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자리/* 여백(餘白)

산사(山査)나무 심은 뜻은?

月波 2008. 3. 30. 11:43

 

산사(山査)나무 심은 뜻은?

 

 

 

 

봄비가 그치는 듯하여 고층 아파트 숲속의 정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오래 살던 아파트 단지를 허물고 재건축하면서 제법 넓직한 공동 정원을 만들었다. 얼마 전 입주를 한 후 첫 걸음이다. 봄이면 벚꽃이 장관이던 곳인데 , 새로 만든 뜰에는 강원도 홍천에서 수십년된 산사(山査)나무 한 그루를 상징목처럼 옮겨 심어 놓았다.

 

그 노목(老木)에서 이제 막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벚꽃 대신에 늦은 봄이면 산사(山査)의 새하얀 꽃이 탐스럽게 필 것이다. 꽃이 지고 가을이 깊어가면 산사(山査)의 열매는 빨갛게 익어갈 것이다. 가을에 산을 걷노라면 앙증맞게 매달린 산사(山査)의 열매를 자주 대한다. 호젓한 숲길에서 붉은 열매로 유혹하는 그 "산리홍(山裏紅)"의 자태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미처 제 자리를 잡지못했지만 올망졸망한 정원을 한바퀴 둘러보고, 다시 고목(古木)이 되어가는 산사(山査)나무 등걸에 기대어 선다. 공동주택의 정원수로 왜 하필 산사(山査)나무를 택했을까?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 의미가 깊은 것 같다.

 

우선 산사(山査)의 한자를 풀어 보면 "산(山)에서 자라는 아침(旦)의 나무(木)"로 해석이 된다. 그 아침나무가 도회의 정원으로 내려와 여러 이웃들에게 맑은 아침을 열어준다. 늦은 봄이면 작은 꽃망울이 뭉게구름처럼 피어나 밤에도 어둠을 씻어 환하게 밝혀주고, 늦가을에는 아파트 숲에서도  "산리홍(山裏紅)"을 만나는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

 

또한, 산사(山査)나무에는 무사안녕을 기원하던 옛 사람들의 바램이 담겨있다. 산사(山査)나무로 생울타리를 만들고, 그 가시로 도둑을 막거나 그 붉은 열매로 귀신을 쫓는다고 믿어 왔기에 산사(山査)나무는 벽사(僻邪)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다. 이제 그 산사(山査)가 도회지 공동주택의 수호신이 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산사(山査, Hawthorn)가 벼락을 막아준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고, 그 꽃의 아름다움이 5월을 대표한다고하여 Mayflower라고도 부른다.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청교도들을 실어나른 Mayflower호의 이름을 되새겨보면, 새로운 세계를 향해 길 떠나는 이들에 대한 무사안녕의 기원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애기사과처럼 맺히는 산사(山査)의 올망졸망한 열매는 앙증맞음의 극치를 보여준다. 씹으면 사과처럼 아삭아삭하면서 새콤달콤한 맛이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기도 하다. 그 열매로 새들을 불러모아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기도 하니, 이땅에 산사山査)같은 나무가 그리 흔할까 싶다.

 

새로 입주하는 주민들을 재앙으로부터 보호하고 편안한 삶의 터전을 꾸리기를 바라는 뜻에서, 산사(山査)나무를 심은 상징성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이를 헤아릴 줄 아는 남다른 세심함이 오래된 산사(山査)나무를 구하여 새로 짓는 공동주택의 정원에 심게하였으리라. 그 혜안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그 정성에 감복하면서 걸음을 옮기는데 마음 속에는 산사(山査)의 하얀꽃이 피어나고 있고, 그 붉은 열매가 벌써 눈앞에 아른거린다. 허허허 ....... 꽃은 커녕 미처 잎이 모두 돋아나기도 전에 산사(山査)의 붉은 열매를 기다리는 내 마음이 너무 조급한 것일까?

 

 

2008. 03. 29.

역삼동 펜타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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