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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12 -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빛나고

月波 2008. 2. 4. 02:07

 

낙동정맥 12 -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빛나고

 

 

(1) 다음에는 KTX를 탈거야

 

청송에서 포항으로 접어드는 구간을 건너 뛰어 양산의 천성산으로 가자는 의견에 모두 반기는 눈치다. 지난 주 허벅지까지 빠지는 심설산행에 지친 몸을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풀고싶은 뜻일까? 글쎄, 그 곳에도 산은 높고 백설이 난무할텐데 .......하지만,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던 오탁번 시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으면 그 또한 좋지 않을까?

 

야간 우등고속버스로 떠나는 낙동길, 당초 예상했던 일이지만 새로운 시도의 시작임이 분명하다. 낙동에 접어들며 했던 몇몇 다짐이 있다. 마루금에만 얽매이지 말고 산 아래 마을을 두루 섬기면서, 빠르거나 늦음에 연연하지 말고 산세와 기후의 변화에 순응하면서, 교통편의 안락함에만 빠지지 말고 다양한 어프로치 방법을 찾아가면서 ........

 

첫 시작은 단체산행팀 버스에 몸을 맡겼지만 이내 단독 전세버스로 옮겨타고, 다시 바꾼 미니버스로 험한 고갯길을 오르내리는 애환이 몸에 젖을 무렵 승용차로 바꿔 탔었다. 오늘은 부산행 야간 우등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어느 교통편에 비해 편안하다. 소풍 떠나는 아이처럼 약간은 덜뜬 마음에 설레이기도 한다. 부산 발령이 난 길원이 부산에서 어프로치용 승용차를 대기중이다. 다음엔 KTX를 타 볼까?

 

 

 

(2) 어둠 속의 새벽골프

 

양산 통도사 입구 지경고개에서 첫 걸음을 내딛는다. 아직 어두운 새벽이지만 차가운 공기가 싫지않다. 통도사 골프장으로 들어선다. 통도CC, 페어웨이가 넓고 길지만 좀 단조로운 옛날식 골프장이지. 그린의 언듀레이션이 별로 없어 밋밋하고, 그래서 힘으로, 거리로 승부하던 젊은 시절에 꽤 호쾌한 스윙을 즐겼던 곳이다. 오늘 통도사CC의  새벽골프는 어떠할까?

 

통도CC의 골프는 특이하게 시작된다.  라이트도 켜지않은 어둠속의 골프는 1번홀이 아닌 북14번 홀에서 스타트하고, 4인 1조가 아닌 5인 1조 플레이다. 물론 캐디는 없고 카트대신 등에 배낭을 짊어졌다. N14번 Hole의 장쾌한 드라이브에 이은  N15, N16을 거쳐 CC 진입도로를 가로질러, 남코스로 이동한다. S4, S5, S6, S7 Hole에서 무난히 Par Save를 하면서 새벽골프는 점점 열기를 더한다.

 

그런데, S14/S13/S12 Hole을 좌측에 끼고 돌아가는 길에서 연속 OB, 연속 2벌타이니 보기 플레이도 힘들겠다. 공이 날아간 방향(길)을 찾을 수 없다. 잠시 공(길)을 찾느라 우왕좌왕, 간신히 S11과 S16사이에서 공을 찾아 CC를 벗어나고, 342.7봉 능선으로 향하니 아침이 밝아온다. 2시간에 걸친 통도사CC 새벽 골프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으리라. 길없는 길에서 푹신한 페어웨이 잔디를 밟으며 겨울 새벽골프의 운치를 다시 맛보기는 쉽지 않을테니 .....

 

 

 

 

 

(3)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더욱 빛나고

 

통도CC를 벗어나 잠시 숲길을 걸으면 삼덕공원묘지가 길을 막는다.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과 무덤, 그 망자(亡者)들의 쉼터를 거슬러 가파른 길을 뚜벅뚜벅 오른다. 높이 올라갈수록 하늘에 가까와진다. 하늘에서 쉬고 있는 영혼들이 내려오기 편하라고 사람들은 이렇게 높은 곳에 층층이 묘지를 만드는 것일까? 살아있는 자들은 어떡하라고? 저 멀리서 영축산이 천길이나 푸르게 굽어보고 있다.

 

정족산(鼎足山)에 오르면 암봉(岩峰)과 산야(山野)가 백설(白雪)로 뒤덮혀 이루는 합일(合一)의 경지를 볼 수 있다. 천성산(원효산)은 머리에 흰 천을 두르고 아련히 서있고, 그 곳으로 향하는 능선과 지능선에도 한겨울의 결빙이 그대로 존치한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인다"던 조정권의 시(詩), 산정묘지(山頂墓地) 몇 구절이 뇌리를 맑게 한다.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 얼음처럼 빛나고, /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

     가장 높은 정신(精神)은 /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

     산정(山頂)은 /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 빛을 받들고 있다.

