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는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여행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여행의 핵심은 노르웨이다. 그것도 피요르드 탐험이다. 송네, 게이랑에르 .... 12년만에 거기로 다시 간다. 그때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를 거쳐 귀국하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일행들과 약속을 했었지. (*1) 10년 후에 노르웨이 여행을 다시 하자고, (*2) 그때는 반드시 아내와 함께 오자고, (*3) 그 일행이 모두 참여하자고 .... 10년하고도 2년이나 더 지나서, 그 약속을 따라 다시 북유럽으로 간다, 아내와 함께. 러시아 일정까지 추가해서 ... 2014년 5월 20일(화)에서 5월31일(토)까지 11박 12일의 여정이다.
그때 약속했던 일행이 모두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새로운 이웃 8명이 합류해 그 일정을 시작하는 기대가 크다. 그 여정의 핵심에 노르웨이가 있고, 그 엣센스는 당연히 송네와 게이랑에르 피요르드다. 다시 타게 될 플롬의 산악열차도 기대가 된다. 아름다운 어항 베르겐에도 다시 들를 것이다. 나는 제주산 고등어보다 노르웨이산 고등어의 식감이 더 좋다. 그것은 베르겐의 추억과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다만 이번에는 12년 전과 달리, 릴레 함메르 스키 점프대에 다시 서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을 뿐.
일정 : 2014년 5월 20일(화)-5월 31일(토) 11박 12일
여정 : 러시아(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오슬로, 피요르드 지역, 베르겐), 덴마크
동행 : 5부부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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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칸디나비아
스칸디나비아 (Scandinavia)는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문화·역사적 지역을 일컫는다. 많은 경우 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의 세 왕국을 말하며, 경우에 따라 핀란드나 아이슬란드를 포함하기도 한다. 이들 지역의 속령인 그린란드, 올란드 제도, 페로 제도를 스칸디나비아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언급된 지역 전체를 말할 경우 노르딕 국가라고도 한다. - 위키백과
언어학이나 문화 연구에서는 고대 노르드어가 사용되었던 현재의 북게르만어군 언어 사용권을 말한다. 이 정의에서는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 및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 일부 지역에 해당한다.
문화적, 역사적 관점에서 스칸디나비아에 오랜 기간 스웨덴의 일부였던 핀란드를 포함하기도 한다. (페노스칸디아 참조). 핀란드가 스칸디나비아의 다른 나라들과 문화적으로 가깝기는 하지만, 핀란드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다른 스칸디나비아 제어와는 달리 우랄어족의 핀우그리아어파에 속한다.
1830년대의 범노르만 운동과 1830년대에서 1850년대까지의 정치적인 범스칸디나비아주의 이후, 스칸디나비아에 핀란드와 아이슬란드를 포함하는 것은 의견이 갈라진다. 문맥에 따라서는 이들 나라도 스칸디나비아에 포함되긴 하지만, 노르딕 국가라는 단어가 표현의 모호함 없이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페로 제도와 그린란드), 핀란드(올란드 제도), 아이슬란드 전체를 가리킨다.
붉은색 : 엄격한 의미에서의 스칸디나비아
주황색 : 확장된 영역
노랑색 : 노르딕 국가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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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노르웨이] 길이 204km 송네 피오르, 빙하의 웅장함을 쫓아
입력 2014-05-19
한국경제
“저기 보이는 저 돌무더기가 바이킹들의 무덤이에요. 우리 조상에게 피오르 저 편은 신과 죽은 자들에게만 허락된 땅이었기에 이곳에 왕과 귀족들의 무덤을 만들었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감싸는 점핑 슈트에 몸을 밀어넣고 그 위에 주황색 구명조끼를 걸친다. 두툼한 털모자에 장갑까지 갖춘 뒤에야 10인승 보트에 오를 수 있다. 피오르 사파리가 시작됐다. 길이 204㎞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송네 피오르. 그 지류인 네뢰위 피오르부터 시작해 수백만년 전 빙하가 처음으로 움직임을 시작한 피오르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노르웨이의 자연을 즐기는 법
피오르는 북유럽 전체를 덮고 있던 빙하가 내륙 깊숙한 곳부터 바다와 맞닿은 해안까지 쓸고 내려간 발자취다. 빙하의 흔적을 따라 수백m 높이의 U자형 협곡이 이어졌고 그 안을 바닷물이 채웠다. 피오르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울’이다. 산 정상에 남아 세상을 굽어보는 수백만년 전의 만년설부터 산을 빼곡히 채운 짙푸른 침엽수까지 지상의 모든 것들이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검푸른 피오르의 수면 위에 그대로 비친다. 노르웨이에 처음 발을 딛는 여행객들이 피오르를 접하는 손쉬운 길은 피오르관광청이 운영하는 여행상품 ‘넛셀(Nutshell)’이다. 특히 기차와 버스, 배를 번갈아 오르며 오슬로에서 뮈르달~플롬~구드방엔~보스~베르겐까지 여행할 수 있는 ‘노르웨이 인 어 넛셀(Norway in a Nutshell)’이 가장 대표적인 코스다. 1340크로네(약 23만원)면 노르웨이에서 가장 긴 송네 피오르까지 둘러볼 수 있다.
영화 ‘겨울 왕국’의 모델 베르겐
대부분의 피오르 여행객들이 여정의 출발점으로 삼는 항구 도시 베르겐은 중세 유럽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동화 속 마을이다. 12~13세기 노르웨이 수도였던 베르겐은 14~16세기 200여년 동안 한자동맹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 무역의 중심지였다. 피오르와 맞닿아 있는 옛 부두 브뤼겐에는 독일 상인들이 머물던 목조 건물 60여채가 남아 있다. 1702년의 대화재로 인해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고 다시 세워진 것들인데 중세 유럽의 건축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브뤼겐의 건물 1층에는 대부분 카페와 기념품 상점이 들어섰고 2, 3층은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쓰인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가자 자그마한 작업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그곳에서 만난 한 예술가는 “나무에 대구 냄새가 배어 있어 지금도 작업실에서 흐릿한 비린내가 난다”며 “겨울에도 불을 땔 수가 없어서 매우 춥지만 그래도 임대료는 다른 곳의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소개했다.
