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대원사 종주] 운무(雲霧) 속에서 길을 묻다(2)
산행 일시 : 2008년 8월 15일(금) ~ 8월 16일(토), 벽소령 1박
산행 시간 : 바람처럼 구름처럼, 해시계 물시계도 버리고
산행 코스 : (1일차) 화엄사-노고단-반야봉-삼도봉-화개재-연하천-벽소령(1박)
(2일차) 벽소령-세석-장터목-천왕봉-중봉-치밭목-유평-대원사
산행 거리 : 46.2 Km(반야봉 왕복 2Km포함)
산행 동참 : 성호,길원,정산,월파,오리,성원,시탁
[산행기]
(1) 그대 무엇으로 지리산에 드는가
(2) 종주의 들머리 화엄사(華嚴寺)에서
(3)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4)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반야봉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
이원규 시인의 주문이다. 그러나 반야의 노을을 탐하기가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 육신의 발걸음이 반야(般若)의 품에 이른 것만으로도 족하다.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 본다. 다행히 짙은 운무(雲霧)가 잠시 걷히며 노고단 쪽 하늘이 열린다. 안개처럼 비구름이 날아다니며 숨바꼭질 한다.
장쾌하면서도 부드럽다. 어느 봉우리 하나 칼날같은 첨봉(尖峯)이 없고, 어느 능선도 유장(悠長)하지 않은 것 없다. 넓게 보고, 길게 보고, 멀리 보면 만물이 원만하게 보인다. 반야의 지혜다. “날카로운 산봉우리도 부드러운 산등성이를 사랑하기 위해 저 혼자 솟아 있다”던 시인의 노래를 읊는다.
부드러운 산등성이가 / 어찌 곧추선 칼날을 두려워하랴
용솟음과 낮아짐
끝없이 나를 낮추고 / 속으로 끝없이 나를 높이는
산을 보면서 걷는 길에 삶은 뜨겁구나
칼바위가 / 부드러움을 위해 태어났듯이
부드러움이 / 칼날을 감싸 껴안는 것을 본다
- 이성부, <날망과 등성이> 중에서
삼도봉, 화개재, 토끼봉
비안개가 자욱하다. 불무장등-통곡봉-황장산-촛대봉을 거쳐, 화개장터와 섬진강 나루로 연결되는 불무장등 능선에 잠시 넋을 팔다가 화개재로 내려서는 계단에 발을 디딘다. 힘들어 하는 오리 형을 위해 화개재 숲에 돗자리를 펴고 한 잔하며 푹 쉬고 토끼봉으로 향한다.
화개장터와 남원 운봉을 오가던 봇짐장수의 짚신 이야기, 뱀사골 간장소(沼)에 빠진 소금장수의 전설, 목통골 칠불사 아자(亞字) 선방의 무설법문(無說法問)도 가파른 오름 앞에 무색하기만 하니, 토끼봉 숲에는 헐떡이는 숨소리와 강을 이루는 이마의 땀 뿐이다.
이럴 때 야생화라도 반겨주면 좋으련만. 오늘 숲길에서 계속 만난 동자꽃도, 모싯대도 안보인다. 봄이었다면 얼레지도 한창이고 현호색도 반겼을텐데. 잠시 땀을 식히며 눈을 감고 강희산 시인의 노래를 읊조리니, 철 지난 얼레지와 현호색이 눈 앞에 나타난다. 상상의 꽃밭이다.
수줍음을 잘 타는 여인의 속눈썹 같은 / 얼레지가 천국이구나 /
눈을 내려 깔고 그녀의 훤한 이마에 입을 맞추며 /
부드러운 맨발로 천국 길을 걷는데 / 보라빛 현호색이 언제 왔는지
연하천(煙霞泉)
연하천은 인산인해다. 그러나 새소리 물소리 숲소리, 숲속의 별천지다. 밤이면 별이 내려오는 소리 들리고 새벽이면 안개가 피어나는 소리 들리는 곳이다. 그 소리 낮아서 더욱 좋다. 들리지 않아도 들을 수 있고, 그 모습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곳이다.
