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07 - 사청사우(乍晴乍雨) 속의 문향(文香)
(1) 창수령으로 향하는 마음
창수령, 해발 칠백 미터 ㅡ. 아아, 나는 아름다움의 실체를 보았다. ..........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완성된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을 나는 바로 거기서 보았다.
오, 그 아름다워서 위대하고 아름다워서 숭고하고 아름다워서 신성하던 그 모든 것들 .........
- 이문열, 젊은 날의 초상 제 3부 <그 해 겨울> 중에서
창수령은 가까운듯 했지만 그 길로 나서는 일은 아득했다. 백암산을 거쳐 천둥번개 속에 아랫삼승령에서 하산하던 지난 7월 초, 창수령은 우리에게 지척이었다. 그러나 다시 그곳을 오르는 일은 참으로 길고도 멀었다. 폭염이 때를 기다리게 하더니, 폭우가 길을 멈추게 하고, 폭언이 마음을 상하게 했다.
창수령 가는 길, 여름 장마가 끝나나 했더니 계속된 국지성 호우, 그리고 9월이 되니 이제 가을 장마란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변화와 수없는 언어의 유희 속에 지난 여름은 한없이 무덥고 지루한 나날이었다. 일상이 또한 그러했거늘, 말과 글 대신에 스스로를 침묵속에 맡겨보기로 했다. 달리 방도를 찾기보다 그 자체로 방편이 될 수 있으니까.
젊은 날에 이문열이 고뇌하며 삶의 존재가치를 찾아가던 <그 해 겨울>의 창수령은 이 가을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산 봉우리를 넘나들고 골짜기 하나하나를 굽어보면서 아름다움의 실체를 찾아볼 수 있을까? 폭설에 가지�긴 적송(赤松)의 처절한 아름다움이 아니더라도 낙엽송의 우아한 자태나 참나무의 억세고 당당한 모습을 가을의 초입에서 느껴보고 싶다.
두 달만에 다시 찾은 아랫삼승령에서
(2) 다시 찾은 아랫삼승령
우여곡절 끝에 1박2일에 걸친 41Km 낙동장정을 다시 시작한다. 기다린 시간만큼 가는 거리가 늘어난 셈이다. 숨은 산골인 저시마을을 거쳐 아랫삼승령에 오르고, 독경산을 넘어 창수령으로 간다. 다시 OK목장과 맹동산 상봉을 거쳐 곰취농장에서 하삼의 마을로 하산하여 하룻 밤을 보내고, 다음 날 다시 길을 이어 황장재까지 가리라.
5시간의 버스여행에 지칠 무렵 영양 일월에 닿는다. 저시마을은 두 달전과 변함없이 산촌의 푸르름과 상큼함을 풍기고 있다. 청록(靑綠)이 주는 이미지는 심안(心眼)까지 맑게 한다. 아랫 삼승령에서 지체없이 산으로 든다. 학산봉에 오르니 숲 너머로 영양의 일월산 일대가 눈에 들어 온다. 두 달만에 맛보는 낙동의 조망이다.
영양은 문향(文香)이 넘쳐나는 문향(文鄕)이다. 일월산 아래 주실마을에서 태어난 시인 조지훈을 잠시 생각한다. 오늘 산길이 빠르면 하산 후 그의 생가를 둘러보고 싶다. 낙동을 하면서 산줄기도 좋지만 산 아랫마을을 살펴야겠다는 다짐이 오늘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청록(靑綠)의 숲향이 코끝에 닿는다. 조지훈과 함께 박목월을 떠올린다.
