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정맥 08] 봄기운이 내 몸 안에 감도니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2년 3월 25일(일), 당일산행
(2) 산행구간 : 큰넓고개-죽엽산-비득재-노고산-다름고개-축석령
(3) 산행거리 : 16.6Km
(4) 산행시간 : 6시간 30분(0825-1455), 널널하게 먹은 비득재의 점심 1시간 30분 포함
(5) 산행참가 : 9명의 산친구들(성원,오리,월파,정산,오언,은영,지용,성호,제용)
2. 산행후기
(1) 큰넓, 작은넓 고개 vs 새길 과 옛길
옛 큰넓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넓게 확장된 새 큰넓고개에 이른다. '큰넓'은 크고 넓다는 뜻이란다. 그러니 차량통행도 많고 번잡하다. 마루금 산행에서 중앙분리대가 있는 4차선 도로를 건너는 일은 난감하다. 그 마음을 알 리 없는 자동차들이 쌩쌩 달린다. 어찌하랴? 차를 피해 초고속으로 도로를 건너 잽싸게 산으로 든다. 역시 숲속의 오솔길이 좋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넓은 대로大路보다 좁은 소로小路가 좋고, 광장의 네거리보다 숲속의 오솔길이 좋다"고. 나이 탓만은 아닐 게다. 소로와 오솔길은 두 다리 편히 내디딜 수 있어 마음 편하고, 큰 길이나 네거리는 자칫 본성本性과 달리 타의他意를 살피느라 줏대 없어지기 십상이니 싫은 것이리라. 내 마음이 그 마음이다.
어느 듯 성황당이 있는 작은넓고개다. 그 이름처럼 흙냄새 풀풀 나는 좁은 옛길이다. 반듯하지 않고 구부정하게 휘어져 정감있는 길이다. 인위적인 것은 직선인데 비해 자연은 곡선이다. 우리 삶도 단조로운 직선보다 굴곡이 있더라도 곡선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다시 산으로 드니 곳곳에 호화묘지가 즐비하다. 저 영혼들의 삶은 직선이었을까, 곡선이었을까?
죽엽산 방향의 숲으로 든다. 닷새 전이 춘분春分이었는데도, 고도가 높아질수록 엊그제 내린 눈이 수북이 쌓여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메마른 잎이 아직 매달려있다. 겨울의 그림자는 길기만 하다. 금년 봄은 유난히 더디게 온다. 하지만 머지않아 광릉 수목원의 아그배나무에 하얀 꽃 흐드러지게 피는 날이 오겠지. 그때서야 봄이라하면 너무 늦지 않은가!
(2) 광릉 국립수목원 vs 그리운 푸른 빛
광릉 시험림 입산통제 팻말이 보인다. 잣나무 숲이 이어진다. 그렇지. 이 근처에 세조世祖가 묻힌 광릉光陵과 그 주변을 감싸는 수목원樹木園이 있지.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 자주 나들이 했던 곳이다. 한북정맥이 광릉 근처를 지나는구나. 이른바 계유정란癸酉靖亂으로 어린 조카 단종을 폐하고 왕이 되었던 수양대군의 정치적 공과功過는 생각하지 않으련다. 오늘은 숲만 보련다.
광릉 수목원의 전시림 숲길을 걷는 환상에 잠시 젖는다. 바깥 날씨 아직 겨울이라 해도 내 마음은 이미 봄인 게다. 곧 새소리 들리고 나뭇가지에 연초록 잎이 돋아나겠지. 족두리풀 고운 얼굴 땅속에서 내밀고 층층나무 여린 잎 연둣빛으로 돋아나면 그것이 봄이리라. 그런 기대로 저만치 수목원 언저리를 바라보며 걷는다.
광릉 수목원의 덩굴식물원 끝자락에서 보았던 100년도 넘은 광릉물푸레나무가 생각난다. 그 높이가 수십 미터나 되고 몸통도 30cm 자를 2개나 이어붙인 정도였지 싶다. 물푸레나무는 수청목水靑木이라, 그 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이 파랗게 된다고 했다. 백두대간을 걸으며 강원도 산에서 물푸레나무를 종종 보았었지.
