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타(秋田)에 피는 설화(雪花)
1. 여정(旅程)
(1) 일정 : 2010. 1. 20(수) ~ 1. 23(토)
(2) 장소 : 아오모리(靑森) - 아오모리야(靑森屋) 고마키(古牧) 온천, 하치노헤(八戶)
이와테(岩手) - 이와테산(岩手山)
아키타(秋田) - 산록소(山祿莊) 온천, 다자와호수(田澤湖), 가쿠노다테(角館) - 아오야기게(靑柳家)등 무사촌과 운간지(雲嚴寺),
미즈사와(水澤) 온천
(3) 동행 : 바이킹 열 부부와 아이돌 넷
2. 단상(短想)
(1) 부부는 서로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으로 향한다. 아오모리(靑森)에 들렀다가 이와테(岩手)를 거쳐 아키타(秋田)에서 머물 것이다. 일기예보로는 사나흘간 눈이 예보되어있다. 유키구니(설국, 雪國), 그 은빛 세계에서 순백의 영혼을 만날 수 있으려나......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아오모리(靑森)는 이미 하얀 세상이다.
아오모리야(靑森屋)에 짐을 풀자마자 고마키(古牧) 온천의 노천탕으로 간다. 눈내린 숲속의 폭포와 스치는 바람이 어우러져 노천에 담근 몸의 귓볼을 부빈다. 하얀 정원의 연못에 떠있는듯, 몸과 마음이 절로 날아갈듯하다. 그래서 고마키(古牧) 노천탕을 우끼유(浮湯)라 별칭하는 것일까?
아침 저녁으로 온천을 오가며 아내의 얼굴을 살핀다. 아직 곱지만 얼굴에 잔주름이 제법 생겼다. 부부란 서로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는데 ...... 얼굴에 내색을 않고, 늘 혼자 삭이고 털어버리며 믿고 기다려준 아내가 그저 고맙다. 그 마음으로 이와테(岩手)를 거쳐 아키타(秋田)로 향한다.
여보, 하치노헤(八戶)에서 미처 맛보지 못한 털게는 겨울 가기 전에 울진, 영덕으로 가자구요.
(2) 뜨거움이 있어 불가능은 없고
먼발치로 이와테산(岩手山)을 바라보며 아키타(秋田)를 향해 눈덮힌 산야를 달린다. 스노우 타이어가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은빛 찬란한 기운이 넘치는 벌판을 지나 터널과 협곡을 건넌다. 하늘로 곧게 뻗은 스기나무는 하얀 겨울코트를 입었다. 아키타의 여인이 눈에 그려진다. 눈이 많은 곳이라 눈처럼 뽀얀 얼굴의 예쁜 여인일거라는 생각이다. 아키타의 유명한 목각 인형만큼이나.
석양에 눈발이 흩날린다. 가이드는 스스로 3학년 8반이라 신고한다. 일본에서 8년이나 살았다는 그녀의 얘기는 무궁무진하여 귀가 솔깃하지만 심해(沈海)로 흡인시키는 몰입의 매력은 덜하다. 주제를 놓친 그녀는 이와테(岩手)를 떠나 아키타(秋田)를 돌고, 다시 아오모리(靑森)의 여름벌판으로 달려가고 있다. 3학년 8반이 저럴진대 5학년 4반은 어찌할꼬? 저녁메뉴인 가이세키(懷石) 얘기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제자리를 찾는다. 차창에는 아직도 눈덮힌 이와테(岩手)의 시골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날이 어두워서야 아키타(秋田)의 산록소(山鹿莊)에 여장을 푼다. 저녁은 가이세키(懷石) 한 상(床)이다. 가슴에 뜨거운 돌을 품고 수련하여 대도(大道)를 이룬 선승(禪僧)처럼, 범인(凡人)도 뜨거운 열정 하나로 일가를 이루고 대업을 이룰 수 있지 않은가? 조석으로 유황온천에 담근 몸 또한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단련되리라. 다자와(田澤) 호수의 다쯔코 소녀와 하찌코 청년의 뜨거운 사랑, 그 열기가 있어 다자와(田澤) 호수는 오늘도 얼지 않고 있으니.
이처럼 어떤 경우에도 뜨거운 열정(熱情)이 있으면 불가능이란 없다. 이룰 수 없는 일이란 없다.
(3) 가쿠노다테(角館) - 눈 빛에 부르는 연가(戀歌)
가쿠노다테(角館)로 가려고 눈덮힌 벌판의 작은 간이역, 마쯔바역(松葉驛)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우리 일행 외에는 그 외로운 역을 스쳐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심지어 역의 승무원조차 없는 무인역이다. 그래서 역도 눈덮힌 벌판도 모두 우리 차지다. 아내는 마치 세상을 다 가진 양 눈밭을 뛰어다니고 나딩군다. 저렇게 즐거워할 줄이야. 나도 행복하다.
엷은 코발트 빛깔의 연가(戀歌)를 그려봄은 어떨까? 호기심이 동한다. 백설이 난무하는 날의 오후에 카메라의 Time Value를 낮춘다. 노출, 원래 노출이 많음은 청춘(靑春)의 특권이 아니던가? 그런데, 눈 오는 날의 카메라는 오히려 노출을 줄이니 순백(純白)을 엷은 잉크빛 청춘(靑春)으로 변화시킨다. 의외의 결과물에 잠시 감흥을 보낸다. 새로운 얻음, 이것이 곧 작은 행복이다.
아내의 얼굴이 밝아서 더욱 좋다.