조지훈의 시비, 완화삼
지훈과 목월, 완화삼과 나그네, 그들이 주고 받았던 시어(詩語) 하나하나가 가슴에 절절하다. 그 들의 이심전심(以心傳心)이 완화삼과 나그네란 시에 잘 담겨있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 백리........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조지훈, 완화삼 중에서 - 박목월, 나그네 중에서
절묘한 시적교감(詩的交感)이요, 둘만이 나누는 시적밀어(詩的密語)다. 술익는 마을의 저녁노을은 이름 그대로 연하(煙霞)의 선경(仙景)이다. 숲길에는 비가 흩뿌리고 안개가 잦아든다. 갈수록 연기(煙氣)처럼 자욱하게 피어난다. 청록파의 시어(詩語)가 비안개와 저녁연기로 치환(置換)되는 몽환(夢幻)의 풍경이다.
마음이 편안했을까? 허기도, 추위도 잊은채 쉰섬재, 서낭당재를 지나고 잠시 독경산을 올랐다가 내려서니 창수령에도 안개가 자욱하다. 이문열이 보았던 눈 덮힌 <그 해 겨울>의 창수령은 저녁 연기같은 비안개 속에 그 아름다움의 실체를 드러낼듯 말듯하며, 우리를 환영(幻影) 속으로 밀어 넣는다.
환영(幻影) 속으로 밀어 넣는 창수령의 안개
(3) 이문열과 김훈, 그 들의 대조(對照)
아름다워서 선할 수 있고, 선해서 아름다울 수 있다. 아름다워서 성스러울 수 있고 성스러워서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도 모든 가치를 향해 열려 있고, 모든 개념을 부여하고 수용할 수있는 것, 거기에 아름다움의 위대성이 있다.
이번의 출발은 오직 이 순간을 위해서 있었다.
- 이문열, 젊은 날의 초상 제 3부 <그 해 겨울> 중에서
창수령의 짙은 안개속에 이문열의 화려한 수사(修辭)에 빠져 있다가, 문득 그와 대조되는 김훈을 생각한다. 화려한 문체의 이문열과 달리, 담백한 표현에 숨어있는 김훈의 촌철살인(寸鐵殺人)이 떠오른다. 너무나 개성이 강하고 서로가 대조적인 그들이다. 이문열의 창수령은 이제 한 치 앞이 안보이는 안개속에 숨어있고, 그 위로 한 치 앞을 내디딜 수 없이 갇혀있던 김훈의 남한산성이 오버랩된다.
그해 겨울,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하는 길은 포개져 있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 김훈, <남한산성> 중에서
김훈은 <남한산성>을 통해 병자년(1636년) 겨울에 갇힌 산성 안에서 벌어진 말과 말의 싸움, 삶과 죽음의 등치(等置)에 관한 참담한 기록을 정신이 번쩍들게하는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세상에 삶과 죽음이 하나로 치환(置換)되는 고통스러움을 이 보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임금의 몸이 치욕을 감당하는 날에, 신하는 임금을 막아선 채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는 백성들이 살아 남아서 사직을 회복할 것이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 김훈, <남한산성> 중에서
<그 해 겨울>의 남한산성에도 은백의 설화가 피었을까?
이문열은 <젊은 날의 초상>에서 절망 속에서 존재의 출발을 찾아 가던 <그 해 겨울>의 고뇌를 화려한 수사(修辭)로 표현하고 있고, 김훈은 <남한산성>에서 실천 불가능한 정의와 실천 가능한 치욕 앞에 서 있던 <그 해 겨울>의 고뇌를 송곳으로 가슴을 찌르는 필치로 그리고 있다.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하는 길은 포개져 있었다" 고. 죽는 길과 사는 길이 하나로 엉켜있는 생사(生死)의 등치(等置) 상황을 이보다 더 단칼에 표현할 수 있을까? 아, 그 뿐인가? 김훈의 그 압권적 표현, " 경은 늘 내 가까이 있으니 군율이 쉽게 닿겠구나." 라는 한 마디.
날름거리는 뱀의 혀처럼, 허물거리는 흐린 날의 산능선처럼 입으로만 싸우던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의 주장. 그 속에 우유부단한 영의정 김류에게 인조가 던지는 한 마디에 나는 아직도 머리가 쭈뼛해진다. 김훈만이 가진 촌철살인(寸鐵殺人)이다.
