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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10 - 맑은 바람 밝은 달 아래

月波 2007. 11. 26. 23:24

 

 낙동정맥 10 - 淸風明月, 맑은 바람 밝은 달 아래

 

 (1) 맑은 바람 밝은 달 아래

 

음력 시월의 보름달이 경북 영양의 화매재에 둥글게 떴다. 찬 기운이 느껴지는 늦가을의  새벽 바람이 마음을 맑게 한다. 맑은 바람에 밝은 달, 청풍명월(淸風明月)이다. 아, 얼마나 은은하고 넉넉한 풍광(風光)인가! 시선(詩仙) 이태백이 양양가(襄陽歌)에서 읊은 것처럼, 청풍명월을 벗하기가 이렇게 돈 한푼 드는 일이 아님(淸風明月不用一錢買)을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산자수명(山紫水明)을 느끼는 맑은 날의 산행이나 연하일휘(煙霞日輝)를 맛보는 해거름의 산행에 비해, 청풍명월(淸風明月)을 벗하는 야간산행의 운치를 즐기는 호사는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생각이나 의지보다 시절의 연(緣)과 선업(善業)이 쌓여야 하리라. 달빛과 이태백의 그림자를 쫓으며 황장재 가는 숲길로 빠져든다.(05:25)

 

 

앞 산마루를 오르내리는 보름달과 후래쉬 불빛이 때 이른 숲을 일깨우고, 나무와 나무 사이로 지나가는 조붓한 낙엽 밟히는 오솔길에는 거친 숨소리가 가득하다. 어둠 속에서 앞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고 불빛을 따라 발걸음을 재게 놀렸지만 작은 봉우리를 세 개쯤 넘고 점점 안개가 자욱해지는 아침이 되면서 일행의 리더 격인 선두를 놓쳐버리고 ............. <일행중 첫 알바를 한 김용X 님의 후기에서>

 

산에서 알바란 언제나 양념이고 그래서 묘미가 있다. 오랫만에 산을 찾은 시인은 새벽안개에 젖어 분위기를 따라 걷다가 길을 놓치고, 길만 보고 걷는 무덤덤한 사람들은 생각없이 땀만 흘린다. 그 생각없음이 무념무상인 이도 있고, 길에 오로지 마음이 얽매인 이도 있다. 그래서 생각의 있고 없음이 둘인 것처럼 얼핏 생각되지만 그 생각조차 끊으면 원래 하나이지 않던가. 

 

 

그렇게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찾아 달빛과 새벽안개가 교차하는 숲길을 청풍명월(淸風明月)을 화제삼아 길원과 둘이 걷는다. 청풍명월, 팔도의 사람들을 일컫는 4자성어중에서 충청도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처럼 부드럽고 고매함이 풍겨난다는 뜻일 것이다. 온유하고 느긋한 성품, 고상하고 풍류를 즐기는 고장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정도전이 태조 이성계에게 밝히는 조선 팔도의 인물평이나 그 후 350여년 지난 정조와 규장각 학사 윤행임(1762~1801)이 나눈 한담(閑淡)에 나오는 팔도 인물평은 시대를 넘어 충분한 납득성을 갖고있다. 특히,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경중미인(鏡中美人)에 태산준령(泰山峻嶺)과 풍전세류(風前細柳)의 이야기를 하며 새벽 숲길을 걷는다. 길원 님, 암하노불(岩下老佛)은 어떨까?

 

 

(2) 밝은 햇살 푸른 하늘 아래

 

 

황장재를 지나 일출을 맞이하고 햇살에 제 모습을 드러낸 숲에는 늦가을의 정취가 완연하다. 제 몸을 노랗게 물들인 이깔나무(낙엽송)의 모습이 참으로 곱다. 이깔나무가 소나무와 다른 점은 매년 그 침엽의 이파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떨어져서 이듬해 봄에 새잎을 돋는다는 점이다. 새잎에 자리를 넘겨야 함을 알기에 생의 절정에서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쏟아 스스로를 불태우고 새잎의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이깔나무를 보면서 미덕(美德)의 참 의미를 헤아려 본다. 곱고 아름다움이란 외관상의 빛깔이나 모양이 아니라 내면에 품고있는 자태(姿態)나 마음 씀씀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나무의 삶에서도 그런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수명이 다하면 솔방울을 많이 열어 다음 세대를 탄생시키는 소나무나, 산 아랫마을에 흉년이 들면 사람들 배곯을까봐 상수리를 주렁주렁 여는 졸참나무를 보면서 자연이 가르치는 아름다움의 참모습을 본다.

