

K형,

형이 그토록 좋아하던 호반의 도시 춘천을 다녀왔습니다.

 

전국의 달림이들과 의암호로 내려온 삼악산의 단풍이 어우러져 벌인 한 판의 축제에 다녀왔습니다.

풀코스 마라톤의 첫 머리를 올린 것이 2002년 가을의 조선일보 춘천대회였으니 마라톤 입문이 벌써 7년째 입니다.

그후 매년 가을 춘천마라톤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참가하여 올해로 춘천에만 일곱번째입니다.

그래서 춘천은 달리기에 있어 늘 마음의 고향인 셈이지요.

 

지난 봄 일찌감치 참가신청을 하고 가을을 기다려 왔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훈련을 거의 하지 못했지만, 춘천으로 향하는 마음을 스스로 꺽을 수는 없었습니다.

훈련도 없이 마음 하나만으로 춘천으로 달려간 셈입니다.

어쩌면 참으로 무모하게 42.195Km의 여행길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춘천에서 아주 잘 달렸습니다.

 

빨리 달리려고만 했던 마음에서 벗어나 주변을 두루 살피며 달렸습니다.

김유정 시인을 생각하고, 이외수 시인의 노래를 읊으며 의암호변을 느릿느릿 달렸습니다. 

호수에 비친 단풍에 혼을 뺏앗기며 달렸습니다.  시인의 운률대로 물풀의 노래를 읊으며 달렸습니다.

단풍이라 하여 모두 �기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의 색깔을 뽐내며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수초(水草)는 물결에 휩쓸리면서도 제 본성(本性)을 잃지않고 있었습니다.

옷을 갈아입어도 나무의 본성이 변함이 없고, 물결에 제 몸이 휠지라도 꺽이지 않는 그 품성을 생각하며 달렸습니다.

 

길가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표정을 읽으며 그들의 박수소리에 귀기울이며 달렸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박수는 신명나는 일이었습니다. 지쳐 쓰러져가던 발걸음도 박수소리에 힘을 얻었습니다.

주로의 터널에서는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지르면서 참가한 달림이들과 함께 어우러져  달렸습니다.

앞서 달리는 달림이들의 뒷모습에서 스스로 힘을 얻고, 힘들어하는 달림이들에게 "힘"을 외치며 즐겁게 달렸습니다.

세상살이도 이렇게  하자고 생각하며 달렸습니다.

 

빠르게 달리려 하지 않았고, 애당초 그런 마음을 먹지도 않았습니다.

평소와 달리 속도를 최대한 줄이고 달렸습니다. 속도를 줄이는 순간 편안함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를 버리면 다른 하나를 얻을 수 있다는 단순한 이치를 쉽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육신이 힘들어도 중간에 걷거나 포기하지 않고, 오로지 끝까지 달려 결승선을 밟겠다는 마음으로 달렸습니다. 

 

달리는 도중 앞지르는 많은 지인(知人)들을 만났습니다.

선두그룹에서 먼저 출발해 천천히 달리니, 뒤따라온 그들을 만나 잠시라도 함께 달릴 수 있어 좋았습니다.

경쟁심을 버리고 마음 편히 그들을 앞서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힘이 되었고, 계속 달릴 수 있게 했습니다.

마라톤이 상대와의 경쟁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승부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우며 달렸습니다.

 

애정을 갖고 주변의 사람과 사물을 살피면서 달릴 수 있었습니다.

달리기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것을 느끼며 달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번 춘천마라톤 대회는 저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기록은 첫 머리를 올릴 때 수준으로 후퇴했지만, 가장 오래도록 가장 많이 느끼며 달렸기 때문입니다.

여유롭게 달린 마라톤 42.195Km, 그 105리 여행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번의 춘천마라톤은 아주 잘 달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K형,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는 동행했던 자봉들이 준비한 춘천 닭갈비와 동동주가 흥을 돋구었습니다.

8년 전 10Km를 생애 처음으로 춘천에서 달리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목놓아 불러댔다는 정산(正山),

풀코스 달림이들 앞에서 기세등등했던 그의 무용담은 다시 들어도 미소를 짓게 합니다.

저와 달리 정산(正山)은 아직 빨리 달리는 일에 더욱 매력을 느끼고 집착하고있나 봅니다.

오늘 저보다 빨리 달리고도 그의 만족도가 높아 보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겠지요.

 

저는 빨리 달리는 것보다 오래도록 달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번의 춘천 마라톤처럼 말입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뛴다, 끝까지, 즐겁게 !!!

 

 

 2008. 10. 26.

역삼동 펜타빌에서

월파가 여쭙니다.

 

 

 

[참가대회]

 - 2008년 10월 26일(일) 10:00

 - 조선일보 춘천마라톤대회

 - 4시간 33분 58초(풀코스 22회중 최저기록, 최고기록 대비 1시간 10분 늦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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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없이 달린 마라톤 후기]

 

30Km이후가 진짜 마라톤?

