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정맥 6차 - 잠시 낙동을 다녀 오리니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07년 4월 8일(일요일)
(2) 도상거리 : 10.8 Km :
(3) 산행시간 : 8시간15분(정맥 6시간 15분-식사/휴식 1시간 35분 포함, 알바 1시간 40분)
(4) 산행코스 : 노채고개-원통산(567.3m)-운악산(935.5m)-철암재-649봉-47번 국도(봉수리 윗봉수마을)
(5) 참가대원 : 17명(김길원,남시탁,박찬우,박희용,백호선,손영자,송영기,서종환,신기옥,오상승,이상호,이성원,이창용,장춘희,조천환,최순옥,홍명기)
2. 산행후기
(1) 다시 찾는 운악산
이십 수년만에 운악산(雲岳山, 935.5m)으로 간다. 운악을 가까이 두고도 자주 찾지 못한 것은 그 산세가 미미해서가 결코 아니다. 암릉이 뿜어내는 그 웅장한 기운을 가슴에 감싸안을 마음의 그릇이 작았을 뿐이다. 옛부터 운악은 경기5악(京畿五岳)이라 불리던 산 중에서 그 수려함이 빼어나기로 유명했다. 한북정맥을 시작하면서 운악산에 오를 날만 손꼽아 기다려왔지 않은가?
노채고개에서 정맥의 마루금을 잇기를 시작한다. 원통산을 지나 운악산으로 향하는 길에도 여기저기 봄이 찾아오고 있다. 곳곳에 노랑물감들인 생강나무꽃이 피어나고 있다. 저 산아래 마을의 산수유의 미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양지바른 남사면에는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으니, 위도가 높든 고도가 높든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생강나무꽃, 어디 산수유에 비하랴?
운악산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좌우로 암릉이 이어진다. 운악의 암벽에 옹골차게 붙어보자고 60m짜리 자일을 준비하고 산길에 들었지만, 그 기분만으로도 흡족하다. 애당초 릿지를 오르고 바위에 매달리자고 나선 정맥길이 아니지 않던가? 자일을 짊어진 이창용님의 얼굴에는 비오듯 땀이 쏟아진다. 그것으로 이미 수직절벽 60m는 오른듯한 대리만족을 느낀다.
앞에서는 산악마라톤을 준비하는 세 사람(남시탁, 이상호, 최순옥)이 멈출줄 모르는 기관차처럼 달려 이미 정상을 치고 하산길에 접어들었다고 연락이 오지만, 우리는 애기바위에서 "거시기"(*) 얘기를 하면서 쉬엄쉬엄 널널산행이다. 우리는 배낭이 가벼워져야 정상에 오를 것이다. 각자 나눠 짊어진 사과가 한 박스요, 막걸리가 10통이다. 30인분이 넘는 떡과 김밥이 있다. 돼지머리고기는 또 어떡하구?
--- (*) 사실 애기바위는 남자 "거시기" 닮았다 ---
아무도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았지만, 시산제 지낼때보다 더 음식이 풍성하다. 백두대간과 한북정맥을 하는 동안 오늘 같은 날은 없었지 싶다. 아마도 한북을 중간정산하고 낙동으로 들자고 생각하는 마음이 은연중에 쫑파티하듯 먹거리 준비를 푸짐하게 준비했는지도 모르겠다.
애기바위인가, 거시기바위인가?
(2) 알바, 알바 한북이여
자일에 매달리는 대신 우회로를 걸었으니 아쉬움이 없으랴마는 운악산 서봉을 거쳐 동봉 정상에 오르니 그저 어린아이마냥 얼굴에 환한 미소가 흐른다. 해발 936m에서 맛보는 아이스 바(비비빅) 맛은 청계산 매봉의 그 맛보다 더 짜릿하다. 햇살아래 자리깔고 앉아 와인과 막걸리로 번갈아 목을 축이는데, 돼지머리고기에 서해안의 특상품 새우젓갈이 곁들여지니 그 맛 또한 일품이다.
이렇게 유례가 드문 산상파티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정맥길을 나선다. 곧바로 나타난 운악의 암릉에서 그저 아쉬운 마음에 좌우의 암릉을 굽어보며 영자송과 앵콜송까지 부르며 또 다시 시간가는 줄 몰랐는데, 이것이 또 다른 아픔의 전주곡일 줄이야 그 때는 몰랐었다. 운악산 산신령님께 먼저 술 한 잔 올리고, 절 두번 했어야 했는데 .......
