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자리/* 심향(心香)

초파일의 윤필암과 봉암사

月波 2007. 5. 24. 16:43

 

백두대간 Best 10 - 고생이 추억으로 치환되는 희양산

 

<다시 찾는 백두대간>의 세 번째 테마를 문경의 희양산 봉암사로 정한 것은 지난 2월의 일이다. 작년 6월 폭우속에 지낸 지리산의 벽소명월에 이어, 금년 2월에 광풍설화(狂風雪花) 날리던 점봉산 쇠나드리를 다녀오면서, 다음은 초파일의 희양산 봉암사로 기약했다.

 

말없는 시간속에서도 그 약속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알바 알바 희양산 가는 길>, 백두대간에서 가장 힘들었던 구간중 하나였다. 30Km, 15시간이 넘는 여름산행, 악휘봉의 상처를 안고 알바를 거듭하던 희양산 가는 길, 식수부족으로 탈진해가며 흐릿해지던 기억들 ...... 그러나, 이 모든 고생이 이제는 짜릿한 추억으로 치환되는 곳이다.

 

그 희양산이 품고 있는 봉암사는 일년에 단 하루 초파일에만 산문을 열고 속인들의 근접을 허하는 곳이다. 서릿발처럼 화두가 살아 숨쉬는 선승들의 도량을 속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엿보고 싶지 않으랴. 그러니, 희양산을 다시 찾는 날은 오래 전에 초파일로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초파일이 다가오자 조금씩 조바심을 낸다. 희양산과 봉암사를 찾는 길에 그 곳에서 가까운 대승사, 윤필암, 김용사를 두루 둘러볼 수 있으면 ...... 마침 시간과 뜻이 맞는 SH님도 추가로 합류하여, 하루 전애 미리 길을 나섰다. 먼저 문경의 대승사에 들러 하룻밤을 묵으며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았다. 

 

 봉암사 담장의 기와로 만든 문양

 

(1) 사불산 윤필암(閏筆庵)

 

윤필암은, 깨달음의 꽃이 활짝 피어 있어 더욱 아름다운, 비구니들의 선원(禪院)이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수행도량이다. 윤필암과 나의 인연은 1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간다. 이슬비 촉촉히 젖던 어느 봄날, 화려한 색 우산 사이로 사불산 숲속에 부끄러운듯 숨어있던 윤필암의 첫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 수줍은 미소가 그리워 윤필암으로 간다.

 

윤필암은 마침 하룻밤을 묵기로 한 대승사의 사내암자이니 걸어서도 가까운 거리다. 대승사에서의 저녁공양은 기다림 만큼 넉넉함과 풍성함이 있다. 노보살님의 자상함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가까운 이웃부터 베푸는 것이 참 공덕이다. 그 공덕 쌓느라 좀 늦었지만 윤필암은 그 자리에 그대로다. 밤 늦은 시간과 초파일 이른 새벽에, 이틀에 걸쳐 두번이나 윤필암을 찾았다.

 

사불바위가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지은 사불전과 암자 입구의 관음전만 출입이 허용되지만, 윤필암 경내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 정갈하고 아름다운 분위기에 매료된다. 찹살떡에 꽃을 피운 진달래 화전(花煎)의 고운 빛깔이 연상되는 곳이다. 이럴 때에는 굳이 불심이 없어도 된다. 정갈한 마음으로 3배만 하더라도 스스로 맑은 영혼이 된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와 돌 하나까지도 모두가 제 자리를 지키며 드러내지 않는 아름다운 자태가 흐른다. 오랫동안 윤필암과 인연을 맺으며 그 곳의 이미지를 담아온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의 그림과 사진, 조각, 글에서 느꼈던 윤필암의 이미지와 오버랩된다. 밤에는 눈에 그 모습을 그대로 담고, 새벽에는 어두운 빛속에서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그러나, 마음 속의 그 모습에 비하랴?

 

어둠에 묻힌사불전을 지키는 연등 - 초파일 새벽

  

관음전 창호의 불빛과 앞 마당의 연등 - 초파일 새벽  

 

관음전을 밝히는 연등과 윤필암 현판 - 초파일 새벽

 

사불전 석축아래 텃밭에 피어난 형형색색의 양귀비 - 초파일 새벽

 

 

 도랑을 복개하고 지은 요사채, 첫 만남이다 - 초파일 새벽

 

윤필암 창건신화에 나오는 천강사불(天降四佛), 하늘에서 내려온 화강석의 사면(四面)에 새겨진 부처님이다. 그 석사면불(石四面佛)은 사불전(四佛展)의 유리창으로 된 벽을 통해 바라보이는 공덕산 정상에 우뚝 서 있다. 오랜 세월의 풍상(風霜)으로 비록 그 윤곽조차 흐릿해도, 이른 새벽 어둠 속에 석불을 바라보고 서면 절로 경건해진다.

