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파노라마 - 일본 북알프스
언제 : 2010. 8. 14.(토) - 8. 19.(목)
어디 : 야리가다케(槍ケ岳, 3060m), 오쿠호다카다케(奧穗高岳, 3190m), 다테야마(立山) 무로도(室堂, 2400m)
누가 : 강마 20인 - 시탁,성원,오리(명기),月波,正山,지용,성호,은영,제용/재훈,호선/순남, 전철/성희/선민,경무,경주,기옥,주섭,종남
(1) 일본 북알프스 가는 길에 - 8월 14일(토)
잠시의 비행에 나고야(名古屋)에 도착한다. 북알프스로 이동하는 차창 너머에 나고야의 천수각이 보인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성(城)이다. 스무 권의 대하소설 대망(大望)을 세 번이나 탐독하던 나의 스무 살을 떠올린다.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거쳐 천하평정의 대업을 이룬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덕(德)이 가슴에 와 닿았었다. 노부나가의 용(勇)이나 히데요시의 지(智)와 달리.
일본 중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고속도로(中部縱貫自動車道)를 따라 다카야마(高山)로 향한다. 휴게소에서 취향에 따라 골라 먹는 점심에 모두 시끌벅적하다.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다시 출발하니 곧바로 히다(飛騨)산맥의 산세가 느껴진다. 히루가노(ひるかの) 고원에 비안개 희붐하다. 잠시 쉬었다 가고 싶은데 여유가 없다. 나중에 나 여기에 다시 들리리라.
다카야마를 지나 히라유(平湯)로 향하는 길은 좁고 험하다. 북알프스 산군(山群)인 히다산맥의 심장부로 점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여정은 이렇다. "야리-호다카(槍-穗高) 종주를 하며 히다산맥의 심장부를 걷고, 다테야마(立山)를 거쳐 히다산맥의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아나오리라." 히다의 술(飛騨の酒)과 편백나무 얘기에 히라유(平湯) 온천이 눈앞이다. 가미고지(上高地)가 멀지 않음을 직감한다.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히라유를 살필 잠시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히라유 온천에 몸을 담그는 일정이 없어 무척 아쉽다. 대신 다테야마(立山) 산장의 소문난 유황온천이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가 만땅(滿タン)이다. 가미고지(上高地) 터미널에서 후다닥 비옷 갈아입고 걸어서 고나시다이라(小梨平) 롯지(Lodge)에 도착한다. 그 롯지의 첫날 밤 이야기는 나중에 풀기로 하자. 문득 북알프스가 다시 보고 싶어질 때에.
히라유(平湯) 온천
(2) 산행 첫날 - 8월 15일(일)
가미고지(上高地, 1523m) -요코오(橫尾) 산장 - 야리사와(槍沢) 롯지(1850m) 15.1Km, 고도차 327m
고나시다이라(小梨平) 롯지에서 일찍 잠이 깬다. 밤새 마음이 흥분되었을 게다. 남대장과 둘이 산책에 나선다. 비안개 속의 편안한 숲길, 빙하가 녹아 흐르는 폭포, 그 폭포수가 만들어내는 계류(溪流). 한 폭의 수채화가 따로 없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가진 것 다 주어도 넉넉해지리라. 그러나 보지 않고서야 어찌 이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리. 동행하지 못한 아내에게 미안할 뿐.
산책 후의 아침밥이 꿀맛이다. 도시락을 챙긴다. 함께 모여 스트레칭을 하고 드디어 야리가다케(槍ケ岳, 3180m)를 향해 첫 발을 내딛는다. 주의사항!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걸으라. 선두대장인 가이드를 절대 앞지르지 말라. 산을 가장 잘 타는 사람이 제일 후미에 서라. 선두 뒤에 여자들이 먼저 서고 그 뒤를 남자들이 따르라."
묘진이께(明神池), 도쿠사와엔(德沢園)을 거쳐 요코오(橫尾) 산장에 이르는 길은 소요하듯 걸을 수 있는 완만한 산책길이다. 선두대장인 가이드를 절대 앞지르지 말라는 엄명에, 언제나 달려야 하는 몇몇은 속에 불이 났겠지만 나로서는 이 얼마 만에 누리는 호사(豪奢)인가? 선두 대신 후미에서 마음 고생하신 분 계셨죠? 형님, 진정한 대장은 후미를 잘 챙겨야 합니다, 아셨죠? ㅋㅋㅋ
가라사와(涸沢) 휴테로 떠나는 성희네 가족을 보내고, 우리는 요코오 산장(1620m)에서 야리가다케(槍ケ岳, 3180m)로 향한다. 야리사와(槍沢) 롯지(1850m)까지는 계곡을 따라 걷는 환상적 숲길이다. 아직 고저차가 크지 않고 빙하가 녹아내린 에메랄드빛 계곡수가 사람을 혹하게 만든다. 중간 중간 잎 넓은 산죽(山竹)이 음기(陰氣)를 더하니 몸과 마음이 절로 상쾌해진다.
