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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 19 - 영남 알프스의 춤사위를 보면서

月波 2008. 9. 8. 14:02

 

  

 

낙동 19 - 영남 알프스의 춤사위를 보면서

 

 

(1) 나이들수록 얼굴에 여유가

 

7월의 염천아래 흘렸던 낙동 18차의 땀, 그 기억이 아스라하다.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싱그럽다. 2개월 만에 다시 낙동길을 잇는다. 동서울-언양, 새로운 루트다. 다양한 교통편, 산 아래 마을에 대한 부단한 관심, 얽매이지 않는 스케쥴 ...... 이런 변화가 낙동에 드는 마음에서 조급함을 없애준다.

 

새벽 4시의 언양읍, 밤에만 문을 연다는 허름한 해장국집 할머니의 말솜씨가 구수하다. 예순은 확실히  넘었고 일흔을 넘겼는지도 모르겠다. 육십 갑자(甲子)를 살았으니 삶의 한 순환을 거친 셈이다. 높든 낮든, 풍족하든 부족하든 그 자리에서 안분지족한 삶의 모습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나이가 들수록 저 할머니처럼 얼굴에서 여유가 묻어나야 하는데 ...... 오늘 산행은 해장국집 할머니를 만난 것으로도 충분하다. 산의 가르침을 이미 만난 셈이다. 싱싱한 미역에 통영산 굴로 끓인 해장국도 입에서 살살 녹는다. 오리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쌀로 지은 밥 한 통까지 점심 도시락으로 싸주시니 .......

 

 

 

 

(2) 내비게이션만 믿고 가다가

 

와항마을 찾아가는 길에 길원의 RV로 운문령을 오른다. 고개마루에서 새벽 하늘의 총총한 별을 헤아리고, 일출을 준비하며 붉게 물드는 동녘 하늘에 넋을 잃는다. 오늘 날씨는 참으로 맑겠구나. 운문령이 일출명소로 알려진 이유를 능히 짐작하겠다. 일출까지는 꽤 시간이 남았고 가야할 길은 멀다.

 

운문령을 넘어 RV는 신나게 새벽길을 달린다. 운문사 입구를 지나며 내비게이션을 보니 도착지까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크, 알바다. 어디서 길을 잃었는지 알 수가 없다. 외길이었는데 ....... 와항마을 생고기 집에 전화를 걸어 간신히 방향을 잡아, 운문령을 되돌아 와항마을에 도착하니 날이 훤히 밝았다. 

 

생고기집에 RV를 세워두고, 소호령으로 향한다. 주인장은 소호령까지 봉고차로 우리를 태워주며 100가지 약초로 담근 약초술 한 병까지 배낭에 넣어준다. 오늘은 새벽부터 굴해장국에 약초술까지 식복(食福)이 터졌다. 새벽부터 자동차로 30분 정도 알바를 하고서도, 산행기점인 소호령에 서는 마음은 왠지 여유롭다.

 

 

 

 

(3) 고헌산에서 바라보는 아침 안개

 

소호령, 울산 땅이다. 울산(蔚山), 이름 그대로 숲이 울창한 산이다. 소호령의 참나무 숲과 임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이요 최초의 임도라는데, 숲은 울창하되 특별한 아름다움은 없고 임도 또한 허하기만 하다. 울창한 숲에서 단순함을 넘어 독특함을 기대하는 바램은 마음의 사치일까?

 

소호령에서 고헌산을 향해 벌거벗은 임도를 오른다. 고헌산, 언양의 진산(鎭山)이란다. 진압할 진(鎭) !

백두(白頭)에서 뻗어 내려온 대간(大幹)의 등줄기가 태백에서 두갈래로 나누어져 그 속에 낙동강을 품는다. 동해안을 따라 남진하던 낙동정맥은 이 곳 고헌산 부근에서 마지막 힘을 솟구쳐 1000m급의 산 8개를 이루며 거대한 산군을 형성한다. 이름하여 영남알프스, 영남의 지붕이요 영남의 병풍이다.