1년 내내 축제로 가득한 도시
베르겐은 365일 중 275일이 비가 내리는 차가운 겨울 도시다. 베르겐 여성들이 “매일같이 비가 내리는 통에 제대로 멋을 부릴 수 없다”고 투덜거리는 이유다. 하지만 5월이 시작되면 베르겐은 화창한 날씨와 선선한 기후를 자랑하는 축제 도시로 탈바꿈한다. 베르겐에 도착한 다음날도 새벽부터 울려퍼지는 베르겐 마라톤 대회의 안내 방송과 음악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베르겐을 대표하는 축제는 100년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베르겐 국제 페스티벌’이다. 올해 축제는 오는 21일부터 6월4일까지 개최된다. 문화 축제와 함께 22~31일에는 북유럽 최대 규모의 재즈음악 축제인 ‘베르겐 나이트재즈 페스티벌’도 열려 감미로운 재즈의 선율에 온 도시가 젖어든다.
여행팁
여름철 노르웨이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다. 여름철에는 백야현상으로 밤 11시가 돼야 어스름이 내리고 새벽 3시만 돼도 뿌옇게 해가 떠오른다. 북구의 따가운 햇살을 피하려면 선글라스는 필수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이 아닌 노르웨이에선 유로가 아니라 자국 화폐 ‘크로네’를 사용한다. 인천공항 환전소에는 크로네가 많지 않아 인터넷 등을 통해 미리 환전해 두는 것이 좋다. 1크로네는 약 177원.
물가는 매우 비싸다. 생수 500mL 한 병이 슈퍼마켓에서 4000원 정도, 길거리 노천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이 1만원 정도다.시간을 두고 오슬로와 베르겐을 여행하려면 오슬로 패스와 베르겐 패스를 사는 것이 좋다. 패스가 있으면 시내 박물관 대부분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고 지하철, 전차, 버스, 보트 등 대중교통 수단을 정해진 기간 동안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
베르겐=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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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동맹 [Hanseatic League]
: 독일 북부의 도시들과 외국에 있는 독일의 상업 집단이 상호 교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창설한 조직.
독일어 'Hanse'는 '무리'나 '친구'라는 뜻의 고트 어에서 유래한 중세 독일어로서, '길드'나 '조합'을 의미한다.
1280년대에 이미 라인 지방의 다양한 상인 집단들은 그들의 공통된 이익을 지키기 위해 협력했고, 발트 해 무역을 지배한 뤼베크 및 그 밖의 독일 북부 도시들과 동맹을 맺었다. 동맹의 목적은 해적 및 산적을 진압하고, 등대를 세워 항해의 안전을 촉진하며, 수로 안내인 등을 훈련시키고, 무역 기지와 독점권을 확립함으로써 교역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한자 동맹은 특별 회의를 소집하여 군대를 모집하기로 결정했는데, 이 군대가 그 후 덴마크 군을 결정적으로 무찔러 한자 동맹은 잠시 덴마크를 지배하게 되었다. 14세기에 한자 동맹은 대부분 독일 도시인 100여 개의 도시를 회원으로 거느렸다. 한자 동맹에는 정관도 없었고, 육군이나 해군의 상비군도 없었으며, 정기 집회(의회)를 제외하고는 관리 기구도 없었다. 한자 동맹은 신대륙 발견 시대에 서서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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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도시
2. 도시별 개요
러시아 모스크바 [Moskva] (영) Moscow - 러시아 수도, 한국과 시차 5시간
세계 최대 도시 가운데 하나이자 국제적으로 중요한 도시이다. 1147년의 연대기에 처음 언급된 이래 러시아 역사의 주요무대로서 자리잡아왔으며, 또한 600년 이상 러시아 정교회의 영적 구심이 되어왔다. 오늘날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정치뿐만 아니라 인구, 공업 생산성, 문화, 과학, 교육 등의 면에서도 중심적인 도시이다.
1991년 8월의 쿠데타에 의해 소련 공산당이 무너진 뒤에 소련의 공화국들이 이룬 독립국가연합에서도 많은 행정기능의 중추역할을 계속 맡고 있으며 러시아 연방 수도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 서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동쪽으로 640km, 폴란드 국경에서 960km 떨어져 있다.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모스크바 환상도로가 대략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이 도로 너머의 지역은 대부분이 산림-공원 지대, 즉 녹지대로 지정되어 도시개발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면적 1,000㎢, 인구 10,382,754(2002).
인구10,415,400명 (2005) 면적1,081.0㎢ 환율1러시아블 = 29.51원 (05.19 17:23)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Saint Petersburg - 러시아 연방 제2의 도시, 한국과 시차 5시간
러시아 연방의 북서부 끝에 있으며,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약 640㎞, 그리고 북극권에서 남쪽으로 불과 7° 정도 떨어져 있다. 이 도시는 지난 2세기 동안 제정 러시아의 수도로서 러시아 역사의 중심무대를 이루었으며, 지금도 공업, 문화 도시 및 항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1703년 표트르 대제가 네바 강의 하구에 세운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서 비롯된 도시로 처음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했다가 1914년 페트로그라드로 개칭되었고, 1924년 레닌이 죽자 그의 이름을 기념하여 레닌그라드로 명명되었다.
그후 1991년 11월 7일 사회주의 개혁의 와중에서 시민들의 요구에 따라 본래 이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되찾았다. 이 도시는 1917년 2월혁명과 10월혁명의 현장으로,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독일군의 극심한 포위공격을 끝까지 버텨낸 곳으로 유명하며, 건축적인 면에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조화로운 도시의 하나로 명성이 높다.
