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智異十景

[화엄사-대원사 종주] 운무(雲霧) 속에서 길을 묻다(4)

月波 2008. 8. 17. 16:24

 

 

[화엄사-대원사 종주] 운무(雲霧) 속에서 길을 묻다(4)

 

 

산행 일시 : 2008 8 15() ~ 8 16(), 벽소령 1

산행 시간 : 바람처럼 구름처럼, 해시계 물시계도 버리고

산행 코스 : (1일차) 화엄사-노고단-반야봉-삼도봉-화개재-연하천-벽소령(1박)

                (2일차) 벽소령-세석-장터목-천왕봉-중봉-치밭목-유평-대원사

산행 거리 : 46.2 Km(반야봉 왕복 2Km포함)

산행 날씨 : 이틀간 운무(雲霧)와 함께, 안개비에 젖기도 하며

산행 동참 : 성호,길원,정산,월파,오리,성원,시탁

 

[산행기]

       (1) 그대 무엇으로 지리산에 드는가

       (2) 종주의 들머리 화엄사(華嚴寺)에서

       (3)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4)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5)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6)  청학동이란 곳이 정말 있는지

(7) 죽어서도 눕지 못하는 나무들

 

 

(8)  통천(通天)을 이루었으니 더 무엇을

 

천왕봉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 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 이원규 시인

 

통천문을 지나 천왕봉에 오른다. 통천(通天)을 했으니 발 닿는 곳이 곧 천왕(天王)이요, 선계(仙界), 천왕의 품에 안겨 어제 오늘 걸어온 지리의 능선을 잠시 되돌아 본다. 산등성 마루턱마다 쉬어가며 시인의 노래를 부르고 산의 가르침을 배우며 지나온 길을 반추하듯 살펴 본다.

 

8월은

오르는 길을 잠시 멈추고 / 산등성 마루턱에 앉아 /
한번쯤 온 길을 / 뒤돌아보게 만드는 달이다. 

...... (중략)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
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 /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케 하는 달이다.

    -
오세영,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중에서  

 

이제 더 오를 곳 없다마는 남은 길은 아직도 먼 길이다. 대원사를 향해 내려가는 길, 그 길이 얼핏 편안해 보이지만, 더 조심스런 길이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 아닌가? 어느 위치에 오르면 또 다른 삶을 준비해야 한다. 위만 보고 살아 온 삶에서 벗어나 주변을 아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칠선계곡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이원규 시인

 

천왕봉을 내려서며 칠선계곡을 바라본다. 10년 이상 닫혀있던 칠선계곡의 문이 빼꼼이 열렸다는 소식에 기대가 크다. 오늘은 그대를 멀리서 바라볼 뿐이나, 만나러 가는 날 그대가 품고 있는 속살을 보여줄 수 있느냐? 극상수(極上樹) 서어나무 군락도 반겨주겠지? 

 

 

중봉

1874m, 지리에서 두번째 높은 봉우리다. 그러나 중봉은 그 높이로 2인자를 가리지 않음을 안다. 비록 그 키가 작지만 동서남북으로 지리산을 아우르는 반야봉(1732m)의 후덕함을 알기 때문이다. 하산의 갈림길에서 묵묵히 이정표 역할로 만족할 따름이다. 세상의 이치도 마찬가지다.

 

기념사진 한 장 찍고 길을 서두른다. 빗방울이 굵어 진다. 어느 길로 가야 하나? 하봉도 있고 써리봉도 있다. 하봉은 내게 아직 미답(未踏)이다. 써리봉으로 간다. 헤매임을 두려워하랴마는 당초 생각대로 그 길을 간다. 후일에 태극종주를 꿈꾸는 날을 기약하면서.

 

내 가고 싶은 대로/ 내가 흐르고 싶은 곳으로
반드시 나 지금 가고 있을까 글쎄

이리저리 떠돌다가 머물다가 / 오르막길 헉헉거리다가 수월하게 내려오다가
이런 일 수도 없이 되풀이하다가 / 문득 돌아가 보면 잘 보인다
…… (
중략)
더러는 길 잘못 들어 헤매임도 한나절 / 상처를 입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음 얻고 안고 헤쳐나온 길 / 돌아다보면 잘 보인다
내가 가고 싶은 곳 흐르고 싶은 곳 / 보이지 않는 손길들에 이끌려
나 지금 가고 있음도 잘 보인다

        - 이성부, <어찌 헤매임을 두려워하랴> 중에서

  

 

 

 

(9)  앞만 보지 말고 옆을 보시라

 

써리봉

중봉에서 치밭목, 대원사로 하산하는 길목에 써리봉이 있다. 써리봉에는 발을 멈추게 하는 전망대가 있다. 가던 길 멈추고 잠시 옆을 돌아보면 또 다른 모습의 천왕봉을 만날 수 있다. 직립의 자세로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는 천왕봉의 옆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은 오리무중이다. 아쉽다.

