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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태백 - 대간과 낙동, 그 분수령에서

月波 2008. 2. 17. 23:02

 

다시 찾은 태백 - 대간과 낙동, 그 분수령에서

 

 

 (1)

겨울에 태백을 찾는 이유가 여러가지 있다. 겨울의 태백, 오랜 세월 탄더미 쌓였던 곳에 하얀 눈세상이 펼쳐지면 시인처럼 한 점 눈송이가 되어 날고 싶은 곳이다. 그곳 매봉산 천의봉(1303m)에 오르면 검은 탄광촌이 밝은 레져도시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이 분기하며 한강, 낙동강, 오십천이 분수령을 이루는 그 곳(1145m)을 설한(雪寒) 속에 다시 찾는다. 

 

원시림이 매몰될 때 땅이 꺼지는 소리,
천년 동안 땅에 묻혀
딴딴한 석탄으로 변모하는 소리,
캄캄한 시간 바깥에 숨어 있다가
발굴되어 건강한 탄부(炭夫)의 손으로
화차에 던져지는,
원시림 아아 원시림 

 

오탁번 시인은 순은(純銀)처럼 빛나는 눈 덮힌 겨울을 묘사하기 위해 석탄더미 가득한 풍경을 전주곡처럼 이렇게 울리고 있다. 그 원시림에서 환영(幻影)처럼 피어나는 은빛 세상을 보러 태백으로 간다. 그 고운 빛깔에 스스로를 몰입시키러 그 길을 간다. 30년 지기(知己)의 낙동 첫나들이에 동행하는 즐거움 또한 이루 헤아릴 수 없다.

 

 

 

(2)

서울에서 태백으로 가는 길은 옛날에 비해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멀고 험하다. 최근 제천에서 영월까지 자동차 전용도로가 개통되어 시간이 꽤 단축되었지만, 상동을 지나면 협곡과 산 뿐 부쳐먹을 밭뙈기 한 평 찾기 힘들다. 산과 산 사이에 빨래줄을 걸어도 될 만큼 좁은 협곡을 따라 자동차 전용도로 개설공사가 한창이다. 몇 년 뒤면 거리는 가까워지고 청정(淸淨)은 멀어지고 .......

 

정암사 입구를 지나 싸리재를 오르는데 해발 100m 오를 때마다 길가에 고도표시가 있다. 자동차로 해발 100m를 오른는 것은 순식간이다. 믿기지 않았는데,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보니 내리막길이 장난이 아니다. 사물이 보는 시각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나 싶다. 피재(삼수령)에서 배낭을 꾸려 낙동 분기점인 매봉산 천의봉을 향해 눈길을 오른다. 

 

 

낙동분기점, 정산(正山)의 낙동 첫 걸음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는 참 섬세하고 정감이 넘친다. 혼자서 과일과 생선포를 준비하고 제주(祭酒)로 맑은 술까지 준비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곱게 접은 축문(祝文)을 꺼내 읽는다. 그래, 자네의 법명처럼 언제나 바른 뫼(正山)가 되거라.

 

유세차 무자년 정월 열하룻날,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이 가지치는 매봉산 천의봉 분기점에서 정산과 월파가 엎드려 천지신명께 고하나니 ......... 낙동길 무탈하게 하여주옵시고 .......  맑은 술과 음식을 올리오니  정성을 헤아려 부디 흠향하소서.

 

작년 봄 내가 낙동정맥을 시작할 때 정산은 발목부상에도 불구하고 피재(삼수령)까지 함께 와서 제주(祭主)노릇을 하며 낙동의 장도를 빌어주고, 통리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우리의 하산을 기다리는 따뜻한 감성을 보여주었다. 다행히 몇 개월 후 부상에서 회복되어 낙동길에 합류했으나, 매봉산의 첫 출발산행을 하지 못핸 것을 늘 아쉬워했는데 오늘 그의 첫 구간 보충산행에 동참하니 어찌 아니 즐거우랴.

 

 

 

(3)

둘이서 조촐히 산제를 지내는데 마침 울산에서 왔다는 여성산꾼 한 분이 증인이 되어 주었다. 덕분에 둘만의 산행에 둘이 함께 사진을 찍는 호사까지 누렸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천의봉에서 삼수령 목장 울타리를 따라 작은 피재로 내려서는 낙동의 첫걸음은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에 길은 커녕 앞서간 발자국 하나 없으니 오로지 지형을 따라 러셀을 하며 길을 만들며 내려온다.