(청나라의 군대는 말을 타고 거침없이 한양을 향해 쳐들어오고 있었다)
인 조 청천강 다음이 대동강이지?
영의정 전하, 적이 다시 대동강을 건넌다면 도원수와 평양과 황해의 감사, 병마사 들의 목을 베고
그 처자들도 군율로 연좌함이 옳을 줄 아옵니다.
인 조 그렇겠구나.
영의정 .......
인 조 그러하되 적병이 이미 도성을 에워싸서 왕명이 강을 건너지 못한다면,
서북 산성에 군율이 닿겠느냐?
영의정 .......
인 조 경은 늘 내 가까이 있으니 군율이 쉽게 닿겠구나.
(삼정승이 이마로 방바닥을 찧었다)
영의정 전하, 신은 늘 대죄하고 있습니다.
겹겹의 기와에서 생사가 포개져 있었던 그 해 겨울의 남한산성을 본다
(4) 사청사우(乍晴乍雨) 속의 목장길
문향(文鄕)인 영양의 숲길에서 이래저래 몸은 안개비에 젖고 마음은 스며드는 문향(文香)에 빠져 걷는다. 창수령을 떠난 발길은 울치재를 지나 어느듯 산마루에서 산자락까지 넓게 펼쳐지는 OK목장길을 걷고 있다. 그래, 이 정도면 오늘의 숲길도 OK 낙동이다. 비가 오락가락한다.
오늘은 내내 맑아지나 하면 빗속에 안개가 잦아들고, 그 빗속을 걷다보면 이내 날씨가 개이곤 했다, 그 변화무쌍함에 초조해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마음은 평온했다. 비가 흩뿌리는 목장길을 걸으며 김시습의 달관적 7언율시를 떠올린다. 하늘도 마음대로 날씨를 쥐락펴락하지 못할진대,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야 오죽하랴 생각해본다.
乍晴乍雨雨還晴(사청사우우환청) 잠깐 개었다 비 내리고 다시 개였다 비 내리니,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 하늘의 이치도 그러한데 하물며 세상인심이야
앞서기를 다투지 않는 흐르는 물처럼, 산이 구름이 오고 감을 다투지 않는 것처럼, 세상의 기쁨을 평생 누릴 곳이 그 어디에 있겠냐는 이치를 되새기며, OK 목장을 지나고 맹동산 상봉을 거쳐 조금씩 어둠이 찾아드는 천마농장 갈림길의 숲으로 서둘러 접어든다.
雲去雲來山不爭(운거운래산부쟁) 구름이 오고 가는 것을 산은 다투질 않는다.
寄語世人須記認(기어세인수기인) 세상 사람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알아두소!
取歡無處得平生(취환무처득평생) 기쁨을 얻는다하여도 평생 누릴 곳은 없다는 것을!
- 김시습, 7언율시 사청사우(乍晴乍雨) 중에서
적송에 비안개 내리는 것을 하늘인들 어쩌랴?
(5) 하삼의 펜션의 하룻밤
어둠 속에 울려퍼지던 천마농장의 개짖는 소리, 알탕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던 하산 길의 봉의곡 맑은 계류, 서울에서 뒤늦게 출발하여 아랫삼승령에서 부터 30Km 먼 길을 홀로 걸어 어두운 밤길을 뚫고 나타난 길원, 그는 진짜 산꾼이다. 언제 맑은 날에 대견스러운 그와 단둘이서 다시 1박의 산행을 떠나야지. 이어서, 낙동강 강바람에 ...... 로 시작된 트롯트 메들리는 낙동의 하룻밤을 채우며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다.
