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자 시인의 동유럽 언플러그드
01 오스트리아 빈
: 샹들리에 켜진 거리 이 도시의 겨울은 따뜻하다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2/02/02/20120202004542.html
02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와 짤츠캄머굿
: 소금의 성, 짤츠부르크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2/02/16/20120216003943.html
03 헝가리 부다페스트(1)
: 헝가리 무곡의 선율처럼 방울방울 춤추는 다뉴브강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2/02/28/20120228003474.html
04 헝가리 부다페스트(2)
: 헝가리, 혁명과 성자의 도시 부다페스트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2/03/15/20120315021887.html
05 체코 체스키크롬프트
: 시곗바늘이 멈춰선 중세풍의 낭만 도시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2/03/29/20120329021972.html
06 체코 브루노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2/04/12/20120412022492.html
07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플레트비체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2/04/26/20120426022120.html
08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트로기르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2/05/10/20120510022249.html
09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 아드리아해의 진주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2/05/24/20120524022286.html
: 책상 위의 소라껍데기 속에서 들려오는 아드리아해의 파도소리(???)
10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2/06/07/20120607022749.html
........................................................................................................................................................................................
01 오스트리아 빈
샹들리에 켜진 거리 이 도시의 겨울은 따뜻하다
필자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슬로바키아에 체류하면서 인근 동유럽 국가들을 여행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한다. 첫번째 이야기는 오스트리아 빈 편이다. 겨울 여행지로 가장 아름다운 도시 빈에 가면 추워서 오히려 따뜻한 겨울의 비밀을 만날 수 있다.
빛으로 단장한 빈 시청사.
이벤트가 많은 이곳은 늘 밤늦게까지 사람들로 북적거리며 축제를 즐기고 있다.
1. 눈빛에 눈이 시린, 겨울 빈에 가다
하늘이 흐릿하더니 밤새 눈이 쏟아졌다. 치울 겨를도 없이 눈은 내리고 또 쌓여서 순식간에 사람들의 발목을 덮었다. 동유럽은 겨울이 우기여서, 한국의 여름에 장마가 지듯 겨우내 눈이 내린다. 세상을 폭 덮어씌운 흰 담요 같은, 마법 같은 빛 앞에 그저 망연하게 감감하게 만든다. 눈빛에 눈이 시린, 빈의 겨울 아침.
나는 곧장 작은 아이젠이 박힌 털부츠를 꺼내 신고 모자와 장갑으로 중무장하고 길을 나섰다. 유럽에서 겨울에 여행하기에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묻는다면 나는 단연 빈을 꼽을 것이다. 고아한 귀족 부인 같은 품격과 우아함을 갖춘 이 도시는 물론 추위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겨울이면 화려하고 낭만적인 빛으로 온통 단장을 하고, 사람들을 더욱 매혹시키는 축제의 도시가 된다.
2. 호프부르크―시시를 만나다
호프부르크 궁전의 헬덴 광장에 서서 나는 잠시 빈의 카랑카랑한 겨울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압도적인 위엄의 신궁전 앞에는 청동의 기마상이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갈 기세였다.
호프부르크는 합스부르크 왕국 650년의 영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궁전이다. 중세 유럽의 가장 막강한 왕조 중 하나였던 합스부르크 가의 정궁으로 2000개가 넘는 방 중에서 일부분만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황제의 아파트먼트와 승마학교를 비롯해 국립도서관, 빈 소년 합창단의 성가를 들을 수 있는 왕궁 예배당과 민족학 박물관, 고대 악기 박물관, 알베르티나 미술관 등 다 보려고 하면 며칠이 걸릴 정도다.
나는 미하엘 문 안쪽, 시시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황제의 아파트먼트에 들어섰다. 호프부르크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는 이곳은 옛 합스부르크 왕가의 부를 증명이라도 하듯 금, 은, 보석으로 세공한 식기와 장식품들이 수십 개의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영화 속에서나 봤음 직한 도자기와 황금 접시들이 층층이 끝없이 나오는, 이 비현실적인 공간을 둘러보고 나면 연결된 왕실의 아파트먼트를 볼 수 있다. 아직도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사랑하는, 마지막 왕후 엘리자베스(시시 공주)가 이곳에서 지냈는데 기념관에는 그녀의 삶의 궤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과 드레스, 그림, 편지와 묵주 등이 전시되고 있다.
