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를 호위무사 삼아 용연폭포의 전설을 담아
- 천년고도 경주에서 <왕의 길>을 걷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신라시대 왕이 수레 타고 행차하던 길을 함께 걸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죠. 제주 올레의 성공 이후 한강 이남 대부분의 지자체가 길·길·길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왕의 길'은 처음. 귀가 솔깃하더군요.
단서는 '삼국유사'였습니다. 아버지 문무왕을 감포 앞바다에 장사지낸 신라 31대 신문왕(?~692)이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얻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셨죠? 죽은 아버지 문무왕과 김유신의 은혜로 얻은 대나무.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었더니 가뭄에는 비를 주고 앉은뱅이를 벌떡 일어서게 하며 적병까지도 소리 하나로 물리쳤다죠. 만병통치·무소불위의 보물을 얻고 돌아오는 길, 삼국유사는 신문왕이 "기(지)림사 서쪽 시냇가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먹었다(到祗林寺西溪邊 留駕晝饍)"고 했습니다.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을 쓴 경주 문화 길잡이 이재호씨가 이를 바탕으로 신문왕이 걸었던 길을 추론한 것이죠. 지금 경주의 추령고개에서 용연폭포를 거쳐 기림사, 감은사지, 문무왕릉의 대왕암에 이르는 약 15㎞의 구간이었습니다.
제 맘대로 굽고 휜 소나무 군락 사이로 경애왕릉이 반긴다.
사진가 배병우는 이곳의 소나무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았지만,
새봄을 맞은 경애왕(景哀王, 재위기간 924~927)은 소나무를 호위무사 삼아 젊음을 보듬는다.
이 중에서 기림사~용연폭포에 이르는 약 30분간의 산책 코스를 추천합니다. 용연폭포는 신문왕의 트레킹 코스와 관련, 또 하나의 전설이 있는 곳. 신문왕이 대왕암에서 돌아오는 길, 용연까지 마중나온 태자(32대 효소왕)는 신문왕의 옥대 비늘 하나를 떼어 물속에 담갔다죠. 그 자리에서 용이 힘차게 솟구쳐 올랐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에메랄드 빛 연못이 사천왕 호위하듯 양옆으로 도열한 바위 사이로 까마득하더군요. 함몰과 돌출이 동시에 자리한 신묘한 지형이었습니다.
기림사 뒤편은 시간이 멈춰 있는 곳이었습니다.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세워 불국사를 말사(末寺)로 거느리던 큰 절이라거나 보물 833호로 지정된 대적광전 등의 웅장한 수식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바로 이 기림사 뒤편 산책로의 호젓함과 고즈넉함이었습니다. 제가 찾아갔던 4월의 첫 주말, 매화는 이미 난분분(亂紛紛)했고, 부러진 가지에서 특유의 향기를 강력하게 피워올리던 생강나무는 노란 꽃잎을 하늘 캔버스에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이 길에서 여기쯤 이르면 저절로 걸음이 늦춰진다'(소용돌이)는 시인 조은의 시구처럼 절정을 맞은 봄꽃들이 기림사를 찾은 상춘객들을 봄의 소용돌이 안으로 유혹하고 있었죠.
효소왕의 생몰연도를 한참 뒤로 적고 있는 삼국사기의 기록처럼, 역사적 엄밀성을 으뜸가치로 삼는 분들에게는 '왕의 길'의 적실성 여부가 애매할 것입니다. 하지만 절정을 맞은 봄꽃과 함께 서라벌 왕의 뒤를 따라 걸어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4월의 경주를 추천합니다. 신라의 왕은 모두 56명. 그렇다면 신문왕의 동해 나들이뿐이겠습니까. 경주의 어느 길을 걷더라도 56명의 왕은 그 어딘가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을 테니까요. 때마침 이번 주말이 절정이라는 경주의 벚꽃이 당신을 유혹합니다. 왕의 길을 따라 걷는 트레킹, 경주입니다.
입력 - 2010.04.07 16:04 / 수정 : 2010.04.08 07:12
글 - 어수웅 기자 jan10@chosun.com 사진 - 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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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 완연한 아침에
새벽에 양재천에서 10Km를 6분 페이스로 한 시간동안 달렸습니다. 양재천에도 봄이 한창이었습니다.
아침 신문에 천년고도 경주, '왕의 길'을 트래킹하는 어수웅 기자의 글이 사람의 마음을 끕니다.
경주 벚꽃이 생각납니다. 보문호 주변의 왕벚꽃 터널을 아내와 달리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이 봄이 가기 전에 남쪽나라를 다시 다녀 와야겠습니다. 굳이 '왕의 길'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길을 유혹하는 기자의 꾐에 빠지는 것도 더러는 행복이겠지요.
신라국이 아니면 가락국 낙남의 길에도 '왕의 길'이 있으니까요.
2010. 4. 8. 아침에 月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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