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 22~23 - 몰운대에서 바닷물에 풍덩
- 2008년 11월 22일(토) ~ 11월 23일(일) 1박2일
- 제용, 성호, 길원, 오언, 정산, 월파, 오리, 성원
- 제 1일차 : 27.5 Km, 12시간 00분 (지경고개-계명봉-금정산(고당봉)-원효봉-산성고개-백양산-개금고개-엄광산-구덕령)
- 제 2일차 : 15.8 Km, 06시간 50분 (구덕령-구덕산-대치,괴정,장림고개-봉화산-정밀고개-아미산-다대포-몰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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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 1일차 산행 - 그대들과 함께 행복했노라
지경고개에서 이틀에 걸친 낙동의 마무리 장정에 나선다. 마지막 남은 부산구간 43.3Km, 아껴가며 쉬엄쉬엄 걷고 싶은데 낙동의 끝점이 다가오니 모두 마음이 바빠진 모양이다. 1박 2일로 단칼에 승부를 보잔다. 여기 싸움터도 아닌데 ...... 아니면 바닷가에서 하루밤을 보내며 아쉬운 정, 살가운 정을 나누자는 뜻으로 의기투합해 근사하게 졸업전야제를 해보자는 무언의 약속인지 모른다. 목우촌 돼지국밥 한 그릇하고 계명봉을 향해 어둠속으로 빨려든다.
계명봉, 초겨울의 새벽은 남쪽이라 하여도 손이 시리다. 범어사에서 아침예불 소리 들린다. 낭랑한 도량석 소리에 마음이 정갈해진다. 장군봉으로 향하는 길, 선두는 편안한 지름길을 택하고 후미는 곧이곧대로 마루금을 탄다. 그 길에서 일출을 맞이한다. 편안함을 쫓은 자는 숲사이로 일출을 접하고, 고단함을 마다하지 않은 자는 산봉우리에서 장엄한 해돋이를 본다. 떠오르는 해를 가슴에 안은 이여, 그 기운을 다른 이에게도 나누어주시라. 그대들에게 축복있으리니.
고당봉 가는 길, 잠시 마루금을 벗어나 마애불을 보러 간다. 그 길에 뜀바위를 건너다가 낙상(落傷), 하루 종일 오른 팔이 쑤신다.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고당봉 직전 안부에는 아침햇살에 은빛 억새가 그 잎을 날름거리며 산객을 유혹한다. 카메라 잡은 이 저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자 누구이겠는가? 자연히 말석(末蓆)으로 고당봉에 오른다. 모두 동서남북을 조망하느라 여념이 없다. 금정산이 품고있는 이 환상적 풍광을 예전에 왜 몰랐을까? 고당봉은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인데, 이제사 눈을 떴으니 ......
발 아래에 원효암이 보인다. 마치 축지법을 쓰듯 산을 오르내리던 지유스님이 오늘도 장좌하고 참선 삼매경일텐데 ....... 스님, 그립습니다. 흑염소에 막걸리 마시며 젊은을 발산하던 산성고개,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이 안타깝다. 흑염소 약속했던 규익이 오늘 부도내었으니 더 더욱 애닯고야. 그래, 오늘 막걸리는 남문마을에서 들이켜볼거나. 그런데 야속하다, 선두조여. 남문마을 400m를 멀리하고 직진하며 길을 서두르니 ..... 다행히 후미의 성화에 숲속의 빈터에서 의기투합, 막걸리 한 사발에 오뎅국에 밥 말아먹으니 별미가 따로 없더라.
만덕고개, 백양산 향해 오르는 계단에서 헉헉거리던 숨소리는 만남의 광장 넓은 숲에 가서야 진정되고, 불웅령 고바위 길에서 거친 숨소리가 다시 하늘을 찌르더라. 잠시 고개들어 숨을 들이키니 좌우로 해운대와 낙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한산을 가까이 두고 그 진수를 놓치고 지낸 세월처럼, 금정산에서 백양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조망과 그 장쾌함을 왜 진작 몰랐던가? 백양산에 올랐더니 대마도가 아스라이 보이고, 삼천포와 마산 앞바다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1년에 이런 날이 손꼽을 정도라니.