일찍 딸을 잃고, 후에 외아들마저 그 연인과 함께 자살한 후 실의에 빠진 그녀는 늘 검은 드레스만 입고 지냈다고 한다. 총명하고 아름다웠으며 외교에도 능했던 그녀지만 사랑을 잃은 삶은 퇴색하고 말았다. 남편마저 그녀를 배신하자 결국 그녀는 해외를 유랑하다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손에 암살당하고 만다. 그녀의 생을 덮쳤던 불운처럼 검은 드레스를 입은 채 말이다. 아파트먼트는 시시의 사진이 들어간 기념품들을 파는 상점에서 끝이 났다.
아름다워서 슬프고, 화려해서 처참하고, 높아서 더없이 고독했던 그녀의 삶은 시대가 지나갔어도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나 제 그림자를 끌며 걷는다. 고통 없는 삶이란 없겠지만 그걸 이겨낼 사랑이 없는 삶은 얼마나 가혹한가. 누군가에겐 감옥처럼 좁다고 느껴졌을 그 큰 궁전을 나오니 벌써 한낮이 이울고 있었다. 광장 앞, 무명 첼리스트의 낮은 선율이 처연하게 발길을 붙잡는 듯했다.
3. 빈의 심장, 빈의 영혼―슈테판 성당과 오페라 하우스
미하엘 문을 나와서는 길을 물을 필요도 없이 그저 사람들을 따라가기만 해도 오스트리아 최고의 고딕성당이라는 슈테판 성당으로 향하게 된다. 성당에 들어가기 위해 벌써 사람들이 모여서 있고 그 앞에서 빨간 연미복에 모차르트 가발을 쓴 이가 오페라 공연의 티켓을 팔고 있었다.
“돈 지오반니!” “피가로! 피가로!”
슈테판 성당의 장엄한 미사 시간
얼굴에 연신 웃음을 띠고 소리치는 모습이 영화에서 본 모차르트의 모습 같다. 성당은 너무 높아 한 번에 사진을 찍을 수가 없는데 그래도 아쉬워 카메라 셔터를 몇 번이나 눌러 보았다. 137m, 까마득한 첨탑 꼭대기로 겨울의 묵직한 햇살이 비치고 있다. 지상에서 저 꼭대기까지 달려가려면 도대체 얼마나 걸릴지 가늠해 본다.
빈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슈테판 성당. 모차르트가 결혼식을 하고 또 장례식을 치렀다는 성당 안에 들어가니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이 음악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마침 미사가 진행 중이어서 나는 장엄하고 경건한 풍경 속에 잠시 머물렀다. 영혼도 흔적을 남긴다면 이 성당은 얼마나 깊고 커다란 궁륭穹窿이 될까.
12세기에 세워진 이 성당 지하에는 역대 황제들의 장기와 흑사병으로 사망한 2000여명의 유골이 전시된 카타콤베가 있고, 남탑과 북탑으로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북탑 대신 좁은 나선형 계단을 한참 올라 남탑으로 향했다. 꼭대기의 창 너머로 25만개의 채색기와로 장식되었다는 성당 지붕과 빈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디나 사는 건 같다고 생각하지만, 이곳에서 바라본 빈은 신에게 더 축복받은 듯한 생각이 들었다. 삶의 남루가 빠진 그림 같은 모습.
눈은 그치고 나는 다시 옷깃을 여미고 나와 오페라 하우스로 향했다. 오페라 하우스는 음악의 도시 빈의 영혼이라고 하지 않는가. 슈테판 광장에서 게른트너 거리 끝까지 걷는 내내 머릿속에선 돈 지오반니의 아리아가 맴돌았다. 불행하게도, 이 오페라 하우스를 설계한 건축가는 건물이 지어질 당시의 혹평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고 한다. 지금은 유럽 3대 오페라극장으로 손꼽히는 빈의 보물을 짓고도 혹평을 받았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가 불행이 비껴가도록 조금 더 기다리지 못한 것도 안타깝기만 하다.
