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자리/* 심향(心香)

간송(澗松)의 문을 들어서니

月波 2007. 5. 18. 00:17

 

간송(澗訟)의 문을 들어서니

 

 -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탄생 400주년 기념 서화전에서

 

 

청명한 봄인가 했더니 성북동에는 한 차례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며 어두워진다. 간송(澗松)미술관으로 가는 길, 흑백(黑白)의 한 판 어우러짐을 하늘이 암시하고 있다. 우암(尤庵) 송시열(1607-1689)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는 서화전(書畵展), 화선지와  먹의 만남이 이루는 조화를 보러 가는 길이다.

 

오늘은 참 운수 좋은 날이다. 1년에 두 서너 차례, 그것도 짧게 보물창고를 열어 세상과 소통하는 간송미술관, 그래서 그 문턱은 높다. 점심으로 설렁탕이나 한 그릇 하려던 만남이 간송(澗松)의 문턱까지 넘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우암의 후손이라 이 전시회에 각별한 관심이 있는 친구와 동행하는 길이니 더욱 그렇다.

 

간송의 문으로 들어선다. 내세운 서화전의 주제와 달리, 100점의 전시작 중에서 우암의 이름을 찾기는 쉽지 않다. 우암의 작품이라고는 단 한 점, 신 사임당의 어하도(魚鰕圖)에 우암이 발문(跋文)을 쓴 것 뿐이다. 전시된 100점의 서화도 조선 중, 후기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이 활짝 꽃 피운 조선후기의 진경산수(眞景山水)가, 소위 간송학파의 주장처럼 우암이 다져놓은 조선 성리학의 뿌리에서 싹튼 것이라면, 진경산수를 보는 것은 곧 그를 만나는 일이 될 것이다.

 

 

창강(滄江) 조속(趙涑, 1595~1668)의 고매서작(古梅瑞鵲)이 첫눈에 띈다. 매화나무에 앉은 상서로운 까치를 그린 진경산수의 초기작이다. 중국 그림을 보고 그리는 종전의 화법(畵法)과 달리, 실물을 보고 그대로 스케치하여 그렸다는 점에서 진경시대(眞景時代)의 출현을 알리는 대표작이라고들 평한다.

 

안경을 고쳐 쓰고, 숨결을 고르며 살펴본다. 여느 전시회와 달리 시원찮은 조명이 신경에 거슬리지만, 오히려 그것이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조속의 작품이 서너 점 더 있었다. 가볍게 간화(看畵)하면서도 생각은 깊어진다. 한 시대, 하나의 조류를 태동시킨 이들의 큰 얼굴을 본다.  

 

 

 

겸재 정선의 어초문답(漁樵問答) 

 

어초문답(漁樵問答), 동일한 주제에 3개의 작품이 비교되어 전시되어 있다. 낚시꾼과 나무꾼이 사물의 이치를 논한다는 북송의 유학자 소옹의 글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세상의 찌든 때에 물들지 않은 두 사람이 논하는 천지사물의 이치도 흥미가 있지만, 이를 그림으로 담아내는 화법이 비교가 된다. 

 

이명욱이나 홍득구의 어초문답과 겸재의 어초문답은 확실히 비교가 된다. 앞의 두 그림에는 중국식 구도에 중국식 사물과 인물(빈 멜대를 맨 나무꾼, 중국식 복장등)이 등장하지만, 겸재(謙齋)의 어초문답에는 조선의 나무꾼들의 지게와 조선의 옷(학초의)을 입은 인물이 등장한다.

중국화풍에서 벗어나 우리 고유의 산수화풍을 이뤄가는 겸재의 경지를 느낄 수 있다.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金剛內山), 49.5x32.5cm , 비단에 담채

 

이 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겸재 정선이다. 전시작품의 30% 정도가 겸재의 진경산수화다. 내금강을 그린 산수화에서 한강주변의 광나루, 압구정, 인왕산, 남산의 산수화까지 다양하다. 산을 그리는 화법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음영으로, 점으로 그리던 산이, 선으로 그려지고 표현된다. 소위 묵묘(墨描)에서 선묘(線描)가 등장하고, 한 화폭에 양자가 조화롭게 나타난다.  

 

절로 눈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삼부연>과 그림 속에 자신의 얼굴과 자기 그림이 등장하는 <독서여가> 앞에서 잠시 머무른다. 끝이 없이 변화하고 절정으로 치닫는 겸재의 혼을 느낀다. 우암의 탄생기념전이라기 보다, 겸재의 진경산수전(眞景山水展)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 외에도 조선의 여러 문인과 화가들을 만난다. 전시장에 들어서며 만났던 힘찬 글씨의 두 글자, 남자처럼 호방하게 써 놓은 그 글씨의 주인공인 정명공주, 그녀가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윤두서의 그림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겸재  정선의 삼부연도(三釜淵圖) 

 

 

간송미술관을 나오면서, “우암이 확립해 놓은 조선성리학의 뿌리가 있었기에 진경산수의 꽃이 필 수 있었다”고 말하는 소위 간송학파의 주장에 대해 생각해본다. 간송학파의 핵심은 진경(眞景)보다 우암(尤庵)과 노론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이념이 뿌리라면 예술은 그 뿌리에서 피어난 꽃이다"라는 총론에는 공감할 수 있지만, 조선 성리학과 진경산수를 직접 연결시키는 간송학파의 각론을 공감하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얕고 짧다. 다만 성리학과 진경산수의 다소 무리한 연결고리로 우암을 내세우려는 것은 아닌지? 우암을 빛내기 위해서 창강에서 겸재까지의 시화를 찬조출연시킨 것은 아닌지?  그래서, 그들은 관심은 진경보다 우암이라는 비판에 직면하는 것은 아닌지?

  

오늘은 우암을 만나러간 것이 아니라, 조속에서 겸재에 이르기까지 진경산수를 만나러 갔다고 정리하고 싶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그러기에 옛 느낌이 그대로 묻어 있는 간송미술관에서 시간을 거슬러 조선의 진경산수(眞景山水)를 눈에 담는 안복(眼福)을 누린 것으로 족한 것이다.

 

우암의 후손, 송 아무개야 ! 어찌되었든, 많이 뿌듯한 오후였지?

 

                                                                                                            (2007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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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眞景)문화

중국 그림을 베끼지 않고 조선의 풍경을 사실에 입각해 그리는 그림인 진경산수(眞景山水)와 조선의 산수를 독자적인 표현방식으로 담는 진경시문(眞景詩文)을 아우르는 말이다. 간송미술관 최완수 연구실장이 정립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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