 

 

 

대둔산 갈림길에서 간식을 먹으며 한참이나 휴식을 취한다. 피어난 햇살에 눈이 부시고 하늘은 더없이 푸르다. 산 줄기의 정점(頂點)에 앉아 태양이 쏟아내는 무한(無限)한 빛과 하늘이 뿜어대는 푸르름의 극치(極値)를 경험한다. 극한의 묘미란 이렇게 절대의 모습으로 예고없이 가슴으로 밀려드는 것이니, 굳이 이 자리를 서둘러 떠날 이유가 없다.

 

푸른 하늘 아래 아침햇살을 받으며 얼마나 쉬었을까? 먼저 간 선두그룹은 소식이 없고, 뒤따라 오는 후미그룹도 보이지 않는다. 경주최씨묘에 넙죽 큰 절하는 최순X 님이 배낭을 꾸리자 모두 대둔산 갈림길을 떠나 먹구등을 향해 전진이다(08:55). 그런데,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다. 무전으로 선두와 후미그룹을 찾으니 그들은 모두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은 시차를 두고 대둔산 정상을 지나 알바를 하고 있다. 

 

 

선두그룹은 너무 진행을 많이 했기에 도저히 길을 돌릴 수가 없다고 무전이 날아온다. 새로운 길을 찾아 기대하지 않은 다른 산길을 걸으며 금은광이를 넘어 주왕계곡으로 가겠단다. 후미는 1명이 부상으로 이미 탈출을 했고 나머지 3명은 길을 되돌려 대둔산으로 돌아오겠단다.

 

길은 길에 연하여 있으므로 굳이 한 길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대간과 정맥을 하며 갈 길을 정하고 그 길을 따라 걸었다. 길을 잘못 들면 다시 돌아와 정한 길을 찾아서 갔다. 가다가 마음이 끌리는 곳이 있으면 잠시 외도를 할 법도 하련만 ....... 지난 4년의 산행은 어쩌면 그 길에만 얽매여 다닌 산행이 아닐까? 알바를 하고 가기로 한 길을 버리고 과감히 새로운 길로 접어든 그들이 오늘따라 부럽다.

 

 

먹구등을 지나 875봉 정상에서 먹는 점심은 여유롭기 그지없다. 알바했던 후미그룹이 합류하여 느긋한 식사를 즐긴다. 피나무재까지 가려던 당초 계획과 달리 느지미재에서 정맥산행을 접고 하산하기로 한 것이다. 알바를 하고 금은광이를 넘어가는 선두그룹과 주왕계곡에서 합류하여 학소대의 웅장한 암릉미에 빠져보기로 한 것이다.

 

느지미재의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숲길에는 낙엽이 발목까지 쌓여있다. 주왕계곡의 산불감시 단속문제로 피나무재까지 정맥산행을 강행하자고 잠시 논의하다가, 부상이 있는 사람도 있고하여 전원 주왕계곡으로 하산하기로 뜻을 모아 내원동 계곡으로 하산을 시작한다(12:00). 

 

아이쿠, 그러면 다음 구간의 정맥길 어프로치는 어떻게 하지?  3시간이 더 걸리는 어프로치를 생각하니 잠시 머리가 띵해진다. 그래, 차라리 다음 번에는 거꾸로 피나무재에서 북으로 올라오다가 느지미재에서 길없는 길을 따라 동쪽으로 하산하여 후포항에서 팔짝 뛰는 생선회나 한 접시할까? 

 

 

(3) 천인단애 학소대의 바위 아래

 

 

느지미재에서 하산하며 내원동 계곡에서 잠시 족욕을 즐긴 후 정찰조를 앞세우고 제 3폭포를 향해 간다. 그런데, 정찰조가 길없는 길을 따라 다시  산을 오른다. 능선을 넘어 다시 계곡으로 내려간다. 길이 없어도 길원이 앞장서 지나가면 길이 된다. 최순*은 장경인대 부상으로 힘들어 하고 석전경우(石田耕牛)마냥 신정*는 배낭을 받아메고 도와준다. 말하지 않아도 그윽한 눈길로 알아차리고 서로를 배려하니 함께 산행을 하는 맛은 여기에도 있다.

