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 않고서야(不狂), 미칠 수 없으니(不及)
(I) 그녀가 할머니라고?
그녀는 할머니다.
딸을 곱게 길러 시집을 보냈고, 그 딸이 애기를 낳았으니 할머니가 된 것이다.
그러나, 밖에서 만나는 그녀는 할머니가 아니다.
오십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청춘에 결코 뒤지지 않는 마음과 체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소위 쉰세대가 아니라 손자까지 둔 젊은 신세대이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년 전 초여름에 광주에 함께 갔었고, 그 곳에서 우리는 울트라100의 머리를 함께 올렸다.
그 이후로 산이나 달리기 대회에서 간혹 마주치곤 했지만,
가끔 크로스컨츄리를 함께하는 일 이외에는 자주 만나지 못했다.
얼마전 그녀가 100Km이상의 울트라대회 완주를 스무번째 해냈다.
광주 빛고을 울트라 이후 겨우 3년여만에 무려 스무번씩이나 100Km이상 울트라를 완주하다니.......
단순히 철녀라 이름붙이는 것은 그녀에 대한 경외심이 모자라는 일이다.
그녀가 이룬 성취에 대해 박수를 보낸다. 우뢰처럼 큰 박수를 한 아름 보낸다.
청춘이란 육신의 나이가 아니라 마음의 나이라는 사실을,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내게 일깨워준 그녀에게 감사함을 동시에 보낸다.
세월이 흐르면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지만,
열정을 잃을 때에는 영혼에 주름살이 지는 법이니까 .......
부득이 어젯밤의 축하모임에도 못가고, 이렇게 글로써 젊은 할머니, 그녀에게 다시 찬사를 보낸다.
한북 2구간에서 산악마라톤을 마친 그녀(앞줄 오른쪽에서 2번째)
(II) 미치지 않고서야, 미칠 수 없으니(不狂不及)
늘 그러했듯이 토요일 새벽, 양재천으로 나가고, 그를 만난다.
오늘은 코스를 바꾸어 과천방향으로 달려보자고 그가 제의한다.
양재천의 순환코스와 달리, 과천으로의 왕복코스는 요령을 피우거나 중도포기가 없다.
그의 제안에는 꼼짝없이 스스로를 묶자는 의도가 숨어 있다.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지 뭐.
쉰살을 넘기고도 젊은 청춘을 능가하는 할머니,
그녀의 얘기를 화두로 삼아 그와 함께 새벽달리기를 시작한다.
외손자까지 둔 50넘은 할머니가 3년도 채 되기전에 20회의 울트라마라톤이라 !!! ???
감탄과 궁금증이 교차한다. 동반주하는 그가 나에게 묻는다.
무엇을 위하여 그녀는 그렇게 달리고,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달릴 수 있게 했을까?
열정, 달리기에 대한 단순항 열정만으로 되는 일은 아닐텐데 ......
심폐, 지구력과 근력, 달리기에 필요한 일정한 기본적인 신체구조.
물론 필요한 것이지만, 충분조건이 아니다. 그것은 이름 그대로 기본기에 불과하다.
기본기를 갖추었다고 모두가 잘 뛰고, 오래 걷고, 많이 달리는 것이 아니다.
그 일에 빠져들만한 동인(動因)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지속할 만한 내면의 욕구가 있어야 한다.
정민 교수의 "미쳐야 미친다"는 책이 떠오른다.
한 시대를 아우르는 높은 지적, 예술적 성취를 이룬 몇몇 조선 선비들의 삶이 그 책에 담겨 있다.
그들은 당대의 마이너(Minor)였으나, 그들이 가진 매니아적 성향을 유감없이 드러낸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세운 뜻을 위해, 몸속에 꿈틀거리는 열정과 광기로 미친듯이 그 삶에 몰입했던 사람들이다.
세운 뜻을 이루려, 송곳으로 귀를 찌르거나 심지어 굶어죽은 천재도 있었다.
이렇듯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했던, 미치지 않고선 이룰 수 없었던 그들의 열정적 생애가,
오십대의 청춘인 그녀가 이루어낸 일과 오버랩되어 나에게로 다가온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무엇이 그녀를 미치게 하였을까?
그리고 미친다는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일까?
미친다는 것은 어디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심취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젖어드는 것이다.
술독에 빠지듯이 마음이 푹 빠져드는 일이다.
간절한 염원과 열정 없이는 이룰 수는 없는 것이다.
초심(初心), 초발심(初發心). 처음으로 마음을 내는 일이다.
마음을 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변함없이 그 마음을 유지하는 일, 즉 마음을 짓는 일이란 더욱 어렵다.
마음을 내는 일이란 순간의 일이지만, 집 짓듯이 마음을 짓는 일이란 지속의 문제이다.
지속은 곧 빠짐(심취)의 문제이며, 그렇게 미치지 않고서야(不狂) 소위 경지에 이를 수 없다(不及).
그에게 말한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울트라에 빠지도록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녀가 스스로를 어느 한 곳에 몰입시킬 수 있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고 ......
스스로의 일에서 미치도록 빠져드는 그녀의 자세가 배우고 싶고, 닮고 싶은 부분이라고.
