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낙동정맥

낙동정맥 08 - 눈부시도록 푸른 가을날에

月波 2007. 10. 8. 01:21

낙동정맥 08 - 눈부시도록 푸른 가을 날에

 

(1) 길원에 대한 찬가

 

태풍의 북상 소식이 마음에 걸리지만 낙동으로 간다. 낙동에서 유난히 비를 자주 접하니 신경이 쓰인다. 제천 나들목에서 뚝심의 사나이 길원을 태운다. 낙동 7차에서 혼자 늦게 출발하여 30Km의 고독한 행군을 하고 깜깜한 밤에 불쑥 나타나 우리를 놀래키더니, 이 번에는 동강 울트라 100Km를 아침 6시부터 밤 8시 30분까지 14기간 30분에 걸쳐 달리고, 이튿날 현지에서 낙동길 20Km에 합류하는 투지를 보인다.

 

달리기에 입문하여 뚜렷한 진척이 없던 그가 금년에 벌써 울트라 100Km를 세번째 완주했다. 늦바람이 든 것이다. 대간길에서 늘 후미를 도맡아 제용,지용 아우와 함꼐 <못난이 3형제>로 자처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더니, 금년에 울트라에 입문하여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14시간 30분의 울트라여행 직후 어젯밤 문자를 보내와 14만 3천원 범위에서 물쓰듯이 한 턱 쏘겠다는 그의 재치도 마음에 든다.

 

그래, 오늘 산길은 달리지말고 후미에서 천천히 동행하여 걸어보세. 긴 울트라여행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걸어보자구. 오늘은 내가 자네의 버팀목이 되리니 ....... 어젯 밤 배낭을 꾸리며 자네 몫으로 특별 간식도 충분히 챙겼으니, 오늘은 자네의 몸이 허락하는 데까지만 함께 걸어보자구.

 

 100Km를 달리고 더없이 푸르른 날을 맞은 길원

 

(2) 낙동길의 첫 조망, 동해바다

 

다행히 하삼의에서 천마농장까지 3.4Km 오르막을 미니버스가 올라가니 바로 낙동길에 접어든다. 좁고 험한 길을 뚫고 천마농장까지 버스가 올라가니 농장주인은 황당한 표정이다. 버스기사는 오히려 내려갈 일을 걱정하고. 지난 7차 산행 때는 개짖는 소리가 어둠 속에 진동하더니 오늘은 님 만난듯 꼬리를 친다. 어둠에 강하고 밝음에 약한 녀석인가?  하늘은 더할 나위없이 맑고 푸르다. 

 

임도 삼거리에서 봉화산을 오르며 천마농장, 곰취농장을 되돌아 본다. 곰취농장과 곰취공장 간의 미스 커뮤니케이션이 빚었던 지난 산행의 기억이 쓴웃음을 짓게한다. 봉수대에는 반짝이는 햇살이 숲속으로 번지고 있다. 봉수대의 돌더미에 앉아 봉화산 숲속으로 사라진 정산을 기다리는데 시원한 가을바람이 산들산들 가슴을 적신다. 여름의 끝, 가을의 시작을 비로소 느낀다.  

 

명동산 정상에서 동해바다를 눈에 담는다. 그 해 겨울의 대진항이 그려진다. 낙동길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리라. 백암산에서도 흐린 날씨로 동해조망을 놓쳤고, 다른 구간에서도 대부분 빗속을 걸었으니, 오늘도 동해를 못보면 몰운대까지 바다구경 못하나 싶어 조바심을 내었었다. 가슴이 확 뚫리고, 북쪽으로는 지나온 낙동의 마루가 도열해 있다.

 

봉수대 군상들 

 

명동산에서 본 동해와 대진항 

 

(3) 박짐고개의 막걸리

 

염려했던 것과 달리 길원은 잘 걷고 있다. 명동산에서 박짐고개로 내려서는 급경사가 부담이 될 법도 한데 특별한 표정이 없이 잘 내려가고 있다. 길가의 도토리를 줍기도 하고 여기저기 피어난 구절초에 마음을 주면서 내리막 길을 천천히 걷는다.

 

박짐고개에서 먹는 점심에는 막걸리가 곁들여진다. 오언의 전매특허다. 2주동안 냉동실에서 얼린 막걸리는 빙수가 되어있다. 팥만 넣으면 팥빙막걸리인데 ...... 국세청 선정 베스트 민속주에 뽑힌 장수막걸리가 목을 씻어주고 가을바람이 볼을 씻어준다. 국세청의 선정기준은 세금 많이 거둔 순서일까, 술맛 좋은 순서일까? 술맛이 좋으면 많이 팔리고, 그러면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니 그 놈이 그 놈이다.

 

포도산 삼거리에서 방향을 틀어 소나무 숲이 울창한 산길을 걷는다. 송이 향이 코끝에 스치는가 싶어 소나무 숲으로 들지만 지나간 발자국만 더듬는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바람결에 송운(松韻)이 들리고 낙동을 북진하는 부산 산 사람들과의 조우가 반가움을 더해준다. 걷기에 참으로 편안한 길의 연속이다.

 

630.5봉을 넘어서니 고사목 지대가 나타난다. 죽어서도 꿋꿋이 제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세월만큼 버티는 고사목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잠시 능선의 조망을 즐기고 나니 장구메기의 밭지대가 반긴다. 멧돼지가 남긴 흔적과 가시오가피 열매를 살피다가 임도를 따라 소나무 숲으로 든다. 군데군데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반겨준다. 가을내음이 물씬 풍긴다.