4. 동화 속 크리스마스 마켓
오후 5시가 되기도 전에 벌써 거리는 어둑어둑해지고 붉은 구름이 건물들 사이로 걸려 있다. 시청앞 광장은 빨간 하트, 별, 선물 장식 등이 주렁주렁 매달린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들로 마치 동화 속 산타마을 같다. 수십 개의 부스 안에는 작고 고급스러운 크리스마스 장식품들과 뜨거운 차, 맥주, 빵, 소시지들을 팔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근사한 야외 스케이트장이 무료로 열리고 있다. 아빠 손을 잡고 스케이트를 타는 꼬마들과 엉덩방아를 찧는 귀여운 연인들을 보고 있으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어디서 이 행복한 사람들은 모여 들었는지, 이 마법 같은 저녁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나는 잠시 어리둥절해서 서 있었다. 그리고 거의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분으로, 뜨거운 포도주와 소시지를 사 먹고 크리스마스 장식품 몇 개를 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광장 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나는 온전히 떠들썩하고 흐뭇한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살면서 혹 쓸쓸한 크리스마스가 오면 이 저녁이 아프도록 그리워질 것 같았다.
이미자 시인
.........................................
■ 이미자 시인은…
1973년생으로 동국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6년 ‘현대시’로 문단에 데뷔했고, 시집으로 ‘검은 뿔’(2007)이 있다.
시청사 광장
● 11월12일부터 12월24일까지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크리스마스 소품들과 간단한 먹을거리 등을 팔고 그 옆에는 야외 스케이트장이 무료로 열린다.
● 1월1일 오전 11시에 전 세계 70여개국에 생중계되는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가 열리는 시간에 맞추어 시청앞 광장에서 감상할 수 있다.
왕궁 예배당
● 7, 8월을 제외한 매주 일요일 아침 미사에 빈소년합창단의 공연이 있다.
9시15분부터 시작하니 아침 일찍 서둘러야 한다. 입석은 무료지만 줄이 길다.
슈테판 성당 미사 시간
● 평일과 토요일은 오전 10시30분과 오후 3시. 일요일은 오후 3시.
6월에서 9월까지는 토요일 오후 7시 미사만 있다.
................................................................................................................................................................................................
02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소금의 성 잘츠부르크
모차르트·카라얀의 고향…‘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
알프스의 빙하가 모여 이룬 76개의 호수
하늘이 풍덩 빠져버린 듯한 물빛 일렁
전날 밤늦게 도착한 나는 신시가지의 작은 호텔에 방을 잡았었다. 빈에서 차로 3시간 거리. ‘소금의 성’이란 뜻의 잘츠부르크는 알프스 산맥의 북쪽 기슭, 독일 국경 가까이에 있는 잘자흐 강가에 자리하고 있다. 인근 잘츠카머구트에 기원전 2000년 전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소금광산 마을이 있는데, 거기 세월에 갇힌, 육지에 갇힌 바다 소금이 이 도시의 살림을 살렸으니 그런 이름이 붙은 모양이다.
미라벨 정원과 산 위의 요새, 모차르트가 태어나고, 카라얀이 태어나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가 된 곳. 그 잘츠부르크가 말간 얼굴로 내 앞에 있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의 미라벨 정원을 향해 걸었다.
그리스 신화 속의 영웅들이 둘러선 정원에는 기하학적 문양으로 꽃들을 배치한 화단과 분수가 있고 그 옆에 미라벨 궁전이 서 있다. 400년 전쯤, 잘츠부르크의 대주교 볼프 디트리히는 살로메 알트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성직자는 결혼할 수 없다는 규율을 깨고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 15명의 자녀를 두었고 그들에게 이 정원과 궁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톨릭 교단의 혹독한 비난과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체포되어 호엔 잘츠부르크 성에 감금된 채 생을 마치게 되었다.
살로메도 성에서 쫓겨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다고 한다. 대주교였고, 한 여자의 남편이었고, 아이들의 아버지였던 디트리히. 그가 느꼈을 번민을 나는 짐작조차하기 어렵다. 자신이 주인이던 성에 죄수가 되어 갇힌 채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는 세속적 욕망과 사랑에 눈멀었던 자신을 책망했을까, 혹 신의 이름을 불렀을까.