인구 : 대도시권 4,669,400(2002).
핀란드 헬싱키 [Helsinki] - 핀란드의 수도이며 우덴만 주의 주도
유명한 해항이자 핀란드의 산업 중심지이다. 핀란드 남쪽 끝에 있는 이곳은 훌륭한 천연 항구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발트 해가 만입되어 이루어진 핀란드 만에 접한다. 이 도시는 유럽 대륙 각국의 수도 중 가장 북쪽에 있다.
헬싱키는 1550년 스웨덴의 구스타프 바사 왕이 세웠는데, 그 이유는 핀란드 만 반대 편에 있는 레발(지금의 에스토니아 공화국에 있는 탈린)과 경쟁하기 위한 것이었다. 헬싱키는 원래 반타 만에 접해 있었으나 1640년 좀더 아래쪽인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1770년 전염병이 휩쓸고 지나갔고, 1713년 화재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이 도시의 재개발사업은 그후 18세기에 러시아의 공격으로 인해 중단되었고, 1808년 다시 화재가 발생함으로써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1809년 핀란드는 러시아로 넘어갔으며, 1812년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1세가 핀란드 대공국의 수도를 투르크(아보)에서 헬싱키로 옮겼다. 1748년 헬싱키 항구 외곽에 있는 조그만한 도서지역에 요새를 건설함으로써 이곳은 한층 더 안전하게 되었다.
반면 헬싱키 중심부는 유명한 건물을 많이 설계한 독일 태생의 건축가 C. L. 엥겔의 영향을 받아 완전히 재건되었으며, 정부 청사, 헬싱키대학교 본관, 1852년에 완공되어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루터교 성당 등이 있다. 이들 모두 넓은 세나테 광장 주위에 있다. 가까이에 제정 러시아 시대의 유명한 유물 가운데 하나인 우스펜스키 정교회 대성당의 쿠폴라들이 높이 솟아 있다. 1917년 12월 핀란드는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했으며, 뒤이어 핀란드군과 이 도시를 점령한 러시아군 사이에 잠시 유혈 내전이 일어났다. 그러나 곧 상황은 진정되었으며, 1919년 헬싱키 의회는 핀란드의 초대 대통령을 선출했다. 이후 수십 년 만에 헬싱키는 무역·산업·문화의 주요중심지로 발전했는데, 이러한 발전과정이 중단되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뿐이었다.
헬싱키의 경제활동과 발전은 우수한 항만시설, 내륙 여러 지역과 잘 연결된 철도·도로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결과 핀란드 총수입물량의 1/2 이상이 헬싱키 항구를 거쳐간다. 그러나 헬싱키를 거쳐가는 핀란드 수출 물량은 극히 소량에 불과한데, 그 이유는 핀란드 해안을 따라 대규모 수출 항구들이 많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헬싱키의 주요산업은 식품·금속 가공, 인쇄, 섬유, 의류 등이다. 베르트실레 조선소와 유럽에서 규모가 가장 큰 아라비아 도자기류 공장은 국제적으로 유명하다. 헬싱키에는 여러 극장과 오페라단 및 발레단, 그리고 몇몇 교향악단이 있다. 매년 개최되는 헬싱키 축제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향악단, 예술가들, 그밖에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 등이 선보인다.
박물관과 미술관 이외에 유명한 문화 중심지로는 티모 펜틸레가 지은 현대 시립극장과 알바르 알토가 지은 연주회장이 있다. 이 도시에 있는 다른 유명한 건축물로는 1952년 올림픽을 위해 지은 헬싱키 종합운동장, 엘리엘 사리넨이 설계한 철도역(1914)이 있다. 헬싱키대학교는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학교이다. 인구:시 559,046(2005 추계), 대도시권 1,075,000(2003 추계).
스웨덴 [Sweden] - 공식명칭 스웨덴왕국(Kingdom of Sweden)
인구 : 9,082,000 면적 : 450,295 수도 : 스톡홀름 정체·의회형태 : 입헌군주제, 단원제 독립년월일 : 11세기경 화폐단위 : 스웨덴크로나(Swedish krona/SKr)
수도는 스톡홀름이다. 스웨덴은 남북 길이 약 1,600km, 동서길이 약 500km이며, 노르웨이(서쪽과 북서쪽), 핀란드(북동쪽), 보트니아 만(동쪽), 발트 해(남동쪽), 북해(남서쪽)와 경계를 이룬다. 남쪽 끝은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덴마크와 마주하고 있다. 면적 450,295㎢, 인구 9,290,000(2009 추계).
인종은 거의 단일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소수의 핀란드인과 라프족(사미족)이 있고, 주민의 10%는 이민자들이나 그 후손들이다. 공용어는 스웨덴어이다. 종교는 기독교가 우세하다. 개신교가 대다수이며, 로마 가톨릭교, 이슬람교도 믿고 있다. 화폐단위는 스웨덴크로나(Sweden Krona/SKr)이다.
노르웨이 [Norway] - 공식명칭 : 노르웨이왕국(Kingdom of Norway)
인구 : 4,659,000 면적 : 385,199 수도 : 오슬로 정체·의회형태 : 입헌군주제, 단원제 독립년월일 : 1905. 10. 29 화폐단위 : 노르웨이크로네(Norwegian krone/NKr)
수도는 오슬로이다. 16만 개 이상의 호수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이 산악국가는 북위 58~72°(북북동에서 남남서로 약 1,753km)와 동경 4~32°(동남동에서 서북서로 약 430km 폭) 사이에 걸쳐 있다. 북쪽으로 바렌츠 해, 서쪽으로 노르웨이 해 및 북해, 남쪽으로 스카게라크 해협, 동쪽으로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연방 등과 접하고 있다. 면적 323,758㎢. 인구 4,569,000(2003 추계).
