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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 20 - 금샘(金井)을 찾아가는 길에서

月波 2008. 9. 29. 00:58

 

낙동 20 - 금샘(金井)을 찾아가는 길에서

 

 - 2008년 9월 28일(일)

 - (대석리)~천성산 군사도로~596.6봉~운봉산(534.4m)~유락농원~남락고개~지경고개~(범어사)

 - 성호,제용,길원,오언,정산,월파,성원

 

 

(1) KTX로 떠나는 낙동길

 

이틀간의 부부동반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일요일 새벽 부산행 KTX에 다시 몸을 싣는다. 필드에서 바람을 맞으며 운동하고, 맛집을 찾아 식탐을 다스리다가 상경길에 수덕사를 찾는 등 오랫만에 아내와 호젓한 시간을 보냈다. 그 덕분인지, 일요일 새벽의 단독탈출을 아내는 순순히 받아들이며 배낭에 먹거리를 챙겨준다. KTX로 떠나는 낙동길, 다양한 교통수단을 번갈아가며 낙동정맥은 종착지인 몰운대에 가까워지고 있다.

 

구포역에서 내려 아침을 먹으며 점심도시락까지 챙긴다. 거북이 포구의 아지매, 재첩국도 맛있고 돼지국밥도 얼큰하더이다. 도시락에 함께 챙겨준 계란말이와 풋고추 덕분에 낙동길이 넉넉했습니다. 언제 한 번 다시 들릴 수 있을지? 30년 전으로 돌아가 젓가락 장단에 막걸리 한 사발 마실 수 있다면 .....  추억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니, ㅎㅎㅎ ..... 옛 생각만으로도 흐뭇하다.

 

길원의 RV가 양산 대석리로 향하는 길에 양산 나들목을 놓치고 고속도로를 계속 북진한다. 덕분에 통도사 나들목까지 가면서 영취산을 비롯한 영남알프스의 웅장한 산세를 다시 한번 가슴에 담는 행운을 맛본다. 하나를 놓치고 여럿을 얻었다. 양산으로 되돌아 가는 길에는 천성산이 우뚝 솟아 반긴다. 지난 겨울의 천성산, 하얀 눈에 덮힌 화엄벌에서는 추운 곳에서 "높은 정신"이 더욱 빛나고 있었다. 오늘 그 길을 이어서 걷자.

 

 

 

 

 

 

 

 

 

 (2) 삶의 지뢰밭도 잘 피해야

 

대석리에서 원효암 직전 낙동마루금까지는 신도들이 이용하는 버스로 가볍게 오른다. 오늘 낙동의 출발지인 81xx부대, 지뢰밭이 낙동의 마루금을 덮고 있다. 억새는 그 지뢰를 아랑곳않고 제 속살을 하얗게 드러내며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다. 낮은 산에 억새가 한창이니 한 열흘 지나면 영남 알프스는 억새천국이겠구나. 10월의 스케쥴을 보니 아무래도 이번 가을 억새산행은 힘들 것 같으니 이걸로 만족해야겠다. 

 

30분 정도 지뢰밭을 피해 산허리를 감싸돌며 걸으니 낙동의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여기 지뢰밭처럼 삶에도 피해서 가야할 길은 도처에 있다. 그 길이 바로 가야할 길인지 피해야할 길인지를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어느 길을 택하느냐의 마음씀씀이도 중요하다. 오늘의 지뢰밭은 잠시 피하는 소낙비처럼 가벼운 것이라고 가볍게 치부해도 되는 일이지만 ......

 

낙동의 능선은 이제 몰운대 바다로 빠져들 준비를 하고 있다. 영남알프스에서 1000m급 이상의 산군을 형성하며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가 이제  그 자세를 계속 낮추고 있다. 산초열매를 따느라 발길을 멈춘 산행객들도 보이고, 발아래 양산벌은 느낌이 지척에 불과하다. 596.6봉에 도착하니 선두그룹이 기다리고 있다. 널널산행이다. 어머니 품같은, 제2의 고향인 부산이 가까워지니 마음도 여유만만, 유유자적이다.

 

 

 

 

 

 

 

 

 

 

(3) 낙동정맥길, 드디어 부산으로

 

596.6봉을 지나자 저멀리 금정산과 부산 동래의 아파트 군이 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신기산성 갈림길의 서낭단으로 내려서는 급경사 내리막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억새밭 너머로 낙동의 마루금을 굽어보며 부산으로 접어들 마음의 준비를 한다. 맞은 편의 운봉산이 두팔 벌려 맞이하는듯 하다. 일행들은 모두 여유로운 표정이다. 부산으로 접어든다. 437.6봉 갈림길에서 숲속의 오찬을 하기로 한다.

 

유락농원에서 절개지로 막힌 산길을 타고올라 밤밭을 헤매다가 길을 찾아 낙남고개로 내려서고, 다시 중앙분리대를 타고 넘는다. 낙동길은 이제 산이 아니라 이미 마을로 내려와 있는 마루금을 따라 정겹게 진행된다. 밤밭의 아주머니가 길이 아님을 일러주고 고추밭의 할머니가 낙동길을 손짓으로 알려준다. 낮은 곳으로 내려온 마루금은 산객(山客)과 마을사람을 순간순간 하나로 묶는다. 잠시 스치며 하나로 만났다가 혜어진다는 생각도 없이 각자의 길을 간다.

