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없는 길을 가다 - 용아장성(龍牙長城)
1. 산행개요
(1) 언 제 : 2007년 10월 14일(일)
(2) 어디로 : 백담사-영시암-수렴동산장-용아장성-봉정암-구곡담계곡-수렴동계곡-영시암-백담사
(3) 누구와 : 길원, 성호, 오언, 달무리 (4명)
(4) 어떻게 : 걷고, 기고, 매달리다가 달리면서 ......
(5) 날씨는 : 내내 청명한 가을하늘, 잠시 천둥속에 설악의 첫눈을 만나고, 다시 영롱한 햇살을 안으며
2. 산행후기 - 길없는 길을 가다
(1) 용아예찬 (龍牙禮讚)
용아(龍牙)의 첨봉(尖峰)을 오르내리며
천상(天上)에서 보낸 하루가 아직도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 장쾌한 암봉과
오금저리도록 짜릿한 칼날 능선에서 맛본 전율의 시간을
어찌 짧은 언설(言說)로 이루 표현할 수 있으랴?
용아(龍牙), 용의 어금니를 닮아서 너를 그렇게 부른다고 했던가?
너의 뾰족한 봉우리는 영시(永矢)처럼 끝없이 하늘을 찌르고,
너의 칼날같은 등마루의 아찔함은 세상의 번뇌를 한 순간에 끊게 하여,
속인(俗人)으로 하여금 시공(時空)을 초월하게 하니
속(俗)과 선(仙)이 둘이 아니더라.
어느 장인(匠人)의 예기(藝技)로 그대를 다시 빚을 수 있겠는가?
너의 허리를 감싸는 운무(雲霧)가 아니어도,
절정을 향해 �게 타오르는 너의 가슴이 아니어도,
장성(長城)에 서면 스치는 한 줄기 바람만으로 이미 선인(仙人)이 되더라.
속인(俗人)이 선인(仙人)되어 너와 보낸 하루였노라.
가야동과 오세암, 공룡능선이 왼쪽을 지켜주고
수렴동과 구곡담, 귀떼기청이 오른쪽을 보살피니
수십길 절벽에서 두 다리 후들거려도 마음만은 천국이었노라.
뜀바위, 오체투지의 개구멍바위, 턱바위, 수십미터의 직벽하강도 추억으로 치환되고
공룡능선이 가까이 마중하니 설악의 첫눈이 봉정암 사리탑에 촉촉하더라.
용아(龍牙), 너를 두고 속(俗)으로 돌아와도
바위틈에 �기고 멍든 몸에서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가 솟구치니
모두 너의 혜량이 아니겠느냐?
잘 있거라, 내 다시 가리니.
(2) 길없는 길을 가다
용아(龍牙)로 드는 길은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마음 한 자락에 늘 용아(龍牙)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생각을 구체화시키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용아(龍牙)는 그리움의 대상으로 가슴에 파묻고 있는 젊은 날의 연인같은 존재였으리라. 문득 바람이 불고 그 바람을 따라 분단장도 하지않고 연인을 만나러 나선다. 그 간의 애뜻한 연모의 정만 믿고 옷매무새도 고치지않고 길을 나선 것이다.
용아(龍牙)로의 초대가 있어도 마음 한 켠에는 수렴동에 가는 일만으로도 넉넉하다고 믿고 있었다. 산은 꼭 들어야 맛인가?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좋고, 그 옆구리에서 하룻밤 기대고 잘 수 있다면 더욱 좋지 않은가? 용대리 북쪽 진부령 휴양림에서 기지개를 켜며 운무(雲霧)가 피어나는 설악의 아침을 맞는다. 설악이 농염한 자태로 속곳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용대리-백담사-백담산장은 사찰업무(?) 차량에 편승하고, 영시암(永矢庵)은 달려서 간다. 영시(永矢), 영원을 향해 내닫는 화살처럼 길원이 앞장서 달리니 모두 따른다. 봉점암에서 하산하는 신도들이 꼬리를 물고, 우리는 그 길을 거슬러 수렴동산장으로 달린다. 영원한 후미, 길원이 오늘은 선두대장이다.
수렴동산장에서 호흡을 고르며 잠시 좌고우면, 길없는 길로 들어선다. 길이 없어도 길원이 가면 길이되고, 길이 보여도 길원이 밟지 않으면 길이 아닌 길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 그렇게 그 길을 가기로 암묵적 약속이 이루어지고, 9개의 용아(龍牙)를 넘어 봉정(鳳頂)에 이를때까지 길없는 길을 가는 것이다.
(3) 선인(仙人)이 따로 있던가?
옥녀봉에 올라서야 가슴을 쓸어내리고, 뜀바위는 대표선수에 맡겨 문자 그대로 건너뛰고, 5m 수직벽을 자일없이 혼자 하강하니 다시 오르막. 고갯마루에서 잠시 수렴동쪽으로 알바하니 수십길 낭떠러지가 길을 막고, 탈출로는 오직 낙하뿐이라더니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다.
개구멍바위의 오체투지, 삶과 죽음이 한 치 차이에 불과하다. 이 바위를 통과하지 못하여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영혼을 위해 동판(銅板)이 암벽에 새겨져 있다. 자연과의 동화(同和)를 추구하며 암벽에 매달렸던 인간에게 용아(龍牙)는 동화를 거부했던 것일까? 동화가 아닌 극복의 대상으로 삼은 응징이었을까? 낙타등을 타고서야 그 영혼을 위해 묵념한다. 오세암에도 단풍이 내리고 있다.
가야동 하늘에는 헬기가 분주히 오가며 뭔가 짐을 나르고 있다. 영시암의 감자공양이라는 얘기와 수렴동의 공사자재라는 추측도 있지만, 오세암 만경대에 오른 개미군상과 어렴풋한 중청의 지붕에 이내 관심을 뺏긴다. 칼날같은 용아의 암릉이 시작된다. 발아래로 아련히 수렴동 계곡에도 단풍이 물들고 있다.
용아의 3봉을 넘어 4봉으로 가는 칼날같은 암릉, 전후좌우 산상산하가 첩첩비경이다. 비록 오늘 해질 때까지 봉황의 정수리(鳳頂)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여기서 푹 머무르고 싶다. 이구동성으로 휴식 ! 새벽에 성호와 길원이 준비한 도시락도 진수성찬이니 마음도 배도 풍성, 풍성 .......
앞뒤로 용아가 첨봉(尖峰)을 이루며 장성(長城)처럼 뻗어있고, 좌우로 공룡능선과 귀떼기청이 위에서 굽어살피고, 좌우 아래로 가야동과 수렴동 계곡이 굽이굽이 꼬리를 이어가고 있노라니, 오세암에서 가야동을 건너온 바람이 볼을 어루만지니 세욕(世慾)도 상심(傷心)도 없다. 신선이 따로없다.
충분히 쉬었으니 가야지. 앞으로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할지 가늠이 안되지만, 갈수록 용아의 비경이 우리를 맞으리니 한 곳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두 발로 암봉을 오르는 일도, 네 발로 칼등을 기는 일도 이제 점점 익숙해져간다. 중청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공룡이 그 어깨를 견주기 시작한다.
(다음 편에서 계속)
(4) 용의 어금니, 어디까지 왔니?
(5) 빗속의 직벽 하강, 죽다 산 목숨
(6) 햇살에 반짝이는 용아와 공룡
(7) 1일3찰 참배(봉정암, 영시암, 백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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