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구 사진전] 저녁에(Embracing Evening)
- 송파구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
- 2008. 11.19.(수)
강운구, 남해
강운구의 사진전, <저녁에 - Embracing Evening>에서
점심을 거르면서도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음은 이미 내 영혼이 사진에 담아놓은 그의 내면 세계에 푹 빠졌음을 말한다.
"검은 색은 더 검게, 밝은 빛은 더 밝게", 강운구의 사진에서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무언의 언어다. 단순한 대조나 명암만으로는 불가능한 그 특유의 표현법이다. 흑백과 아나로그를 고집하며 군더더기 없는 노출을 추구한 그의 천착, 어쩌면 <천착>이라는 단어가 사진으로 점철된 삶의 골간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흙과 땅, 연속사진, 그림자>로 3부작 형태의 사진전시 <저녁에>는 하루의 해거름과 인생의 황혼을 동시에 은유하고 있다. 표현대상과 표현방식을 달리 하면서 그가 추구하는 테마를 단순하면서도 특이한 착상으로 카메라 렌즈를 통해 담아내고 있다. 조선의 산수화에서 보는 진경(眞景)이나 19세기 후반 서양화의 인상(印象)과 달리, 그가 담아내는 카메라의 실상(實像)에는 그만의 통찰을 통해 내면의 심리가 깊숙히 투영된 실상(實相)이다. 그것도 Full Frame에 흑백이라는 표현방식을 고집하면서.
소금창고의 염부, 밭고랑처럼 깊게 주름살이 패인 염부의 얼굴을 담은 3장의 연속사진이다. 삶의 희노애락을 두루 겪은 노인의 강렬한 눈빛에 모나리자의 미소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을 동시에 카메라의 눈으로 담았으니 감탄이 절로 난다. 그것도 망원렌즈가 아닌 단계별 근접촬영으로, 피사체에 대한 그의 탐색과 발견, 감정이입의 과정을 연속사진으로 보여준다. 그만의 메시지 전달방식이 내게 새로운 눈을 뜨게 했다.
잘 찍은 사진과 아름다운 사진, 대체 사진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구도와 대조와 명암이 조화를 이루는? 기교보다 내면심리의 표출이나 감정의 이입이 잘 된? 피사체를 통해 느껴지는 편안함이나 즐거움이 있는? 그런 의미에서 소금창고의 염부는 잘 찍은 사진을 넘어 아름다운 사진이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염부의 얼굴에서 모나리자의 미소를 볼 수 있었으니까.
오래된 난(연속사진), 남해(흙과 땅), 민불(民佛)(그림자) ....... 다시 음미하고 싶은 사진들이다.
돌이켜 볼수록 전시 후반부에 본 "발자국"(흙과 땅) 사진이 생각난다. 감동과 면역, 대상의 전이(轉移), 실수에 대한 용서, 기록과 예술 .....
사진전에서 돌아와서도 여러가지 생각이 많다. 그가 던지는 몇 가지 메시지가 아직도 뇌리를 맴돈다.
"경험은 감동에 대한 면역체계를 형성시키고, 육체적 나이와 감수성은 반비례한다"
..... 그래서 대상의 전이(轉移)를 시도한다고? 그것은 단순한 기교인가, 다른 내면 세계인가?
"포커스가 안맞아도, 흔들려도 용서가 된다"
..... 그것은 년륜이 주는 후덕함인가? 또 다른 심리의 표출인가? 아니면, 다른 예술의 시작인가?
"사진의 기록성과 예술성, 기록성이 우선한다"
..... 그가 말하는사실성과 정서의 조화는 무었일까?
전시회가 끝나기 전에(12월 6일), 시간을 내어 다시 한 번 가봐야겠다.
2008. 11. 20.
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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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구는?]
한국의 작가주의 사진가 1세대로 꼽힌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불리는데 서정성이 짙은 농촌의 모습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고 애썼다.
그의 작품은 나이가 먹어갈수록 외면을 떠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조선일보 견습 사진기자로 출발했고 4년 뒤 동아일보 출판국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자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70년대 중반 동아일보 사태 때 해직돼 본격적으로 사진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고생은 했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기에 고통을 참고 견뎠다”고 말했다.
1994년 ‘우연 또는 필연’이란 제목으로 첫 번째 사진전을 연 뒤 이번까지 네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사진집으로 ‘내설악 너와집’ ‘경주남산’ ‘우연 또는 필연’ ‘모든 앙금’ ‘마을 삼부작’ ‘강운구’ 등을 냈다.
사진 뿐 아니라 형용사를 많이 쓰지 않는 깔끔하면서도 담백한 글도 일품이다.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시간의 빛’ ‘자연기행’ 등의 사진을 넣은 산문집을 냈다.
41년 경북 문경 출생.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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