사진 찍느라 야리사와 롯지에 조금 늦게 도착하니 모두 점심채비를 한다. 미니호텔식 숙소와 간이식당을 갖춘 야리사와 롯지의 깔끔함이 마음에 든다. 해발 1850m라고 하지만 여기까지는 누구나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다. 굳이 야리가다케 등반을 하지 않더라도 가벼운 트레킹을 하러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히라유 온천과 가미고지 야영, 야리사와 롯지로 이어지는 계곡 트레킹을 벌써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다.
가미고지 출발, 야리가다케(槍ヶ岳, 3180m)를 향한 가열찬 진군
야리사와(槍沢) 롯지(1850m)-텐구바라(天狗原) 분기점(2348m)-야리가다케(槍ヶ岳) 산장(3060m), 4.1km, 고도차 1210m
첫날 산행의 후반부가 시작된다. 아니 지금부터는 진짜 등반이다. 4.1Km의 거리에 고도차 1210m라! 평균 경사도가 25도나 된다. 전반부의 15.1km 거리에 고도차 327m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마음의 끈을 굳게 묶는다. 등산화 신발 끈도, 배낭의 허리끈도 굳게 조인다. 세상살이의 모든 일을 이 정도 각오로 나선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무엇일까?
야리사와(槍沢) 롯지를 떠나 텐구바라(天狗原) 분기점을 향하는데 멀리 만년설(萬年雪)이 보이기 시작한다. 걷는 길의 왼쪽 암벽에는 빙하가 녹아내린 물이 가느다란 폭포로 이어져 내린다. 해발 2000m를 넘으면서 조금씩 콧등과 눈가가 시큼해진다. 단순한 느낌인가, 고산증세의 시발인가? 그래도 아직은 견딜만하다. 텐구바라 분기점 근처에서 오던 길 되돌아보니 천상(天上)이 가까운 느낌이다.
잠시 쉬며 가벼운 퀴즈(?)가 나온다. 곳곳에 보이는 저 눈덩어리는 눈일까, 얼음일까? 눈이다. 아니야, 얼음이야. 아니야 눈이야. 가이드가 나선다. "각자 1,000엔씩 베팅하세요. 아니 10,000엔씩 베팅 하시죠." 그렇게 왁자지껄 떠들며 간식을 먹으며 후미를 기다린다. 만년설은 빙하다. 그래서 눈이 아니라 얼음이다. 그 크레바스 아래로 흐르는 찬물에 맥주 한 캔 얼려 마시고 싶다.
이렇게 환상적인 길이 또 있을까?(텐구바라 분기점 근처)
대오를 정비하여 야리가다케(槍ヶ岳, 3180m)를 향한 가열찬 진군을 시작한다. 즐거운 전투(?)에 나서는 것이다. 거리는 2.2k에 불과하지만 고도차가 700m라 평균 30도 경사의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한다. 그러나 이 계산법은 맞지 않다. 꼬불꼬불 돌아올라 가야하니 직선으로는 경사도가 45도가 넘는다. 게다가 해발 2500m를 넘으면서 본격적인 고산증세가 나타난다. 타이레놀 한 알 긴급투약! 제용 아우님 감사!
점점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정상은 보였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주변의 여름 야생화와 발밑의 칼날 같은 돌부리조차 아른아른하다. 바위에 표시한 산행안내 흰색 페인트가 우윳빛 안개와 별반 다르지 않다. 모든 게 아스라하다. 희붐한 안개 속에 스스로를 맡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이러할까? 운무(雲霧) 속에 붕 떠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두렵지도 무섭지도 않다. 차라리 편안하다.
고혹적(蠱惑的) 아름다움이란 이럴 때 하는 말일까? 내면에서 잔잔히 솟아오르는 묘한 카타르시스, 온몸에 스며드는 그 희열(喜悅)! 뾰족한 돌부리를 피해 비몽사몽(非夢似夢) 가파른 돌밭 길을 오른다. 그러다가 문득 안개가 엷어지면 정신없이 카메라 셧터를 누른다. 돌밭에 한여름의 들꽃이 안개에 어우러져 있다. 그야말로 몽환(夢幻)이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환희(歡喜)의 연속이다.
운무와 야생화, 그 고혹과 몽환
야리가다케(槍ヶ岳) 산장(3060m-야리가다케(槍ヶ岳, 3180m)-야리가다케(槍ヶ岳) 산장(3060m), 고도차 120m 수직절벽
짙은 안개가 야리가다케(槍ヶ岳) 산정(山頂)을 휘감는다. 겨우 5m 전에서야 산장의 붉은 지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도착한 몇몇이 생맥주로 브라보! 목적지 안착을 자축한다. 그런데, 후미가 이 농무(濃霧) 속에 셋쇼(殺生) 휴테 갈림길을 무사히 통과해 야리가다케로 올라올지 아무래도 걱정이다. 성호 아우에게 눈짓을 하니, "다시 내려갔다오라는 거예요?"하며 잽싸게 후미를 챙기러 떠난다.