무진(無盡), 벌써 5년이란 시간이 지났구나. 자네의 모습이 그립다. 제 몸을 녹여서 세상을 밝히는 양초의 화신이요, 제 몸을 갈아서 사람을 깨끗이 하는 비누의 화신인 그대, 그날 밤 우리들의 5마 게임은 연하천의 하늘 아래에서 밤새는 줄 몰랐었는데 ……그 때 불렀던 노래, 다시 한 번 불러 보세.
오늘 우리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오늘 우리가 머물 곳은 또 어디인가.
저 높은 곳 입신양명의 길도 아니요, 저 넓은 곳 부귀영화의 언덕도 아니지 않던가.
아침 안개 피고 저녁 노을 지는 연하(煙霞)의 맑은 샘(泉)이면 족하지 않는가.
(5)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벽소령
“벽소령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 이원규 시인
삼각고지를 지나 벽소령으로 향한다. 남쪽 아래에 빗점골이 있다. 좌우 이념의 대립으로 갈라져 싸우다가 쓸쓸히 죽어간 영혼들이 잠자는 곳이다. 이현상, 그는 시대의 이단자였다. 죽은 자는 성하(盛夏)의 녹음(綠陰)에 묻혀 말이 없지만, 살아남은 자의 아픔 또한 치유될 줄 모른다.
산등성이 널찍한 곳에서는 사람도 / 마음 넓게 멀리 둘러보아야 한다
남쪽 아래 빗점골 마을 흔적 찾을 길 없어 / 마음만 내려가 더듬어보고
북쪽 아래 마천 내려가는 길 뼈다귀 나무들 / 무슨 원한으로 솟아 눈 부릅떴는지
찬찬히 살펴 저를 돌아볼 일이다
- 이성부, <벽소령을 지나며> 중에서
얼마나 세월이 흘러야 지리산 비가(悲歌)는 멈출 수 있을까? 성냥갑과 같은 도시의 시멘트 둥지를 박차고 환향(還鄕)한 사람들, 맑은 영혼을 일깨워가며 자연에서 생명의 노래를 부르는 문인(文人)들, 산과 풀섶에서 청안청락(淸安淸樂)을 꿈꾸는 무욕지인(無慾之人)들 …… 지리산에 그들의 둥지가 얼마나 더 늘어나야 벽소령의 푸른 달빛에서 처연함이 사라질까?
사람으로 순간을 산다는 것은 / 허망한 일이다
이 짧은 삶 속에서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 미워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모든 사물들 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 더욱이 몸 하나로 움직이는 것이라면....
…… (중략)
보아라, 허물처럼 추억만 두고 / 사라지는 것은 사람일 뿐이다.
- 양성우, <사라지는 것은 사람일 뿐이다> 중에서
다시 이성부 시인의 얘기를 들어보자.
“지리산은 자기 품에 안긴 사람들을 거두어들여 자기의 몸으로 만들었다. 산에 숨은 사람들은 살아서 내려가야 할 길이 주검으로도 내려가지 못한다는 것을 보았다. 하나씩 둘씩 그렇게 쓰러져서 젊음은 흙이 되고 산이 되었다.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총맞아 죽어 ……“
그리고 세월은 50년도 더 흘렀다. 이념이 달라 시대의 이단자가 되었던 그들이나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목숨을 부지하려 했던 사람들도 서서히 잊혀져 간다. 그들에게 들려줄 슬픈 진혼곡도 약해지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묵묵한 산이 받아들이고 감싸 안고 있다. 짙푸른 녹음이 그 상처를 덮고 있을 뿐이다.
다시 끄집어내어 상처를 후벼도 이념의 좌우는 여전히 극명할 뿐 합일은 어렵다. 이념은 가치이고, 그 가치는 변해간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 후일의 가치로 재조명되고 가름될 뿐이다.
“지리산에 뜨는 달은/ 풀과 나무를 비추는 게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 지워지지 않는/ 눈물자국을 비춘다” 고 했던가? 비안개에 휩싸인 벽소령에서 그 눈물자국을 본다. 벽소명월이 천왕일출보다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데 3년이나 걸렸다. 얼큰하게 취했다. (1일차 산행 종료)
- (산행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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