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智異十景

지리산 칠암자 - 도솔천이 어디메뇨/ 그 사색의 길에서

月波 2008. 11. 9. 22:46

  

지리산 칠암자 - 도솔천(兜率天)이 어디메뇨? 그 사색의 길에서

  

  - 2008. 11. 08. (토)

  - 도솔암 ->영원사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사 ->약수암 ->실상사

  - 찬우, 길원, 월파

 

 

  (1) 도솔암(兜率庵) - 에고, 도솔천(兜率天)아

 

불교의 세계관에 따르면 수미산(須彌山) 꼭대기 위에 도솔천(兜率天)이 있다하니, 그 곳은 어떤 곳인가?

누구는 미래불(未來佛)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說法)하며 세상으로 내려갈 때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 하고,

혹자는 끊임없이 정진(精進)하여 덕을 쌓거나, 깊은 선정(禪定)에 들어 마음을 갈고 닦아야 그 곳에 태어날 수 있다는 곳이다.

오욕에 물들지 아니하고 희노애락에 흔들리지 않으면, 바로 그 곳이 도솔천이 아니던가?

 

지리산 도솔암(兜率庵) 가는 길, 그 곳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지리산 삼각고지에서 삼정산을 향해 뻗어내리는 능선아래 조용한 숲속에 묻힌듯 숨어 있다.

오늘 그 길을 간다. 혹여 도솔천이 세상으로 내려와 그 숲에 자리하고 있지나  않을까 기대하면서 ......

지리 13-05, 무슨 암호 같다. 음정마을에서 벽소령 가는 작전도로에서 하늘길로 향하는 이름없는 이정표다.

아는 사람만 조용히 찾아드는 그 들머리를 찾아 길 없는 숲길을 가파르게 오르면 세욕에 찌든 마음이 땀으로 모두 씻겨난다.

그래도, 아직 급한 마음이 남아 능선에 올라 한 바탕 알바를 하고, 덕분에 낙엽이 발등을 덮는 숲길을 딩굴며 30여분간 호사를 누린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선말 고개 넘어간다 자갈 길에 비틀대며 간다

          도두리 벌 뿌리치고 먼데 찾아 나는 간다

           .........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도랑물에 풀잎처럼
          인생행로 홀로 떠돌아 간다
          졸린 눈은 부벼 뜨고 지친 걸음 재촉하니
          도솔천은 그 어드메냐

           ........

          간다 간다 나는 간다 풍우설운 등에 지고
          산천 대로 소로 저자길로
          만난 사람 헤어지고 헤진 사람 또 만나고
          에고, 도솔천아

          ........


 

에고 도솔천아 - 정태춘

 

 

도솔암에 드는 길, 일주문 대신에 바위계단에 놓인 "안거중(安居中)"이라는 문패가 길을 멈추게 한다.

낮은 세상의 절에는 하안거(夏安居)와 동안거(冬安居)인데, 수미산 위의 도솔천에는 사시사철 안거 결제중인가 보다.

사립문 없는 돌계단을 올라 도솔암 삼소굴을 엿본다. 이슬처럼 맺는 석간수 몇 방울로 목을 축이니 바로 그 곳이 도솔천이더라.

안거중인 스님과 무언(無言)의 선문답(禪問答)에 산객(山客)의 눈동자에는 벽소령의 푸른 달빛같은 처연함이 서린다.

돌계단 되돌아 내려서니 채마밭의 상치가 앙증스럽게 웃고 있다. 높은 곳에서 자라 제 몸을 낮추느라 저렇게 작게 자라는 것일까?

푸성귀 잎사귀에도 법(法)이 있고 도(道)가 있다 했으니 ...... 