 

작은 피재에서 잠시 망설이다 대박등을 향해 길을 나선다. 눈을 헤치며 힘들고 더디게 걷지만 쉽게 길을 포기하지 못한다. 이렇게 푸르른 하늘아래, 온 세상을 새하얗게 물들이고 있는 태백의 마루금을 밟으며, 아무런 사람의 방해 없이 30년된 지기 둘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러셀을 번갈아하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가 때로는 이심전심 눈빛만을 주고 받으며 .......

 

둘만의 그 심설산행의 느낌은 글이 아니라 정(情)으로 가슴에 묻어두고 가끔씩 마음으로 꺼내봄이 좋지 싶다. 묻어둔 이야기, 아껴둔 이야기를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다. 정산, 우리는 그저 시인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것으로 족하지 않았는가?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

나뭇가지마다 순은의 손끝으로 빛나는
눈내린 숲길에 멈추어 선
겨울 아침의 행인들.

 

순은(純銀)으로도 충분한데 햇살에 눈부시도록 빛나는 눈덮힌 산야를 헤집고 걷는다. '대지(大地)의 고백(告白)'이나 '위대한 적막(寂寞)을 읊조리지 않아도 된다. 도회의 눈이야 금세 내리고 때로는 금세 녹아버리기도 하지만, 이 겨울 태백은 봄을 기다릴 줄 아는 여유가 있다. 산과 들, 마을과 길의 경계를 덮으며 온 세상을 낮고 가깝게 만든다. 그래서 그 눈은 서로를 껴안아주고 받아주며 대지를 감싼다.

 

 

 

(4)

산행을 마치고 통리에서 피재로 되돌아오는 택시속에서 태백의 산 그림자를 본다. 당초 계획했던 검룡소를 찾아가기는 늦었지만, 길을 서두르면 이 땅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기차역(추전역)과 정암사의 수마노탑은 참배할 수는 있을 것이니 다행이지 싶다. 

 

추전역, 비록 그 높이가 높다해도 기차길은 곧고 길게 평지처럼 뻗어 있다. 그 몸이 높아도 세상을 감싸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넓고 평평하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의미있는 기차역이 아니라, 높은 비탈에서도 널리 세상을 아우르고 있으니 으뜸이다.

 

정암사 적멸궁을 참배하고 길을 돌아서는데 수마노탑 하늘에 보름을 기다리는 달이 둥그렇게 떴다. 산골의 저녁 6시 20분, 산에는 달이 일찍 뜨는가? 다시 가는 백두대간 Best 10에 낙동 다시찾기 첫 구간을 동시에 하며 산 아래 마을을 두루 둘러보았으니 오늘 하루가 넉넉하다.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의 쿵쾅거리는 물소리를 듣고, 가장 높은 포장도로인 만항재에서 별빛을 헤아리는 호사는 언제 누려볼까?  잠시 꿈속에 젖는데 몸은 내 머무를 곳으로 돌아와 일상으로 빠져든다. 정산, 작년 이맘 때 남설악 쇠나드리에서 하룻밤 이후 꼭 1년만에 이룬 둘만의 심설산행이었구나. 자네는 오늘 하루 어떠했는가?

 

 

 

 2008년 1월 17일

 태백을 다녀와서

 월파(달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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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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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2008년 2월 17일(일), 정산과 월파의 눈꽃세상 찾아가기

 

0610  역삼동 출발

0800  제천휴게소(20분)

0937  사북(20분,순두부촌 592-7157, 조식)

1008  정암사 입구

1017  싸리재터널

1036  피재(삼수령, 10분 준비) 도착

1120  낙동 분기점 도착, 산제

 

1135  낙동분기점(1145m) 출발

1200  분수령 목장(10분 사진촬영)

1220  작은피재

1256  고산식물 재배지(갈림길 전)

1312  대박등(930.8m)

1336  자작목이(10분 간식)

1426  서미촌재(10분 휴식)

1510  송전탑(5분 간식)

1530  유령산(楡嶺山, 932.4m, 5분 휴식)

1546  느릅재(楡嶺, 5분 휴식)

1609  전망대(박씨묘 전, 문관석)

1620  우보산 갈림길

1648  통리역

 

1700  피재

1726  추전역(5분 탐방)

1754  정암사(30분 참배, 수마노탑 및 적멸궁)

 

1824  정암사 출발

1940  동강휴게소(20분 석식)

2100  여주 분기점

2200  역삼동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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