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금남 1구간] 좋은 일이야, 산에 빠지는 건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09년 4월 5일(일), 토요무박
(2) 산행구간 : 호남금남정맥 1구간
영취산(1075.6m)-무령고개-장안산(1236.9m)-백운산(947.8m)-밀목재-사두봉(1014.8m)-수분재-신무산(896.8m)-차고개
(3) 산행거리 : 21.4Km(도상거리, 진입구간 별도)
(4) 산행시간 : 8시간 50분(식사및 휴식 1시간 50분 포함, 진입구간 20분 별도)
(5) 산행참가 : 11명(시탁,성원,월파,정산,오언,길원,지용,성호,제용,은영,은미), <좋은 사람들>과 합동산행
2. 산행후기
(1) 산에 빠지는 건 좋은 일이야
오랜만의 야간산행이다. 봄이라 해도 산에서는, 그것도 새벽의 산은 아직 겨울이다. 고어텍스 재킷을 꺼내 입는다. 배낭을 무령고개에 두고 영취산으로 오른다. 백두대간을 할 때와 달리 길은 잘 정비되어 있다. 나무계단을 따라 급경사를 오른다. 짙은 어둠에 감싸인 영취산에서 첫 발을 내딛는다. 1천3백리 호남정맥의 시작이다. 무령고개로 되돌아와 배낭을 챙겨 장안산을 향해 어둠속으로 빨려든다.
자유의 그물인 산으로 스스로 몸을 던진다. 어둠 속에 산길을 걸으며 찬찬히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은 또 다른 자유를 얻는 일이다. 평탄한 숲길은 완만하게 오름을 유지한다. 이성부 시인의 <좋은 일이야>를 읊조리며 숲길을 걷는다. 간혹 새벽바람이 알싸하게 볼을 스치지만 산죽의 음기가 청량감을 더해준다. 산죽 한 잎 따서 입술에 깨문다. 장안산을 오르는 마지막 급경사도 잠시, 호남정맥의 최고봉이 발아래에 있다.
산에 빠져서 외롭게 된 / 그대를 보면 / 마치 그물에 갇힌 한 마리 고기 같애
스스로 몸을 던져 자유를 움켜쥐고 / 스스로 몸을 던져 자유의 그물에 갇힌
그대 외로운 발버둥 / 아름답게 빛나는 노래 / 나에게도 아주 잘 보이지
산에 갇히는 건 좋은 일이야 / 사랑하는 사람에게 빠져서 / 갇히는 건 더더욱 좋은 일이야
평등의 넉넉한 들판이거나 / 고즈넉한 산비탈 저 위에서 / 나를 꼼꼼히 돌아보는 일
좋은 일이야 / 갇혀서 외로운 것 좋은 일이야
- 이성부, 시집 <야간산행>, 좋은 일이야
960봉 가는 숲길에서
(2) 강낭콩같이 푸른 물에
다시 얼마나 걸었을까? 여명이 찾아오고 산하의 우윳빛 안개가 걷히고 있다. 백운산을 지날 무렵 동녘에서는 일출을 준비하고 있다. 해오름이 세상을 향해 그 붉음을 서서히 토해내고 있다. 960봉 가는 숲길에서 잠시 서서 일출을 맞이한다. 산에서 맞는 일출은 늘 색다른 감동으로 마음을 흥분시킨다. 그 붉음을 단숨에 삼키고 싶은 욕심이 자리하는 것일까?
갑자기 허기가 찾아온다는 오언의 고백에 양지바른 숲에 모여 앉아 아침을 먹는다. 숲속의 성찬이다. 가슴 속으로 붉은 태양을 삼키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대간과 낙동은 늘 그랬다. 오언이 종을 울리면 걷기를 멈추고 허기를 해결하고, 길원이 길을 나서면 그 길을 따랐다. 길이 아닌 듯해도 그들이 나서면 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였다. 호남도 마찬가지라는 무언의 컨센서스를 이룬 셈이다.
밀목재(750m), 호남정맥에서 차량이 다니는 최고 높은 고개란다. 수몰민 이주마을이 있다. 심심산골에 단아한 현대식 가옥들이 잘 지어져 있다. 펜션이나 별장 같은 느낌도 든다. 이 고개 넘어 덕산계곡은 오지 중 오지로 천혜의 맑고 깨끗한 자연을 자랑했는데, 이제 지방도로가 포장이 되고 버스가 다니니 그 순수함이 얼마나 지워졌을까? 새끼 낳은 어미개의 짖음에서 모성본능을 본다. 어머님이 그립다.
사두봉을 향해 산을 오른다. 중간에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나타난다. 이름이 <논개 활공장>이라 붙여져 있다. 그렇지. 논개의 생가가 장수였지. 논개는 장수에서 태어나 진주 남강의 강낭콩같이 푸른 물에 적장을 안고 몸을 날렸었지. 흐르는 강물은 / 길이길이 푸르리니 / 그대의 꽃다운 혼 / 어이 아니 붉으랴 /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잠시 활공장 아래의 산하를 굽어보며 후미를 기다린다. 모두 아침 식사 후 반납(?)에 바쁜지 뒤따라옴이 늦다. 제용이 카메라 렌즈를 바꾸고 솜씨를 뽐낸다. 아우님, 배 나온 사람 배 집어넣고, 땀에 절인 얼굴에는 고운 빛깔 분바른 양 잘 찍어보시게나.