(4) 가쿠노다테(角館) - 운간지(雲嚴寺)에서
운간지(雲嚴寺), 조동종(曺洞宗)의 사찰이다. 조계(曹溪)에서 법을 전하고 동산(洞山)에서 선풍(禪風)을 떨쳤다는 종파다. 달마의 법(法)을 이은 6대조사 혜능(慧能)으로부터 그 법손(法孫)인 양개(良价)에 이르기까지 우뚝 솟은 선맥(禪脈)을 일구었으니, 그 가르침이 오늘 설화(雪花)로 흩날리며 불국토(佛國土)를 이루고 있다.
눈이 펑펑 내린다. 눈이 눈 앞을 가린다. 눈이 해맑아진다.
이 눈이 어떤 눈인고?
이 눈이 저 눈이고, 저 눈이 이 눈이요,
이 눈이 저 눈과 다르지 않고, 이 눈이 저 눈과 다르지 않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색불이공 공불이색(色不異空 空不異色)
법당에 3배하고 나와 눈에 눈을 맞추고 눈길을 걷는다. 눈은 이미 어린 아이의 그것으로 돌아가 있으니 눈과 같은 빛깔이다.
이 눈과 저 눈의 빛깔은 무엇인고?
(5) 가쿠노다테(角館) - 무사촌(武士村)의 어제와 오늘
오래된 사무라이(侍)들의 마을이 새하얀 눈에 뒤덮혀 있다. 봉건(封建)의 틀을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가쿠노다테(角館)는 해마다 겨울이면 이러기를 100년이 넘도록 해오고 있다. 환골탈태(換骨奪胎), 그 끝은 없다. 새롭게 바뀐 순간에 곧 기성(旣成)이 되고, 기성(旣成)은 또 다른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오늘 그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사의 현장에 선다.
아오야기게(靑柳家)도 이시구로게(石黑家)와 니시노미야게(西宮家)와 함께 그 오래된 사무라이 가문중의 하나다. 그 오래된 무사의 집에서 먹는 점심은 단촐하면서도 알차다. 오래된 것은 무사인가, 마을인가? 아니면 그들의 정신인가? 오래되어도 빛나는 것은 칼바람같은 정신이 아니던가! 지붕 처마의 고드름은 매년 녹았다가 얼기를 반복하겠지만.
가쿠노다테(角館)에서 산록소(山鹿莊)로 돌아가는 길에 미즈사와(水澤) 온천에 들린다. Milky Emerald 빛깔의 노천탕에는 하얀 천사의 드레스처럼 폭설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그 흩날림이 자유를 부르고 소리없음이 적막을 더한다. 세상은 한결 맑아질거다. 검은 것을 덮고, 지우고, 녹일테니까. 싸만코 아이스크림이 알싸하게 입안에 녹는다.
(6) 아키타(秋田)를 떠나며
떠나는 사람, 맞이하는 사람으로 공항은 늘 붐빈다. 아키타(秋田)는 돌아가는 사람(歸人)들이 대부분이다. 잠시 머물다 돌아가는 것이다. 돌아가 안기고 기댈 수 있는 품이 있다는 것이 우리를 살맛나게 한다. 그래서 아무리 일상이 바쁘더라도 다시 길을 떠날 것이다. 바이킹 10주년 기념으로 부부동반 북유럽을 다시 가자는 발의가 신선하다.
2010. 1. 24.(일)
아키타(秋田)에서 돌아와
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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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 비행기에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와 함께
"하늘에는 별이 있어 아름답고, 땅에는 꽃이 있어 아름답고,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어 아름답다." 괴테의 말이다.
프란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게츠비'(The Great Gatsby by Francis Scott Fitzgeraid)의 표지글에도 언급되어 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위대한 개츠비>를 3번은 읽어야 자신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개츠비'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 자주 등장한다.
별, 꽃, 사랑이 있어 아름다운 세상을 체감하다가 일상으로 복귀하는 비행기 속에서, 문득 George Owell의 <1984>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떠올린다. 제목의 차이는 '9'와 'Q"이다. 일본어로 숫자 9는 알파벳의 Q와 발음이 같다. George Owell이 오래 전에 출간한 <1984>와 같은 제목을 연상시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는 무엇을 어떻게, 달리 담고 있을까?
(1) <1984> by George Owell
나약한 개인이 자신의 사소한 방황조차도 이미 감시하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직감하는 순간, 전체주의 국가에서 행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순간이다. 심지어 열정적인 사랑조차도 ........
(2) <1Q84> by 무라카미 하루키
자신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세계에서도 어쨌든 되돌리거나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없다는 사실에 직면하는 순간, 근원적인 모순을 부술 수 없는 닫혀진 세계를 체감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
그래도, 그래도 ....... 가끔은 부딪쳐보기라도 해야지. 설사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해도. <1984>의 윈스턴이 했던 것처럼 억압과 전체주의에 미세한 파동이라도 일으키려면 ....... 이 시스템에, 이 사회에 미묘한 반향을 해보는 것일 뿐이라도 ......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서 .......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I, II에서 미처 읽어내지 못한 내면을, 이어질 <1Q84> III에서는 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어느새 인천공항이다. 토요일 오후의 서울도심은 여전히 붐빈다. 주초에는 윤도(輪圖)*를 살펴 맑은 정신으로 일터로 복귀하리라.
* 윤도(輪圖) - 조상들의 세계관, 심오한 지혜가 담긴 삶의 나침반이라고나할까?
전북 고창군 성내면 산림리 낙산마을 중요무형문화재 110호 김종대 옹과 그 아들 김희수가 윤도(輪圖)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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