혼을 쏟을 만큼 간절한 꿈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일테니 ......
그와 나의 새벽 달리기는 양재천의 강남구역과 서초구역을 지나 과천구역으로 접어든다.
이제 몸이 제법 풀려 달리는 자세도 편안해지고, 거친 숨소리도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의 숨소리가 오히려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III) 공존을 생각하며
양재천의 물길을 거슬러 과천방향으로 계속 달린다.
계속된 장마비로 양재천 상류도 제법 급한 물살이 흐른다.
거슬러지만 맞서지 않고 각자의 길을 따라 간다, 물은 물길을 가고 달림이는 달림이대로 제 길을 달린다.
길과 방향이 다르고, 높낮이가 다르고, 오르내림이 다르지만 서로와 부딪히지 않고 서로 공존한다.
아스콘과 우레탄의 적절한 조화는 달리는 발걸음을 한결 편하게 해준다.
서초구를 벗어나면서 주변의 내음이 다르다.
인향(人香)과 연향(然香)이 동시에 밀려 온다. 인공미와 자연미, 각각 향기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
빌딩숲 사이의 강남 양재천에서 묻어나는 향수 내음과, 과천에 가까워지면서 시골의 거름이 썩어가며 풍기는 내음, 모두가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중도에서 반환하자는 그를 설득해 과천 관문 운동장까지 달려간다.
운동하는 사람이 많다. 트랙 한 바퀴 돌고, 다음에도 여기까지 종종 달려보자고 약속한다.
반환점을 관문 운동장 트랙으로 잡은 것이다.
여기에도 컨센서스가 있고, 그래서 공존의 땅이 있다.
되돌아 달리는 양재천에는 여름꽃들이 자주 눈에 띈다. 해바라기, 달맞이꽃, 나팔꽃, 범부채까지 ......
달맞이꽃, 여기저기 공터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꽃이다.
해가지면 피기 시작해 해가 뜨면 시들기 시작하는 애�은 사연을 간직한 꽃이다.
오늘따라 달맞이꽃의 노란 웃음에 자꾸 마음이 간다.
달맞이꽃 - 수피령에서
범부채. 나리 나리 개나리가 아니다. 하늘나리도 아니요, 날개 하늘나리도 아니다.
원추리를 연상시키지만 꽃이 제대로 피면 그 색깔도, 꽃잎도 다르다.
노란색이 아니라 주황에 가깝고, 미녀의 맑은 꽃잎이 아니라 주근깨 투성이의 얼굴이다.
아직 부끄러워 살짝 숨긴 그 주근깨 꽃잎을 며칠이면 보여 주겠지?
이렇게 양재천의 들꽃들도 제 각각 스스로를 뽐내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공존하고 있다.
영동4교를 1Km남짓 앞두고 마지막 스퍼트.
그가 앞서고 내가 따른다. 따라가니 그의 스피드는 더욱 빨라진다.
심장이 멎을 만큼 숨을 몰아쳐 달려보지만, 그것도 잠시(5분, 1Km남짓)에 불과하다.
그래서, 짜릿함이 있다.
천천히 오랫동안 달리고, 빨리 짧게 마무리하는 배합이 안겨주는 묘미이다.
부상을 줄이고 마음도 상큼하게 하는 조화로움이지 싶다.
"빨리"와 "천천히"의 공존인 셈이다.
오랫만에 1시간 30분여에 걸쳐 17Km를 깔끔하게 달렸다.
(2007. 7. 7. 아침나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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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의 전설
바다, 강, 숲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움을 얘기하는 님프들이 살고 있었다.
특히 밤하늘의 별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잔잔한 호수에 비추는 수만개의 별을 보면서 황홀해 하곤했다.
그러나, 그 님프들중 달님만을 사랑하는 님프가 있었는데 별이 뜨는 밤이면 항상 우울했다.
별들이 아름답다하지만,
수천 개의 별들을 모두 합쳐 놓아도 우리 달님 한 분한테는 어림도 없을걸.....
난 별들이 없어졌으면 좋겠어.
저호수에, 우리 달님만 비친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지만 별을 사랑하는 님프들이 그녀의 푸념을 듣고는 별을 주관하는 제우스에게 고자질을 했다.
화가난 제우스는 그 님프를 달도 별도 없는, 아름다움이란 전혀없는 호수로 추방하고 말았다.
달의 여신 아르테르스가 이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님프를 찾아나섰으나 , 제우스는 구름과 비로 훼방을 놓곤했다. 그러는동안 그님프는 달님을 그리워하며 결국 죽고 말았다.
아르테미스는 영혼이 떠나 싸늘해진 님프를 안고 흐느껴 울었으며,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주었다.
제우스도 자신의 가혹함을 뉘우치고 그 님프를 달맞이꽃으로 다시 태어나게하여 그 넋을 위로했다.
지금도 달맞이 꽃은 해가 지면 달님을 맞이하기 위해 얼굴을 노랗게 물들인답니다.
해가지면 달님을 맞이하기위해 활짝 웃는 모습이 아름답지만, 낮이면 힘을 잃는다.
꽃말이 말없는 사랑,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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