 

얼어붙은 무제치늪, 남암지맥 분기점을 지나 주남고개(안적고개)에서 때이른 점심을 챙긴다(1030). 천성산을 향해 나서는 길, 이제부터 겨울산행이다.

 

 

 

 

(4) 천상의 누각이 저러할까?

 

주남고개에서 1시간 30분여 눈길을 걸었을까? 제 2천성산에 오른다. 지근거리에 천성산(원효산)이 햇살을 받아 수정처럼 빛나고 있다. 선두의 오언과 성호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빨리 천성산(원효산)에 이르르고자 함인지, 아직 까마득한 30Km의 눈길 주파에 넋이 뺏긴 것인지 거침없이 내닫는다. 산을 카메라에 담는다. 영원히 잠들지 않고 우뚝 서서  나의 정신을 일깨워줄 천성산을 마음에 담는다.

 

조정권 시인이 외치던 노래가 다시 들린다.

 

     만일 내 영혼이 천상(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天上)의 일각(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동렬(同列)에 서는 것.

     그러나 한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군사시설 접근통제로 천성산(원효산) 정상 출입로가  막혀있어도, 꽁꽁 얼어있는 그 산정(山頂)은 높은 정신을 추구하는 결기를 뿜어내고 있으니 산객(山客)은 그로써 만족하리라. 정상 앞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을 택해 우회전하는 성호와 오언을 따라 휴식도 없이 천성산을 감싸돈다. 늦게 온다고 그들이 화났나 봐? 나는, 나는 시인의 노래를 읊으면서 "나뭇가지마다 순은(純銀)의 손끝으로 빛나는 눈내린 숲길"에 멈추어 서고 싶은데 .......

 

 

 

 

(5) 화엄늪의 도룡뇽

 

천성산(원효산)을 감싸고 오른쪽으로 돌자 산정의 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눈 덮힌 평원에는 길따라 출입통제의 나무울타리가 이어진다. 원효대사가 제자들을 가르치고 수행시켰다는 전설이 전해져오는 곳, 산정의 습지에 도룡뇽을 비롯한 여러 자생 동식물이 있어 생태계 보존이 세상의 화두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안내판에 화엄늪이라 새겨져 있고, 늪을 지키는 작은 초소도 보인다.

 

길을 되돌아 본다. 천성산(원효산)이 흰 눈에 소복히 덮혀있다. 저 정상으로 향하는 높은 정신은 무엇일까? 저 추운 곳으로 향하는 높은 정신은 과연 무엇일까? 천성산을 관통하는고속철도로 인해 늪지가 훼손될까봐 도룡뇽 소송을 하고 단식투쟁을 하던 시민단체와 지율스님의 정신은 무엇이며, 과연 그것이 추운 곳으로 향했던 맑은 정신일까?

 

자연의 훼손이 없는 개발은 과연 가능한가? 애시당초 불가능한 명제가 아닌가? 다시 천성산 정상부를 새하얗게 뒤덮고 있는 얼음과 눈덩어리를 바라본다. 수정처럼 맑은 지율스님의 눈망울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그 위에 도룡뇽을 애도하는 하얀 소복이 천성산을 뒤덮고 있다. 그 맑은 눈망울과 흰 소복이 오버랩된다. 그래도 고속전철은 건설되어야 한다니 .......

 

간식을 챙겨먹고 길을 나서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다. 이 길이 아닌데 ...... 화엄늪은 낙동정맥 길이 아니었다.  이미 상당히 정맥길을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천성산(원효산) 정상 직전에서 좌회전하여 원효암 방향으로 갔어야 했는데 .....  대신 화엄늪에서 도룡뇽과 자연생태계를 살펴볼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6) 어? 일찍 왔네요 !

 

알바는 잃는 것이 아니라 새 것을 얻는 과정, 시간허비가 아니라 새 길의 개척투자라는 자위에도 불구하고, 원효암을 거쳐 낙동길에 회귀했을 때는 일행들의 심신은 지쳐 있었다. 천성산(원효산) 정상은 통제로 못오르고,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산 9부능선을 완전히 한 바퀴 돌고나니 모두 허탈한 표정이다.

 

묵묵히 물 한모금 마시고 원효암에서 내려가는 도로를 따라 걷는다. 잠시 숲길에 들고, 용천지맥 분기점을 거쳐 정맥길이 군부대 통제로 다시 우회하는 도로에 이르러 모두들 결단을 내린다.(14:50) 남락고개까지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하기 어렵고, 그 중간 탈출로가 마땅하지 않으니 대석리로 하산한다.(16:00) 해운대나 광안리 바닷가에서 생선회나 한 접시 할 요량으로 걸음은 빨라진다.

 

그런데, 대석리로 마중 나왔던 차량이 홍룡사로 올라가다 진흙길에 빠져 함께 끄집어내고 노포동에 도착하니 고속버스 예약시간까지 2시간 남았다. 해산물 요리에 반주를 좌우로 333 흥겹게 나눠마시고 서울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를 막 넘겼다. 새벽 0시 10분이다. 집 사람 왈, "어? 일찍 왔네!"