해발 3000m를 앞두고 산장이 가까워지자 모두 방심한 틈에 실수가 빚어졌다. 후미대장은 산장으로 먼저 올라가버리고 대부분의 후미그룹도 찬찬히 산장에 도착했는데, 마지막에 휴식하던 그룹(지용, 제용과 아들)이 짙은 안개 속에 걱정했던 대로 알바를 한 것이다. 마중나간 성호와도 길이 엇갈렸지만 다행이 서로 고함을 질러가며 만날 수 있었다. 짙은 안개 속의 해프닝이었다. 그래도 아찔했죠?
산장에서 물티슈로 간단히 몸을 닦고 양치질은 겨우 입만 헹군다. 산 정상은 물이 귀하다. 야리가다케 산장은 더욱 그렇다. 빗물을 정수(淨水)해서 쓴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 산행이다. 그러나 이 일도 익숙해지면 편안하다. 내 몸과 마음이 본연(本然)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원래 벌거벗고 태어나,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그래야 자연에 익숙해지고 자연과 친해질 수 있다.
산상의 첫날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잖은가? 소주파티라도 할까하고 분위기를 잡는데 모두 줄행랑이다. 건조실에 젖은 옷 말리러 가고, 피곤한 사람은 숙소에 드러눕는다. 첫날의 고산 적응에 많이 지친 모양이다. 하기야 언제 해발 3000m를 올라 본 적이 있는가? 슬그머니 셋(남대장, 성호, 나)이서 버너, 코펠, 소주를 챙겨 산장 옥탑으로 올라간다. 아! 그런데, 서쪽 하늘에 환상의 낙조(落照)가 펼쳐지는 게 아닌가?
나중에 몇몇이 산장 옥탑으로 올라와 소주파티에 합류했지만, 그 때는 이미 캄캄한 세상이었다. 내 카메라에 잡힌 일몰(日沒)의 화려한 모습에 모두 아쉬워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화려했던 일몰 얘기에 소주잔은 빙빙 돈다. 낙조를 본 사람은 즐거움에 마시고, 못 본 사람은 아쉬워서 마시고, 나중에 모두 하나 되어 마시고. 야리가다케 산장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낙조(落照) 얘기 하지 마!"
술잔 돌리다가 약이 바짝 오른 정산(正山)의 외침이다. 정산, 낙조를 놓쳐 많이 아쉬웠지? ㅎㅎㅎㅎㅎ 메롱.
빛은 한 순간에 대지 저편으로 사라지는 거야. 그리고 안개가 세상을 지배하지. 그래도 우리네 삶은 충분히 즐길만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짙은 운무 속에 잠시 비친 낙조
(3) 산행 둘째 날 - 8월 16일(월)
야리가다케(槍ヶ岳) 산장의 결단
새벽의 야리가다케 산장에는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농무(濃霧)와 칼날 같은 능선에 바람이 쌩쌩 불고 있다. 그래도 야리가다케(槍ヶ岳, 3180m) 정상에 오르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정상은 산장 바로 앞의 수직절벽 위에 있다. 30분이면 정상정복과 하산이 가능하다. 전날 저녁에 발 빠른 성호가 혼자 다녀왔고, 새벽 4시 30분에 채비를 갖춰 뜻있는 사람만 아침식사 전에 정상에 오르기로 한다. 자유 산행이다.
농무(濃霧) 속에 2경(경주, 경무)과 함께 셋이서 먼저 길을 나섰다. 암벽 초입에 서니 짙은 안개로 인해 안경에 서리가 잔뜩 낀다. 눈앞을 분간할 수 없다. 안경 없이 갈 수도 없고, 아쉽지만 포기한다. 만류에도 불구하고 2경은 기어코 정상에 올랐다가 환한 미소로 돌아온다. 박수! 나머지 몇 사람도 뒤에 길을 나서려다 짙은 안개와 바람에 뜻을 접고 산장으로 귀환한다. 그래도 특별히 아쉬움은 없는 눈치들이다.
이른 아침을 먹고 우중산행 복장을 완벽히 하고 호다카다케(穗高岳) 연봉(連峰)으로 가는 칼날능선의 종주 길에 나서려는데 왠지 날씨가 불안하다. 비는 엷으나 바람이 세게 분다. 산행대장(가이드)의 날벼락이 떨어진다. 이런 날씨에는 산행이 불가하다고. 바람에 사람이 날려간다고. 그러니 호다카다케 산장으로 가는 우회로를 택하자고. 잠시 술렁술렁. 달리 방법이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안개도 옅으니 환상이었으나 짙으니 장애물이다. 바람도 가벼우니 서늘하더니 힘이 세지니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몸을 통째로 날려버리려 덤빈다. 결단을 내려야한다. 아쉬움이나 이견(異見)이 있을 수 있으나, 판단은 짧은 시간에 명확하게 해야 한다. 우유부단함은 금물이다. 안전이 최우선의 가치이다. 야리-호다카 종주는 목표이지 목적이 아니지 않은가?