 

탱자나무로 촘촘히 울타리를 한 밭길을 지나며 제용 아우와 어린시절 얘기를 나눈다. 그 때 탱자나무 가시는 사랑이었고, 지킴이였다. 지경고개 직전의 마지막 봉우리에 오르니, 경부고속도로 너머로 계명봉이 어서오라 손짓한다. 서둘러 하산하여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녹동육교앞에서 잠시 동래베네스타CC 전경과 골퍼들의 모습에 정신을 팔기도 하고..... 공이 굴러가면 굳샷, 공이 날아가면 나이스 샷 !

 

 

 

 

 

 

 

 

 

 

 

 

(4) 족함을 알고, 멈출 줄 안다면

 

지경고개의 자두농원에서 오늘 산행을 마칠 것이냐, 금정산의 계명봉을 오를 것이냐를 두고 의견을 모은다. 지족불욕(知足不辱) 지지불태(知止不殆)라,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않다고 했거늘, 금정산을 오르는 계명봉 길을 다음으로 아껴두기로 한다. 대신 노포동 버스터미날에서 서울행 고속버스를 예매해놓고 길원의 RV로 범어사를 찾아간다. 이 얼마만에 범어의 산문에 드는것인가?

 

마음 속에는 늘 함께 한듯한데 헤아려보니 30년도 더 지났지 싶다. 몇 년 전 범어사 청련암 양익스님이 열반의 길에 들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30년 시간의 흐름을 미쳐 느끼지 못했었는데 ....... 범어사 조실스님이 되신 원효암의 지유스님은 한 소식을 들으셨는지? 그 때나 지금이나 원효암 오르는 일은 중생에게 여전히 힘든 길이겠지요, 조실스님?

 

 

 

 

 

 

 

 

(5) 세상의 알음알이를 던져버려라

 

범어사 일주문(一柱門)을 들어선다. 일주(一柱), 이름 그대로 기둥이 하나로 된 독특한 건물구조를 갖고있는 모든 사찰의 첫문이다.

이어 불이문 앞에 선다.  일주문의 건축양태도 특이하지만, 불이문의 좌우 기둥에 걸린 주련(柱聯)이 오늘따라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원나라 때 임제종의 고승 중봉명본(中峯明本,1263~1323)스님의 게송을 현대사에 범어사를 일으키신 동산(東山) 선사가 직접 쓴 현판이다.

 

神光不昧萬古輝猷(신광불매만고휘유) 

入此門來莫存知解(입차문래막존지해)

신비로운 광명이 밝고 밝아서 만고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이 문에 들어오려거든 세상의 모든 알음알이를 던져버려라

 

불법(佛法)의 밝고 오묘한 이치를 깨닫고자 하거든, 모름지기 이 문을 들어서면서 세상에서 배우고 익힌 알음알이(지식)를 버리고 들어오라는 뜻이다. 깨달음의 도리는 세상에서 보고 들은 알음알이(지식)의 세계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이런 마음으로 불이문에 들어서야만이 비로소 사바의 예토(穢土)를 지나 피안의 정토(淨土)로 통하는 길이 열리는 것이리라.

 

 

이렇게 보제루를 지나 대웅전에 이르러 삼배하고, 범어의 품에 잠시나마 안긴다. 미륵전, 비로전을 지나 범어선원 담장을 돌아나오는데, 푸른 대나무가 서릿발처럼 성성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선가(禪家)의 화두(話頭)는 저렇게 확연하거늘 ....... !!!!!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바람이 지나가면 그 소리를 남기지 않고

기러기가 차가운 연못을 지나가더라도 기러기 날아가고 나면 그 그림자를 남기지 않나니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이 일고 일이 끝나고나면 마음도 따라서 비워지니라.

 

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  풍래소죽 풍과이죽불유성
雁度寒潭 雁去而潭不留影  안도한담 안거이담불유영
故君子事來而心始現 事去而心隨空  고군자사래이심시현 사거이심수공

 <菜根譚  채근담>

 

 

 

(6) 다음 낙동정맥 산행은?

 

부산 노포동 터미널에서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기 전에, 출출한 목은 채워야 한다. 평소와 달리 조금만 먹자고 C1을 잔에 채워 좌둘둘로 돌리고, 석쇠에는 꼼장어가 익어간다. 그러나, 좌둘둘이든 우삼삼이든 평소의 정량은 있는 법이니 ...... 그 틈에 나는 1+1으로 해결했으니, 이 정도면 선방한 것이지요, 정 박사? 그런데, 왜 아직도 입안이 얼얼한지 영 궁금하네요.

 

다음은 다음은? 낙동의 끝이 정말 보인다. 10월중에 우선 주왕산 피나무재 구간의 펑크를 때우고, 11월에 길일을 잡아 1박2일 산행을 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그래. 그래. 펑크 먼저 때우고, 1박(부산해운대)+ 2일(금정산 구간 및 몰운대 졸업식) 일정으로 낙동의 쫑파티를 하자구. 모두들 박수 세번 치고, 길원을 남겨둔채 고속버스에 오른다.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또 열두시가 가깝다.

 

조방앞, 사직동을 거쳐 노포동에 이르기 까지, 부산의 고속버스 터미널의 역사를 머리에 그리다 잠이 든다.

 

 

낙동 20차의 기억이 아스라해질 무렵에

2008. 10. 11.

월파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