덴마크 [Denmark] (단마르크) - 공식명칭 ; 덴마크왕국(Kingdom of Denmark)
공식명칭 : 덴마크왕국(Kingdom of Denmark) 인구 : 5,435,000 면적 : 43,098 수도 : 코펜하겐 정체·의회형태 : 입헌군주제, 단원제 독립년월일 : 800경 화폐단위 : 덴마크크로네(Danish Krone/Dkr, 복수형 Danish Kroner)
수도는 코펜하겐이다. 동쪽의 보른홀름 섬을 포함하면 동서로 275km, 남북으로 335km 뻗어 있다. 이 나라는 스칸디나비아와 중앙유럽을 지리적·문화적·상업적으로 연결시키는 다리 역할을 한다. 북해와 발틱 해 사이에 위치한 덴마크는 유틀란트 반도와 반도 동쪽에 있는 군도(群島)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큰 2개의 섬, 셸란 섬(질랜드 섬)과 퓐 섬(핀 섬)이 덴마크 전체 육지 면적의 1/4을 차지한다.
육지 쪽으로는 남쪽에 있는 독일과 유일하게 접하는데, 그 접경 거리는 65km에 불과하다. 483개의 섬을 포함해 7,400km에 이르는 해안선은 서쪽으로 북해, 북쪽으로 스카게라크 해협, 동쪽으로 발트 해와 카테가트 해협을 따라 뻗어 있다. 덴마크 영토에는 덴마크 왕국의 자치령들인 그린란드와 페로 제도가 포함된다. 기후는 대개 온습하다. 그린란드와 페로제도를 제외한 면적 43,098㎢, 인구 5,523,000(2009 추계).
국민의 대다수는 덴마크인이고, 공용어는 덴마크어이다. 국교는 복음주의 루터교로, 거의 모든 국민이 믿고 있지만, 이스람교도도 있다. 화폐단위는 덴마크크로네(Danish Krone/Dkr)이다. 덴마크의 서비스업과 제조업에 기반을 둔 혼합 경제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광범위한 사회복지제도를 가진 나라 중 하나이며, 생활 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이기도 하다. 덴마크는 입헌군주제이다. 국가원수는 덴마크 국왕이고 정부수반은 총리이다.
BC 12000년 무렵 덴마크에 인류가 살고 있었다. 바이킹 시대에 데인족은 그들의 영토를 확장했고, 덴마크 왕국은 11세기까지 현재의 스웨덴, 잉글랜드, 노르웨이의 영역을 지배했다. 스칸디나비아는 1397~1523년에 덴마크의 지배 아래 통합되었고, 1523년에 스웨덴이 독립했다. 덴마크인들은 17세기에 스웨덴과 연이은 소모전을 벌이다가, 1660년 코펜하겐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을 통해 현재의 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 간의 국경선이 정해졌다. 덴마크는 19세기와 20세기에 노르웨이를 비롯한 여러 지역들을 얻었다가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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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천혜의 자연을 보유한 나라. 빙하기에 만들어진 피요르드. 한자동맹 당시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소도시 베르겐. 빼어난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독특한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나라. 스칸디나비아 3국(*) 연합(1397-1523)의 일원으로서 지구 최북단에 위치한 나라. 25만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 총 면적은 남한의 4배, 인구는 460만명에 불과한 나라. 개발도상국에 많은 원조를 하는 대표적인 복지국가.
(*) 여기서는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을 의미함
전국토의 80%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땅으로 10km당 1명의 인구 분포를 이루고 있다 한다. 국토의 길이는 2천 km, 피요르드 해안선의 총 거리는 2만km로 지구의 반 바퀴에 해당한다니 상상이 가질 않는다. 2006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64,000달러로 세계 최 상위권에 해당한다. 노르웨이가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은 1969년 북해 유전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부터다. 바로 “브렌트유” !
(*) 브렌트유 - 베르겐 바로 아래에 위치한 노르웨이의 유전에서 산출되는 품질 좋은 원유로, 하루 생산량은 300만 배럴, 석유가 국민소득에 기여하는 것이 2만 달러 이상이 된다. 물가는 국민소득에 걸맞게 매우 비싸다. 담배 1갑 13,000원(면세점 4,500원), 1회용 라이터 1,700원.
오슬로 시청사 (Oslo Raadhus)
1950년에 건립된 시청사 건물! 노벨평화상이 수여되는 곳이다. 2000년도 12월 10일 오후 4시30분, 거기 콘서트홀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수상. 노벨 평화상 시상식 날짜와 시간은 같은 일시에 숨을 거둔 노벨을 기리기 위해서 정해졌다 한다. 노벨의 뜻에 따라 노벨상 수상자 선정 발표는 스웨덴의 한림원에서, 시상식은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거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노벨평화상만은 노벨의 유서에 의하여 노르웨이 퇴임 국회의원 5명으로 구성된 노벨위원회가 발표하며, 시상식 또한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사에 거행된다.
오슬로 시내 모습은 너무 고요하기만 하다. 인구 50만명이 말해 주듯이 높은 빌딩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피요르드 해안에 정박되어 있는 수많은 요트만 눈에 들어온다. 이 나라 국민의 1/3이 요트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 차량보다 요트를 더 선호하는 국민인가 보다. 이곳 젊은이들은 집이나 차보다도 최우선으로 요트구입에 혈안이라고 한다.
비겔란 조각공원(Vigeland Sculpture Garden)
연간 5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는 “프로그네르 공원” 우리에게는 “비겔란 조각공원”으로 더 알려진 곳으로 오슬로 시내에 있다. 약 10만평의 규모에 청동, 대리석, 화강암과 석고로 된 200점의 작품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생노병사의 이야기를 표현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전시된 조각 어디에도 그러한 설명과 제목은 없다.