일단 야리가다케에서 요코오 산장으로 철수한 다음, 요코오 계곡을 따라 성희네 가족이 어제 머문 가라사와 고야(涸沢 小屋)를 거쳐 호다카다케 산장으로 오르기로 한다. 거기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새벽 오쿠호다카다케(奧穗高岳, 3190m) 정상에 오르기로 한다. 작전상 후퇴라고나 할까?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니. 이렇게 서로를 위로한다.
야리가다케 산장 아래의 만년설과 운무
야리가다케(槍ヶ岳) 산장(3060m) - 요코오(橫尾) 산장(1620m), 8.2Km, 고도차 1440m
짙은 안개 속에 야리가다케 산장을 출발, 요코오 산장으로 하산하는데 바람이 몰아친다. 어! 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몸이 휘청한다. 날려갈려는 순간 본능적으로 온몸의 자세를 낮춘다. 다리를 넓게 벌리고 바짝 낮은 자세를 취한다. 바람이 가르친다. 산에서는 스스로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세상에서도 높을수록 스스로를 낮춰야 하듯이. (그 순간 모두 야리-호다카 종주길 접은 것, 잘 했다 생각했죠?)
짙은 안개 속이라 후미의 일부를 앞으로 보내고 대오를 다시 정비한다. 인원을 다시 확인하고 은연중에 후미대장은 이성원 팀장이 맡는다. 텐구바라 분기점까지는 조심조심 내려온다. 일본인들의 산행매너가 참 좋다. 오르내리는 사람마다 서로 길을 잘 비켜준다. 먼저 가겠다고 우기는 법이 없다. 자연히 "안녕하세요"와 "오하이요우 고자이마스(おはようございます)", "곤니찌와(こんにちは)"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성원 형이 나에게 슬쩍 귓속말을 건넨다. 빨리 가면 기타호다카다케(北穗高岳)를 거쳐 호다카다케(穗高岳) 산장으로 갈 수 있다고. 아직 야리-호다카 종주에 아쉬움이 남은 것일까? 산행팀장으로서 책임감 때문일까? 내 생각으로는 시간상 불가능한데 ...... 텐구바라 분기점 부근에서 잠시 휴식. 그때 기타호다카다케(北穗高岳) 얘기를 가이드에게 꺼냈더니 "버럭!"이다. 가이드를 한대나, 안한대나.....
아무튼 길을 서둘러야 한다. 기타호다카다케(北穗高岳) 우회로를 안가더라도 오늘 10시간 이상 걸어야 호다카다케(穗高岳) 산장까지 갈 수 있다. 가이드의 걸음이 슬슬 빨라진다. 내리막에 길이 편안해지니 모두 따라 붙는다. 야리사와 산장에서 커피 한 잔하려고 남대장이 물 끓이는데 모두 외면하고 달려간다. 요코오 산장까지 꼬리에서 따라 가느라 바쁘다. 가이드 왈, 야리-요코오를 4시간에 주파하기는 전무후무할거라나.
다시 돌아온 요코오 산장, 어제와 다름없이 오가는 산객들의 표정은 편안하고 여유롭다. 단지 우리만 좀 지쳐있고 뭔가 빨리, 높이, 많이 해야 한다는 초조감이 배어있을 뿐이다. 해발 3060m에서 1620m까지 1400m 고도차를 4시간에 수직 활강했으니 지칠 만도 하다. 빵 하나 먹고 다시 해발 3000m를 향해 올라가야 한다. 발목이 안좋은 신기옥 님만 가미고지(上高地)로 내려가고, 모두 호다카다케 산장(2983m)을 향해 출발!
나 이뻐? 8월의 설상화랍니다.
요코오(橫尾) 산장(1620m) - 가라사와(涸沢) 고야(小屋, 2350m), 8Km, 고도차 930m
요코오 계곡(橫尾谷)을 따라 호다카다케(穗高岳)로 향한다. 중간 목적지는 가라사와(涸沢) 고야(小屋, 2350m)이다. 성희네 가족은 어제 가라사와 고야까지 올라갔을까? 거기서 하룻밤 묵었다면 지금쯤 하산할 텐데. 어쩌면 가는 길에 서로 만날 수도 있겠구나. 얼마나 반가울까? 아니야, 벌써 하산했을 거야. 오늘 니시호다카다케(西穗高岳)의 케이블카를 타라고 내가 권했는데, 그렇다면 이미 하산했을 거야.
요코오 계곡의 숲길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오래된 구상나무가 하늘 향한 기상을 일깨우고 쓰러진 고목이 나무의 삶을 대변한다. 또한 뵤부이와(屛風岩)의 웅비(雄飛)가 담대함을 느끼게 한다. 길가에 핀 초롱꽃은 우리의 갈 길을 밝히고 보랏빛 투구꽃은 무사들의 위용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래도 중간 목적지인 가라사와 고야(涸沢 小屋, 2350m)는 멀기만 하다.
