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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 18 - 7월의 태양이 작열하는 숲길에서

月波 2008. 7. 14. 21:56

 

낙동 18 - 7월의 태양이 작열하는 숲길에서

 

 

(*) 2008년 7월 13일(일)

(*) 땅고개(321m)-단석산(827.2m)-소호고개(550m)-백운산(907m)-소호령(670m)-소호리 임도 : 22.2Km

(*) 산행 10시간25분(휴식, 식사, 수면 3시간 10분 포함), 진출 55분

(*) 제용, 성호, 길원, 오언, 정산, 월파, 오리, 성원

 

 

 

새벽의 경주 팔우정 해장국 거리, 한동준의 감미로운 음악이 환상처럼 귓전을 맴돈다.

     아침이 오는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어

     내 품안에 잠든 너에게 너를 사랑해 ~~~

 

새벽 3시를 갓 넘긴 시각, 팔우정 거리에는 해장국집을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새벽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손님 많은 집을 골라 드는 것은 기본상식. 막걸리 한 사발에 해장국 한 그릇을 뚝딱하니, 소욕지족(少欲知足)이라 더 이상의 바램이 없다. 오언의 도착을 기다리는 사이 성원은 잠시 눈을 부치고, 나는 옛 추억을 더듬는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어제와 오늘이 공존하는 순간이다. 

 

20년 쯤 전인가? 30년지기 친구 열 가족이 토함산의 신년 해돋이를 보러 아이들을 데리고 경주에 모였었지. 추위속에 꽁꽁 언 손을 꼭 잡고 일출을 기다리던 늦깍이 신혼부부 정산, 팔우정 거리의 해장국과 황남빵에 마냥 즐거워하던 아이들, 그 때의 아이들은 대학생이 된지 오래이고 신혼부부는 중학생 아이들을 두고 있다. 세월은 참 빠르기도 하다.

 

거꾸로 가는 지하철을 탄 탓에 예약했던 버스를 놓쳐 홀로 늦게 도착한 오언의 표정은 새벽안개 걷힌 산야처럼 깔끔하고 해맑다. 그래서 그가 좋다. 경주로 마중나온 길원의 RV는 만원이다. 낙동길에 세번째로 건천의 나드리 김밥집에 들러(04:35) 식수와 간식을 보충하고 땅고개로 향한다. 어슴프레 미명이 찾아오지만 주변은 아직 어둡다. 김광석의 <일어나>를 나도 몰래 흥얼거린다.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 없었지.

     인생이란 강물위를  ~~~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거야. ~~~

 

 

 

오랫만에 오리형이 낙동에 합류했다. 백두대간을 함께 완주하고 백두산 산행을 부부가 다녀온 이후 거의 2년만이다. 지방근무에서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합류한 오리를 모두 대환영이다. 낙동의 끝점인 몰운대가 가까워질수록 형제애로 뭉친 동지들이 정겹기만 하다. 땅고개에서 의기투합, 단석산을 향한다.

 

새벽안개를 뚫고 1시간 남짓 산을 오른다. 7월의 녹음은 새벽이슬을 머금은 채 아직 잠들어 있고, 가끔씩 잡목이 팔다리를 할퀴지만 오히려 몸속으로 상큼한 기운이 스며드는 느낌이다. 낙동의 마루금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단석산 정상을 다녀오느냐, 그냥 직진이냐"하고 선두의 성호가 묻지만 모두 묵묵히 숲길을 걷는 일에만 열중이다. 얽매이지 말고, 예단하지 말고 ......

 

제법 땀도 흘리고, 가파른 숲길을 얼마나 올랐을까? 단석산 갈림길은 어디쯤일까? 가파른 오름 후에 갑자기 넓은 산정상이 나타난다. " 단석산 입장을 축하합니다"  먼저 도착한 성호의 일갈이다. 새벽 숲에 취해 걷다보니 단석산 갈림길을 놓치고 곧장 단석산 정상에 오른 것이다. 이것이 원래 우리가 원하던 바가 아니었던가! 알바덕분에 자동으로 단석산 정상에 오르고.

 

일도단석(一刀斷石), 단칼에 바위를 가르는 그 기개로 세상을 평정하고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의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현장에서 고금의 역사가 던지는 의미를 되새긴다. 단석산이 신라의 수도를 지키는 서쪽 방어벽 역할을 제대로 하였지 싶다. 김유신의 단칼에 잘린 정상의 단석(斷石)을 양쪽에서 밀어보는 흉내를 내지만 어디 가능한 일이겠는가?