구스타프 비겔란(Vigeland, Adolf Gustav: 1869-1943)은 근대조각의 아버지 “로뎅”에게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아 1906년부터 생을 마감하는 1943년까지 40여년을 공원에서 조각 제작에 열정을 쏟아 붓는다. “주어진 공간에 조각물을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조각을 위한 공원 계획을 추진했다”하여 혁신적인 발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중 인간의 원초적인 내면의 감정 상태가 잘 드러난 “우는 아이의 모습”은 오슬로 시의 상징물이 되었다 한다.
공원의 가장 높은 곳에 설치된 “모노리트(Monolith)”는 높이 17.3m, 무게 260톤의 거대한 화강암으로 된 조각으로 벌거벗은 121명의 남녀노소가 삶의 희노애락 속에 인간의 욕망과 투쟁, 환희와 슬픔을 역동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라 한다.
바이킹 박물관(Vikingskipshuset)
3척의 바이킹 중에서 1904년 노르웨이 남부의 오세베르라는 농촌에서 발굴 복원된 오세베르그호가 그 중 가장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9세기 초에 건조된 것으로 35명이 동시에 노를 저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배는 50년 정도 사용 후 오사여왕의 관으로 사용되었다 한다. 발굴 당시 이 배에서 출토된 각종 장식품, 부엌용품, 가재도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노르웨이 바이킹에 관한 최초기록은 서기 800년경으로, 바이킹들은 유럽 전역에 걸쳐 약탈 및 영토 확장을 통한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된다. 이러한 바이킹 활동도 1000년대에 들어 체계적인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 출현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하니 새삼 권력의 유한함을 느끼게 된다.
카를 요한스 거리(Karl johan Street)
약 1.3㎞에 이르는 거리로 오슬로 중심부를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는 최대의 번화가이다. 서쪽 끝에는 왕궁이 있으며, 거리의 중심에는 국회의사당이 있다. 여름철에는 일광욕을 즐기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젊음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노르웨이의 문호 입센과 뵈른손의 동상이 서있는 국립극장도 보인다.
연어회 특식
한국의 주요 수산물 공급원 노르웨이! 세계 최대 연어 생산국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49%를 점유하고 있다 한다. DFDS 뷔페에서 먹어 본 연어 요리는 젓갈류 같은 연어, 훈제연어, 올리브 등에 가미된 연어, 양념에 쪄서 나오는 연어 등이었는데, 오늘 한식집에서 특식으로 나오는 연어는 자연 그대로의 냉동되지 않은 상태의 연어회이다. 상추와 쌈장에 싸먹는 연어회 맛이 속된 표현으로 “죽여준다”.
돔바스로 이동
돔바스로 가는 도중 1994년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던 릴레함메르(Lillehammer)가 강 건너 보이는 곳에 잠시 머문다. 인구는 2만명, 매년 3월 이 곳에서는 “뷔리끼바이에르”스키대회가 열린다. “뷔리끼바이에르”는 흰 자작나무라는 뜻으로 그 옛날 이 곳 부족이름을 나타내며, 전쟁으로 이 곳 왕은 사망하고 신하가 어린 왕자를 업고 스키를 타며 56km를 도피한 것이 유래가 되어 도피모습 그대로 도피경로와 동일한 코스로 스키대회가 열린다 한다.
노르웨이 최대호수인 “미요자호수(Lake Mjosa)"의 장관 !
호수의 장관이 2시간가량 이어진다. 돔바스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쌍무지개”를 보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 피어있는 선명한 쌍무지개! 일행 중 누군가 말하기를 “앞으로 우리에게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좋은 일만 쌍으로 생겨날 거란다.
” 호텔 앞 상가가 제법 크다. 설마 이곳에서는 유로화가 통용되겠지 하고 체리를 샀으나 계산대에서 제동이 걸린다. 유로화는 받지 않는단다. 관광지에서만 유로를 받는다하니 내일은 유로사용이 가능할 것 같다. 노르웨이에서의 첫째 날은 그렇게 깊어만 간다.
4일차 - 7월 28일 토요일
노르웨이의 사회보장제도는 아마 지구상에서 최고인 것 같다. 1주일에 37.5시간 근무, 년 간 휴가는 5주이다. 오슬로대학에 근무하는 사무직 기준으로 월 급여 580만원, 여름 휴가비 500만원, 68세 정년을 마치면 2인기준 월 1000만원을 연금 형태 등으로 받는다 하니 노후 걱정은 없는 나라인 것 같다. 복지혜택이 넘쳐나는 반면 부정적인 면도 강한 것 같다. 결혼 보다는 ‘산무르(동거)’가 보편화 되었고 이혼율 또한 높다. 68세 이상 부부 중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유지한 부부는 2%에 불과하다.
호텔을 나선 후 산골 마을들을 지나 계속 북쪽으로 달린다. 창밖에는 키가 작고 옆으로 퍼져있는 자작나무 몇 그루만 듬성듬성 보인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위로 쭉쭉 뻗은 자작나무와는 모습이 영 다르다. 해발 1000M 기준이 수목 한계선이며 그 이상 지역에는 나무가 자라지 못하기에, 주변 나무 모양을 보고 해발 높이를 짐작할 수 있다 한다.
고지대를 통과하고 있어서 그런지, 곳곳에 아직 잔설이 남아 있으며 녹아 흐르는 물이 폭포를 형성하고 있다. 한여름에 아직까지 눈이 있다니 그저 신기할 뿐이다. 이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이 시작된다.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눈이 내리며 겨울 평균 10m-15m의 눈이 쌓인다. 4월부터 녹기 시작한 눈은 9월 눈이 내리기 전까지 계속하여 녹는다 한다. 이 덕분에 이 나라는 물이 풍부하고 수질이 양호하여 호텔 세면대 물도 먹을 정도란다.
