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주를 담그며
6월의 아침이다.
섬진강에 매화꽃 흩날리던 기억이 엊그제인데 벌써 청매의 푸른 과육이 제법 통실하다.
매실주를 담그기에는 다소 이르지만, 조급한 마음에 하지(夏至)까지 그냥 기다릴 수도 없다.
아내를 구슬러 우선 5Kg만 담그기로 한다.
아내의 주장대로, 매실즙을 만드는 설탕법 대신 바로 매실주를 만드는 소주법을 쓰기로 한다.
난 매실주보다 매실즙 엑기스에 관심이 더 많은데 .......
매실즙은 어머님이 담가서 보낸 것이 넉넉히 냉장고에 있으니,
매실주가 간절히(?) 필요하다나, 어쨌다나?
그리고 술은 내 몫이라나? 기껏 생각해서 매실즙 대신 매실주로 했다나?
이거 고양이 생각이야, 쥐생각이야?
산 꼭대기를 바라봐도 강 바닥을 쳐다봐도
서로의 마음이 함께 머무는 곳이면.
아뭏든 고마우이.
매실은 제철이 따로 있다.
절기상으로는 하지무렵이 제격이다.
6월 초도 나쁘지 않지만 5월의 매실은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어린 매실에는 구연산 함유량이 적을 뿐 아니라
비소 함유량을 생각하면
혹자는 약이 아니라 독이라 극언하기도 하기에
알이 굵은 것이 더 비싸고 매장의 전면에 놓여있다
아내는 손이 그쪽으로 간다
여보, 아니야
상대적으로 씨알이 작지만 크기가 고른 품종을 고르라고 귀띰한다.
그 중에서 흠도 덜하고 단단한 과육질의 청매를 고른다.
정성스레 씻고
페이퍼 타월로 물기를 없앤다
흡수와 탈수를 위한 지혜가 다양하다
몇 년 전
씻은 후 물기 없애려 하룻 밤 재웠다가
더운 날씨에 노랗게 익어버렸던 매실에 대한 기억을
아직도 아내는 지우지 못하고 있다
10리터 한 통이면 성에 도저히 안찰듯 한데
어찌하나?
그래도
하루에 소줏잔으로 한 잔이면
반년은 가지 않을까?
아내는 어떤 생각일까?
어쩌면
다음 주에 한 통 더 담그게 될지도 모르지
여보
사실 이번 매실은 좀 철이른거야
아무래도 구연산이 풍부한 최적기의 매실이 몸에 좋지 않을까?
다음 주와 그 다음 주 매실이 제일 좋다니
기왕이면
그 때 나오는 매실로
한 통씩 더 담그야하지 않겠어?
아내 왈
당신은 지금 약을 구하는 거유?
술을 구하는 거유?
당근 약이지
술이야 도처에 깔렸는데
내가 뭔 할일이 없어 이렇게 어렵게 술을 구하겠어?
암, 약이지.
약이구 말구, ㅎㅎㅎ
일단, 오늘은 5Kg을 담았으니
석달 후 그 맛을 기약하기로 하고, 다음 주는 10Kg에 도전해봐야겠지?
그 다음 주는 ???
안쫓겨나고 몸이 성할려나?
매실주 담그자고 처음 제안했을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아내는, 처음과 달리 지금은 제법 흥이 나서 매실주를 담그고 있다. 좋아하는 주말 드라마 시청도 미뤄두고. 아무래도 집에 돌아 오면서 사준 YS식 칼국수 한 그릇에 넘어갔나 보다. 아니면 매실주의 효능에 대한 나의 짧은 설(說)에 미혹해졌나?
매실의 무게와 물기, 설탕의 양과 색깔, 소주의 양과 도수를 열심히 계산하며 챙기고 있다. 물기 깔끔히 없애야 제대로 맛이 난다구. 백설탕도 좋지만 황색설탕이 나중에 더 고운 빛깔을 낼거야. 소주의 도수는 낮추면 안되, 양은 줄여도 좋지만. 당신 30도 빨간 두꺼비 마셔 봤어? 그 때는 참 소주가 진하고 맛있었는데 ....... 요즈음은 소주가 물이야.
음, 여보 ! 나한테 자꾸 물어보지 말고 이제 당신이 스스로 해결하면 안될까?
ㅎㅎㅎ 아이 (속으로) 신난다.
그리고, 여보, 술은 그렇게 계산기 두드려서 담는 것이 아니래.
손끝과 정성으로 담그는거래.
어머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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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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