 

인연의 오묘함이란 알 수가 없다. 예정에 없이 아내와 함께 불쑥 윤필암에 들렀던 몇 년 전의 짧은 연(緣)이, 봉암사로 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초파일 새벽 첫 걸음이 윤필암으로 향하게 했다. 아득한 옛날 신라시대에 빨간 보자기에 싸인 사면석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환영(幻影)을 보는듯 하다.

 

관음전 마당에서 잠시 아침예불에 참례하고 서둘러 김용사로 발길을 옮긴다. 다음에는 윤필암에서 비구니 스님들이 만든 정갈한 반찬으로 아침공양을 하고 싶구나. 계절에 따라 나오는 차 한 잔을 곁들일 수 있으면 속인의 마음이 절로 환해질 것 같다.

 

 

(2) 운달산 김용사(金龍寺)

 

운달산 김용사는 윤필암에서 자동차로 10분이내의 가까운 곳에 있다. 성철 큰 스님이 득도하고 대중을 모아 첫 설법을 했던 인연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전날 밤 늦게 찾았을 때보다, 부처님 오신 날 새벽 일찍 찾으니 아침 예불소리 낭랑하게 운달산에 울려 퍼진다.

 

간밤에 3시간 남짓 짧게 눈을 부친 탓인지 새벽부터 졸음이 찾아든다. 김용사 대웅전에서 이 새벽부터 수마에 넋을 뺏길 수야 없지 않은가?  삼배를 하고 밖으로 나오는 데 갑자기 허기가 진다. 야, 이 속보이는 중생아 ! 겨우 하룻밤 세상과 떨어져 있었다고, 절간의 담담하고 무심한 아침공양을 자꾸 탐하는 것이냐?

 

윤필암과 달리 김용사에서 마음이 조급해지고 행동을 서두는 것은 봉암사가 더욱 간절하기 때문이리라. 이미 마음이 희양산에 가 있는데, 운달산에 좀 더 머무르면 무엇을 얻고, 또 무엇을 털 수 있단 말인가? 마음이 가는대로 몸을 움직이자. 서둘러 희양산 봉암사가 있는 가은으로 자동차를 몬다.

 

성철스님이 제자들과 찍은 빛바랜 흑백사진이 걸린 그 방에서 잠시 시름을 잊고 차 한 잔 마시고 싶었었는데 아쉽다. 이 아쉬움을 희양산 봉암사에서 채울 수 있을지?

  

김용사 대웅전 마당에 걸린 연등 - 초파일 이른 아침

 

김용사 대웅전 뒤의 운달산 자락 - 초파일 이른 아침

 

너 소원이 저렇게 연등처럼 피어나더냐? - 초파일 이른 아침 

 

내 소원도 저 연등의 고운 빛깔에 담겨 있더냐? - 초파일 이른 아침 

 

운달산을 떠나기 못내 아쉬워 김용사를 다시 돌아본다 - 초파일 이른 아침 

 

 

(3) 희양산 봉암사(鳳巖寺)

 

봉암사 가는 길, 백두대간을 할 때 새벽을 뚫고 버리미기재로 향하던 문경 가은의 그 길이다. 선유동 계곡으로 접어드는 들머리에 초등학교 분교가 하나 있다. 그 전방 1Km부터 교통경찰과 자원봉사대가 차량통제를 하고 있다. 봉암사까지는 족히 5Km는 남았을 텐데 ....... 악휘봉을 거쳐 희양산을 오르던 기억이 스친다. 희양산 암봉에 매달려 있던 실날처럼 가는 밧줄, 오늘도 봉암사 가는 길은 그 밧줄과 같구나.

 

일년에 하루 밖에 문을 열지 않으니 그 인심이 참 야박한 것 같지만, 수행에는 인심을 논할 바가 아니다. 수행처에 호기심으로 찾아드는 중생의 마음이 오히려 야박한 것이다. 아침 6시 50분, 학교 운동장에 주차하고 줄을 서서 셔틀버스를 기다린다. 그래도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였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흡족하다. 오늘 하루 3만명이 넘는 인파가 봉암사를 찾을 것이라니 ......

 

대학 3학년 여름이다. 산문(山門)으로 들어가더라도 학교는 졸업하고 가라던 권유에, "세상의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 오히려 수행에 방해가 된다"며 곧장 출가사문의 길로 간 백우당(白牛堂). 초발심을 하고 봉암사에서 잠시 수행했던 그는 그 시절의 발원을 이루었는지? 그를 보고 싶다. 시절의 연(緣)이 언제나 닿을지? 구산선문에서 깨달음의 꽃을 피우고 있겠지. 그 곳은 멀지 않은데, 아직 내 마음이 멀구나.

 

아침 7시 무렵 봉암사의 일주문을 들어선다. 저 기둥처럼 한 마음으로 세상을 지탱해야 하리라. 어디서 보나 희양산은 그 굳센 화강의 빛깔로 봉암사를 감싸고 있다. 금강(金剛)이 저러하고 반야(般若)가 그러할진대, 여기의 용맹정진은 칼날 앞에서도 번쩍이리라 싶다.

