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대원사 종주] 운무(雲霧) 속에서 길을 묻다(5)
산행 일시 : 2008년 8월 15일(금) ~ 8월 16일(토), 벽소령 1박
산행 시간 : 바람처럼 구름처럼, 해시계 물시계도 버리고
산행 코스 : (1일차) 화엄사-노고단-반야봉-삼도봉-화개재-연하천-벽소령(1박)
(2일차) 벽소령-세석-장터목-천왕봉-중봉-치밭목-유평-대원사
산행 거리 : 46.2 Km(반야봉 왕복 2Km포함)
산행 동참 : 성호,길원,정산,월파,오리,성원,시탁
[산행기]
(1) 그대 무엇으로 지리산에 드는가
(2) 종주의 들머리 화엄사(華嚴寺)에서
(3)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4)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5)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6) 청학동이란 곳이 정말 있는지
(7) 죽어서도 눕지 못하는 나무들
(8) 통천(通天)을 이루었으니 더 무엇을
(9) 앞만 보지 말고 옆을 보시라
(10) 지리산을 떠나며 생각난 사람들
1) 내원골과 정순덕
대원사를 떠나 덕산으로 향하며 장당계곡이 있는 내원골 입구를 지난다. 정순덕을 생각한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낳은 현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지리산, 그 비극의 종지부를 찍은 내원골에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의 파란만장한 삶과 한이 서려있다.
산허리 굽이굽이 돌아 끝없이 가다 보면 / 마침내 나타나는 우리네 살림살이
마을에 깔린 저녁 연기 내음 / 그러나 그대는 돌아와야 할 때 집을 떠나
죽음이 뻔히 내다 보이는 길로 들어갔다 …… (중략)
열여섯 어린 나이에 산에 들었다면 / 사상보다는 그리움의 키가 커서
더 먼데 하늘을 보는 / 눈망울 착한 한 마리 짐승으로 쓸쓸할 뿐
- 이성부, <정순덕에게 길을 묻는다> 중에서
정순덕의 삶에 있어, 지리산은 어떤 존재였을까? 단순한 산이었을까? 지리산에서 태어나, 지리산과 함께 살다가, 지리산에 묻힌, 이름없는 민초(民草)였던 그녀에게 지리산은 무엇이었을까? 그녀에게 지리산은 사상이나 이념이 아니었다. 필부에게는 단지 삶의 울타리였고, 생의 방편이었다.
지리산을 떠난 그녀의 삶은 목숨이 있어도 산 목숨이 아니었다. 그녀가 생포된 후 끝까지 전향을 거부한 것도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생명처럼 의지한 지리산을 놓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 정순덕 - 내원골에서 태어나 자람/ 1950년 남편을 찾아 산으로 가 13년간 빨치산으로 활동함/ 지리산 최후의 빨치산으로 생포되어 끝까지 전향을 거부, 교도소에서 2004년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
2) 덕산 산천재(山天齋)와 남명 조식
請看千石鐘 (청간천석종) 천 섬 들어가는 큰 종을 보소서
非大扣無聲 (비대구무성) 크게 치지 않으면 아무런 소리 없다오
爭似頭流山 (쟁사두류산) 어떻게 해야만 저 두류산과 같이
天鳴猶不鳴 (천명유불명)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까?
작은 종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소리가 나고, 큰 종은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작은 유혹에도 넘어가는 사람과, 어떠한 경우도 흔들림이 없이 지절(志節)을 지키는 큰 인물이 있다. 지리산은 비바람 불고 천둥번개가 쳐도 그 본래 모습을 조금도 변치 않는다.
남명 조식 선생은 덕산에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노년을 보내며, 그런 지리산을 닮고자 하였다. 天鳴猶不鳴(천명유불명),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두류산처럼 넓고 큰 그의 그릇을 본다.
사람도 큰 산에 들면 그 산을 닮아 더욱 커져가는 것을 오늘에야 깨닫는다.
3) 하동 화개골의 남난희
내원골과 산천재를 지나 진주로 향하는 지리산 자락에 작은 삼거리가 하나 있다. 하동 악양과 산청 단성의 갈림길이다. 산청 단성으로 길을 택하며 하동 악양의 지리산 자락에 살고 있는 여성 산악인 남난희를 떠올린다.
“그 동안의 산이 등산이었다면 이 때부터의 산은 입산이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삶은, 아무 것도 가지고 싶은 것이 없고,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고,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고, 아무 것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곳에도 가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게 되었습니다.”
- 남난희, <낮은 산이 낫다> 중에서
그녀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백두대간을 단독종주하고, 히말라야 강가푸르나(7,455m)를 여성최초로 등반한 산악인이다. 어느 날 문득 깨달은 바 있어 등산을 버리고, 정선을 거쳐 지리산으로 들어가 지리산 아래 깊은 마을에서 산이 되어, 산과 더불어, 산처럼 살아 간다.
그녀가 젊은 시절 선택했던 산, 산에서 찾으려던 답은 무엇이었으며, 그 답은 산에서 찾았을까?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산을 오르지 않는다. 산을 오르는 대신 산자락에 안겼고 그 품에서 자유롭다. 그녀는 더 이상 산을 찾아 떠돌지 않고 한 곳에 정착했다. 머무르되 얽매이지 않는 삶이다.
(11) 겨울산이 부르는 환청(幻聽)
지리산을 벗어나며 스스로를 돌아본다.
이념이었든 삶의 방편이었든 정순덕의 지리산은 덧없는 구름처럼 허망하게 떠다니고,
큰 종(鐘)과 같은 지리산을 닮으라는 남명(南冥)의 가르침은 내 작은 그릇에 흘러 넘치며,
바램도 기다림도 넘어 선 남난희의 경지는 아직 내게 구두선(口頭禪)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어찌하랴? 다만 산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를 따라 산에 들고,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산의 큰 품이 그리우면 언제든지 그 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그리울 때 갈 수 있고,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곧 넉넉함이 아닐까?
그것만으로도 참으로 넉넉하다.
여름의 지리산은 녹음방초 우거진 숲속의 푸른 바다였다.
그 바다에서 돌아오며, 하얀 겨울산이 부르는 환청(幻聽)을 듣는다.
춥고, 외롭고, 높은 겨울산 ...... 그 겨울산이 던지는 화두(話頭)가 각별하다.
문득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는 의문이 떠오르면,
무욕(無慾)의 스승인 벌거벗은 겨울산으로 달려오란다.
겨울산은 엄격한 스승처럼 차고 매서운 회초리를 들 것이다.
정신적 흐트러짐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삶의 반추도 없이 관성으로 살아온 날들을 사정없이 꾸짖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하얀 겨울산이 주는 그 정신적 채근을 두려워하랴.
겨울의 화대(화엄사-대원사) 종주를 다시 꿈꾸어 본다.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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