트론하임(Tronheim)
트론하임은 노르웨이 최초 수도였으며 바이킹 시대에는 ‘니다로스’, 덴마크 지배시기에는 ‘트론엠’ 1930년부터는 ‘트론하임’으로 불리어지는 인구 16만명 제3의 항구도시이다. 997년 “올라브 튀리그바손(Olav Tryggvason)왕”에 의해 도시가 형성되었다. 1년 중 160일 이상이 눈에 덮여 있다하니 살기에는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북유럽의 중세건물 중 두 번째로 크다는 니다로스(Nidaros) 대성당이 이곳에 있다. 길이 100m 폭 50m의 규모로 노르웨이 국왕의 대관식이 거행된 곳으로 중세 종교적 권위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이 간다. 중앙광장에 있는 “올라브 튀리그바손왕”의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왕궁이라 설명해주는 곳은 대로변에 있는 상가모습과 별 차이가 없다.
크리스티안스텐 요새
오늘날 트론하임은 기술 및 교육의 중심이며 과거와 현재를 만나게 해주는 도시로서 신구의 조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이란다. 크리스티안스텐 요새는 1681년 도시를 군사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트론하임의 시내와 피요르드의 장관을 즐기기에 너무 경치가 좋다. 잔잔한 바닷가와 어울려진 그림 같은 집들, 뾰쪽한 교회의 탑들이 조화를 이루는 시가지 전경이 한눈에 들러온다. 예전에 감옥으로 사용되었다는 섬이 시야에 들어온다. 현재는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하며, 음식 가격이 너무 비싸 데이트 장소로 종종 이용되고 있다 한다.
잠깐의 시간을 이용 슈퍼에 들러 체리를 산다. 유로로 결제가 가능하다 하여 구매했으나 계산하는데 시간이 너무 소요된다. 1kg에 99크로네(한화기준 14,000원)로 매우 비싼 편이다.
“장미마을 몰데”로 이동 !
본격적인 피요르드 관광을 위해 몰데로 이동한다. 이곳 노르웨이 관광은 가이드의 설명이 필요 없이 그저 눈에 보이는 자연을 음미하고 즐기면 된다고 한다. 장시간에 걸쳐 도착한 곳은 장미마을이라 소개된 몰데! 인구18천명의 관광도시로 시내 곳곳에 장미가 심어져 있는데 장미마을이라 하기엔 너무 빈약하다.
그보다는 눈 덮인 산맥과 피요르드의 빼어난 경치가 어울려진 곳으로 유명하단다. 굽이굽이 비포장 언덕길을 버스로 10여분 올라가 몰데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바르덴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은 황홀 그 자체이다. 피요르드의 잔잔한 해안가에 자리한 시내 전경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이고, 마치 호수처럼 보이는 뒤편에는 흰 눈으로 덮혀 있는 222개의 봉우리가 끝없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산맥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다. 보면 볼수록 감탄사가 절로 튀어 나온다.
장시간 이동에 따른 피로감은 어디로 사라지고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기만 하다. 피요르드의 해안가에 위치한 호텔 또한 우리의 행복감을 배가 시켜준다. 창을 열고 있노라면 갈매기 울음소리 호화유람선의 뱃고동 소리와 함께 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홀한 풍경이 그대로 조명된다. 밤 11시가 다되어 가는데도 아직 창밖은 환하다. 면세점에서 구입한 “와인”에 트론하임에서 산 “체리”를 안주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경치를 감상하고 있노라니 마치 신선놀음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5일차 - 7월 29일 일요일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라도 북유럽을 찾는 데에는 이곳 노르웨이의 몫이 크다. 아무데서나 볼 수 없는 빙하 침식지대인 피요르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피요르드는 노르웨이, 뉴질랜드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지형이다. 오늘은 13일간의 북유럽 여행의 하일라이트 “피요르드”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이다. 수십억년 전부터 지구상에는 4번의 빙하기가 있었는데 이곳 피요르드는 마지막 4기 빙하기에 만들어졌다 한다.
“피요르드”란 지금부터 4-5만년 전에 이 지역을 덮고 있던 두께 1-2km에 이르는 빙하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으면서 거듭된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U자 또는 V자 형태의 계곡을 의미하며, 그 계곡으로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특이한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피요로드는 자연이 인간에게 준 종합선물이라 할 수 있겠다.
두꺼운 옷을 준비하라는 말에 우리 일행 모두 겨울을 만난 듯 어제의 옷차림하곤 사뭇 다르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솔스네스”에서 처음으로 페리를 탄다. 건너편 “오파네스”까지 피요로드를 건너기 위함인데 벌써부터 주변경관에 대해 흥분하기 시작한다. 페리위에서의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요란하다.
오늘 총 4번의 페리를 타고 피요르드를 건너는 날이라 하니 이제 시작에 불과 하단다. 해안선을 끼고 달리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물에 잠길 듯한 아름다운 마을들과 바위산에서 쏟아져 내리는 수많은 폭포, 바닷물 속에 비친 또 하나의 마을, 폭포 모습이 잠시라도 한 눈을 팔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트롤스티겐(Trollstigen) 로드 “ 요정의 길 ” 한참을 달린 우리 버스는 마치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착각에 빠진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절벽만 보이는 U자형 협곡에 들어 선 거란다.
여기서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는 트롤스티겐(Trollstigen)로드 “요정의 길”이 시작된다. 트롤스티겐은 트로이(도깨비)+스티겐(사다리)의 합성어로 지그재그의 험난한 도로를 따라 산을 넘을 수밖에 없는데, 길 모양이 마치 사다리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산 정상 못 미친 지점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커다란 폭포가 수백 미터 하늘에서 굉음을 내며 쏟아져 내린다. 물보라가 눈앞에 펼쳐지고 지그재그 도로는 까마득한 절벽 아래 펼쳐진다.