일행들이 먼저 출발하고 뒤로쳐저 암봉과 암릉을 카메라에 담느라 시간을 보내다 서둘러 따라 나선다. 암벽에 철계단이나 발디디기 편하도록 쇠고리가 잘 박혀있다. 신나게 그 길을 내려간다. 일행은 이미 저 아래 아득히 내려다 보인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하다. 지도를 꺼내보니 길을 잘못든 것이 분명하다. 선두그룹에 전화를 해 길을 되돌려 가파른 바위벽을 타고올라 다시 운악산 정상으로 되돌아온다. 꼬박 1시간을 알바한 셈이다.
운악의 암봉에서 60m 자일을 쳤어야 했는데 .....
운악산 정상에서 웃통세러머니(?)를 하고 정맥길을 찾아 다시 걷는다. 남근석 전망대를 지나 전망좋은 능선길을 걷는다. 왼쪽 아래로 고찰 현등사가 눈에 들어온다. 절고개 갈림길을 지나 무명봉에 오른 후 전망좋은 암릉을 걷는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 번에는 오른쪽 아래로 채석장이 보인다. 정산과 화강석은 포천석을 알아주눈 편이라며 걷는데 .......
아뿔싸! 또 알바다. 지도상으로 채석장은 정맥길의 왼쪽인데 ...... 다시 길을 돌려 절고개에 가까운 무명봉(835봉)으로 돌아온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던 한북정맥이 운악산을 지나며 그 길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급히 돌리며 고도를 낮추고 있는데,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산줄기를 따라 계속 남진했던 것이다. 아마도 운악산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백두대간 희양산의 알바,알바가 그러했듯이 .......
이번 초파일에는 그 희양산의 기억을 반추하면서 다시 희양산으로 들것이다. 그 아래 봉암사와 은티마을을 정산과 함께 찾을 것이다. 오리형도 동참하시는거죠?
아직은 알바의 맛을 모르고 있었죠?
(3) 저 꽃같은 놈이라 욕해다오
제대로 길을 찾아 철암재로 내려선다. 여러 차례 알바로 지친 대원들이 철암재에서 바로 하산했으면하는 눈치를 보였지만, 당초 계획했던 코스대로 봉수마을까지 가기로 한다. 또 다른 알바가 염려되는 곳이 있어 내가 선두로 나선다. 철암재 지난 무명봉에서 아기봉 방향으로의 알바를 피하면 더 이상 알바 염려는 없다. 649봉 조망처에서 마지막 휴식을 하며 배낭의 먹거리를 비운다.
운악산 산행중에 음식을 급히 먹고 체한 어느 여자 산행객(*)의 얘기가 생각난다. 운악산 아래 남근석(男根石)을 쳐다보고 신기해하다가(?), 철암재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구토가 나오자 그녀 왈,
"운악산 남근석은 진짜 대단하다. 보기만 했는데, 벌써 입덧을 시작하네." - 미소 님
재치있는 그녀의 말에 미소를 머금으며 하산길로 접어든다. 그래서 그녀는 닉도 미소일까?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도 아낙네는 입덧을 한다고?
봉수마을로 내려서는 산길에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여기저기 봄꽃을 만난다. 손톱보다 작은 노란 양지꽃도 앙증맞게 피어있다. 꽃이 그리운 세상이다. 어제 해질녘 아내와의 나들이를 생각한다. 만개한 벚꽃을 보고 싶어하는 그녀와 주변의 벚꽃을 살피러 나갔다. 진해나 경주의 벚꽃과 달리 서울의 벚꽃은 대체로 꽃과 잎이 동시에 피어나니 그 화려함이 떨어진다. 그래도 자신의 혼을 바쳐 피었다가 일순간 지고마는 벚꽃의 본성이야 어디 다르겠는가?
봄비가 내리고 먼 산에 진달래가 만발하면,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저 꽃 같은 놈, 저 봄비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달라던 정호승 시인의 읊조림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나도 그 시인의 바램처럼 때로는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 같은 놈이 되고 싶다. 꽃이 지천이어도 꽃을 모르고, 사랑도 고통도 지천인데도 그 모든 것에 눈감고 살아가는 요즈음이니 말이다.