옛날 보리타작할 때 쓰던 도리깨를 물푸레 가지로 만든다고 했다. 그러니 물푸레는 꽤 단단한 나무임이 분명하다. 나무처럼 인생도 단단한 삶이 좋다. 그런 삶을 갈망하던 푸른 시절이 있었지. 스무 살 젊은 날에 밤새워 3,000배하고 새벽안개 자욱한 해인사 백련암에서 친견親見했던 성철性徹스님의 눈빛이 그렇게 푸르렀었지. 벌써 35년 전 일이다.
물푸레나무를 태운 재로 파르스름한 물을 들인 승복僧服과 시퍼렇게 살아있던 성철스님의 눈빛이 환영幻影처럼 오버랩 된다. 스님의 안광眼光이 우주宇宙를 궤뚫고 있었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죽엽산(竹葉山, 610m)에 오른다. 그러나 푸른 대나무는 없다. 댓잎(竹葉)은 없고 묵은 낙엽만 나뒹군다. 물푸레나무, 대나무, 선승禪僧의 푸른 눈빛이 머릿속에 교차한다.
(3) 고모리 산성 vs 또 하나의 대척점
울창한 송림松林을 지나 비득재에 닿는다. 비득재를 鳩峴(비둘기 구, 고개 현)이라 쓴다니, '비득'은 '비둘기'의 음音 변형變形인가? 글쎄, 곳곳의 지명地名이 음音과 훈訓의 상호 변형과정을 거쳤으니 알쏭달쏭하다. 비득재에는 음식점, 찜질방 등 편의시설이 있다. 오늘 점심은 도시락 대신 현지식(?)이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앉아 '황태구이'에 '막걸리' 한 사발 추가요!
식사 후 30분가량 걸었을까? 노고산(老姑山, 386.5m) 정상이다. 정상부에 산성山城의 흔적이 있다. 학계에서 고모산성古毛山城이라 부른단다. 대부분 토성土城이나 일부 석축石築도 보인다. 안내판에 산성의 둘레가 내성과 외성을 합쳐 1,207m라고 적혀있다. 바위에 올라 북쪽을 바라본다. 북쪽으로 포천 일대의 평야와 구릉지丘陵地가 한눈에 조망된다.
북쪽에서 남하하는 세력의 관문關門이었지 싶다. 한성백제漢城百濟 시대의 성곽이라고 하니, 남진南進하려는 고구려와 수성守成하려는 백제간의 다툼이 치열했겠다. 백제와 고구려의 대척관계對蹠關係에서 이 산성은 전략적 요충지였음이 분명하다. 뺏고 뺏기는 전쟁의 아수라장에서 당시 민초民草들의 '행복幸福'은 어디에 있었을까?
'민초의 행복'이라, 스스로에게 묻는다. 먹고 입는 일을 걱정하던 옛날, "그때 많이 불행했니?" 별 걱정 없이 넉넉히 먹고 입을 수 있는 지금, "너 많이 행복하니?"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리라. 이곡리 방향의 유순한 숲길을 걷는다. 진달래라도 피는 날에는 봄바람에 나긋나긋 걸을만하겠다. 시골집 뒷동산에 산책 나온 기분이다. 이것이 행복이리라.
(4) 망자亡者의 쉼터 vs 자본주의 4.0
이곡리로 연결되는 새 도로의 벼랑이 앞을 막는다. 아찔하다. 허 참! 꼭 이래야 했을까? 달리 방도가 있을 텐데. 마루금을 잘라 만든 수십 미터의 수직절벽을 내려갔다가 다시 건너편 숲으로 올라간다. 봄이면 송화松花가루 향긋이 날릴 소나무 숲이다. 조금 전 아찔했던 느낌을 잊게 한다. 숲에 운동기구도 있으니 민가가 멀지 않은 모양이다.
다시 망자亡者의 쉼터를 지난다. 오늘 마루금에서 만난 무덤은 대체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무덤의 상석도 요란하다. 이 지역에 부유한 사람이 많았을까? 아니면 이 지역의 습속習俗이었을까? 지역마다 풍습이 다르지만, 근래에 조성된 무덤일수록 더욱 화려한 장식을 했지 싶다. 살아서 행복한 삶으로 충분하거늘, 죽어서 화려한 무덤이 무슨 소용일까?
