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 17 - 길, 나서는 마음 되돌리는 마음
(1) 숲으로 가는 길 - 이시하
숲이 내게로 오지 않아 내가 숲으로 갑니다.
새 한 마리 길 열어 주니 두렵지는 않습니다.
때로 바람이 음흉하게 휘돌아 몰아치고
마른 까마귀 카아카악 울며 죄를 물어와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고 가야할 때 있습니다.
어느 순간 바람도 잔잔하여지고
까마귀 울음소리 잦아 들면
멀리 앞서가던 길잡이 새 나를 기다립니다.
길은 밝아지고 푸른 것들이 환호하며 손뼉치는 소리,
시냇물 소리, 들꽃들 웃음소리, 나비의 날개짓 소리, 푸른 숨소리,
소리들 무지개로 떠 흐르는
저기 먼 숲이 나를 부릅니다.
때로 두려웁지만
숲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2) 길을 되돌린 마음의 변(辯)
일상에서
길을 나서는 마음은 설레임이요, 길을 되돌리는 마음은 아쉬움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길에 드는 불안감의 실체는 무엇이며,
길을 되돌리는 선택이 주는 안도감의 근원은 또 어디에 있는가?
설레임이 불안감으로, 아쉬움이 안도감으로 치환되어버린
이런 아이러니와 자가당착이 있을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새벽에 겨우 3시간 정도 숲길을 걷고 아침 8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현실은 돌이켜보면 이미 예정되었던 일이다.
끝까지 주파할 수 없는 상황을 직시하면서도 길을 떠난 필연적 귀결이요,
가지 못하는 아쉬움과 가능성에 대한 미련이 초래한 응보였다.
"차라리 산에 들지 말았어야지"하는 그의 말이 옳다.
사실, 길 떠나기로 한 약속은 푸른 하늘처럼 살아있어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그 길에 접어들었고
그 선택에 대한 어떤 회한도 없다.
비록 가야할 길을 중도에 접었으나
들머리와 날머리에 대한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오늘 갈 길과 내일 갈 길에 대한 집착과 분별을 떨쳐버렸으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떠남과 되돌아옴,
생각과 현실의 상충에 따른 심적 갈등에서 벗어나니
일시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기대와 미련이 환희로 승화되는 충만의 카타르시스와 함께
그 극점에서 떠남과 되돌아옴이 하나가 된다.
세상의 일이란
무릇 시작과 끝점이 맞닿아 있는 법이니
숲으로 드는 일과 나는 일이 둘이 아닐뿐더러
길고 짧음, 생각과 현실의 상이(相異)도 진면목(眞面目)은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가!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거두어들이면 되는 것을.
(3) 후담(後談)
혼자 먼저 귀경한 서울의 하늘은 더할나위 없이 청명하였고,
옷 갈아입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마음도 오히려 깔끔하고 홀가분했으니,
보이는 (낮은) 산을 내려와, 보이지 않는 (높은) 산을 만났어도 두려움이 없었다.
또 다른 (높은) 산 앞에 당당할 수 있었다.
산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은
경주에서 부산까지 동해 바닷가를 유람한 그들의 뒷얘기에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산길을 동반포기하고 넓은 바다와 넉넉한 마음 씀씀이를 얻었으니
그들의 버림이 진정 큰 얻음이다.
고맙다네, 산친구들이여 !
일찍 길을 되돌린 내 마음 헤아려준 그대들이 있어,
나는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업(業)은 내가 지었으되 그대들이 스스로 즐거웠다고 하니,
그 또한 기쁘면서 한편으로 민망한 일이로세.
돌이켜 보면
일찍 길을 되돌린 것이 참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오래도록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았으니 ......
그 일의 결과가 마음 졸이게 하지만, 잘 되리라 믿는다.
강남보다 마포에서 한 잔 사라던 지엄한 명령(?)을 따를 수 있으리라 생각되니
길일(吉日)을 택하는 일만 남았지 싶다.
정산, 술 사께(さけ) 접시 사라(さら).
2008. 6. 23.
역삼동 펜타빌에서
달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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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6월 22일(일)
- 숲재(생식마을 입구)-부산성-헬기장(남양목장)-독고불재(어두목장)-땅고개
- 8.5Km, 3시간 10분
- 길원,성호,월파,정산,제용,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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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5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0250 경주 고속버스 터미널
0330 건천 나드리 김밥(식사및 길원 도착대기)
0502 숲재(우라생식마을 입구)
0538 730m
0600 부산성 남문 성터(10분 휴식)
0627 헬기장 (남양목장 인근)
0628 753m/산불감시초소
0650 독고불재/어두목장 목장도로 통과
0710 651.2m
0755 임도
0800 396m
0812 당고개/20번국도(50분 식사 및 휴식)
0900 산행종료 결정, 단독 조기 귀경
(일행 산행 동반종료후 경주, 동해안 나들이)
1120 경주 고속버스 터미널
1530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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