얼마나 숲속의 오르막을 올랐을까? 저 멀리 탁 트인 빙하지대가 눈에 들어온다. 호다카다케 연봉일 게다. 그렇다면 그 아래 가라사와 고야가 멀지 않음을 말한다. 생기를 찾아 걸음이 빨라진다. 잠시 길가의 만년설을 밟으며 걷는다. 더위가 싹 가신다. 서둘러 올라갔더니 성호 아우가 가라사와 휴테에서 라면을 끓여놓고 기다린다. 아니 그런데, 라면에 꽁치 넣은 사람은 누구야?
만년설 위의 스키, 그 앞 휴테에서 먹는 성호표 라면, 꽁치가 들어가도 맛있고 꽁치가 빠져도 맛있겠지? 저녁 술안주 겸 찌게용 꽁치를 짐 줄이려고 라면에 넣은 사람 누구인지 갑자기 궁금하네. 아무튼 맛있었어. 그래도 다음에는 꽁치라면은 사양한대요. 가이드의 코멘트입니다. 그런데, 그 때 가라사와 고야로 혼자 가서 나 홀로 라면 끓여 드신 분 또 누구시죠?
가라사와 휴테와 고야 사이에 펼쳐진 텐트, 저게 소원이라는 일본인이 많다
가라사와(涸沢) 고야(小屋, 2350m) - 호다카다케(穗高岳) 산장(2983m), 2Km, 고도차 633m
가라사외 휴테에서 성호표 라면 잘 먹고, 가라사와 고야로 옮겨 단체로 기념사진도 잘 찍었다. 그런데 해발 3000m급 호다카다케(穗高岳) 산장으로 오르는 무시무시한 암릉길이 우리 앞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호다카다케로 오르는 그 길에서 사고(事故) 친 사람이 있으니, 그 얘기 좀 밝히자. 누구야? 차례로 모두 앞으로 ! 아니 순서 무시하고 앞으로!
(A) 가이드보다 절대 앞서 가면 안 된다는 산행규칙 어기고 도망가다시피 먼저 호다카다케 산장으로 올라가버린 남 모씨(차마 이름을 밝힐 수 없다. ㅎㅎㅎ). 산장에 꿀 발라 놓은 단지 있었소, 형님? 뒤에 남은 지용과 제용의 굴욕은 누가 돌봐야 하유? 한 번 더 그러시면(하기야 거기 다시 갈 일 있겠소), 박탈이요, 박탈. 뭘? 으응.... 나도 모르겠소.
(B) 두 아우의 굴욕
실명으로 밝힐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굴욕, 지용 아우의 굴욕은 배낭 무게에 있었고 제용 아우의 굴욕은 고산병에 있었다. 사실 그 사실을 쬐끔 인지하고도 미리 돌보지 못한, 지금 글로 쓰고 있는 이 넘이 더 나쁜 넘이다.
- 지용 아우,
첫날 아침 가미고지에서 김치 한 봉지 내 배낭에 넣었어야 하는데, 카메라 핑계대고 나니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더라. 하기야 그랬으면 2용의 굴욕이 아니라 3용의 굴욕이 될 뻔했지. ㅋㅋㅋ 아무튼 이번에 완죤히(?) 고생했다. 다음에는 배낭 무게 사전 검사해야 할까 봐. 뒤풀이 때 제대로 퍼마시자. 배낭 무게만큼 무게 달아서 술 더 따르면 안 될까?
- 그리고 제용 아우,
아우님, 의사 맞아유? 뭐라구? 의사하고 고산병하고 상관관계가 '나이데쓰'(없다)라고? 뭐 그렇다면 할 말 없고. 그런데 첫날은 나만 휘청거리고 아우 님은 생생했잖아? 아무튼 모두 살아서 돌아와 다행이야. 앞의 용이와 함께 내가 따로 술 살께. ㅋㅋㅋ 그런데, 오늘 비밀 폭로하면 가장의 체통에 금이 가면 어떡해? 이 글 회원전용 코너에 따로 올릴까, 제용 아우?
가라사와 휴테에서 본 만년설
가라사와 고야에서의 단체 기념사진, 여기 빠진 사람 누구?
(C) 두 구원투수
- 오리 형,
지용 아우가 하늘이 노랗게 되었을 때 긴급 구원투수 하시느라 쬐끔 고생했죠? 늘 가볍게 다니다가 지용 아우의 무거운 배낭 제대로 한 번 짊어진 소감 어때요? "호다카다케에서 오리 날다" 뭐, 영화제목 같은데요. 원래 그 정도는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겁니다, ㅎㅎㅎ 사실 지용 아우가 대단히 잘못했어요. 산행 첫날 야리가다케 산장 올라갈 때 일찌감치 뻗었어야 하는데. ㅎㅎㅎ 아무튼 수고했수.