논개 활공장, 표정이 밝다 Photographed by 제용
(3) 아, 바로 이맛이야 !
저 앞산이 사두봉일까? 아냐, 저 산 뒤에 사두봉이 자리하고 있을 거야. 활공장에서 보이는 첫 봉우리에 오르면 이내 진실은 밝혀진다. 아침햇살을 맞으며 사두봉의 무덤가에는 산버들이 병아리 솜털 같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누군가 간식을 먹고 가자고 한다. 이 과일 저 과일이 나오고, 은은한 원두 커피향이 흐른다. <좋은 사람들>팀의 예쁜이에게도 감사! 882봉과 바구니봉재를 지나 수분재에 이르는 숲길은 마냥 편안하다. 곳곳에서 생강나무의 노란 꽃술을 속으로 훔치며 지난다.
수분재에서 막걸리 한 사발씩 한다. 마을 이름이 수분(水分)이다. 이름 그대로 물길을 나누는 곳이다. 수분령 휴게소 옆에 뜬봉샘 기사식당이 있는데 그 집 처마의 물이 반은 섬진강으로, 반은 금강으로 흘러간단다. 외롭게 서있는 수분송(水分松) 한 그루, 그 아래 <금강 발원지>와 <뜬봉샘> 표지석이 있다. 수분 마을 뒤의 신무산 기슭에 있는 발원지(샘)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신무산으로 향하는 길에 쑥 캐는 아낙을 만난다. 얼굴의 주름이 연륜을 말해주지만, 표정은 돋아나는 새싹처럼 해맑다. 가파른 신무산을 오르는 길에 정오의 따가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다. 땀이 비 오듯 하고. 허벅지에 쥐가 날 조짐이 있다. 속도를 줄이되 쉬지 않고 꾸준히 걷는다. 따르는 뒷사람도 같은 심정일까? 간신히 오른 정상에는 먼저 온 예쁜이가 사과 한 잎을 건넨다. 아, 바로 이 맛이야 ! 극한의 달콤함은 화학적 성분이 아니라 감성적 성분인거야.
사두봉의 산버들
(4) 달리 무엇을 서로 다투리오
신무산 정상에 서니 저 아래 차고개가 보인다. <좋은 사람들>팀의 산행대장이 하산을 보류하고 대기하란다. 산 아래에 산불감시요원이 지키고 있으니 어떻게 하산해할지, 동향을 살피러 그가 먼저 내려간다.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으니 서두를 일도 없다. 30분이면 하산할 테니 푹 쉬었다 가자. 앞질러가든 뒤쳐지든 달리 무엇을 다투리오. 산 정상 풀숲에 잠시 드러누워 하늘을 본다. 조선 중기의 학자요 문인이었던 구봉 송익필의 한시가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山行(산행) / 龜峰 宋翼弼(구봉 송익필)
山 行 忘 坐 坐 忘 行(산행망좌좌망행) 가노라면 쉬기를 잊고 쉬다보면 가기를 잊고
歇 馬 松 陰 聽 水 聲(헐마송음청수숭) 말을 멈추고 솔 그늘에서 시냇물 소리를 듣는다
後 我 幾 人 先 我 去(후아기인선아거) 내 뒤에 오는 몇 사람이 나를 앞질러 갔는가
各 歸 其 止 又 何 爭(각귀기지우하쟁) 제각기 멈출 곳이 있는데 다시 무엇을 다투리오
* 구봉 송익필(1534~1599) - 율곡 이이의 지우(知友), 양반에서 노비로 강등, 다시 복권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음
뜬봉샘에 물 뜨러갔던 성호가 빈손으로 돌아오자, 산불감시요원의 경계를 아랑곳하지 않고 차고개로 하산한다. 산 아래는 이제 봄이다. 막걸리 한 잔에 온 몸이 나른해진다. 먼저 도착한 팀들 중심으로 오후 1시 40분에 서울을 향해 출발, 오후 5시에 양재동에 도착한다. 산행하면서 이렇게 이른 귀경은 처음이다. 그러나 귀가시간은 한 밤중이었으니, 그 넘의 뒤풀이가 !!!
Photographed by 제용
호남의 첫걸음, 대간과 낙동의 동지들과 함께하여 마냥 여유롭고 즐거운 하루였노라. 樂在有餘無不足 (낙재유여무부족)이라 했지요. 즐거움은 족함에 있으니 여유 있으면 족하지 않음이 없겠지요. 양은(은영, 은미)의 합류도 반가웠고, 돌아온 3용(희용,지용,제용)의 재회도 뜻 깊었다오. 양기(명기, 영기)도 있다고 주장하는 정산, 다음에 명기 형도 모시고 가자고.
모두 감사하외다. 백운산 너머 광양의 망덕포구까지 함께 합시다.
2009. 4. 7.
역삼동에서
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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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시간]
1110 - 사당역 출발
0330 - 무령고개 출발(영취산 진입)
0350 - 영취산(1075.6m)
0400 - 무령고개(830m)
0455 - 장안산(1236.9m)
0610 - 백운산(947.8m)
0700 - 960봉 (아침식사 40분)
0740 - 960봉 출발
0750 - 밀목재(750m)
0850 - 사두봉(1014.8m, 간식 10분)
1020 - 수분재(539m, 40분 휴식)
1100 - 수분재 출발
1145 - 신무산(896.8m, 휴식 20분)
1205 - 신무산 출발
1240 - 차고개(659m)
1340 - 차고개 출발
1700 - 서울 양재동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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