갑자기 산 정상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도대체 정상위에는 얼마나 많은 물이 있기에 저리도 쉼 없이 쏟아지는 걸까? 산 정상에 이르자 사방이 확 트인 커다란 분지가 나타난다. 곳곳에 커다란 호수와 미처 녹지 않은 눈이 지천에 깔려있다. 매년 10m이상이 눈이 쌓인다는 이곳 도로, 길을 따라 4-5m 크기의 막대기가 심어져 있으며 이것이 제설작업에 있어 비표 역할을 한단다.
힘든 작업 끝에 매년 5월초 이곳 도로가 개통된다고 하니 북유럽 여행이 5월부터 시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게이랑에르 피요르드
다음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링에’라는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피요르드를 건너야 한단다. 게이랑에르 피요르드가 시작되는 해안에 있는 작은 마을 게이랑에르에 도착하기까지의 길 또한 요정의 길 못지않게 험난하다. 70-80도의 경사에 지그재그로 만든 길로 독수리나 날아서 넘을 수 있다하여 “독수리길”이라 불리어진다 한다.
게이랑에르에 도착한 우리는 항구 바로 앞에 위치해있는 호텔에서 뷔페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피요르드 해안이 전면에 바라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12시30분 선박에 탑승한다. 게이랑에르에서 헬레쉴트까지 총 25km, 70분 정도 소요되는 피요르드 구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경치가 빼어나다. 1000m가 넘는 산으로 둘러싸인 게이랑에르 피요르드는 높은 산 위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절벽 폭포가 웅장함을 더해준다. 그 중 폭포 줄기 182m의 암반 절벽을 타고 일곱 줄기로 쏟아지는 “7자매폭포”는 게이랑에르 피요르드 관광의 극치이다. 7자매폭포의 맞은편에는 “총각폭포”가 큰 줄기를 이루며 떨어지고 있다. 한국어 안내방송을 통해 7자매폭포에 관한 전설을 들려준다.
옛날 이곳 해안 왼쪽에 위치한 총각이 맞은편 일곱 자매에게 차례대로 구혼을 청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하자 상심하여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마침내 폭포로 변했다 하며, 지금도 폭포 중간에는 술병모양의 무늬가 선명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가파른 절벽위에 사람이 살지 못할 것 같은 곳에 농가가 있다. 지금은 비어 있지만 그 옛날에는 농부가 양을 치며 살다가 세무공무원이 세금을 매기기 위해 기르는 양의 숫자를 실사하러 농장을 찾아올 때면 사다리를 걷어 올려 올라오게 못하게 했다고 한다.
브릭스달 빙하
헬렌쉴트에서 브릭스달을 향해 이동이 계속된다. 창가로 보이는 피요르드, 스쳐지나가는 폭포 등은 더 이상 관심사가 아닌 듯 눈을 감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일행이 늘어난다. 너무 좋은 경치를 감상한 탓인지 웬만한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2시간가량 지난 후 우리 버스는 중간 휴게소에 도착한다. 멀리서나마 빙하가 보이는 지점이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치 때문인지 다시 활력이 솟는다. 처음 접해보는 빙하 모습 사진 찍기 바쁘다.
빙하! 지구상에 10%가 남아 있으며 그 중에서 1%가 노르웨이에 있고, 그 중에서 80%가 이곳 브릭스달에 남아 있단다. 노르웨이에 있는 빙하는 곡빙하로 평균 두께가 560m이며, 1일 최대 2m씩 움직인다 한다. 계곡에 흐르는 물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과는 다른 우유 빛 물이다. 빙하에 머물러 있는 석회석이 함께 녹아 흘러내린 것이란다. 브릭스달 빙하는 해발 1,450m에 있는 요스테달 빙하(Jostedal Glacier) 국립공원(1991년 국립공원 지정)내에 있다.
15분정도 오픈카를 타고 가다 하차한 후, 도보로 25분정도 걸으면 거대한 얼음덩이가 산꼭대기에서부터 골짜기까지 누워있는 빙하를 직접 만져 볼 수 있다. 빙하 속에 들어가 사진촬영도 가능하다. 파란색으로 촬영된 사진모습이 그저 신기하다. 빙하 속에 푸른빛이 도는 것은 빙하가 햇빛 중 파란색을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겉으로는 얼음 덩어리가 산위에 걸쳐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얼음 밑에는 쉴 새 없이 녹아 흘러 강물을 만든다 한다.
세계 최장터널(24.5km)
오늘 숙소는 스탈하임호텔이다. 호텔에서 바라본 경치가 유네스코에 등록되었다하니 기대가 된다. 스탈하임으로 가기 위해서는 피얼란드 터널을 지나 송네 피요르드의 일부인 만헬러-포드네스 구간의 유람선을 타야한다. 최초 여행일정에는 송네피요르드 관광이 별도로 있었는데..... 204km의 길이로 세계에서 가장 길며, 가장 깊은 곳이 1309m나 되는 “송네 피요르드!” 구드방겐에서 플롬 구간의 유람선 관광이 유명하다는데 이곳을 보지 못해 너무 아쉽다.
배에서 내린 버스는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라르달 터널을 지난다. 라르달 터널은 24.5km로 2000년에 준공된 2차선 도로다. 규정 속도 80km 3군데 과속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한다. 조금 전 통과한 6.3km터널 통행료가 7만8천원인데 반해 이곳 통행료는 무료란다. 이는 7,000억원에 이르는 공사비를 아울라시에서 전액 지원했기 때문이란다. (57㎞구간, 2010년 완공예정인 취리히∼밀라노간 알프스 산악 지대를 관통하는 터널이 완공할 때까지 기록은 유지될 것 같다.)
