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무곡의 선율처럼 방울방울 춤추는 다뉴브강
1. 영혼을 적시는 물결, 다뉴브
오래전 내가 학교에서 처음 한글을 배우고, 막 받아쓰기 시험을 보곤 하던 어느 날, 마루에 엎드려 옆집 애와 틀린 문제를 다시 써가는 숙제를 하고 있었다. ‘겨울은 춥습니다’가 선생님이 불러주신 문장이었는데 나는 ‘거울’이라고 써서 틀리고 말았다. 내 공책을 본 친구가 “너는 겨울도 쓸 줄 몰라?” 하면서 놀려댔고, 얼굴이 빨개진 나는 내가 살던 ‘옥산면’에서는 원래 거울이란 말이 맞다고, 얼음이 얼면 거울처럼 반짝반짝하지 않냐고, 그러니 어느 동네에선 겨울을 거울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우겨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내가 ‘겨울’이란 말을 발음할 때마다 어느 이국의, 마치 거울처럼 투명한 강물이 일렁이는 순간이 늘 함께 떠올랐다. 시간이 흘러 옅어지기도 했지만 그 실낱같은 강박이 나는 늘 이상하게 여겨졌다. 말(言)의 원형, 말 이전의 말이 삶을 끌고 간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도 그 ‘겨울’과 ‘거울’이란 단어의 어긋난 쓰임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몇 해 전, 아주 잠깐 부다페스트를 지나던 나는 나의 아련한 의식 속에서 반짝이던 그 유년의 ‘거울’과 마침내 조우할 수 있었다. 마침 다뉴브 강에 살얼음이 낄 만큼 추운 날이었고 잿빛 구름이 자욱한 날이었다.
하얗게 빛나는 어부의 요새
동화 속에서 나온 듯한 고깔 모양 탑은 헝가리 건국의 시조 일곱 마자르 족을 상징한다.
그 날의 다뉴브는, 강을 건너는 수상버스와 조금은 퇴폐적인 느낌의 낡은 선상 카페와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란 시를 절로 읊조리게 하는 자욱한 혁명과 피의 역사를 지닌 건물들을 강안(江岸)에 두르고 선, 내 무의식이 마치 동판화처럼 찍혀 나온 모습이었다. 그 강변에서 울컥 울고 싶다고 느꼈던 건, 마치 흩어진 직소퍼즐처럼, 삶이 낱낱개의 질문들, 파문들로 내 앞에 던져져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다. 나는 그 강변에서 영혼의 바닥을 뒤흔드는, 압도적인 어떤 눈빛과 마주한 듯했다.
그리고 다시, 나는 부다페스트를 찾았다. 잊지 못한 다뉴브 강가의 풍경을, 해독하지 못한 애수를 찾아갔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부다와 페스트를 가로지르는 다뉴브 강은 독일의 검은 숲에서 시작되어 유럽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흑해로 흘러간다. 그 길이만 2860㎞가 넘는 유럽에서 두 번째 긴 강으로 10개가 넘는 나라를 지나가지만, 다뉴브 강은 부다페스트에 와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해진다. 저녁이면 오렌지 주스가 쏟아진 듯한 노을에 물들고 밤이면 달빛을 받아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의 선율처럼 방울방울 춤춘다. 그 음표 사이의 묵음에 가슴이 멎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강변에 다시 서게 될 것이다. 세체니 다리 아래 연인들의 입맞춤을 보고, 혁명의 피비린내가 걷힌 광장에서 서성이고, 헝가리안 집시의 애달픈 눈빛과 한번은 마주쳐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겔게르트 언덕 위에서 바라본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전경
2. 용서의 언덕, 겔게르트
대낮에는 문을 닫는 허름한 술집이 있다. 그 위로 난 산길로 꼬불꼬불 한참을 올라 겔게르트 언덕에 처음 올랐을 때, 잿빛 치타델라가 유령선처럼 서 있고 대포와 박격포 같은 군용 무기들이 전시된 차가운 벽을 돌아 자유의 여신상까지 가는 동안 나는 불안했다. 내가 가진 이 도시의 낭만적 환상이 깨져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언덕의 기슭에 서서 초록빛 마르기트 섬과 다뉴브가 가로지르는 이 우아하고 문득 고요한 풍경을 처음 온전히 보게 되었을 때는 누가 비질이라도 한 듯 가슴이 싸하기까지 했다.
오르막길 주차장은 관광버스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절반은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쓰이는 치타델라 앞에는 커피를 파는 빨간 이층버스가 서 있고, 수공예품들을 파는 노점상들이, 또 전망대 앞에는 짝을 맞춘 야바위꾼들이 여기저기 판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그 소란한 틈으로 여행자들은 일괄적으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초록 난간에 기대어 거대한 풍경 속으로 스며든다.
나는 작은 매표소에서 ‘포린트’를 내고 치타델라에 입장했다. 사방이 견고한 벽돌들로 누구의 침입도 허용치 않겠다는 단호함이 느껴지는, 치타델라는 돌의 요새였다. 이곳은 원래 합스부르크 제국이 헝가리를 지배할 때, 가장 높은 언덕에서 시민들을 감시하고자 지은 곳이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쳐들어왔을 때는 독일군의 방어기지로 사용되던 곳이다. 지상은 메마른 모래로 덮인 허허벌판이고 긴 쇠막대가 덩그러니 솟아 외계와 통신하려는 듯 서 있다. 요새 한쪽으로 작은 건물과 쇠문이 있었고, 검표원이 혼자 지키고 있었다.