 

 

 

 

 

(2) 영원사(靈源寺) - 덧없는 세월에 쉽게 잊혀지는 아픔

 

통일신라 시대였단다. 토굴에서 8년간 참선을 하고도 도(道)를 깨닫지 못해 하산하던 길에, 물도 없는 산 속에서 낚시를 하는 노인의 말 한 마디에 깨우침을 얻게 되었다는 영원(靈源)스님과 그의 영원사(靈源寺) 창건 설화에 귀가 솔깃해진다. 영원대사(靈源大師) 이후 쟁쟁한 선승들이 거처간 수도 도량이건만, 해방이후 이념분쟁이 낳은 현대사의 질곡을 함께한 영원사의 상처가 너무 커 보인다.

 

100칸이 넘는 선방을 갖춘 사찰은 여순 반란사건과 한국 전쟁을 거치며 빨치산의 아지트가 되고 국군 토벌대와의 격전장이 되면서 완전히 소실되며 잊혀져 갔다. 70년대 이병주의 소설 <지리산>이 이념적 접근에 대한 금기를 깨트리고 나서야 요사체 2동이 겨우 복원되었으니 ......   " 태양(太陽)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月光)에 바래지면 신화"가 된다고 했던가 ! 역사란 바람처럼 떠돌지만 그 바람이 있어 진전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아는지 영원사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은 핏빛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다.

 

영원사에서 빗기재로 향하는 오르막의 산죽밭에서 빨치산의 비트를 본다. 탈색된 이념과 관광상품화된 빨치산 루트, 몇 년 전에 처음 찾아왔을 때와 달리 내 머릿속의 관념은 꽤 무뎌져 있음을 직시한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빚어낸 상처는 덧없는 세월 앞에 그 비극이 쉽게 잊혀져 가고 있다. 30여년 전 대학시절까지도 지리산으로의 이념적 접근이 사실상 금지되었었는데, 이병주의 지리산이 돌파구를 열고, 이태의 남부군이 길을 넓히더니,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관념의 벽을 꽝 뚫었다. 그러기까지 관념과 현실의 차이는 얼마나 컸던지 .....

 

빗기재에서 땀을 훔치며 잠시 쉬었다가 상무주암 가는 길에 접어드니 능선길이 그렇게 평안하고 자적(自寂)할 수가 없다.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와 함께 상무주암을 다녀오는 부부의 모습이 그렇게 해맑을 수가 없다. 근심 덩어리도, 욕심 덩어리도, 자만심 덩어리도 모두 털어버리고 저렇게 홀가분한 모습으로 걷는 것일까?

 

 

 

 

빨치산의 산죽비트 

 

 

(3) 상무주암(上無住庵) -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고

 

세간의 시각으로 보면 상무주암(上無住庵)의 산도 암자도 이색적(異色的)이다. 상무주암 뒷봉우리는 지리산의 줄기이면서도 삼정산이라는 독자적 이름을 갖고 있고, 암자에는 한 때 선원(禪院)에서 이름을 날리던 수좌(首座)가 홀연히 이 곳으로 찾아들어 30여년 가까이 홀로 수행중이다. 해발 1100m의 삼정산 아래 상무주암에는 오늘도 그 스님이 참선 삼매경에 빠져있다.

 

상무주암(上無住庵)의 '無住'는 '머무름이 없다'는 뜻이다. '머무름'이란 마음의 걸림이 있어 집착함을 의미한다. 아무런 얽매임이나 집착함이 없이 자재(自在)로운 마음이 무주심(無住心)이 아니겠는가?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마땅히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그 마음을 그대로 써라)는 금강경의 핵심구절에서 연유한 이름이리라.  상무주암 주변은 만산이 홍엽인데, 암자 입구에 빗장을 치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들어 있는 저 스님은 언제 쯤 가부좌를 풀고 일어설까? 

 

어느 님이 들려준 현기스님의 상무주암(上無住庵) 이야기가 생각난다.