개금고개가 당초의 목적지였건만 오언과 성호의 부추김에 구덕령까지 가는 연장전을 펼친다. 그래도 엄광산 오르기 전에 예향의 짜장면 맛은 보고 가야지. 나는 곱배기요. 그 맛에 숨이 꼴깍 넘어간다. 엄광산의 식후경(食後景)은 어떠할까? 아, 정상에서 보는 낙동의 일몰이여! 발을 뗄 수 없었으니. 장군봉의 일출과 새벽달, 금정산의 낙동 파노라마에 이어 엄광산(嚴光山)의 일몰까지, 이렇게 뿌듯한 날이 다시 있을까?
어둠이 내리는 구덕령에서 자갈치 시장으로 직행, 원조 1호집의 꼼장어 맛에 C1을 몇 병이나 비웠던지 ...... 제용아우 KTX 타고 합류하고 남포동의 밤은 무르익어간다. 얼마만에 앉아본 자갈치의 좌판인가? 이렇게 낙동은 산 아래가 늘 풍성하니, 어느 구간 가릴 것 없이 추억이 있고 그리움이 따른다. 길원 하우스로 이동, 낙동 졸업식의 전야제는 지나온 구간의 회상과 뒷얘기로 밤 깊은 줄 모르고. 아, 그대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내 진정 행복했노라.
(2) 제 2일차 산행 - 몰운대 바닷가에 풍덩
간밤의 전야제에서 마신 술이 오히려 약이었나? 아니면 오늘 남은 거리가 얼마되지 않은 탓인가? 구덕령 꽃마을의 시래기 해장국 한 그릇에 구덕산을 오르는 발걸음이 가볍다. 돌아가며 반납(?) 의식이 뒤따르니 모두 개운한 얼굴이다. 밀어내기 한 판이 육신의 고단함을 녹이는구나. 구덕산에 오르니 부산 남항은 아침햇살에 은빛물결을 출렁이고 있다. 지난 주 강운구 사진전에서 본 <남해>가 연상된다. 빛이 빚어내는 저 찬란한 모습, 진경(眞景)이나 인상(印象)을 넘어 속마음(心理)까지 카메라에 담아낼 수는 없을까?
대치고개로 내려서는 길, 낙동의 마루금은 완전히 Level 0 수준으로 급강하한다. 이제부터 낙동은 도시의 골목으로 내려와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 흔적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선답자의 지도 연구가 참고서로 등장하고, 성호와 성원 형이 앞뒤에서 길잡이를 한다. 대치고개를 건너 구멍가게에서 싸만코도 사먹고 뒷골목 구경도 하며 아랫마을 세상과 어울린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배우고자 나섰던 낙동길이 아니던가?
이제 산으로 접어들어도 더 이상 산이 아니다. 낮은 세상으로 내려온 마루금은 가벼운 언덕이다. 괴정고개를 거쳐 장림고개에 이르기까지 야산과 주택가 골목길을 번갈아 걷는다. 장림고개의 허름한 중국집 오복성이 허기진 일행의 배를 채워주고, 털털한 그 아줌마는 카메라 렌즈에 기겁을 하면서도 막상 사진을 보여주니 배시시 웃는 모습이 그렇게 순박할 수가 없다. 숲길의 바람은 나뭇가지에 걸림이 없고, 낮은 세상의 아낙은 얽매임이 없는 삶이구나.
봉화산으로 접어든다. 그 정상을 밟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누구는 여름 날 여기서 땡칠이가 되었다 했었지. 어제와 달리 한낮의 따가운 햇살이 겉옷을 벗게 한다. 햇님과 바람의 이야기, 동심(童心)이 찾아든다. 구평 가구단지, 일행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걷는 길이다. 선두도 후미도 없이 함께 모여. 그래야 골목골목을 돌아서 길을 찾을 수 있다. 낙동의 마지막 산, 아미산을 오르는 계단은 한 걸음 한 걸음 지나온 길을 회상하며 최대한 천천히 오른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스무번이 넘는 구간, 어느 한 곳도 만만하지 않았으니 .....
이어지는 편안한 솔숲길, 그 음기가 정신을 맑게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말이 없어도 그 뜻을 헤아린다. 모두 이심전심, 염화시중의 미소다. 서서히 가을 햇살이 그 높이를 낮추고 있다. 아미산 봉수대에 서니 눈앞에 펼쳐지는 다대포, 몰운대가 어서오라 손짓한다. 낙동의 끝이 멀지 않다. 다대포를 향해 걷는 마음은 춤추듯, 바다위를 미끄러지듯 하다. 다대포 백사장에서 발을 담글까? 몰운대 숲을 가로질러 바닷물에 풍덩할까? 가자, 가자, 끝까지.