 

     斷石山色 古今同 (단석산색 고금동)   단석산색 예나 지금이나 같은데

     花郞遺痕 滿谷中 (화랑유흔 만곡중)   화랑의 남긴 흔적 곡(谷)중에 가득하고

     騷客群賢 登頂樂 (소객군현 등정락)   소객군현 정상에 올라 즐거워하니

     羅田西護 永無窮 (라전서호 영무궁)   서라벌 저녁 지킴이로 영원하리라

 

 

 

노아의 방주교회를 지나 수의지가 내려다 보이는 OK그린목장에서 잠시 발을 멈춘다. 목장 한 가운데에 쉴만한 소나무 쉼터가 자연스레 만들어져 있다. 오언이 늘 준비하는 막걸리로 한 모금씩 목을 축이고. 목장을 둘러본다. 풀을 뜯는가축들은 보이지 않는다. 장정일 시인의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이라는 시를 읊조려 본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장정일 시인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후략)

 

 

다시 목장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햇볕이 내리쫴기 시작하면서 후덥지근해진다. 여름 날의 습기가 오늘 가야할 길을 얼마나  힘들게 할지 지레 걱정이다. 중간중간 간식을 충분히 챙겨야지. 그나마 목장길 따라 걷는 길이 푹신푹신한 스펀지같아 발걸음이 편안하다.

 

 

 

메아리농장을 지나며 식수를 구하러 농가에 들린다. 농장에서 만난 부부가 손수 가꾼 천도복숭아를 꺼내 놓는다. 몇 그루 심었는데 부부가 먹기에는 너무 많고 산속에 떨어져 있어 나눌 이웃도 없으니, 마음껏 먹고 가라며 복숭아를 계속 꺼내놓는다. 후한 인심에 꿀맛같은 천도복숭아로 배를 채운다.

 

내년이면 환갑이라는 농장의 젊은(?) 할아버지의 자랑이 이어진다. 산을 걷는 우리와 달리 그 분은 산에서 달리기를 한단다. (엇! 우리도 산악 달리기 하는데.) 지난 봄 경주 벚꽃마라톤대회에서 3시간 50분대로 풀코스를 달렸다고 한다. 오늘 아침에도 농장주변의 산을 한바퀴 달렸단다. 옆에 있는 젊은(?) 할머니는 남편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본다. 참 보기좋은 부부의 모습이다. 나이들수록 저렇게 얼굴에 편안함이 풍겨야하는데 ......

 

그 부부 앞에서 제주 200Km를 달린 길원도, 풀코스 30회를 넘긴 정산도, Sub3 성호도 묵묵히 듣기만 할 뿐 스스로를 내세울 수 없다. 좀 더 그 젊은 할아버지에게 찬사와 탄성을 보냈어야 하는데 ...... 지나고 보니 우리의 속좁음이 드러난 것같아 겸연쩍기 그지 없다. "천도복숭아 잘 먹었습니다.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어지럽게 산을 파헤친 산내 고원휴양마을 단지를 지나 임도에서 식사를 하기로 한다(0935-1015). 아침인가, 점심인가? 오랫만에 산에 합류한 오리형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인다. 산을 다람쥐처럼 잘 타는데 왠 일일까? 소호(태종)고개가 멀지 않으니 계속 걷기로 한다.

 

소호(태종)고개를 앞둔 소나무 숲속에는 먼저 도착한 성호가 웃통을 벗고 땀을 식히며 삼림욕을 하고 있다. 일제히 소나무의 기를 받으러 웃통을 벗고 앉아 가부좌를 튼다. 소나무가 무성하던 숲에 신갈을 비롯한 참나무가 번식하기 시작하지만 아직은 송림(松林)이다. 내친 김에 소나무 숲에서 한 숨 자고 가기로 한다. 일제히 취침!(1110-1210).

 

소호(태종)고개에서(1230-1245) 오리와 제용이 탈출하여 땅고개로 길원의 RV를 회수하러가고, 나머지는 백운산을 향해 급경사 오르막길로 접어든다. 정오를 지난 7월의 태양이 작열하는 숲길은 비온 뒤의 습기가 숲을 감싸 몸을 찜통으로 만든다. 선두 셋은 꼬리가 안보이고, 후미에서 쉬엄쉬엄 걷는데도 비지땀이 비오듯 흐른다. 목이 타고 몸은 푹푹 삶기고 있다. 갈 수 없는 길을 오르는 것인가?