 "상무주암(上無住庵)의 무주(無住)는 머무름이 없다는 뜻인데 그 앞의 '상(上)'은 무슨 의미입니까?" 누군가 상무주암의 스님에게 질문을 한 모양이다. 스님의 말씀,  "말에 얽메이지 말라". 지식이나 알음알이로 무엇을 해석하려는 것을 선가(禪家)에서는 거부한다. '지금 눈앞에 나타난 그대로를 보라, 그대로의 현상이 바로 진리요 법이다.' 그래서 '上無住'는 그냥 '상무주'일 뿐이다.  허걱!

 

산객은 상무주암 처마아래 걸터앉아 잠시 쉬었다 가고 싶지만, 입구의 나무빗장을 언감생심 넘어설 수 없다.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상무주암의 단풍잎 몇 장을 마음 속에 담고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맞은 편 지리산 주능선에는 운무(雲霧)가 낮게 드리우고 있다. 산객의 부질없는 마음을 안개가 덮고, 쓸어내리고 있다. 그래, 마음 속의 머무름을 털어버리고 문수암으로 향해보자.

 

 

 

 

 

 

 

(4) 문수암(文殊庵) - 차 한 잔과 호박엿

 

상무주암을 떠나 문수암으로 가는 길, 이제 칠암자중 겨우 세곳을 들렀을 뿐인데 왠지 마음이 홀가분하다. 이미 오후 세시를 지나고 있으니 늦가을의 해떨어지는 시각이 임박함을 알면서도, 이 여유로움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문수암 가는 길에서 양정마을로 하산하는 갈림길의 바위 위에 지도를 펼쳐들고 편안히 주저 앉는다. 사과 한 쪽 잘라 입에 넣으니 꿀맛이다. 천국이 따로 없다. 도솔암과 상무주암으로도 넉넉해진 마음을 숨길 수 없다.

 

바위 벼랑 위에 간신히 자리잡은 문수암에 닿으니 지리의 주 능선과 산 아래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산 위에서는 산만 바라보라고 상무주암을 지날 무렵 산자락에 내려졌던 엷은 운무가 잠시 걷히고 마천의 도마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것도 잠시, 다시 옅은 안개가 잦아들고 산객은 문밖으로 나온 도봉스님을 만나 차 한 잔으로 목을 축인다. 스님, 문수보살께 올린 호박엿 공양은 맛이 어떠하더이까? 내년 봄 얼음이 녹아야 수미산에 오를거라구요? 

 

미처 상무주암에 내려놓지 못한 공양미를 문수암에 놓았으니 마음의 짐을 덜어 홀가분하다. 도봉스님, 단풍이 낙엽되어 모두 떨어지거든 자리를 훌훌 털고 이웃의 상무주암에 한 번 다녀오소서. 앉은뱅이 수좌의 겨우나기가 여여할지 속인은 산 아래에 와서도 그것이 걱정이더이다. 예? 너무 얽매이지 말고 털어버리라구요? 산은 산대로 속(俗)은 속(俗)대로 물 흐르는 법이 따로 있다구요? 

 

 

 

 

 

 

(5) 삼불사(三佛寺) - 스치는 바람처럼 걸림이 없이

 

삼불사(三佛寺), 오래 머무르지 못함이 아쉬운 것이 아니라 반겨주는 이 없으니 더욱 허전하더라. 이 절간의 세 부처님도 모두 삼매경에 들었는지 적막하기만 하다. 산객이 지나가도 스치는 바람처럼 흔적이 없으리라. 잠시 머물다가 아무런 걸림이 없이 길을 서두른다. 해 떨어지기 전에 약수암에 들리고 싶다.

 

 

 

 

 

 

 

(6) 약수암(藥水庵) - 약수도 목조탱화도 잊어버리고

 

문없는 뒷길로 약수암에 내려선다. 약수암의 보광전, 소담하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것일까? 그러나 그 속은 꽉 차 있다. 목조탱화, 나무에 불상을 조각해서 만든 탱화가 주불로 모셔져 있다. 약수암의 약수는 그 이름처럼 맑고 청정한 느낌에 가을의 운치까지 곁들여 있다. 약수에 붉은 단풍 한 잎 띄워 마셔보면 가을이 온 몸으로 빨려들 것이다. 그러나, 목각탱화도 약수도 잊어버리고 경내를 둘러본다.