 

금은광이 갈림길 초소를 향하다 만난 공원관리소 직원은 사뭇 진지하고 단호한 어조로 비지정 탐방로로 접어든 나무람을 하지만, 한편으로 다친 사람은 없는지 걱정해주니 사람의 향기가 느껴진다. 고의성의 유무를 떠나 상대를 생각해주는 마음은 여기서도 찬사를 받는다. 1시간 가까운 우회산행으로 우리가 범한 우(愚)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치룬 것일까? 근심을 털고 제 3폭포, 학소대로 향한다.

 

학소대의 천인단애, 한없이 작은 나를 본다

 

시루봉, 떡시루가 아니라 사람의 형상 같은데 .....

 

장군봉에서 뻗어나온 능선과 하늘, 그 고혹적인 조화 

 

대전사의 감나무, 그 날의 자화상같은 감이 주렁주렁

 

산에서 각자의 길로 접어들었던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길을 걷고, 올 때처럼 한 무리로 주왕산 입구로 모인다. 각자 걸었던 길은 당초 계획했던 길도 있고, 의도하지 않았던 탈출의 길도 있으며, 잘못 든 알바의 길도 있다. 어느 길이든 각각의 의미가 있다. 그 길에서 충분히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았으리라.

 

주왕산 계곡을 출발하려는데(15:30), 길가의 감나무에는 잘 익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각자의 길을 따라 걸은 후에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옹기종기 모인 우리들의 자화상처럼 느껴진다. 저 감처럼 우리들 마음도 오늘 하루 가을햇살에 잘 익었을까?

 

 

2007년 11월 26일

주왕산을 다녀와서

한티골에서 월파(달무리)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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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세부기록

 

[언   제] 2007년 11월 25일(일) 무박2일

[누구랑] 강마 낙동돌이 18명

     - 권오언,김길원,김성호,박희용,백호선,손영자,신정호,이상호,이창용,조성희,최순옥

     - 김영이,김용광,남시탁,이성원,장재업,정제용,지용

 

[어디를] 화매재-4.2km-황장재-3.7km-대둔산-5.4km-먹구등-2.6km-느지미재 : 15.9Km 

[시간은] 정맥 종주 6시간 35분(중식, 휴식 1시간 15분), 진출 3시간 30분(우회산행 50분 포함)

 

   2320  서울 대치동 출발

   0030  중부내륙고속도 감곡나들목 
   0130  중앙고속도 단양휴게소 
   0145  단양휴게소 출발
   0235  서안동 나들목

   0420  화매재 도착(조식, 출발준비)

 

   0525  화매재(330m, 917지방도) 출발

   0650  황장재(350m, 34번국도)

   0730  갈평재[↓황장재2km, ←(좌)갈평지2.4Km, →(우)안하곡1.8km,↑먹구등 6.9km]

   0750  이정표[↓황장재 3km, ↑먹구등 5.9km] 
   0835  대둔산 분기점(경주최씨 묘, 20분 휴식) 
           - 대둔산(905m) 정상/태행산 분기점 왕복 생략, 선두 및 후미 그룹 알바후 복귀

   0855  대둔산 분기점 휴식 후 출발 
   0945  새끼 통천문 
   1014  두고개(10분 간식)
   1024  두고개 출발 
   1034  먹구등(846.4m)/삼각점  
   1055  명동재

   1100  875봉(헬기장), 중식 45분
   1145  중식 후 출발

   1200  느지미재(650m)

 

   1200  느지미재 출발

   1250  내원동 계곡(족욕 20분)

   1320  내원동 마을(분교터), 우회산행 실시

   1415  내원동 길 복귀

   1420  국립공원 초소(금은광이 갈림길)

   1513  대전사

   1530  주차장

 

   1725  달기약수 저녁식사후 출발

   2030  제천 나들목

   2140  양평(42번, 37번 국도 경유)

   2225  개포동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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