 

음..... 일찍이라구? 새벽 일찍?  기대했던 것보다 빨리 도착했다는 얘기다. (넉넉히 시간을 잡아) 새벽 1시쯤 도착한다고 미리 전화했는데, 예상보다 1시간쯤 빨리 도착했으니 옳은 말이다. 수능을 치르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아들녀석이 옆에서 지켜보다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낸다. 저 녀석이 아빠의 (넉넉한) 속셈을 눈치챈 것일까? 녀석아 ! 약간의 융통성이 있어야 이렇게 늦게 다녀도 생생(?)한거야. 허허허..... 한 수 배워두라구.

 

 

 

(7) 말미에 부치는 단상(短想)

 

지난 겨울은 시(詩, 時, 試)에 얽매여

오그락 가르락 희미한 기억 속에 

읊조리고, 기다리고, 다시 시작하는 일들을 반복하면서

일상의 분주함을 핑계로 속으로는 침잠하고 있었다.

 

내려서지 못하는 길

이미 벗어나고 싶은데, 그 길을 고집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 길을 가야하고 가고 싶다.

봄이 온다. 봄 맞으러 가야지.

진달래 봄꽃 가득한 들녘으로, 무거운 짐 벗어러 가야지.

 

웜효는 세상 속에 있었고, 천성은 그 터전의 하나였다.

천성에 닿아 원효의 체취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미 얻은 것이다.

돌아감을 아쉬워하지 말고

원효라 부르든 천성이라 하든 나름의 길을 가면 되는거야.

수영아, 남천아, 해운아, 광안아

어렴풋이 마음으로 그리지만 기다림의 덕이 더 필요한가 보다.

 

그리고 아들아, 대학 입학을 축하한다.

노력한 보람으로 뜻했던대로 최고를 이루었으니 가족 모두의 기쁨이다.

이제 본격적인 학문의 길로 접어든다는 사실을 알지?

때 맞추어 지리산으로 함께 들자꾸나.

남명을 비롯한 옛 선비들의 혼을 함께 느껴보자.

 

 

2008년 2월 4일

월파(달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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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3일(일)

권오언, 김길원,김성호,박희용,송영기

지경고개-(3.6Km, 통도CC통과)-342.7봉-(3.2Km, 솔밭산 삼덕공원묘지)-정족산(700m)-1.4-대성재-1.7-안적고개-3.8-천성산-2.8-원효산(922.2m)-2.0-도로/정맥 갈림길-----(3.5)-(대석리)

 

0530 지경고개

0730 통도CC S16 에서 342.7봉으로, 노상산을 피해 9H 골프, 어둠 속에

0800 삼덕공원묘지 입구

0920 정족산(솥발산)

0940 남암지맥 분기점, 무제치 늪

1030 주남고개(안적고개), 중식 20분

1205 제2 천성산(811.5m)

1245 천성산(원효산, 929.2m) 갈림길

1300 화엄늪 - 알바는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

1405 원효암

1410 낙동정맥 복귀

1438 용천지맥 분기점

1450 도로/정맥 갈림길 (도로따라 하산)

       - 군부대 통제로 정맥이 우회하는 곳과 원효암/천성산 군부대 오르내리는 도로가 만나는 곳

 

1555 군부대 도로통제선

1600 대석리 하산완료

       0900, 1000, 1100, 1300 원효암행 버스 출발 055-375-4111

       진흙에 빠진 승용차를 구하고

1650 남산동 맛집으로

1930 서울행 우등고속, 그대로 꿈나라

2350 서울 강남터미날

0010 역삼동

 

 

 

[당초계획]

지경고개-(3.6Km, 통도CC통과)-342.7봉-(3.2Km, 솔밭산 삼덕공원묘지)-정족산(700m)-1.4-대성재-1.7-안적고개-3.8-천성산-2.8-원효산(922.2m)-4.5-596.6봉-3.0-운봉산-6.0-남락고개(1077지방도) : 총 30Km

 

[통도CC통과 길찾기 유의사항]

    - 지경고개, 통도CC  N14 들어서 직진, N14/N16 거쳐 CC진입도로 건넘, S4/S5/S6/S7 가로지름, S14/S13/S12 Hole을 좌측에 끼고 돌아감, S11과 S16사이의 능선에서 CC를 벗어나 342.7봉 능선으로 향함(골프장 페어웨이를 벗어나 숲길에 접어들어 능선에 오르면 임도가 있음).

 

N13 과 N 17 지나 노상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답곡리 계곡에 수로터널을 만들어 인공조성한 능선임.

즉, 답곡리에서 흐르는 물은 N13과 N17 밑을 관통하여 태화강으로 흘러가므로 노산산 길은 정맥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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