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정맥 07] 5년 만에 이어 걷는 한북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2년 3월 11일(일), 당일산행
(2) 산행구간 : 화현고개-수원산-국사봉-큰넓고개
(3) 산행거리 : 15.2Km
(4) 산행시간 : 4시간 50분(0850-1340)
(5) 산행참가 : 6명의 산친구들(성원,오리,월파,정산,오언,성호)
2. 산행후기
(1)
백두대간을 끝내고 한북정맥을 걷기 시작했었다. 운악산을 지나며 문득 바람이 불어, '잠시 낙동을 다녀오리니'하며 접어두었던 한북을 5년 만에 다시 잇는다. 한북은 서울과 가까워 언제든지 쉽게 접근하리라 생각했었다. 그 사이 낙동, 낙남, 호남금남, 호남 정맥을 걸으며 한북은 잊고 있었다. 5월부터 금북정맥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북의 남은 자투리가 마음에 걸렸다. 이것도 시절의 연緣이겠지.
화현고개에서 한북의 마루금을 잇기 시작한다. 찬바람이 스친다. 경칩驚蟄 지나 춘분春分이 목전目前인데 초목草木은 아직 봄날의 축제를 벌일 기미가 없다. 유난히 추운 겨울을 보냈지 싶다. 봄, 봄이라!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고 봄을 노래한 시인이 있었다. 그 시인이 2월이 마지막 가는 날, 일흔의 나이로 영영 세상을 떠났다. 이성부 시인이다.
30여 년 전 민주화의 봄을 애타게 열망하던 시인, 그 갈망으로 백두대간을 걸으며 구구절절 산시山詩를 쏟아내던 시인, 봄이 오는 길목에서 그를 생각하며 30분 만에 443.6봉에 올라 삼각점을 어루만진다. 겨울이 아무리 춥고 길다 해도 봄은 오기 마련이고, 시인이 묻힌 차디찬 대지大地에도 따뜻한 햇살이 빛날 것이다. 그가 남긴 시詩가 이제 민초民草의 영혼을 맑게 하리라.
군부대의 철조망을 따라 걷는 마루금은 오르내림이 별로 없어 산객의 심신을 편안하게 한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숨소리는 거칠지만 마음은 여유롭다. 앞장서서 걷는다. 매사가 마음 먹기에 달려있지 싶다. 예정된 산길이 길지 않아 마음이 여유롭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시계視界가 오히려 맑아져 산객의 마음은 절로 허허로워진다.
(2)
56번 지방도가 지나는 명덕 삼거리로 내려섰다가 수원산(水原山, 697m)을 향해 1시간쯤 오른다. 정상의 방공포 부대를 피해 전망대에서 광덕, 백운, 국망, 운악산을 잠시 되돌아본다. 벌써 5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때의 기억이 아련하다. 국망봉 정상에서 윗도리 벗고 좌우로 늘어서서 찍었던 사진, 운악산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조망을 즐기다가 하산 길에서 알바를 했던 기억들 .......
추워진 날씨에 몸을 움츠리며 느릿느릿 걷는다. '느릿느릿'이라는 말이 오늘따라 가슴 깊숙이 파고든다. 목적지를 향해 달음박질하듯 쏜살같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앞뒤와 주변을 살피면서 쉬엄쉬엄 걷는다. 빨리 서두르면 마음에 통쾌함이야 있겠지만 아쉬움을 남기는 법이고, 천천히 여유롭게 가면 통쾌함이 덜해도 사물의 경계를 놓치는 일이야 있겠는가.
걷는 길의 좌측에는 잣나무 숲이 무성하다. 조림이 잘 된 산길을 걸으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후미로 쳐져 숲과 호흡하며 걷는다. 함께 걷는 성원 형의 막내가 캄보디아로 선교를 위해 떠난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196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와 그 나라의 지금 모습이 흡사하다. 빈곤에 허덕이는 그 나라를 몇 년 전 둘러보고 1960년대 초반의 우리를 회상했었다.
당시에 우리는 인간의 1차적 욕구(특히, 먹는 일)가 충족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때 우리와 캄보디아는 GNP가 비슷했다. 우리가 몇 십 달러라도 낮았다. 그런 나라를 반석 위로 올려놓은 당시의 위정자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오늘이 있다. 그들의 공과를 함부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혁명이든, 독재이든 말이다. 조선 중, 후기에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가 명분론에 빠져 백성은 얼마나 피폐했던가!
(3)
툭 트인 바위 전망대에 서서 3월에도 싱싱 가동되고 있는 베어스타운 스키장을 바라본다. 봄은 언제쯤 오려나? 산야에도 봄이 오고 세상의 민초들에게도 봄이 오고, 그리하면 세상은 한층 따듯해지겠지. 국사봉(國師峰, 546.9m)을 향해 걷는 발걸음은 가볍다. 국사봉에서 기다리고 있던 성호 아우가 입에 넣어주는 상주 곶감의 달콤함에 산객은 한층 생기生氣가 살아난다.
육사생도 6 25 참전 기념비가 오늘 예정된 산행의 종점에 이르렀음을 알려준다. '큰넓고개'라 부르는 곳에 이르니 곧바로 지역을 운행하는 버스가 도착한다. 운이 좋다. 큰넓고개는 넓은 고개라는 뜻이니 굳이 한자어로 표현하면 광현廣峴이라고 한다. 새로 확장된 큰넓고개는 길이 넓어진 만큼 더욱 빨라진 차의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씽씽 달리는 차들이 차가운 바람을 일으킨다.
봄이라 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바람이 전한다. 꽃 피려면 아직 기다려야 하리라. 3월이 중순에 이르렀는데도 바깥 공기는 아직 겨울이다. 광릉내로 향하는 버스에서 잠시 옛 선비의 글을 생각한다. "그대에게 묻노니 어디쯤에 봄은 오던고? 꽃은 아직 일러 풀만이 돋으려고 하는데.(*)" 초목草木이 돋고 산야山野에 꽃이 피면, 때맞춰 사람들의 삶에도 온기溫氣가 넘치는 봄이 올까?
광릉내에서 이름난 맛집에 찾아갔다가 1시간 이상 기다려야한다기에 돌아섰다. 대신 허름한 막걸리집을 찾아 하산주 한 잔 했다. 그런데 웬걸, 이집의 음식 맛이 사람을 반하게 한다. 소문난 맛집보다 산객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던 그 집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에 막걸리 맛이 더욱 좋았지 싶다. 다음 산행은 역으로 걸어 그 집에 다시 들러야 하나?
(*) 問君何處尋春好(문군하처심춘호) 花未開時草欲生(화미개시초욕생) - 조선 후기의 학자 윤휴(尹鑴, 1617~1680)의 시 중에서
2012년 3월 11일 이른 저녁에
한북정맥 수원산에서 돌아와
월파月波
-----------------------------------------------------------------------------------------------------------------------------
'산따라 길따라 > * 한북정맥'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북정맥 09] 본색本色을 잃은 마루금에서 (0) | 2012.04.08 |
---|---|
[한북정맥 08] 봄기운이 내 몸 안에 감도니 (0) | 2012.03.25 |
(한북06) 잠시 낙동을 다녀 오리니 (0) | 2007.04.09 |
(한북05) 신령이시여, 굽어 살피사 ..... (0) | 2007.03.26 |
(한북04) 산에는 아직도 겨울이지만 (0) | 2007.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