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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05 - 금강송(金剛松)의 기(氣)를 받으며

月波 2007. 7. 9. 01:18

 

(낙동05) 금강송(金剛松)의 기(氣)를 받으며 

 

모두들 잠들어 있는 이른 새벽 다시 낙동의 품으로 달려간다. 2주전의 낙동4차 산행에서 남겨둔 숙제를 하러 간다. 한 번에 하려했던 일을 두 번에 나누니 거리와 시간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다. 지난 번에 불참했던 성호님이 기어코 지난 구간과 이번 구간을 묶어 당일산행으로 하려고 하니 그를 먼저 답운치에 내려놓고, 우리는 애미랑재에서 출발한다. 확실한 후미가 있으니 널널산행이다.

 

우리가 18Km요, 그는 30Km다. 대단한 그다. 그래도, 산악마라톤을 하며 뒤에서 달려올 그를  한티재에 갈 때까지 만날 일은 없으리라. 금강송의 고매한 자태에 반하기도 하고, 짙어져가는 떡갈나무의  숲향에 젖으며 쉬엄쉬엄 걸어면 되리라. 충분히 식수를 챙기고 애미랑재에서 칠보산을 향해 산으로 든다.

 

 

애미랑재는 광비령이라고도 불리는 좁은 지방도가 지나는 외진 곳이다. 누구는 하루에 차가 2대 밖에 지나지 않는 곳이라고 귀띰을 한다. 여기서부터의 낙동은 영양군 수비면을 관통, 앞으로 몇 구간은 계속 영양땅이다. 육지속의 섬이라 불릴만큼 외진 곳, 그래서 반딧불이 서식하고 천혜의 수려한 자연경관이 아직 그대로 보존된 청정지역이다.

 

1시간 남짓 굵은 땀방울을 흘리니 칠보산 정상이 발아래에 있다. 표지석도 삼각점도 안보이지만 직감적으로 칠보산임을 알 수 있다. 안개가 시야를 가려 먼 산을 볼 수 없어 아쉽지만 청록의 숲향이 얼굴에 흐르는 땀을 식혀주니 생기가 절로 난다. 어렴풋이 보이는 고랭협곡 지대를 보며 다시 숲으로 빠져드니 새신고개가 우리를 반긴다. 

 

 

새신고개에서 더덕향을 찾아 숲속을 기웃거리며 잠시 쉰다. 주변을 살피니 초록빛 바다에 풍덩 빠진 느낌이다. 다시 길을 나선다. 군데군데 곧게 자란 적송(赤松)이 반겨주고 그들을 벗삼아 잰 걸음으로 숲길을 걷는다. 녹음 우거진 산길의 장송(長松), 그 금강송(金剛松)의 자태가 고매하다. 비안개속에 나타나는 잘 생긴 적송은 때로는 한 점의 수묵화를 연상시킨다.

 

  

수형이 곧고 재질이 단단해 소나무의 제왕이라 불리는 적송(赤松)은 그 이름도 많고 다양하다. 금강송(金剛松), 황장목(黃腸木), 춘양목(春陽木), 미인송(美人松) ...... 그 중에서 금강송이라는 이름이 내 마음에 든다. 황장이니 춘양이니 미인이니 하는 이름은 그 외양(外樣)에 근거한 작명방식이지만, 금강은 그 품성(品性)에 바탕을 둔 이름이라 더욱 애착이 가는 것이다. 금강반야바라밀(金剛般若波羅密)이다.

 

 

함께 낙동을 하고 있는 중년부부를 만나 앞서거니 뒷서거니 숲길을 걷는다. 그들은 서두름도 초조함도 없이 편안히 산길을 걷는다. 특별히 수다스런 얘기도 없이 때로는 눈빛으로, 때로는 은근한 미소로 숲길을 걷고 있다. 함께 시간을 내어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족할텐데, 숲향에 젖어 이심전심의 미소까지 주고받을 수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10지 춘양목(十枝 春陽木)이 안개속에 우뚝 서있다. 십수개의 굵은 가지가 한 몸이 되어 자라고 있는 특이한 소나무다. 나무를 부르는 표현법이 재미있다. 꼭 10개의 가지(枝)라서가 아니다. 아마 많고 가득차다는 뜻으로 그 이름을 부친 것 같다. 10(열)이라는 어휘는 오래되고, 많고, 가득하다는 뜻과 통하니까. "10년공부, 10년감수, 10년지기,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라는 표현이 모두 그렇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금강송의 품에 안겨 오늘은 산길을 걷고 있다. 겉모양의 차이가 있어도 각자 우러나는 품성은 한결같다. 늠름한 기품, 하늘향해 치솟은 기개,  꿋꿋이 자신을 지키는 확고한 자세, 어디에도 기대지 않는 직립의 정신 ......... 시류에 편승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고매함은 대나무에 못지 않다.