정원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니콘과 페가수스 동상이 있고, 술래잡기를 하기에 딱 좋을 작은 미로 공원도 있다. 누군가에겐 운명이었을, 타인들에겐 그저 불경이 되었을 사랑 이야기가 서린 미라벨 정원의 벤치에 앉아 나는 자욱한 꽃향기를 맡았다.
천 년의 믿음 대성당과 ‘철의 요새’ 성채
미라벨 정원을 나와 다리를 건너 구시가지의 골목으로 들어서니 곧 게트라이데 거리가 나왔다. 예쁘고 재치 있는 철제 간판들이 집집마다 달려 있는 이 골목은 카페와 기념품점, 옷가게가 늘어서 있고,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고,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먼 도시들에서 날아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괜히 흐뭇해진 나는 모차르트 초콜릿을 사 먹으며 레지덴츠 광장의 분수에 기대어 사람들과 피아커(관광 마차)와 거리의 악사들을 구경했다.
구시가지에는 천 년도 넘는 이 도시와 역사를 함께하는 여러 유적들이 아직도 의연하게 서 있다. 그중 잘츠부르크 대성당은 744년에 건립되었다가 후에 로마네스크 식으로 재건한 것으로, 독일까지 가톨릭을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역사적인 성당이라고 한다. 1200년의 역사, 그리고 6000개의 파이프로 만든 유럽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끝까지 세지도 못할 거면서 어느새 하나, 둘, 하고 은빛 파이프를 손으로 짚어 보게 된다. 모차르트가 오르간을 연주했을 때는 천사들도 잠시 귀 기울여 듣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흰 대리석 돔을 통과한 오래된 햇살과 서늘한 어둠속에서 나는 잠시 쉴 수 있었다.
성당을 나와 언덕 쪽으로 오르니 해발 120미터(?)의 호엔 잘츠부르크 성에 순식간에 데려다 주는 푸니쿨라(케이블카) 승선장이 나온다. ‘철의 요새’라 불리는 이 성도 1077년부터 짓기 시작해 거의 600년이 걸려 지었는데, 한 번도 외적에 점령당한 적이 없다고 한다.
천 년의 세월을 버틴 높은 성채와 이끼 낀 담장, 먹물이 갈앉은 듯 검게 변한 나무문을 나는 믿기지 않는 심정으로 만져 보았다. 꽤나 긴 줄을 선 끝에 내부의 무기 박물관과 고문실, 주교의 방 등을 둘러볼 수 있었고, 옥상에 올라 잘츠부르크 시내를 한눈에 둘러 볼 수 있었다.
어느새 낮달이 비죽이 나와 청동빛 돔 지붕을 인 옛 건물들과 순하게 흐르는 잘자흐 강을, 여행자들의 긴 그림자를 내다보고 있었다. 나는 난간에 기대어 그 풍경을 마음에 깊이 새겨두었다.
샤프베르크 산꼭대기,
증기 기차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을 지나고 있다.
어디를 가도 천상의 풍경 절로 탄성
말끔히 갠 다음날은 잘츠부르크에서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잘츠카머구트를 찾았다. 알프스의 빙하가 모여 이룬 76개의 호수와 험준한 산들로 이루어진 이 지역은 어디를 가거나 천상의 그림 같기만 하다. 산 아래 은빛 햇살을 튕겨내는 호수와 요트들, 물가의 낮은 집들, 젖소들이 졸린 듯 앉아 있는 푸른 풀밭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나는 수심이 백 미터가 넘는다는 볼프강 호수를 유람선을 타고 먼저 둘러보았다. 배에서 내린 뒤에도 하늘이 풍덩 빠져버린 듯한 물빛과 일렁이는 산그늘, 백조들을 한동안 넋 놓고 바라보며 앉았다가 샤프베르크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증기 기차를 타기로 했다. 기차는 한 시간에 한 번 운행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사람들로 몹시 붐볐다.