- 그리고 성원 형,
왼쪽은 바위이고 오른쪽은 절벽인데, 제용 아우가 자꾸 오른쪽으로 가더라고요. 그리고 자꾸 졸립대요. 이건 고산병(高山病)이야. 두 번째 구원투수 등판해야지요. 제용 아우와 배낭 바꿔 매 보니 어떻던가요? (아! 이거 재훈이 한테 비밀인데) 무거운 배낭도 괜찮지요? 저는 제용 아우 잠 못 자게 손바닥만 열심히 두들겨 팬 죄(?) 밖에 없어요. 그런데 내 손바닥이 아직도 손끝이 얼얼하니 왜 그럴까요? 뻥이야, 뻥.
(D) J&J (이거 밝혀도 되나? )
후미대장도 먼저 가라하고 남녀 둘이서 뒤에 오겠다고 하니, 원 참! 가이드의 지엄한 명령 잊었소? "가이드 앞에 사람 없고, 후미대장 뒤에 사람 없다. 여자는 앞으로, 남자는 뒤로." 남녀가 유별하거늘 날은 어두워 오고, 험한 바위가 수직절벽을 이루는 곳에서 둘만 뒤에서 오겠다고? 동반 낙하할까 두렵더이다. 그걸 눈뜨고 볼 수야 있겠소? 나중에 "여자 앞으로!" 하는 목소리가 좀 컸나요? ㅋㅋㅋ (농담이요, 양해하시길)
요로코럼(?) 우리는 정말 힘들게, 때로는 우애 좋게 그날 해가 질 무렵에야 호다카다케 산장(2983m)에 무사히 닿았다. 아침에 해발 3060m 야리가다케 산장에서 해발 1620m의 요코오 산장으로 하산했다가 다시 해발 2983m의 호다카다케 산장에 올라, 다음날 아침에 일본 북알프스 최고봉인 오쿠호다카다케(奧穗高岳, 3190m)에 등정할 준비를 무사히 마쳤다. 10시간이 넘는 강행군이었다.
호다카다케 산장의 운무(기타호다카다케 표지)
(4) 산행 셋째 날 - 8월 17일(화)
호다카다케(穗高岳) 산장(2983m)의 일출
산행 셋째 날 새벽이 밝아온다. 아니 새벽 2시에 잠이 깬 일부 몰지각한(?) 악당들이 "하늘에 별이 떳다", 아니 "은하수가 쫙 깔렸다", "내일 아침에(내일은 무슨, 오늘이지) 필히 일출을 볼 수 있을 게다". 흥분, 환호, 소곤소곤(본인은 소곤거림이라 해도 잠결에는 천둥소리다)하며 들락날락 정신없이 시끌벅적하다. 그래도 나는 못들은 척 푹 잤다. 일출은 아침이면 볼 텐데. 후훗 ㅎㅎㅎ
여하튼 상큼하고 기분 좋은 아침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높은 산상에서 일출을 맞이하고 있다. 어제 더 높은 야리가다케 산장에서 1박을 했지만 화려한 일몰만 봤을 뿐 일출은 비안개 속에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오, 해발 3000m에서 맞는 일출이라니 ! 새신랑 새 신부 맞이하듯 설렌다. 일출은 새벽 5시 3분으로 예정되어 있는데 4시가 지나자마자 산장 전망대에 나가 기다린다. 일부는 담요를 둘둘 말고 나왔다.
시시각각 화려한 전주곡이 연주된다. 사실 일출이야 잠깐이고 그 예고편이 화려한 법이다. 그 기다림과 설렘은 새각시 초야 치르는 마음일 게다. 오늘의 예고편은 변화무상하다. 일출을 받치는 밑구름의 모양이 시시각각 변한다. 주로 동물 모양이다. 토끼가 되었다가 하마가 되었다가 코뿔소가 되었다가 함선이 되어 구름바다를 떠다닌다. 그 사이 해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한다.
오! 장엄한 일출이여! 그 순간만으로 충분했노라. 무엇을 바라거나 빌지 않았노라. 선 그 자리에서 다만 가슴 설레고 마음 뿌듯했노라.
호다카다케 산장의 일출
신은 우리에게 한 몫에 둘을 허용하지 않았다. 야리의 화려한 낙조를 내놓고 아침의 일출을 감추며 능선에 비바람을 뿌렸다. 우리는 신의 뜻을 따라 요코오 산장으로 하산했고, 다른 길로 호다카다케 산장으로 올랐다. 어제 호다카다케의 낙조는 없었다. 그러나 한밤에 별이 총총한 은하수를 내놓더니 새벽에 장엄한 일출을 선보였다.
가지 못한 길, 오바미다케-나카다케(中岳)-다이기렛토-기타호다카다케-가라사와다케. 그 길에 아쉬움을 남겼으되 안타깝지 않았노라. 달리 걸은 길, 요코오다니(橫尾谷)-뵤부이와(屛風岩)-가라사와(涸沢)휴테와 가라사와 고야(涸沢小屋)-호다카다케 산장, 그 새로운 길에 기대하지 않은 행복이 있었노라. 그리고 신의 장엄한 선물을 받았노라.
