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천석과 정약용 - 치악산 시산제에서
- 2009. 3. 1. (일)
- 치악산 향로봉에서
- 33인의 강마 동지들과
(1) 첫 단추 : 길었던 겨울 잠
겨우내 침잠(沈潛)하며 지냈다. 산보다 아랫세상에서, 주로(走路)보다 서재(書齋))를 가까이 했다. 옛글을 통해 선인들의 지혜와 향기에 심취해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들면 경영 사상서를 탐독하기도 하면서. 다만 머리에 맴도는 생각을 정제(整齊)하여 쏟아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였다. 한 줄 글 쓰기도 진도를 못내고 정체(停滯)의 시간을 가졌다. 그 부동(不動)의 기차에 스스로를 승차시키고 조용히 생각에 잠겼었다.
서재(書齋)에 앉으면 딸이 다닌 진선(眞善)의 운동장이 내려다 보인다. 아침 걷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책을 벗삼다가 깜깜한 밤을 밝히던 빌딩의 불꺼짐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 때로는 아들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옛 선인의 글에 반색하기도 하고, 때로는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유혹해 빠지기도 했다. 그의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와 블링크(Blink)를 거쳐 아웃라이어(Outliers)의 이야기로 밤을 새기도 하면서.
그러다가, 날이 밝으면 Code Green에 빠져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상을 살아갈 프리드만(Thomas Friedman)의 지혜를 훔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 뻥 뚫리지 않는 의문은 뇌리에 상존한데, 세상은 봄이라고 여기저기 덜썩거린다.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봄을 맞으러 남도로 떠나볼까하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추위에 움츠리는 습성에 젖어 행동이 굼뜨다. 산이 부르는 환청을 애써 외면하면서.
(2) 둘째 단추 : 치악산에서
그래서 치악(雉岳)으로 가는 길은 더욱 멀게 느껴졌다. 그 산 언저리를 히말라야 쯤으로 여기다가 개구리 잠깨는 소리에 시산제라는 이름으로 한 걸음에 달려간다. 횡성 안흥의 강림으로 향하는 버스 속에서 치악(雉岳)의 산자락에 누워있는 여말선초(麗末鮮初)의 유신(遺臣) 원천석(元天錫)을 떠올린다. 그의 혼을 기리며 오래된 망자(亡者)의 유흔(遺痕)이라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흥망興亡이 유수流水하니 만월대滿月臺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五百年 왕업王業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
석양夕陽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겨워 하노라
기억을 더듬어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그의 시조(詩調)를 다시 읊어본다. 하늘에 태양이 하나인데 어찌 두 임금을 섬기리오. 불사이군(不事二君), 가르쳤던 제자가 새 왕조의 임금이 되어 스승을 찾아왔건만 어찌 나아가 맞을 수 있으리오. 스승은 치악산(雉岳山) 자락 변암(弁岩)에 몸을 숨기고, 노파를 시켜 스승을 찾는 제자에게 횡지암(橫指岩)을 가르키게 하니 제자(태종 이방원)는 스승을 찾지못해 돌아가고, 임금을 속인 노파는 계곡의 소(沼)에 몸을 던지더라. 그 아련한 이야기가 치악산 자락에 아직도 살아 숨쉰다.
이방원이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는 태종대(太宗臺)를 지나 버스는 부곡리의 초등학교 앞에 산객들을 내려놓는다. 삼월이라 하여도 치악의 응달진 계곡에는 아직 잔설과 얼음으로 덮혀있다. 따뜻한 햇살아래 겨울 기운이 가시지 않은 고둔치 계곡을 걷는 트레킹은 한 폭의 그림 속으로 빠져드는 여행이다. 힘이 철철 넘치는 달림이들은 향로봉을 향해 꼬리를 감추고, 봄볕 나들이에 나선 낙동돌이들은 마냥 여유로움에 젖는다. 오랫만에 동행한 아내와 보조를 맞추느라 더욱 그렇다. 자주 길을 나서시구랴. 아우님들 고마웠소.
향로봉의 시산제, 잎떨어진 숲이 정갈하게 주위를 감싸고 잉크빛 푸르름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양지바른 곳에서 돼지머리에 세번씩 절하다.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소망하며, 누구를 향해 절했는지는 각자의 마음이다. 모두 담담하고 넉넉해 보인다. 치악의 산자락을 둘러본다. 사자(死者)의 거쳐(居處)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인지 ...... 치악산 서쪽의 황골, 600년 전 원천석이 편히 잠든 곳이다. 그의 절조(節操)만큼이나 깔끔한 아름다움이 서기(瑞氣)로 번지고 있다. 그 기운을 받아 샌프란시스코의 딸에게 마음의 편지를 쓴다.
(3) 셋째 단추 : 딸에게 쓰는 편지
소현아, 엄마와 함께 치악산으로 봄 나들이 다녀왔다. 아직도 산은 겨울이더구나. 계곡의 얼음 사이로 졸졸 물소리 들리니 봄이 멀지 않았겠지? 얼마 전에 읽었던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의 글중에서 몇 구절을 보낸다. 읽고 새겨보지 않겠니? 해남 대흥사의 만일암(挽日菴)을 중수(重修)했을 때 정약용이 <집짓기>에 비유하여 쓴 글인데, 우리네 <삶의 집>도 어떻게 지어야할지 생각하게 하는구나.
열흘 살다 버리는 게 누에고치 집이고, 여섯 달 살다 버리는 집이 제비집이며, 한 해를 살고 버리는 게 까치집이다.
그 집 지을 때 누에는 창자에서 실을 뽑고, 제비는 침을 뱉어 진흙을 반죽하며, 까치는 풀을 물어 나르느라 입이 헌다.
十日而棄者 蠶之繭也, 六月而棄者 鷰之窠也, 一年而棄者 鵲之巢也
십일이기자 잠지견야, 유월이기자 연지과야, 일년이기자 작지소야
然方其經營而結構也, 或抽腸爲絲, 或吐涎爲泥, 或拮据荼租, 口瘏尾譙而莫之知疲
연방기경영이결구야 혹추장위사, 혹토연위니, 혹길거도조, 구도미초이막지지피 - 정약용, 중수만일암기(重修挽日菴記)〉
소현아, 많이 보고 싶구나. 만일암(挽日菴) 절간의 집은 적어도 백년을 내다보고 지었겠지? 그러나, 열흘 누에고치, 여섯달 제비보금자리, 한 해 까치둥지, 수백년 절간의 암자도 모두 공들여 지은 집이다. 쉽게 지어지는 것이 아니란다.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지. 집짓는데 걸린 시간이야 영겁(永劫)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지, 그러나 겉모습과 달리 그 내면의 가치는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법이지. 모두 값지고 보배로운 의미를 갖는단다.
소현이는 스스로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 궁금하구나. 미물과 새들도 정성들여 제 집을 짓지 않느냐? 어떤 난관과 장벽이 있더라도 굳건히 소현이의 집을 튼튼히 짓기를 아빠는 바란다. 겉이 화려한 집보다 속마음이 따뜻한 그런 집이면 더욱 좋겠지? 하늘 향해 쭉쭉 뻗은 이깔나무처럼 그 마음을 펼치면 더할 나위 없겠지? 그런 집을 짓고 가꾸어 보자. 열공하다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너라.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마.
2009. 3. 1.
치악산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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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송어회(운두령이 한 수 위?) + 미워도 다시 한번/불나비 사랑 + 꿩(안흥 찐빵) 대신 닭(횡성 옥수수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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