 

고헌산을 오르며 되돌아보는 산하는 아침 안개 자욱하다. 운문령에서 알바않고 좀 더 일찍 고헌산에 올랐으면 새벽 안개가 더욱 장관이었으리라. 그래도,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저 산하를 보라. 아침 안개에 휩싸인 영남알프스의 춤사위를 보라. 온유하면서도 장괘한 모습에 가슴이 절로 뛰고, 상쾌한 가을 바람에 속까지 후련하다.

 

 

 

 

 

(4) 여유롭게 걷는 낙동의 마루금

 

오늘의 목적지는 석남터널이다. 작년 가을 억새를 보러 영남 알프스로 미리 달려왔던 낙동 9차의 출발점이다. 오늘 걷는 거리가 18Km에 불과하니 새벽부터 걷는 모양새가 모두 나긋나긋하다. 서두름도 없고 산과 들과 하늘에 마음 끌리는대로 시선을 두고 걷는다. 

 

고헌산에서 와항재로 급전직하로 떨어졌다가 잠시 719봉 오르는 시늉을 한다. RV를 세워둔 와항리 생고기집을 가로질러 문복산 갈림길이 있는 894.8봉을 오르며 제법 땀을 흘린다. 다시 운문령으로 수직활강하는 숲길에서 마주오르는 단체산행객과 길이 엉킨다. 그들에게 길 비켜주느라 내리막에서도 쉬엄쉬엄이다.  

 

다시 밟는 운문령(雲門嶺), 여기서 쉬었다가 가는 것은 기본.  그래, 그러지 뭐. 닐니리 강산이다. 막걸리 한 사발에 이른 점심을 먹는다. 상운산을 오르기 위한 날개짓이다. 10시에 먹는 점심, 막걸리에 햇포도 ...... 해는 중천에 가까워지고 있다. 상운산 오르며 땀 쫌 흘리겠다.  

 

 

 

 

 

(5) 혼자 걷는 숲길에서

 

상운산(1114m), 표고가 1,100m가 넘어면서도 영남알프스 산군(山群)에 제대로 이름을 올리지 못함은 무슨 연유일까? 사람도 산도 그 키의 높이만으로 가늠된는 것이 아니다. 상운산으로 불리기보다 칼바위가 더 알려져 있다. 그래서 상운산은 숨은 산이다. 상운산의 세러머니, 문복산 쪽 하늘이 눈물나도록 짙푸르더라.

 

상운산에서 가지산을 향해 길을 나선다. 선두에 3명이 이미 출발했고, 내 뒤에 후미 3명이 곧 상운산을 출발할 태세다. 혼자서 숲길을 걷는다. 선두는 뭐가 그리 급한지 꼬리를 보이지 않고, 기다려도 후미는 따라올 생각을 않는다. 말없이 혼자서 걷는다. 혼자라서 오히려 좋다. 얼마나 혼자 숲속의 사색에 잠겼을까?

 

       가지산 가는 숲에서

       티없이 맑은 하늘을 우러르고,

       햇살 가득한 나뭇잎의 숨소리를 듣는다.

       말없이 혼자 걷는 길에서 

       숲이 동무해주고 들꽃이 반겨주었다.

       초가을 정오의 햇살이 따가웠지만 나뭇잎이 가려주고

       숲의 음기가 마음을 맑고 찰지게 해주었다.

       아, 혼자 걷는 숲길에서 누리는

       이 끝없는 자유 !

 

한껏 기분이 고조되어 혼자서 얼마나 걸었을까? 순간적으로 느낌이 이상하다. 맞은 편에서 오던 산객의 한 마디에 아뿔사, 알바 ! 혼자서 1시간 가까이 다른 숲에서 거닐고 있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상운산으로 원점회귀하여 가지산 가는 길로 다시 출발 ! 우리 일행은 앞서가다가 어느 시점에서 이 알바생을 거둘 수 있을까?

 

쌀바위의 전설을 읽으며 석간수 한 모금 마시는데, 선두에서 전화와 문자가 날아들기 시작한다. 가지산 정상이란다. 사고(?) 보고를 하니 달려 내려오겠다는 성호를 만류한다. 쉬엄쉬엄 올라 갈테니 걱정하지 말라 하고, 부지런히 가지산을 오른다.