 

봉암의 품에 안겨 아침공양을 한다. 넉넉하고 풍성하기만 하다. 산채가 부족해도 국물이 떨어져도. 내 마음은 꿀맛이요 풍족하기만 하다. 작년 초파일에 공양준비로 수십 가마니의 쌀이 들어갔다는데, 금년에는 나도 한 몫 거들었으니 밥값을 해야겠다. 단촐한 등 하나에 이름 석자, 소원 네자를 적는다. 

 

대법당에서 삼배하고 경내 곳곳에 산재한 유물, 유적들을 살펴본다. 시간이 끊긴, 옛날과 지금의 만남이다. 확철대오, 견성성불하려 정진하는 선승들의 수행처인 선원은 오늘도 문이 굳게 닫혀있다. 열리지 않는 선원의 담장을 돌아, 다행히 마애불로 가는 백운대 계곡길이 열려 있어 마애불을 친견할 수 있었으니 이 또한 기쁨이었다.  

 

 하나의 기둥, 그래도 모두가 그 기둥에 의지할 수 있다

 

봉암에 들어서니 희양이 잠시 몸을 숨긴다 

 

오르고 내림이 모두 하나의 길이다  

 

산채(山菜)가 적어도 장독이 가득하니, 아침공양은 넉넉하다 

  

지증대사 앞에서 영겁을 생각하고

  

산문이 열려도 선원의 담은 높기만 하니

 

희양의 암봉에 그 뜻을 물어 볼까?

 

삼층석탑에서 그 숨은 뜻을 찾아볼까?

 

入此門內 莫存知解, 차마 여기는 들지 못했으니

 

여럿이 보고 보아도

 

나 홀로 살펴 보아도

 

마애불은 오늘 마음을 씻었구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되

 

 작은 바위가 앞을 가려도, 암봉은 여여(如如)한 법이니

 

 밀짚모자 아래 숨은 맑은 영혼을 읽으라

 

검은 기와장도 은빛이니, 흑백이 둘이 아니라면

 

모든 것을 버리고, 이 문으로 들어오라 

 

봉암사를 돌아 나오며 다시 대웅전으로 향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 길에 놓인 저 문(門)을 보라. 좁은 문을 거쳐 그 계단을 오르고 있다. 이 문안에 들려거든 알음알이(知解)를 모두 버리라고 한다.

선승들의 그림자를 쫓으며 보낸 이틀, 그 행각의 말미에서 내 속의 나를 들여다 본다. 자문자답이다. 

 

   그대, 저 문으로 들어 가려하는가? 

   아니면, 저 문을 벗어나려 하는 것인가?

   문으로 들어 가려는 자,

   태어나 지득한 알음알이를 모두 버려야 하느니(入此門內 莫存知解),

   그 문에 진정으로 들어서야, 다시 그 문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세상에서 보고 배운 알음알이 다 버리고,

   그대, 진정으로 저 문으로 들어가고 싶지 아니한가? 

   먼저 버려라, 한 톨도 남김없이 털어 버려라.

 

   산은 그 품에 절을 안고, 절은 사람의 마음을 품는 것이거늘,

   불심(佛心)이란 교리나 믿음에서 발(發)하는 것이 아니다.

   모름지기 불심(佛心)이란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일진대,

   그 마음만 열리면, 우리가 만나고 접하는 모두가 불심(佛心)이리라.

 

   흐르는 물에서도, 스치는 바람에서도,

   심지어 절간에 무쳐놓은 초파일의 나물 한 그릇에서도

   우리 마음은 불심(佛心)일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마음은 윤필암에 머물고 있다.

   풀, 꽃, 나무, 돌 모두가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름다운 곳에서

   단아한 마음으로 다시 아침예불을 드리고 싶다.

   맛갈스런 아침공양을 하고 싶다.

 

 

말미에 붙이는 메모

 

폭풍우가 몰아칠 것이라는 예보와 달리 문경에는 날씨가 맑기만 했다.

그래서, 덕을 쌓아야 하는 것이리라. 적어도 덕을 쌓은 벗이라도 함께 하든지.

허허허 ....... 부처님의 가호인지, 함께한 벗들의 복덕(福德)인지?

문경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데 그 때서야 차창에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진다.

서울에 도착하니 굵은 빗방울이 국지성 호우로 바뀐다.

불심(佛心)은 빗속에도 있다.

 

빗속에서 떠오르는 찌렁찌렁한 목소리.

네 이놈, 싱싱한 채소는 죽은 것인 양 잘 먹으면서, 죽은 고기 조금 먹은 것이 무슨 문제인고?

죽은 고기는 살아 보이고, 살아 숨쉬는 야채는 죽은 것으로 보이더란 말이냐, 이 놈아?

초파일의 유머 법문이다. 그렇지, 정산?

유머에도 법문에도, 독설과 해학이 있어야 한다.

 

 

  - 2007년 5월 24일, 부처님 오신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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