 

 

10월 26일 07:00

청량리에서 춘천행 기차를 탄다. 함께 가는 일행들, 선수 7명(성호,정산,월파,은미,은영,길원,순옥)에 자칭 자봉(자원봉사) 5명(용무,정호,성원,규익,흥기)이니 달리기보다 단풍놀이 가는 기분이다. 기차타고 떠나는 여행이니 더욱 그렇다. 가평을 지나 강촌으로 달리는 차창에는 단풍이 익어가고 있다. 닭갈비와 막국수가 먼저 생각나니 오늘 달리기의 끝은 어디쯤일까?

 

참가여부로 심적 갈등이 없던 것은 아니나 워낙 대책이 없으니 일단 춘천으로 향하고, 배번과 교복을 챙겨 배낭에 넣고 운동화를 신었을 뿐이다. 선수 7명 중에 이름을 올려 놓았지만 완주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는듯 하다. 스스로도 그러하니 ...... 작년 춘천이후 꼭 1년만의 마라톤 참가다. 지난 봄 양재천의 새벽 달리기를 몇 차례 한 이후 달린 기록이 없으니 ...... 막무가내도 이런 막무가내가 또 있는가? 

 

10:00

출발선, 가볍게 몸을 풀어보지만 스트레칭도 제대로 안된다. 그러나, 마음의 큰 걱정이 없으니 이 무슨 배포인가? 선두그룹(B조) 후미에서 준호님, 상규님 만나 서로 힘을 외치고, 드디어 출발, 사람들 틈에 밀려 달린다. 같은 출발그룹인 성호와 정산의 꼬리를 잡을 수가 없다. 속으로 다짐한다. 최대한 천천히 달리자. 우선 초반 5Km 언덕을 6분 페이스로 달려본다. 달릴만 하다. 숨이 차지 않다. 종아리 근육은 조금씩 풀리는듯 하다. 다만 한 사람도 추월하지 못하고 계속 뒤쳐지기만 할 뿐. 그러나, 아쉬운 마음을 버려야 한다. 종수님이 앞지르며 힘을 외쳐준다.

 

김유정 시비를 지나 의암댐을 건너 10Km지점을 향해 달린다. 삼악산에는 단풍이 익어 의암호로 내려오고 있다. 가뭄탓인지 단풍빛깔이 기대보다 곱지 않지만, 의암호에 비치는 일렁임의 추임새는 환상적이다. 달림이들이 본격적으로 목표속도를 내기 시작하는 구간이다. 스피드를 조금 올려보지만 이내 마음을 접는다. 오늘 완주의 관건은 "천천히"에 달려 있다. 부족한 운동량을 지구력으로 커버하자는 생각이다.

 

15Km 지점을 향해 의암호 곡선구간을 달리며 속도를 다시 줄인다. 최대한 천천히 달리자. 의암호의 섬인 위도 건너편에 새로운 경기장을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내년에는 저기서 마라톤대회가 열리겠지. 의암호의 수초(水草)를 살피며 달린다. 천천히 달리니 그 정도로 여유가 있다. 물살이 치는대로 물풀들이 흔들리고 잇다. 그러나, 그 줄기가 쉽게 꺽이는 일이 없다. 다만 물살에 제몸을 맡긴채 적응할 뿐. 앞을 보니 순옥여사가 소리없이 앞질러가고 있다. 동갑내기야, 잘 달려 오늘 신기록 내소서.

 

15Km 급수대에서 포카리스웨트 2컵을 마시고 16Km지점 깔딱고개를 향해 오른다. 늘 달려도 힘든 곳이지만 여기서 멈추거나 속도를 줄여본 일 없다. 원래 페이스대로 치고 오른다. 과욕일까? 가까스로 언덕 마루에 올라서니 허벅지 근육이 뻐근하다. 아직은 달릴만 하다. 의암호가 보이지 않는 길을 밋밋하게 달려야하는 코스지만, 마을주민의 응원에 손을 들어 답례하며 달린다. 호유님을 오랫만에 만나 잠시 동반주하다가 그를 앞서 보낸다. 늘 내가 앞서 달렸으니 오늘은 먼저 보내드리리다. 좋은 기록 세우시길.

 

10:05

20 Km지점을 지나 하프라인(21.0975Km)를 통과하며 �타임을 보니 2시간 2분 정도 지났다. Km당 6분 페이스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이 정도면 페이스 조절에 성공하고 있다. 다만 서서히 체력이 떨어지고 있으니 어떻게 후반전을 치뤄낼 것인가? 지구력은 꾸준한 훈련에서 나오는 것인데 ..... 훈련이 없었으니 기대할 지구력도 없다. 여하튼 달려보자. 춘천댐을 향해 달리는 서상교 오르막이 시작된다. 페이스가 뚝 떨어진다. 6분 페이스 유지가 어렵다. 새로 건설중인 교량의 건축미를 생각하며 서상교를 오른다.