 

깃재에 도착하니(11:46) 몸에 허기가 찾아온다. 둘러앉아 모두 도시락을 꺼내 놓으니, 갖은 반찬에 진수성찬이 따로없다. "이 풋고추는 영양산인가? 이렇게 매콤달콤한 풋고추는 처음이야. 다음에도 꼭 풋고추 반찬 가져오는 거지? 하하하 !!!" 영양은 고추산지로도 유명한데, 서울서 가져온 풋고추도 영양에서 먹으면 영양고추가 되나보다.

 

이제 산행은 후반부로 접어든다. 함께 걷던 일행도 선두는 달리고, 중간은 빨리 걷고, 후미는 숲길에서 만만디를 즐긴다. 오늘은 후미 뒤에  달려올 또 다른 후미(성호님)가 있기에 느긋한 표정이다. 아무리 날아서 오더라도 12Km 후방에서 시작하여 우리를 따라잡기란 힘들테니가 .......

 

 

숲속에서 혼자 걷는 시간이 많아진다. 이제 낙동의 마루금은 고만고만한 숲길로 이어진다. 길도 분명하고 육산이 주는 포근함도 있다. 적당한 오르내림이 이어지며 몸과 마음을 편히 해준다. 금강송에서 느끼는 성품과 달리, 부드러움이 주는 유려함, 유장함이 있다. 굳세고 강함, 부드럽고 유연함의 조화를 산에서 배운다. 나뭇가지에는 바람이 찾아와 쉬고 있다.

 

          나무는 저 혼자 서 있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세상의 모든 새들이 날아와 나무에 앉을
          그 빛과
          그 어둠으로
          저 혼자 깊어지기 위해 나무는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 류시화, "나무는" 중에서

 

길등재에도 이제 곱게 도로가 포장이 되어있다. 지나는 차도, 오르내리는 이도 보이지 않는 심처의 고개에서 잠시 앉아서 저 아래 영양 땅을 쳐다본다. 영양,  청록파의 조지훈과 현대 서정시인 오일도의 고향이다. 젊은 날의 초상, 이문열의 고향이기도 하고. 그들은 이 물 깊고 산 깊은 곳에서 푸르름의 서정을 마음에 가꾸었을까?

 

 

 

다시 산으로 들어 숲길을 걷는데, 여름꽃들이 여기저기서 반긴다. 제 이름 몰라도 괜찮다고, 제 이름 다정히 불러주지 못해도 미안해하지 말라고 하는 듯하다. 그래도 자기는 한 송이 꽃이니까하고 웃는 듯하다. 그 중에 날개 하늘나리의 화려하고 요염한 자태가 유난히 곱다. 한티재로 내려서니 왕원추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산객을 반기고. 반딧불이 생태학교 안내판은 여름 밤에 이 곳을 찾으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지고 ......

 

자리를 옮겨 계곡에서 알탕하고 하산주 한 모금하면서 후미를 기다리니  때를 늦지않게 도착하고, 그로부터 1시간여 뒤에 30Km 산악마라톤을 해낸 성호님이  도착한다. 대단한 주력에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30Km를 8시간에 달렸으니......

 

한티재 아래 계곡에서 수박과 참나무숯으로 구운 목삼겹으로 뒷풀이하고 안동을 거쳐 서울에 돌아오니 자정이 넘었다. 결국 무박2일 산행이다. 날개 하늘나리의 그 고운 모습이 머릿속을 맴돈다.

 

 

 

 

 날마다 산을 바라보면서 (日日見山),  그 높이를 그리고 (慕其高),  그 무게를 배우며 (學其重),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愛其麗), 또 그 변하지 않음을 벗한다(友其舊)         - 매월당 김시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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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일시] 2007년 7월 8일(일) 당일산행

[산행 구간] 애미랑재(광비령)-칠보산-길등재-한티재

[산행 거리] 18.0Km

[산행 시간] 6시간 15분(식사및 휴식 50분 포함)

[산행 참가] 11명

                 권오언,김길원,김성호,남시탁,박희용,손영자,송영기,이기호,이규익,이종만,이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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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행 기록]

 

0510 개포동 출발

0845 답운치(620m, 36번 국도) 도착(산악마라톤 3명 하차)

0905 애미랑재(광비령, 610m, 917번 지방도) 도착

 

0907 애미랑재 출발

0931 무명봉

1008 칠보산(974.2m) 정상

1016 칠보산 출발

1038 새신고개 도착

1048 새신고개 출발

1128 10지 춘양목

1146 깃재 도착(중식 25분)

1211 깃재 출발

 

1244 884.7봉 도착(삼각점 소천 25)

1249 884.7봉 출발

1329 850.5봉 갈림길

1342 무명봉

1412 방화선 시작

1420 612.1봉(삼각점 소천 463)

1431 길등재 도착 - 포장도로

1438 길등재 출발

1522 한티재(430m) 도착 - 88번 국도

 

18:55 한티재 출발

2040 서안동 IC

2103 풍기 IC

0005 개포동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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