6일차 - 7월 30일 월요일
스탈하임호텔에서 바라보는 산속에서의 아침 공기가 너무 좋고 상쾌하다. 전날 늦게 도착하여 보지 못 한 주변 경관 또한 너무 아름답다. 유네스코에 등록되었다는 경치를 배경으로 추억에 담느라 아침부터 부산하다. 노르웨이에서의 마지막 관광을 위해 베르겐으로 이동한다.
베르겐(Bergen)은 1070년 바이킹 왕에 의해 처음으로 도시가 건설되었고, 그 이후 약 100년간 이 나라의 수도였으며, 현재 인구 25만명의 항구도시이다. 돌산이란 뜻을 가진 "베르겐"은 같은 위도 상에 있는 알래스카에 비해 현저히 따뜻한 곳이다. 멕시코 난류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춥지 않으며 7개의 산봉우리가 베르겐시를 감싸고 있어 비가 많이 내린다 한다.
1년 365일 중 280일 이상이 비가 내리며, 96일 동안이나 연속해서 비가내린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란다. 오늘도 여지없이 비는 내린다. 이 곳 노르웨이에서 지금까지는 비 때문에 관광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나 오늘만큼은 타격이 크다. 플리엔산(Mount Floibanen)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320m 산 정상에 오른다. 최대 경사 26도인 경사면을 10분쯤 걸려 전망대에 올라보지만 안개비 때문인지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1700년대 목조건물들이 즐비한 시내는 물론 항구와 협만 등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라 한다. 여름밤 10시경의 야경이 낭만적이라는 설명만 듣고 아쉬움을 남긴 채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내려온다.
브뤼겐(Bryggen)거리 중앙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의 항구근처에 있으며 한자동맹(항구도시끼리의 상인들의 조합)의 4개 지부 중 한 곳으로 독일인 전용주거지가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50년대 두 차례 화재를 입었지만 지금은 모두 복원된 상태로 유네스코에 등록되어있는 중요한 건물이다. 그 당시 상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한자박물관이 근처에 있다.
어시장(Fish Market)
베르겐 항구 앞의 조그마한 광장에 위치한 노천시장이다. 부산 자갈치시장의 1/20의 정도로 크기 면에서는 보잘 것 없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시장이 열리며 막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 캐비어 등과 함께 야채, 과일, 꽃, 날콩 등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붐빈다. 훈제연어 등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도 팔고 있으나 곧 식사시간이라 체리와 산딸기를 샀다. 체리는 1kg당 5유로로 싼 편이다.
보스(Boss)
릴레함메르 보다 조금 큰 인구 2만6천명의 소도시로 패러글라이딩으로 유명한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교회건물 한곳을 제외하고 모든 시설이 파괴되었으며, 이곳 사람들 또한 대다수가 죽은 애환이 담긴 슬픈 도시란다. 현재의 건물들은 1950년대 이후에 세워진 건물이라서 그런지 산뜻한 인상을 준다. 이 곳 물가는 상대적으로 조금 싼 것 같다. 2008년도 소형 카렌다를 69크로네(한화11,000원)를 주고 구입했으나 다른 도시에서 동일한 것이 90크로네란다.
플롬(Flåm) 로맨틱 산악열차
해발 6m에 위치한 플롬 기차역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산악관광열차를 타고 뮈르달(Myrdal) 정상(해발 866m)에 오른 뒤, NSB 정기열차를 타고 예일로(Geilo)까지의 가는 일정이 남아 있다. 융프라우 산악열차의 경우 톱니바퀴로 되어있는 레일을 따라 오르고 내리는 반면, 이곳 열차는 철길 위를 달리는 보통 열차란다. 지그재그로 되어있는 단선 철길을 따라 기차가 오른다.
산길을 따라 달리는 특성상 어느 한 쪽은 탁 트인 구조로 되어 있어 맞은편 계곡 쪽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우리를 반긴다. 출발 후 첫 번째 역인 런덴(Lunden)을 지나면서 창밖에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협곡의 아름다운 절경과 눈앞에 펼쳐진 목초지의 그림 같은 모습, 산 정상에서 길게 흘러내리는 크고 작은 폭포, 산등성이에 쌓인 한여름의 흰 눈 이 모두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절경이다.
쿄스포젠(Kjosfossen)폭포
달리던 기차가 정차한 곳은 왼쪽 높은 산위에서 굉음을 내며 흘러내리는 웅대한 폭포 쿄스포젠(Kjosfossen)폭포가 있는 곳이다. 이곳은 해발 699m로 플롬역에서 15.6km 떨어진 지점이다. 산 정상에 있는 만년설이 녹아 레이눙가호수(Reinunga Vatnet)를 이루고 이 호수물이 넘쳐 거대한 폭포를 형성하고 있는데, 일명 훌드라 폭포라고 한단다.
이곳에서는 관광객을 위한 훌드라 요정의 전설을 재현하는 깜짝 퍼포먼스가 연출된다. 거칠게 내리치는 물줄기 바로 옆 바위 위에 빨간색 긴치마를 입은 훌드라 복장을 한 요정(아르바이트 대학생)이 홀연히 나타나 음악소리에 맞춰 춤을 추다 자기를 따라 오라는 손짓을 하며 사라진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 날 밤 신기한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훌드라 요정이 나타나 마을 남정네들을 홀린다. 이 기이한 음악소리를 들은 마을의 남자들은 요정의 뒤를 따라 산 위로 올라갔고, 훌드라 요정은 따라온 남자 모두를 양으로 변하게 하여 폭포 속으로 몰아 사라지게 한다. 그 이후 사라진 남자들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전설이 프롬스탈렌 마을에 전해져 내려온다 한다.
이곳에서 5분가량 정차한 열차는 종착역인 뮈르달을 향해 달린다. 뮈르달 역은 산 중턱에 있는 조그마한 역으로 오슬로와 베르겐까지 가는 정기노선 중간역이기도 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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