 

26Km지점, 춘천댐에 올라섰을 때는 기진맥진이다. 전후좌우의 경치를 살피며 서서히 달린다. 이제 의암호를 오른쪽에 두고 달리는 내리막길이다. 물고기 비늘처럼 정오를 지난 가을햇살이 의암호에 일렁이고 있다. 디카를 가지고 오지 못함이 후회스럽다. 어제 저녁 준비물을 챙기며 디카충전까지 해놓고서 아침에 늦잠에서 깨어 깜빡했으니 ...... 30Km지점의 급수대, 늘 그렇듯이 바나나외 음료수가 널부러져 어지럽다. 바나나 2개로 배를 채우지만 이미 고갈된 글리코겐이 바나나 2개로 채워질까?

 

30Km지점을 지나며 양쪽 종아리가 실룩거리기 시작한다. 쥐가 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속도를 더욱 늦춘다. 주변에 의료봉사를 하는 팀도 없다. 매년 하던 수지침 자원봉사팀도 안보이고, 롤라스케이트 스프레이 자원봉사팀도 없다. 잠시 서서 스트레칭을 한 후 다시 달린다. 걸을 수는 없다. 달려야 한다. 달리기의 모토를 쉽게 저버릴 수 없다. 어제 오후 간송미술관에서 함께 전시회를 보고 나오며, 딸이 "아빠, 이번에 훈련이 부족해서 어떡해요? 힘드시면 걸어야 하는데 그러면, 우리집 가훈을 바꿔야겠네요 ... ㅎㅎㅎ 무리하지 마세요."  이 녀석, 아빠의 용기를 북돋우는 거야, 약 올리는 거야?

 

마라톤에서 30Km를 지나면 체내에 있던 에너지원인 글리코겐이 모두 고갈되고, 미량의 체내에너지로 달리게 된다. 그때부터가 진정한 마라톤이다. 사실상 한계를 극복하는 마라톤이 시작되는 것이다. 체력의 한계가 왔음을 서서히 느낀다. 스피드를 더 줄여 몸이 허락하는 최소한의 속도로 달린다. 서쪽을 바라보니 삼악산에서 북으로 뻗은 산세와 의암호의 물결이 그렇게 환상적일 수가 없다. 이 순간에 저 풍경이 눈에 들어올 수 있다니 ! 아, 이 맛이야 ! 길가의 빵집주인이 내놓은 결명자차  한 잔에 힘을 얻고, F조 페메 영신님이 앞지르며 건네준 건포도 세알이 입안에 사르르 녹는다.

 

35Km를 지나 소양대교에서 맞이한 자봉들, 정호 형과 성원 형, 눈물나도록 고마웠습니다. 형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그렇게 여유롭고 활기가 넘쳐 보였다지만, 그 때 내 몸은 다리에 쥐가 안풀려 사실 초주검이었다오. 다행히 형들이 건넨 콜라 한 모금과 사탕 두 알에 힘을 얻어 소양대교를 건너고, 뒤늦게 스프레이를 구해 종아리에 뿌려 뭉쳤던 종아리 근육이 풀려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40Km지점을 향해 그 길고 넓은 대로를 달릴 수 있었던거라오.

 

마지막 2Km, 연도의 시민들이 반겨주고 피니쉬라인이 눈앞에 아른거리니 없던 기운이 되살아나 다시 활짝 웃으며 힘차게 운동장으로 향했다. 운동장 입구에서 먼저 들어온 성호님이 "형님"하고 외쳐주고, 운동장의 트랙을 달리는 발걸음이 가벼워질 무렵 피니쉬라인이 눈 앞에 있었다. 22번째의 풀코스 완주다. 4시간 33분 58초, 7년 전 첫 입문 때의 기록으로 되돌아 갔다. 그러나, 가장 천천히, 가장 오래도록, 가장 마음 편하게 달린 대회였다.

 

다시 돌이켜 본다. 제대로 된 훈련도 없이 무슨 배짱으로 풀코스를 달렸는지? 누구의 말처럼 달리기에 대한 모독은 아닌지? 단지 "천천히" 달리면 해낼거라는 믿음은 어디서 나왔는지? 스스로에 대한 막연한 믿음 하나로 무리하게 달린 것은 아닌지? 자봉들도 나의 훈련량이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완주는 커녕 어느 지점에서 회수차를 탈 것인지가 긍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

 

이번 춘마는 마라톤을 시작한 이래 "가장 느리게, 가장 오래도록" 달린 마라톤이었다. 그래서 걷지않고, 마음 편하게 결승선까지 달렸지 싶다. 단풍과 호수와 달림이들의 어우러짐 속에 멋진 경관을 보고 즐기면서 주변과 소통하며 즐겁게 달린 마라톤이었다. 속도를 늦추면 다른 세상이 확연히 열리는 것을 제대로 확인했다. 마라톤은 고통을 즐기는 경기가 아니리니.....

 

"뛴다, 끝까지, 즐겁게"  

 

2008. 10. 27.

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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