겔게르트 언덕 위
전쟁의 상흔을 달래기 위한 차가운 동상 아래 연인들의 모습이 아련하다.
거의 무방비 상태로 그 지하 벙커에 내려간 나는 시멘트벽을 타고 흐르는 냉기와 전쟁의 충격적인 사진들, 밀랍인형들, 끝없이 이어지는 싸늘한 방안에 울리는 발자국 소리에 놀라서 온몸의 뼈들이 덜그럭거렸다. 지상에 올라오니 식은땀이 등에 맺혀 있었고, 여전히 사진 속 어린 고아가 울고 있을 것만 같은 서러운 생각이 지워지질 않았다. 2차대전 때 베를린 다음으로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졌다던 이 도시의 상흔을 들여다보고 나니, 나 역시 포화에 그을린 듯한 심정이었다. 검표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이 언덕 위 죽은 소련군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위령비에는 지금은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한다.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는 않는다.”
용서라는 말은 잴 수 없는 무게를 가진 말이다. 천근 혹은 만근. 어떤 이는 평생 그 말의 무게에 눌려 숨을 못 쉬는 이도 있으니. 피를 피로 씻지 않고, 용서라는 말을 돌에 새길 수 있는 마자르족에게 새삼 마음이 기운다. 위령비 아래에는 젊은 연인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쉬고 있었고 평화를 모르는 비둘기들이 몰려 다녔다. 나는 내게 남은 ‘용서들’을 생각하며 풍경에 어깨를 기대었다.
성 이스트반의 청동 기마상과 어부의 요새
3. 아름다운 자존심, 부다 언덕
부다와 페스트를 처음 연결한, 어쩐지 이름마저 낭만적으로 들리는 세체니 다리. 강바람이 불어오는 세체니 다리에서 보니 강가의 나무들이 하나의 잠언을 들은 것처럼 함께 일렁이고 있다. 다리 끝에서 나는 푸니쿨라를 타고 헝가리 건국의 아버지 아르파트를 낳았다는 전설의 새 툴루가 기다리는, 역대 왕들의 궁전에 올랐다. 오래된 마차 같은 푸니쿨라는 생긴 지 110년이나 된 것이란다. 나는 이제 백 년쯤의 역사는 눈 하나 깜짝 않고 탈 수 있다. 그러자 크고 우아한 왕궁, 정갈한 안마당과 청동의 새 툴루가 금세 마술이라도 부린 듯 뚝딱 나타나 있다.
부다 성은 13세기에 처음 터를 잡은 이후, 부침이 심한 역사와 불운 속에서 몇 번이나 완파되었다가 새로 재건된 것이다. 폐허 위에 거듭거듭 성을 쌓으면서 이 고집 센 민족은 부다 성을 민족의 자존심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옛 유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국립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뜰에 검은 튤립이 피어있다는 것이 내게는 신비하게, 거의 상징적으로 느껴졌다. 파멸과 죽음, 암흑의 색, 그러나 세상 모든 빛의 파장을 끌어당겨야만 만들 수 있는 색이 검은색이다. 소멸과 죽음 없는 탄생이 없듯, 폐허 위에 새롭게 솟아난 이 도시야말로 한 떨기 검은 튤립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일 것 같았다. 나는 화단에 떨어진 검은 꽃잎 한 장을 주워들고 마차시 교회 쪽으로 향했다.
부다 성을 나서자마자 만나는 마차시 교회는 이슬람 사원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여러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교회였다. 그리고 하얀 어부의 요새와 청동의 기마상, 언덕 아래 다뉴브의 반짝이는 강물. 이 풍경들이 청둥오리의 아름다운 날개깃에 섞인 색채들처럼 한 치의 오차 없이 직조될 수 있었기에 다뉴브 강변의 신비한 풍경이 완성된 걸 테지. 새하얀 성벽과 회랑도 단아하면서도 더할 수 없이 견고하다.
나는 요새의 돌벤치에 앉아 쉬면서 기우는 해와 광장의 커다란 매를 가진 남자를 구경했다. 그는 성 이스트반의 기마상 앞에서 관광객들에게 매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주고 돈을 버는 모양이었다. 거친 천으로 만든 중세 외투를 입고 매를 데리고 뛰어다니는 모습에 꼬마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웃는다. 매는 간신히 깡총거리고, 뒤뚱거리며 아이들의 팔로 옮겨갔다.
웃음이 번지는 광장에서, 노을빛에 붉게 물드는 마차시 교회를 쳐다보면서 나는 설렘 속에 앉아 있었다. 이제 곧 달이 지배하는 이 도시의 밤이 올 것이다. 강변을 걸을 것이고 물소리에 귀가 어두워질 것이다. 그리고 다뉴브 위에 넘실대는 달빛과 별빛, 강안의 불빛만으로도, 아둔한 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새삼 깨달을 것이다.
이미자 시인
...............................................................................................................................................................................................
'편안한 자리 > * 여행(旅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유럽언플러그드 - 체코 체스키크룸로프 (0) | 2013.08.06 |
---|---|
동유럽 언플러그드 - 헝가리 부다페스트(2) (0) | 2013.08.06 |
동유럽 언플러그드 - 오스트리아 빈/ 짤츠부르크/ 짤츠캄머굿 (0) | 2013.08.05 |
베토벤의 삶과 그의 음악 (0) | 2013.07.18 |
모짜르트의 삶과 그의 음악 (0) | 2013.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