 

 살아온 시간만큼 죽어서도 사는 고사목

 

(4)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

 

당집을 지나 잣나무 숲이 무성한 산길을 걷는다. 조림을 잘해놓은 동네 뒷산같아 보인다. 그 숲에 주저앉아 숲속의 바람을 즐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섬주섬 윗도리를 벗고 숲의 기운을 알몸으로 맞는다. 그리고 가부좌하고 앉아 모두 잠시 참선 삼매경에 빠진다. 빨리 오라는 선두의 무전에 가부좌를 풀고 다시 길을 걷는다.

 잣나무 숲에서 산림욕과 참선삼매경

 

포산마을 뒤산의 남평 문씨 묘를 지나며, 아내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과 애틋한 헌사 앞에 모두들 감동하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간 아내의 무덤에 지아비가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를 지어 비석에 새겨놓았다. 아웅다웅 살더라도 속 마음은 저렇게 변함없이 간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헌사(獻詞) - 아내 오귀임 여사에게

 

그리움은 별이 되었다가 꽃이 되었다가

잔잔한 당신의 미소로 다가옵니다.

아내로서 지아비를 훨훨 날게 해주었고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고

지아비와 함께한 인고의 사십년 세월동안에도

나를 저버리지 않고 가정을 일으켰으니

아들 하나 딸 둘 슬기롭게 반짝이니

소천하소서

하나님 품안에서 만날 때까지 영원토록 누리소서.

 

  2001년 4월 5일 한식날에, 지아비 문덕채 근서

--------------------------------------------------------------------

   

아내 무덤 옆에 가묘(假墓)가 하나 나란히 있다. 먼저 간 아내 옆에 누울 자리를 미리 만들어 놓고, 함께 묻힐 날을 기다리는 지아비, 그리고 천상에서 재회를 기다리는 간절한 염원이 서려있는듯하여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 아래에 포산마을이 소나무 숲에 숨어서 자리하고 있다.

 

 소나무 숲에 숨은 포산마을

 

 송전탑 너머로 더없이 푸른 가을 하늘

 

(5) 가을 야생화와 함께

 

포산 마을을 지나 걷는 숲길에는 곳곳에 가을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보랏빛 투구꽃은 처처에 널려있고, 하얀 구절초, 분홍 구절초, 구름국화가 옷매무새를 자랑하고, 모싯대인지 잔대인지 금강초롱인지 헷갈리는 초롱꽃의 향연이 눈을 즐겁게 한다. 용담이 곱게 피어 그 짙푸름을 떨치는데 그 옆에 억새가 넘실댄다. 

 

길원이 힘들어 하는 모습에 들꽃을 카메라에 담으며 속도를 늦춘다.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다. 화매재를 10여분 정도 앞둔 머지막 봉우리에서 그는 털썩 주저 앉는다. 어제의 울트라 100Km에 이어 오늘의 산행을 잘 해온 셈이다. 오늘의 목적지인 황장재까지는 다시 1시간30분 정도 걸어야한다. 기다리고 있는 선두와 무전으로 화매재에서 산행을 종료하기로 하니 길원의 표정이 한결 밝아진다.

 

화매재에서 진보로 가는 길에 신촌약수터에 들러 약수에 삶은 찜닭과 닭백숙을 먹으며 길원의 100Km 울트라 행군을 축하한다. 참이슬은 처음처럼 구비구비 넘어가고, 조지훈/이문열/김주영의 고향으로 이어지는 한국문학 삼각지 여행도 끝이 난다. 아, 여기가 매스컴의 각광(?)을 받고있는 신정아씨의 고향이었지?

새로운 길 국도 34번이 서울까지 빠른 안내를 한다.

 

 투구꽃

 

 구절초

 

분홍 구절초

 

잔대 (모싯대와 금강초롱도 보고 싶은데.....) 

 

 분홍 구절초일까, 구름국화의 잎 떨어진 모습일까?

 

 용담, 백두산의 비로용담이 이랬었지

 

앵초과의 좁쌀풀 꽃이라고 보이는데 ...... 

-----------------------------------------------------------------------------------------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07년 10월 7일(일) 당일산행

    2) 산행구간 : (하삼의)-천마농장-봉화산-명동산-박짐고개-포도산 삼거리-630.5봉-화매재

    3) 산행거리 : 17.0Km

    4) 산행시간 : 6시간 10분(식사 및 휴식 70분 포함)

    5) 산행참가 : 8명(권오언, 김길원, 김성호, 남시탁, 박희용, 송영기, 오영제, 이성원)

 

2. 세부 운행기록

 

  0505 대치동 출발

  0633 제천 나들목(길원 승차)

  0647 단양 휴게소 옥녀금반

  0720 단양 휴게소 출발

       풍기-문경 안개자욱 풍기사과 북상중 나무아래 비닐 반사광

  0950 하삼의

  1008 천마농장

 

  1010 천마농장 출발

  1020 임도 삼거리

  1041 봉화산

  1048 봉수대

  1135 명동산 10분 휴식

  1215 박짐고개 중식 40분

  1315 포도산 삼거리

  1325 소나무 군락

  1345 송전탑 진보48, 10분 휴식

  1408 630봉

  1429 장구메기

  1445 당집

  1450 잣나무 조림지 10분 휴식

  1505 남평문씨 묘,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

  1530 송전탑 56

  1554 능선분기봉

  1620 화매재

 

  1627 화매재 출발

  1700 진보 신촌식당 도착(054-872-2050)

  1815 진보 신촌식당 출발

  2220 개포동 도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