 

 

 

소호고개를 출발해 1시간여만에 도착한(1345) 호미지맥 분기점은 낙동강, 형산강, 태화강이 분기하는 소위 삼강봉(三江峰)이다. 낙동을 시작했던 태백의 삼수령(三水嶺)같은 곳이다. 여기에서 시작된 지맥은 북동진하며 좌우로 포항의 형산강과 울산의 태화강을 이루며 우리 국토의 동남쪽 호랑이 꼬리(虎尾)로 이어진다.

 

삼강봉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던 선두와 합류하여 땀을 식히지만 갈증이 심하게 느껴진다. 1시간동안 흘린 땀이 얼마나 될까? 다행히 성호가 준비한 식염 몇 알로 갈증을 해소하지만 남은 식수가 걱정이다. 각자 남은 식수를 점검하고, 일단 백운산을 지나 소호령까지 진행을 해보자고 의견을 모은다.

 

 

                                                                                    출처 : 박성태, 신산경도

 

 

호미지맥 분기점에서 백운산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편안한 길이다. 영남 알프스의 산군들이 저멀리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헌산과 가지산이 지척으로 다가온다. 백운산에서 정상 세러머니를 하며 고헌산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소호령까지만 가기로 하니 걷는 길이 한결 여유롭다.

 

백운산 정상에서 방화선을 따라 걷는 길가에는 늦은 산딸기가 군데군데 유혹을 한다. 산행은 이제 완전히 느릿느릿 모드다. 앞서서 혼자 걸어가지만 일행들이 따라올 생각을 않는다. 정산과 성원은 아예 도시락통을 꺼내 산딸기를 따담기에 여념이 없다. 복분자의 유혹에 빠진 그들의 모습에서 동심(童心)을 읽는다.

 

소호령을 지나 고헌산을 오르는 소호리 임도 삼거리에서 오늘의 정맥길을 접고(1525), 임도를 따라 하산한다. 차량을 회수하러 간 오리와 제용은 임도입구를 못찾아 헤매다가 30여분 걸어가니 그제서야 아이스크림을 사서 차에 싣고 산길을 부르릉거리며 올라온다. 소호리로 하산완료(1620). 아, 그런데 다음에 어떻게 소호령으로 접근하지? 접근은 하더라도 차량회수는? 북남이 아니라 남북으로?

 

 

 

소호리에서 와항마을 암소 불고기촌으로 이동하여 샤워하고, 콩잎 조림에 생고기를 구워 싸먹는 그 맛이 아직도 눈에 아른아른거린다. 낙동길 별미중의 하나였지 싶다. 좌삼우삼으로 소주잔을 돌리다보니 상경이 늦어진다. 산에서 일찍 내려오니 잔돌리는 시간이 길어져 결국 귀가가 늦기는 마찬가지다. 낙동의 아랫마을의 곳곳에 정감(情感)의 씨앗을 심는 셈이다.

 

7월의 산,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그 숲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초록빛 연가를 부르며 보낸 하루였다. 나무는 나무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짝지어 있는 숲, 그 곳을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음은 언제나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는 산이 있기 때문이요, 그 산의 우뚝 솟은 봉우리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리라. 흘린 땀의 양만큼 속으로 깊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음은 영남알프스다. 부산이 가까워져 온다. 감칠맛 나는 생선회가 기다리고 있다. 

송정 바닷가의 영변횟집 도다리 세꼬시, 음 !

 

 

2008. 07. 14.

역삼동 펜타빌에서

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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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고개(20번, 321m)-2.0K-단석산 갈림길(827.2m)-2.1K-OK그린-5.8K-535.1봉-4.1K-소호고개(550m, 임도) -3.0k-백운산(870m)-3.2K-소호령(670m,임도)-2.0K-소호리임도삼거리 : 22.2Km

 

 

2245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0250  경주 고속버스터미널

0310  경주 팔우정 해장국

0410  오언 합류, 경주 팔우정 출발

0435  나드리 김밥, 식수 보충

 

0500  땅고개

0620  단석산(827.2m), 15분 휴식

0715  노아의 방주 교회

0725  OK그린목장, 10분 휴식

0820  메아리농장, 20분 휴식, 천도복숭아

0900  산내 고원관광휴양마을

0935  임도, 식사 40분

1110  소나무 숲, 휴식및 수면 60분

1230  소호고개, 15분 휴식

1345  호미기맥 분기점, 5분 휴식

1415  백운산(907.0m), 25분 휴식

        소호령(670m)

        차리 임도삼거리

1525  소호리 임도삼거리, 방화선 자갈지대 시작점

 

1620  하산완료

1630  경주 산내 암소불고기촌(와항리 A지구) -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 3019 초원(054-751-6547, 7589)

1830  와항리 출발

2000  경주 고속버스터미널

2400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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