다대포에서 몰운대로 향하는 길은 하늘을 찌르는 교목들이 반긴다. 이 나라 이 땅에 이처럼 호젓한 길도 드물지 싶다. 갈 수 있는 마지막까지 길을 찾아 몰운대에 가까운 바닷가로 내려선다. 성호는 벌써 바다로 뛰어들 준비를 마쳤고, 길원은 손사레를 치며 저만치 피한다. 일제히 바닷물에 풍덩 ~~~ 개구장이 악동처럼 서로 물장구를 치며, 나이도 잊고 주변의 눈치도 보지 않고 서로를 축하하며 ...... 초겨울의 오후 햇살이 몰운대로 서서히 내려온다. 이제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3) 낙동을 마무리하며
1년 6개월여에 걸친 긴 여행이 끝나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노곤하면서도 편안한 잠이었다. 그 잠에서 깨어나 낙동과 함께한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본다. 태백의 삼수령에서 부산의 몰운대까지 낙동강의 동쪽 산줄기를 따라 걸어온 긴 여정이었다. 홀가분함과 뿌듯함이 교차한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낙동의 산줄기에 매달렸었다.
어느 날 문득 새로운 길이 그립고, 또 다른 간절함이 솟구치면 설악산으로, 지리산으로 달려가 순간순간 몸을 의탁했지만 마음은 늘 낙동에 있었다. 다만 서두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면서 함께하는 산친구들과 호흡을 같이하려 했다. 산줄기에만 매달리지 않고 산아래의 인문환경을 살피며 걸으려 애썼다. 그래서 백두대간에서와 달리 오지를 찾아다니는 불편함이 있어도, 마음은 여유롭고 넉넉한 길이었다.
그래서 산 아랫마을에서의 추억이 유난히 많다. 그 기억들을 더듬어 하나하나 정리해 보고 싶다. 좀 시간을 갖고 지나온 길을 반추하면서 다음 길에 대한 생각을 다듬으려 한다. 중간중간 낙동산행에 동참하거나 마음으로 성원을 보내준 지인들에게 감사드린다.
형제애로 뭉쳐 함께한 동지들이여, 평생을 함께 할 벗을 얻었으니 이 보다 더 큰 즐거움이 있겠소? 또 다른 길에서 만납시다.
일찍이 내가 올라갔던 산 / 건너온 강
몇 개 되지 않지만 그 이름들조차 / 모두 기억하지는 못한다
내가 모르는 산과 강 /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 수 많은 얕은 언덕과 짧은 물줄기
어딘가 적혀 있지 않아도 / 그 많은 이름들 /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다
헤아릴 수 없구나 / 모르는 이름들
..............
.....
진실로 사랑하고 흠모하는 이를
강아지나 고양이 부르듯 그렇게 / 부를 수 있나
목청 높여 연호할 수 있나
가만히 입속으로 되뇌어보거나 / 가슴속에 간직한 채
아껴야 할 이름
- 김광규, <이름> 중에서
2008. 11. 25.
낙동의 긴 잠에서 깨어나
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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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정]
제 1일차 : 11월 22일(토)
1130 강남고속버스 터미널
0400 노포동 터미널 도착
0420 조식(30분, 돼지국밥)
0520 지경고개 출발
0600 계명봉
0703 장군봉 능선, 일출
0740 마애불
0808 고당봉
0832 동문
0925 남문
1015 매점(중식, 45분)
1140 만덕고개
1326 백양산
1510 개금고개
1530 간식(30분, 예향 짜장면)
1635 엄광산 (일몰 구경 25분)
1700 엄광산 출발
1720 구덕령 도착
1800 자갈치시장(원조 1호 꼼장어) 낙동졸업 전야제
2100 길원하우스(전야제 2부)
제 2일차 : 11월 23일(일)
0730 길원하우스 출발
0750 조식(구덕령 시래기국)
0820 구덕령 출발
0910 구덕산(560m)
1000 대치고개
1040 247.2m, 우정탑
1115 괴정고개
1200 장림고개, 중식(30분, 오복성 짜장면)
1250 봉화산(149.6m)
1305 구평 가구단지
1330 정밀고개
1357 아미산(233.7m, 응봉 봉수대)
1415 롯데캐슬 아파트 통과
1450 다대포 몰운대 입구
1510 몰운대(졸업세러머니 50분)
1600 몰운대 출발
1620 다대포 동궁횟집(뒷풀이)
1945 1930 예약버스를 놓치고 2차 뒷풀이
2200 부산 노포동 출발
0210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2무박 1박 2일의 여정을 끝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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