빌 게이츠가 말했다. "가난하게 태어나면 당신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죽을 때 가난하게 죽으면 당신 책임이다." 그런데 누구인들 죽을 때 가난하게 죽고 싶겠는가? 빌 게이츠는 개인의 자기개발에 대해 언급했겠지만, 기본적으로 기회의 공평성이 보장되는 사회구조도 중요하다. 최선을 다한 삶인데도 가난을 극복 못하면 국가사회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할수록 교육과 정보접근의 핸디캡이 있다. 이것이 구조적으로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킨다. 이런 불균형 요인을 해소시켜야 가난한 사람도 부자의 길로 갈 수 있는 통로가 열린다. 가난하게 태어나도 핸디캡을 극복하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사회, 이것이 '자본주의 4.0'의 방향일 게다. 그저 돌덩어리에 불과한 무덤의 상석을 뒤로 하고,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걷는다.
(5) 축석령 - 꼬부랑 할머니
다름재를 지나 철조망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귀락歸樂 터널이다. 조선의 어느 선비가 이 근처에 터 잡고 살며, 귀향낙업歸鄕樂業이라 했다던가? 고향처럼 편안하고 포근한 곳이 있을까? 귀향하여 노년을 보내는 즐거움, 그보다 더한 복이 없겠지. 돌아갈 고향도 없이 사는 많은 현대인에게는 꿈같은 얘기다. 선산先山을 지키며 사시는 고향의 부모님께 산행 후에 안부를 여쭈어야겠다.
잠시 숲으로 들었다가 축석령(祝石嶺)에 내려선다. 넓게 확장된 도로에 차들이 줄지어 달린다. 이렇게 새로 난 넓은 길을 신작로新作路라고 했었지. 요즘 그 단어가 생경하게 느껴진다. 지나온 큰넓고개의 신작로에서도 길을 가로지르느라 가슴이 콩다콩 콩다콩 했었지. 일행들이 대로를 건넜는데, 나 혼자 남았다. 씽씽 달리는 자동차를 보며 문득 김형배 선생의 시에 등장하는 꼬부랑 할머니를 생각한다.
꼬부랑 할머니/ 8차선 새로 난 도로를 건너간다.// 젊은 놈 빵빵대며 쌍심지 부라리고/ 화물차 꺼먼 매연은 거친 소리 한 보자기//
허리 쉼/ 다리 쉼/ 한 번 없이/ 앞도 옆도 보지 않고/ 바삐바삐 걸음을 옮기지만/ 새로 난 도로/ 가도 가도 제자리다.//
임병헐/ 소시 적엔/ 공기놀이 막자치기 내 놀이터 였는디/ 감꽃 따다 잎에 물고 쏘댕기던 고샅(*)이었는디/ ....... (*) 마을의 좁은 골목길
꼬부랑 할머니, 앞도 옆도 안보고 흰 선 노란 선 밟으며 신작로를 건넜겠지요. "빨강불이 뭐시여. 차도車道가 다 뭐시여. 다 사람 댕기는 길이제." 하면서. 내 유년幼年의 기억을 더듬는다. 신작로에 차가 지나가면 먼지 풀풀 날리던 길, 그 길은 도회지로 가는 길이요, 희망의 길이었지. 그 생각도 잠깐, 빵빵 울리는 차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씁쓸하다. 서울로 돌아와 한 잔 했다.
산행 말미末尾에
옛 선비가 이르기를 "봄기운이 분명히 내 몸 안에 있으니, 외물外物에 기쁘지도 슬프지도 말지니라."(*)고 했다. 경칩驚蟄은 물론 춘분春分도 지났다. 산에 아직 꽃이 피지 않아도 가지에 물오르는 게 느껴지니 외물外物은 봄이 다가온 듯하다. 그러나 외물外物보다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봄이 진정한 봄일 게다. 모든 이웃의 마음에 그런 봄이 왔으면 좋겠다.
(*) 春意分明在此身 莫將外物爲欣慼 (춘의분명재차신 막장외물위흔감)
- 최명길崔鳴吉(1586-1647)의 한시漢詩, 춘설유감春雪有感 중에서
2012년 3월 25일(일) 늦은 밤에
상념想念에 젖었던 길을 반추하며
월파月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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