 

 

 

 

 

(6) 넘실대듯 일렁이는 영남의 춤사위

 

가지산(迦智山, 1240m), 그 정상에 서니 영남알프스의 산무리가 전후좌우에서 춤추듯 펼쳐진다. 먼저 온 일행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고. 바로 출발하려다 그래도 족적을 남기고픈 작은 소망으로 카메라를 꺼집어낸다.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영남알프스의 산무리가 넘실대듯 일렁이는 그 춤사위에 넋이 나갈 지경이다. 

 

가지산, 정상은 삼각점이다. 그것도 삼각점 번호가 11번인 1등 삼각점(언양11)이다. 전국 16,090개 삼각점중 11번~19번의 1등 삼각점, 소위 대삼각본점은 189개에 불과하다. 가지산이 영남알프스의 으뜸 봉우리요, 백병산에 이어 낙동의 두번째 봉우리이니, 명분상으로도 1등 삼각점 대접을 받을만 하다.

 

간월산, 신불산, 영취산이 저 멀리 다가오고  천황산, 재약산, 운문산이 지척으로 다가선다. 그 사이에 오늘의 고헌산, 가지산이 버티고 있다. 가지산 정상 아래 매점에서 나를 기다리며 산상주에 빠져 있던 일행들을 만나 석남터널로 향한다. 터널까지 마중나온 불고기집 주인장이 반갑다. 석남사 입구를 거쳐 뒷풀이하러 ......

 

석남사(石南寺), 운문사와 함께 대표적인 비구니 사찰이다. 심검당(心劍堂), 정수원(正受院), 금당(金堂)의 세개 선원이 있다고 한다.  모름지기 "수행자는 수행의 배가 고파야 한다" 무쇠솥을 깨물어 침이 들어가야 도(道)를 깨친다는 선가(禪家)의 금언(金言), 얼마나 간절해야 무쇠솥을 깨물 수 있을까?

 

 

 

 

 

(7) 마음 씀씀이 후함은 낭비가 아니다

 

한우암소 생고기집 초원에서 샤워하고 옷갈아 입고 약초주에 C1을 곁들이니 암소불고기가 입에서 절로 녹는다. "아이다!" "맞다!" 3회가 이어지지만, 오늘은 C1을 자제하잔다. 여주인장이 챙겨주는 된장에 절인 콩잎 한 통을 챙겨 상경하니 날이 바뀌었다. 2무박 1일 산행이었다.

 

산 마루금에서보다 산 아래에서의 이야기가 더욱 풍성했던 산행이었다. 높은 산에서는 오히려 말이 필요없었고, 산 아랫마을에서는 그 정겨움으로 이런저런 얘기가 흘러넘쳤다. 이 번 산행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가 마음 씀씀이가 후했다. 더할나위 없이 좋은 하루 ! 

 

마음 씀씀이,

      인색함이 검약이 아니고 후함이 낭비가 아니다.

      자신을 위해 낭비하는 사람과 자기에게 준엄한 사람의 차이이다. 

얼마 전 작고하신 박경리 선생의 말씀이라 기억된다.  

심성이 넉넉해야 하는 것, 이 가을에 그 물감을  마음 속에 들여보자.

 

      울타릿가 감들은 떫은 물이 들었고

      맨드라미 촉규는 붉은 물이 들었다만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 서정주 ‘추일미음(秋日微吟)’  중에서

 

 

 

 

 

 

2008년 9월 7일(일)

낙동 19차를 다녀와서

월파(달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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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8. 09.07.(일), 길원/제용/성호/오언/정산/월파/성원, 소호령~고헌산~가지산_석남터널, 16.4Km

 

[2] 다시 들른 맛집

와항마을, 낙동정맥 마루금 상에 인상깊은 고깃집이 하나 있다.

한우암소 생고기도 맛있지만 여주인장의 음식 손맛이 뛰어나, 그 집에 두 번째 들렀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주 산내면에 속하지만, 생활권으로는 울산 울주군 언양에 가까워 석남사와 멀지 않다.

 

[3] 그 집은?

한우암소 생고기집 "초원"

경주 산내면 대현리 3019번지(통상 와항리 암소불고기촌 A지구라 부르는 곳임)

054-751-6547, 054-751-7589, 010-4878-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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