 

그런데, 요사체는 수리중이고 새로운 건물을 신축중이라 주변이 어지럽다. 거처하는 스님도 안보인다. 그렇다면 백우당 각묵은 어디에? 오늘도 마음속으로 그의 해맑은 미소만 머릿속에 그리며 터덜터덜 실상사로 향한다. 어둠이 내리는 산길을 30여분 걸었을까? 걸음을 서두르지 않고 셋이서 도란도란 얘기를 주고 받으며 실상사에 이른다. 이미 어둠이 내렸다.

 

 

 

 

 

 

(7) 실상사(實相寺) - 어둠 속에 닿은 구산선문(九山禪門)

 

이미 어둠이 내린 실상사(實相寺)는 오히려 편안함으로 산객을 맞아준다.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실상산문(實相山門)의 선풍(禪風)은 백장암에 가야 느낄 수 있겠지만, 어둠 속에서도 보광전 앞의 두 탑은 우뚝하다. 여러 차례 실상사에 들렀지만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실상사는 색다른 고요함을 마음에 안겨준다. 수없는 지리산행에서 간간이 들렀으나, 이런 시각의 방문은 처음이니.

 

내년 봄 섬진강에 매화향기 흩날리는 날, 다시 지리를 찾거든 길을 돌아 다시 실상사에 들릴 수 있겠지. 백우당 각묵스님, 그 때는 매화차 한 잔에 넉넉히 법담(法談)을 띄워주실거죠?

 

 

 

 

 

 <에필로그>

 

실상사를 나서 깜깜한 어둠 속에 다시 세상의 길로 돌아온다. 이외수의 길에 대한 명상을 되뇌이면서......

자신이 스스로 만든 길, 그 길만이 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사통팔달의 길, 길을 만들기 전의 길이 보인다.

 

          길은 떠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길을 만들기 이전에는 모든 공간이 길이었다.
          인간은 길을 만들고 자신들이 만든 길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길이 아니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길을 가는 데 가장 불편한 장애물은 자기 자신이라는 장애물이다.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평탄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전자는 갈수록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후자는 갈수록 마음이 옹졸해진다.

 

                                        - 이외수, 길에 대한 명상 중에서

 

실상사에서 깜깜한 세상으로 

 

 

산청 금서의 세검정에서 뒤풀이 - 약초정식과 약초동동주, 찬우는 서울로 길원은 부산으로 월파는 진주로.

시제를 앞두고 고향집에 모두 모인 형제들과 오붓한 정담, 다음 날 11대 조부에서 5대 조부에 이르기까지 선산에서의 시제,

귀경하는 길에 산청 단성에서 본  반야봉에서 천왕봉까지 주능선의 선명한 파노라마, 이어서 석양이 물들고 ........

귀경길의 교통혼잡에도 불구하고 짜증도 서두름도 없이 편안한 마음. 정속주행! 칠암자 순례가 마음의 보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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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 메모]

 

0550 서울 대치동 출발

0600 송파 IC

0840 인월 IC

0840-1000 인월(조식및 산행준비)

1040-1045 음정 벽소령 작전도로(바리게이트)

 

1100 벽소령 작전도로 표지목(지리 13-05)

1150 능선(알바 30분)

1123 도솔암 삼거리

1225-1235 도솔암

1315-1400 중식(영원사 아래 도솔암 입구 계곡)

1408-1423 영원사

1425 산죽비트

1440 빗기재

1508-1513 상무주암

1540-1550 문수암

1604-1608 삼불사

1705-1710 약수암

1745-1758 실상사

 

1820 음정 벽소령 작전도로 - 차량회수

1900-2000 세검정 가든(산청 금서면) - 약초정식과 동동주

2100 진주 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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