두 량짜리 새빨간 증기 기차는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산길을 하얀 연기를 뿜으며 달려간다. 덜컹거리는 차창으로 에메랄드빛 호수가 넘쳐 흐르더니 산과 호수, 하늘이 마침내 같은 빛깔로 어우러진다. 태엽이 풀리듯 마음이 풀려서 함께 기차를 탄 사람들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연신 탄성을 질러댔다.
“당케 쇤!” 종착역에서 기관장이 인사하며 문을 열어주자 얼음을 품은 듯 알싸한 공기가 먼저 맞아 주었다. 맞은 편 산꼭대기에는 말로만 듣던 알프스의 만년설! 절벽 아래로 세상이 까마득하다. 나는 날렵하게 날아가는 머리 위의 매를 바라보다가, 정상의 휴게소에서 에스프레소(해발 1780미터의 산꼭대기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다니!)를 시키고 나무 탁자 하나를 차지했다.
그때, 같이 기차를 타고 온 동양 여자 한 명이 혹시 한국 사람이냐고 내게 물어 보는 것이다. 맞다고 하니 어느 거리에서 부딪쳤을 것만 같은, 낯익은 그 얼굴이 개었다 흐려졌다 한다.
“반가워요. 나는 몽골 사람이에요. 남편은 독일인이고요.”
고향이 같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녀가 몽골 사람이라니! 깜짝 놀란 내게 그녀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덧붙였다.
“오빠가 서울에 살고 있어요. 거기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래서 반가워서….”
그 눈빛에는 바다가 갈라놓고, 시간이 갈라놓은 피붙이에 대한 짙은 그리움이 있었다. 그리움의 징후 같은 것, 쓸쓸함의 빛깔 같은 것들은 그렇게 숨기려고 해도 배어나오게 마련일까. 나는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누군가 앉았다 떠난 자리에 남아 있던 따스한 온기. 어쩌면 삶이란 것이 그렇게 자신의 온기를, 흔적을 타인에게 전하고 가는 짧은 여정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온기를 찾기 위해, 혹은 잊기 위해 떠나는 것이 여행일지도 모르고.
멀리 눈 쌓인 알프스의 꼭대기에서 순도 백 퍼센트의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바람에 온몸을 맡긴 채 산 아래 작은 마을을, 그리운 것들의 아련한 형체를 오래 바라보았다.
◆ 가볼만한 곳
■ 잘츠부르크 음악축제 : www.salzburgerfestspiele.at
- 해마다 7, 8월에 열리는 명성높은 음악 축제로 빈필과 베를린필 등 세계적 음악 단체가 참가하고 세계 각국의 저명인사가 방문한다.
- 오페라, 연극,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가 날마다 펼쳐지기 때문에 여름이면 이 축제를 즐기러 오는 인파로 도시는 들썩거린다.
■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 : www.panoramatours.com
-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이드가 동행하는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를 통해 잘츠부르크 곳곳과 잘츠카머구트까지 편하게 둘러볼 수도 있다. 인터넷 예약이나 호텔 등 여러 곳에서 예약이 가능하다. 미라벨 궁전 앞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다.
■ 페스툼구스 야외 레스토랑 :
- 호엔잘츠부르크 성의 푸니쿨라 승선장 앞의 전망이 뛰어나 로맨틱한 곳이다. 놓치기 쉬운 곳이지만 연인들을 위해 강력 추천.
■ 할슈타트 소금 광산 투어 : www.badischl.at
- 지하 700미터까지 내려가는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광산. 등산 열차, 슬라이드, 갱도 열차까지 타고 둘러보는 흥미로운 투어이다.
- 아름다운 할슈타테 호수와 함께 둘러보면 좋은 코스. 그러나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는 투어도 없고 마을이 거의 문을 닫는다.
...............................................................................................................................................................................................
'편안한 자리 > * 여행(旅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유럽 언플러그드 - 헝가리 부다페스트(2) (0) | 2013.08.06 |
---|---|
동유럽 언플러그드 - 헝가리 부다페스트(1) (0) | 2013.08.06 |
베토벤의 삶과 그의 음악 (0) | 2013.07.18 |
모짜르트의 삶과 그의 음악 (0) | 2013.07.18 |
스위스의 요들과 알펜호른 (0) | 2013.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