백두대간길의 오지중의 오지인 쇠나드리의 하룻 밤, 낙동길의 오지중의 오지인 하삼의 봉의곡에서의 하룻 밤. 둘에는 공통점이 있다. 함께하는 사람이 그렇고, 하룻 밤을 묵는 곳이 그렇고, 하룻 밤에 기대하는 바가 그렇다. 길에 대한 간절함을 가진 그들이, 너와 나의 구별이 없는 한 마음으로, 몸을 부대끼며 하나가 되는 것이다. 대간에서 그러했듯이 낙동에서도 이 멤버들이 하나가 되어 몰운대까지 가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당초 계획했던 이틀째의 산행은 태풍 나리의 북상으로 아쉽게 접는다. 대간과 달리 낙동에서 유난히 폭우를 자주 만난다. 다음 산행 전에 고사라도 다시 지내야 할까? 대신에 우리는 역사문화 탐방 길에 나선다. 영양 주실의 조지훈 생가와 영주 부석사를 들리기로 한 것이다. 불가피하게 재업과 정산은 서둘러 상경하고,
조지훈의 온기가 느껴지는 주실마을에서 시문학 산책에 넋을 팔다가, 다시 영주 부석사의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비구름이 걷혀가는 소백의 능선을 굽어본다. 풍기에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으니 곳곳에 사과밭이 즐비하다. 주렁주렁 열린 빨간 열매에서 홍안의 소년처럼 생기를 되찾아 일상으로 돌아가는 자화상을 본다. 그 풍경 너머에 대진항을 떠나 서울로 향하던 이문열의 <그 해 겨울>이 오버랩되고 있었다.
이튿날 나는 중앙선의 상행열차를 타고 있었다. 활짝 갠 늦겨울의 오후였다.
열차는 어느 복숭아 과수원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때 그 줄기 끝마다 바알갛게 맺혀 있던 것은
분명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필 봄이었다.
- 이문열, 젊은 날의 초상 제 3부 <그 해 겨울> 중에서
부석사 배흘림기둥에 기대서면 소백의 운해가 발아래다
[부록] 갤러리 - 조지훈 생가(주실마을)과 영주 부석사
-------------------------------------------------------------------------------------
[산행 일시] 2007년 9월 15일(토)-16일(일) 1박2일(15일 산행, 16일 역사문화 탐방)
[산행 구간] 아랫삼승령-독경산-창수령-울치재-OK목장-맹동산 상봉-곰취농장-임도3거리
[산행 거리] 21.3Km(진출 곰취농장-하삼의 3.2Km 별도)
[산행 시간] 7시간 20분(식사및 휴식 37분 포함, 진출 곰취농장-하삼의 60분 별도)
[산행 참가] 8명 (권오언,김길원,김성호,남시탁,박희용,송영기,이창용,장재업)
[운행 기록]
0530 대치동 출발
1030 영양 일월 가천리 입구
1110 아랫삼승령 도착(승합버스)
1120 아랫삼승령 출발
1129 학산봉(688m)
1154 무명봉(718.4m)
1201 쉰섬재
1311 서낭당재(돌무더기)
1318 645봉
1332 지경(670m)
1358 임도 도착(25분 점심 및 휴식)
1423 임도 출발
1500 독경산(683.2m, 헬기장)
1515 창수령 도착(5분 휴식)
1520 창수령 출발
1623 울치재(임도) 도착(7분 휴식)
1630 울치재 출발
1638 안부, 당집
1721 OK목장 시작
1730 OK목장 시멘트 도로
1805 OK목장 끝
1810 맹동산 상봉
1820 천마농장 갈림길
1830 천마농장 임도 합류
1840 임도 3거리(산행종료)
1900 곰취농장->천마농장
2000 하삼의(917번 지방도)
-----------------------------------------------------------------------------------------
'산따라 길따라 > * 낙동정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동정맥 09 - 영축산은 천 길이나 푸르고 (0) | 2007.11.12 |
---|---|
낙동정맥 08 - 눈부시도록 푸른 가을날에 (0) | 2007.10.08 |
낙동정맥 06 - 낙동에서 하는 태극종주 (0) | 2007.07.31 |
낙동정맥 05 - 금강송(金剛松)의 기(氣)를 받으며 (0) | 2007.07.09 |
낙동정맥 04 - 빗소리가 교향악이 되는 숲길에서 (0) | 2007.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