나는 산에서 늘 버리기를 소망하지만 신이 주는 그 선물을 바라는 마음은 버리질 못한다. 설령 이것이 세인의 눈에 욕심처럼 비칠지라도 나는 그 욕심은 버릴 수 없다. 자연이 주는 그 선물은 나 혼자 가슴에 묻어두는 것이 아니니까.
아침햇살에 피어나는 호다카다케의 빛
오쿠호다카다케(奧穗高岳, 3190m)-마에호다카다케(前穗高岳)-다케사와(岳沢)고야(2,180m)-가미고지(1505m) : 10.5km, 고도차 1685m
일출의 화려함, 그 장엄함을 가슴에 담고 호다카다케 산장을 떠나 북알프스 최고봉인 오쿠호다카다케(奧穗高岳, 3190m) 정상으로 향한다. 그 길은 험난하다. 가이드는 일찌감치 스틱을 접고 모두 네발로 기어 다닐 준비를 하란다. 정상은 멀지 않다. 그러나 그 길은 험하다. 그래서 더욱 높아 보인다. 어느 정상이 오르기 힘들지 않고, 높지 않은 곳이 있던가. 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이치가 모두 그렇다.
오쿠호다카다케 정상은 좁다. 일본 풍습대로 작은 신전 하나 있을 뿐 발 디딜 틈도 부족하다. 하늘은 맑고 청명하다. 어제와 달리 이렇게 화창한 날씨를 신은 우리에게 선물했다. 그저 고맙고 황감할 따름이다. 이제 무슨 말과 글이 필요한가. 이제 정상에서 기미코다이라(紀美子平)와 마에호다카다케(前穗高岳)에 이르는 칼날능선 종주를 하는 짜릿함이 남아 있지만, 마음은 이미 하늘의 오색풍선이다.
오쿠호다카다케에서 본 산 그리메
마에호다카다케 가는 절벽의 강마
어제 오후 호다카다케 산장을 오를 때처럼 후미를 자처하고 일행의 맨 뒤에서 쉬엄쉬엄 걷는다. 이리저리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색감이 여의치 않으면 그냥 눈에 담으며 걷는다. '눈이 먼다'는 표현이 있다. 아마 육체적 눈보다 마음의 눈을 의미할 게다. 어느 영화평론가는 사람이 눈이 머는 세 가지 경우로 질투, 분노, 욕심을 말했다.
그런데 질투에 눈이 멀면 머리까지 바보가 된다고 했다. 야리(槍)에 오르며 나는 눈이 멀었다. 욕심에 눈이 멀었다. 반드시 전원 종주를 하겠다는 ...... 그러나 야리가다케의 안개와 바람은 야리-호다카 종주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신의 영험함을 질투하지 않았고 그 뜻을 따랐으니 그 평론가의 말대로 머리까지 바보가 되지 않았음을 다행이라 여긴다.
오쿠호다카다케(奧穗高岳)에서 마에호다카다케(前穗高岳)까지의 암릉, 다케사와(岳沢) 휴테(2,180m)에 이르는 절벽 같은 내리막, 그리고 가미고지(上高地)에 이르는 아름다운 숲길의 정취는 마음에, 가슴에 묻어두고 싶다. 무슨 언설(言說)이 더 필요한가 싶다. 카메라에 담은 그 모습의 일부는 야리-호다카가 그리울 때 두고두고 내 마음의 정화제가 되리라 믿는다.
오쿠호다카다케 정상
오쿠호다카다케에서 본 야리가다케
(5) 산을 내려와 또 다른 산으로 - 다테야마(立山)에서
8월 17일(화) 오후 : 오기사와(扇沢)-구로베(黑部)댐-다이칸보(大觀峰)-무로도(室堂)
8월 18일(수) 오전 : 무로도(室堂)-미다가하라(彌陀ケ原-비죠타이라(美安平)-다테야마역(立山驛),
오후 : 다카야마(高山) 옛거리 탐방, 나고야(名古屋)의 밤
가미고지의 하동교(河童橋)로 하산한 후 잠시의 탁족(濯足), 심신이 녹아내린다. 그러나 다음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다테야마(立山)로 가는 여정에 여유가 없다. 아쉬운 마음을 가미고지에 남겨두고 다테야마로 이동하는 버스에 탑승한다. 아쉬운 사람을 떠나기 차마 안타까워 오히려 훌쩍 떠나버리는 기분이다. 이동하는 버스에서 호다카다케 산장에서 싸준 연잎 도시락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다테야마(立山) - 구로베(黑部)댐과 로프웨이 등
아무리 거대한 인공물도 자연을 능가하지 못한다. 흥미는 있었으나 야리가다케(槍ケ岳)와 오쿠호다카다케(奧穗高岳)에서 느낀 감흥에 어디 비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인공을 먼저 보고 자연으로 갈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무로도(室堂, 2400m)의 아침산책 - 지옥의 계곡
차가움과 뜨거움이 공존한다. 누가 지옥의 계곡이라 이름했나? 그 겉모습과 달리 속은 뜨겁다 못해 용광로다. 차라리 열정의 Paradise라 해야 하지 않을까? 차가운 빙하는 녹아내리고 마그마에 뜨거워진 온천은 솟아 흐른다. 비록 그 시작은 다르지만 머지않아 서로 만나 천(川)이 되고 강(江)을 이루며 해(海)에서 어울렸다가, 안개가 되고 비가 되어 순환의 틀로 접어든다. 들여다보니 냉온의 조화가 차라리 더 향기롭게 느껴진 아침 산책이었다.