날 욕하더라도, 저 꽃같은 놈이라고 해다오
(4) 잠시 낙동을 다녀 오리니
한북에 접어든지 8개월째인데도 아직 포천과 가평을 벗어나지 못하고, 겨우 운악산 언저리에 이르렀다. 백두대간이후 잠시 여유를 갖는다는 것이 너무 늘어졌나 보다. 이제부터는 한북의 산세도 누그러지고, 개발의 여파로 길도 산과 마을, 민가, 군부대, 골프장을 넘나들어야 하는 구간이다. 시간도 늘어지고, 길도 재미없으니 생각이 자꾸 엉뚱한 곳으로 향한다.
여러 사람이 한북은 대충 여기서 접고, 낙동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글쎄? 한북에 살붙이고 이제 막 정들어가는데...... 운악(雲岳)이여, 어찌하랴? 그래, 그대 등에 오늘 잠시 기대었다마는, 내 먼길을 돌아 낙동을 살피고 다시 오리니, 의연히 기다려다오. 반드시 돌아와 파주 교하의 장명산과 오두산까지 그대의 맥을 이어리니 .......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부르며 태백의 고산준령을 다시 찾아 낙동에 발을 들여놓고는 영남 알프스를 거쳐 부산 다대포 몰운대에 이르기까지 낙동의 산줄기를 두루 살펴보고, 반드시 운악으로 돌아오리니 ....... 홍안만이 아니라 백발까지도, 미소만이 아니라 눈물까지도 사랑한다면, 기다림에도 까닭이 있지 않겠느냐?
이렇게 환한 웃음으로 낙동에 접어들리라
김신우 - 귀거래사
하늘아래 땅이있고 그위에 내가 있으니
어디인들 이 내몸 둘곳이야 없으리
하루 해가 저문다고 울 터이냐 그리도 내가 작더냐
별이지는 저 산너머 내 그리 쉬어가리라
바람아~ 불어라~ 이 내몸을 날려주려마
하늘아~ 구름아~ 내몸 실어 떠나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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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악산 정상(東峰)에 최근 새롭게 정상석을 세우고, 그 후면에 포천출신 백사 이항복의 시를 새겨놓았다
雲岳山深洞(운악산심동) 운악산 깊은 계곡에
懸燈寺始營(현등사시영) 현등사 처음으로 지었네
遊人不道姓(유인불도성) 노는 사람들 성(姓)을 말하지 않았는데
怪鳥自呼名(괴조자호명) 괴이한 새는 스스로 이름을 부르네
拂白天紳壯(불백천신장) 용솟음 치는 흰 기운 폭포수(天紳) 장대하고
橫靑地軸傾(횡청지축경) 푸른 산 빗긴 섬에 지축이 기운 듯
慇懃虎溪別(은근호계별) 은근히 호계(호계)에서 이별하니
西日晩山明(서일만산명) 석양속에 저문산 밝아오네
-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포천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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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07:10 서울 대치동 출발
09:00 노채고개 약수터 하차(포천군 일동면 기산리, 339번 지방도 확포장공사중)
09:10 산행시작(절개지 배수로 밧줄잡고)
09:43 원통산(567.3m)
09:49 지형도 상의 노채고개(돌탑)
11:16 암봉
11:48 갈림길(주능선 암벽구간시작, 우회로 직벽하강구간)
12:16 주능선 합류
12:25 애기바위(추모비)
12:30 갈림길(좌측 궁예성터, 우측 운주사 하산로)
12:40 운악산 서봉
12:50 운악산 동봉(935.5m) - 중식 40분
13:30 운악산 출발, 가평 현등사방향으로 하강하여 되돌아 옴(알바 1시간 5분)
14:35 운악산 재출발
14:58 남근석 전망대
15:09 절고개(좌측 현등사, 우측 대원사)
15:15 835봉, 우측 절고개 방향 내리막길 놓치고 능선따라 직진했다 돌아옴(알바 35분)
15:50 835봉 재출발
16:07 철암재
16:20 무명봉(전망대, 직진 아기봉, 우측 한북정맥)
16:27 헬기장
16:35 649봉(암봉, 조망처, 15분 휴식)
17:10 군부대 철조망
17:25 군부대 앞, 산행종료(봉수리 윗봉수 마을), 뒷풀이
17:55 윗봉수 마을 출발
19:50 서울 대치동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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