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자리/* 여백(餘白)

김명국의 설중귀려도雪中歸驢圖

月波 2013. 6. 29. 18:08

 

 

[취중명작醉中名作설중귀려도雪中歸驢圖

 

     - 신필神筆 김명국

 

 

 

설중귀려도雪中歸驢圖

 모시 위에 수묵 101.7x55cm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떠나는 자와 남는 자

먼 길 떠나면서 뒤를 돌아보는 선비의 시선과

사립문 뒤에 숨어서 떠나는 이를 지켜보는 한 사람의 안타까운 시선 속에

이별의 아쉬움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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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자와 남는 자

이별離別이라는 단어만큼 숱한 감정에 휩싸이게 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이 단어만큼 수많은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된 단어가 또 있을까? 이별, 사전적 의미로 하자면 허무하리만치 뜻이 간단하다. '나뉘어 벌어짐'. 그러나 이것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의미의 무거움을 실감한다. 그래서 너나없이 우리는 이별이란 단어 앞에 무너지곤 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가슴 저리게 경험하는 이별. 그중에 누구의 아픔이 더 클까?

 

누구는 말한다. 이별이 슬픈 이유는 익숙한 것과의 괴리 때문이라고. 그런 관점으로 보면 누구의 아픔이 더 크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떠나는 자와 남는자 모두 어떤 존재가 사라진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질 때까지 아픔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짧건 길건, 그것은 고통의 시간이다. 그 시간을 이겨내는 동안 아픔의 감정을 견뎌야 하는데, 예술가들은 이것을 밑거름으로 위대한 에술 작품을 탄생시킨다.

 

곧 무너져내릴 것 같은 설산을 뒤로하고 먼 길을 떠나는 선비. 무엇이 안타까운지 고개를 돌려 떠나온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사립문 뒤에 숨어 있는 한 사람이 있다. 안타까움이다. 분명 이별의 아쉬움이다. 이처럼 시선 하나로 나귀 타고 떠나는 선비의 마음을 표현한 김명국의 <설중귀려도>. 인물보다 훨씬 크게 그려진, 곧 무너져내릴 것 같은 설산은 어쩌면 떠나는 자와 남는 자 모두가 견뎌야 하는 슬픔의 크기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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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담蓮潭 김명국金明國

1600년 태생으로 조선 인조시대 화원(畵員) 이다.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천여天汝, 호는 연담 또는 취옹醉翁 이다. 도화서 화원으로 교수(종6품)까지 지냈으며, 조선통신사 수행 화원으로 인조14년(1636) 과 21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을 다녀왔다.

 

조선의 화가 하면 우선 3원(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3재(공재 윤두서,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그리고 3광三狂을 꼽는다.

3광三狂세 명의 미치광이 화가란 뜻으로 최북, 장승업 그리고 김명국을 이르는 말이다.

김명국이 미치광이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때문이다.

 

스스로를 '취옹醉翁'이라 부른 김명국은 실제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아예 붓을 들지 않았다고 전해지는데 술이 적당히 취한 상태에서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면 마치 꽃이 허공에 날리듯이, 바다에서 용이 춤추는 듯한 멋진 필치들이 나왔다고 한다. 조선 후기 문장가인 정내교의 완암집浣巖集에 따르면 김명국은 성격이 호방하고 해학에 능했으며, 술을 몹시 좋아하여 취해야만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남태응의 증언에 의하면 김명국은 술을 마시지 않고는 그림을 그리지 못했지만 술에 취하면 또 취해서 그릴 수 없어, 다만 '욕취미취지간慾醉未醉之間', 즉 취하고는 싶으나 아직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만 명작이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에서 <설중귀려도> 역시 취중에 그린 그림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별의 아쉬움을 절묘하게 표현한 '설중귀려도'는 정말 취중에 그려진 것일까?

 

 

(#) 취옹(醉翁)의 취중진필(醉中眞筆)

 

김명국의 ‘설중귀려도’는 거친 듯 명쾌한 묘사, 호방한 필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에 취하고, 그림에 취하며 살았던 그의 삶을 보여주는 ‘설중귀려도’ 속 숨겨진 이야기가 재미있다.

 

화폭 속 화가의 힘찬 붓놀림은 대자연의 장엄함을 실감케 한다.

그런데 그 대담한 붓질 속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 바로 취중(醉中)에 그려진 작품이라는 것.

 

조선 후기의 문장가였던 정내교(鄭來僑)는 김명국에 대해 “술을 좋아하여 몹시 취해야만 그림을 그린다”고 기록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주광(酒狂)이라고 불렀으며, 심지어 그의 말년에는 스스로 ‘취옹(醉翁)’이라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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