지옥곡(地獄谷) 옆의 미쿠리가이케(みくりが池·)에 비친 다테야마(立山)
미다가하라(彌陀ケ原)
서두에 쓴 <히라유 온천과 가미고지 야영, 야리사와 롯지>로 이어지는 계곡 트레킹에 이어 가을의 <미다가하라(彌陀ケ原) 단풍 트레킹>을 반드시 추가하고 싶다. 원색의 붉음을 토하는 그 고원에 서고 싶다.
야리가다케(槍ヶ岳, 3180m) VS 츠루기다케(劒岳, 1999m)
다테야마 연봉을 차례로 바라보다 그 옆의 츠루기다케(劒岳, 1999m)에 눈이 머문다. 야리와 츠루기를 생각한다. 범인(凡人)은 또 비교지심(比較之心)에 빠진다. 고저와 강약, 4계(四季)의 미(美)를 대비시키려 한다. 창(槍)이든 검(劒)이든 그 본성은 고유의 미(美)와 덕(德)을 품고 있는데 말이다. 잠시의 생각이니 스스로 측은지심(惻隱之心)에 빠질 필요야 있겠는가. 평상심(平常心)으로 돌아온다.
둘은 창(槍)과 칼(劒)이다. 그 예리함과 날카로움이 맞서면 바람이 인다. 그러나 그 존재의 이유만으로 공존(共存)의 미(美)를 자랑한다. 어느 하나를 취(取)하면 안온(安溫)을 누릴 수 있으나, 경쟁의 반열에서 맞서면 불꽃이 튄다. 어찌 하랴? 산(山)은 산이요, 악(岳)은 악이다. 그 이름(名)에 집착하지만 않으면 실상(實相)에 보다 근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산악(山岳)에 보다 근접한 며칠을 보낼 수 있었다.
츠루키다케(劍岳, 1999m)
다카야마(高山)
백주(白酒) 한 잔에 자루소바(笊蕎麦, ざるそば) 2칸이면 배고픔이 사라지더라.
오래된 산악도시답게 옛 풍물이 많이 남아 있더라. 옛 건물 잘 보존함이 그들의 넉넉함이리라.
우리들의 북알프스 기행은 다카야마를 기점으로 히다산맥의 중심을 관통하고, 다시 히다산맥을 한 바퀴 돌아 다카야마를 종점으로 했다.
다카야마를 떠나, 히루가노(ひるかの) 고원에 기어코 버스를 세웠다. 고원지대의 끝. 아이스크림 하나 초콜릿 한 통. 뭉게구름 둥실하다.
나고야(名古屋)의 사카에(榮)
사카에의 밤, 그 젊음의 거리에서 일없는 넷이서 한 잔 꺽었지요.
쥬리 or 규리? 아직도 꼬치 모양의 그 글자가 헷갈린다. 그날 메뉴는? ㅋㅋㅋ
이세(伊勢)만과 이세반도를 따라 가던 여정, 매화꽃 피던 그 시절이 문득 아련해졌지요.
모든 것을 뒤에 두고 서울로 향하는데 청명한 하늘에는 뭉게구름과 새털구름이 짝짓기하고 있었다.
돌아온 서울, 처음 타보는 급행 지하철, 아쉬워 대치동에서 넷(성,월,정,경)이서 막걸리 몇 사발로 뒷풀이! 진짜 뒤풀이 남았죠?
서울로 향하는 하늘에 핀 뭉게구름
말미(末尾)에 붙이는 글
" 아무리 멀고 긴 길도 걷다보면 다다르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높은 이상을 품고 있으며 누구나 한때 꿈을 좇아 힘든 여행을 떠나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길이 울퉁불퉁하다는 이유로 결국 포기하고 만다. 인생이 순풍에 돛 단 듯 마냥 순조로울 수만은 없다. 꿈을 좇는 우리의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 - 천빙랑의 <나를 이끄는 목적의 힘> 중에서
2010년 8월 21일 저녁,
일본 북알프스의 여운(餘韻)을 되새기며 월파(月波)가 쓴다.
아! 함께 더불어 누린 행복, Oh ! Nice friends & happy days in Japan Al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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