 

옆 모습을 본다는 것, 그것은 잠시 비켜서는 여유를 갖는 일이다. 위만 보고 오르던 산 길에서 잠시 되돌아 보는 일이요, 나만 생각하며 살아온 삶에서 주변을 돌아보는 일이다. 그러면 산도 세상도 달리 보인다. 주변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써리봉에서 본 천왕봉의  옆모습, 2003년 8월 지리산 종주시 촬영했던 사진임>

 


앞만 보지 말고 옆을 보시라.
버스를 타더라도 맨 앞자리에 앉아서 / 앞만 보며 추월과 속도의 불안에 떨지 말고

창 밖 풍경을 바라보시라


기차가 아름다운 것은 /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이지요
창 밖은 어디나 고향 같고
어둠이 내리면 / 지워지는 풍경 위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얼굴들.


언제나 가파른 죽음은 바로 앞에 있고
평화로운 삶은 바로 옆에 있지요.


 -
이원규,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중에서

 

 

 

 

치밭목

취나물이 많이 나오는 곳이라 한다. 유선전화도 휴대전화도 없는 곳이다. 산장지기 민병태씨, 수더분한 그 모습이 산장에도 배어있다. 깊은 산속의 쉼터다. 주 능선보다 찾는 이들이 적어 사색(思索)의 산행을 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산행의 정류장이 아니라 목적지로 삼고 싶은 곳이다.

 

복숭아 통조림 한 캔을 사서 먹는다. 온 몸으로 당분이 스며든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산장지기는 작년부터 주말마다 비가 와서 영업이 통 안된단다. 하느님을 영업방해죄로 고소라도 해야겠다며 겸연쩍게 웃는다. 다시 빗줄기가 굵어진다.

 

 

무재치기 폭포와 새재 갈림길을 지나 유평마을로 향한다. 모두 산악달리기 하듯 달려내려 간다. 성호가 내 배낭의 무게를 대신 감당하지만 무릎에 느껴지는 부담이 엄청나다. 후미로 쳐져 다소 지루한 내리막 길을 달리다시피 걷는다.

 

다행히 들꽃들이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반겨준다. 같이 걷는 동료들과 떨어져도 풀꽃들이 친구되니 한결 발걸음이 가볍다. 주황색 동자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고, 간혹 보라빛 초롱꽃이 반겨준다. 어느덧 머리 속에는 유평마을 산초 김치에 막걸리 한 사발이 그려지고 있다.

 

 

유평마을

탁족(濯足)은 어떠한가, 그것도 지리를 벗어나는 마지막 계곡에서. 부끄러운 듯 속살을 드러내는 옥류(玉流)라면 더욱 좋겠지. 탁신(濯身)은 더욱 좋고. 이틀 동안 걸으며 털어버린 세상의 먼지, 그러고도 남은 세상의 때를 유평의 무릉도원에서 씻는다. 막걸리에 산초 김치도 곁들인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지만 배롱나무는 다르다. 그 꽃이 오래간다고 백일홍이라고도 하지요. 배롱은 늘 맨살의 알몸이다. 욕망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고 온몸을 일깨우며 늦게 봄을 맞이하지만, 그 꽃은 늦여름까지 오래 핀다. 유평리의 기억은 배롱나무처럼 오래 피어있을 것이다.

 

 

 

 


대원사(大源寺
해거름이 찾아오고서야 대원사를 지난다. 일주문에 방장산(方丈山)” 대원사라 적혀있다. 화엄은 지리(智異)라 칭하고 대원은 방장(方丈)이라 칭하지만, 그 이름이 뭐 중요할까? 때로는 두류())가 가깝거늘. 발이 길게 드리워진 대원사 선방에서 참선하는 비구니는 실상(實相)을 보고 한 소리 들었을까?

 

대원사, 이틀동안 바람처럼 구름처럼 걸었던 화대종주의 종착지다. 대원사는 화엄사와 마찬가지로 연기(緣起) 조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돌이켜 보면 화대종주는 1 5백년 전 연기조사가 뿌려놓은 인연의 끈을 따라 걷는 길이었다

 

 

 

 

 

- (산행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