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록화홍(柳綠花紅) : 양재천에서
- 버드나무는 푸르고 꽃은 붉다
3월의 마지막 주말 입니다. 아침 일찍 양재천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아내는 천천히 걷고 나는 달리다가 되돌아와, 적당한 지점에서 만나 함께 해장국 한 그릇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초의 생각과 달리 먼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영동3교에서 과천 관문 운동장까지 양재천을 따라 왕복 15Km를 아주 빠르게 걸었습니다. 당초 생각보다 한 사람은 조금 빨리, 한 사람은 조금 천천히, 그렇게 조금씩 조절하여 도란도란 얘기하며 함께 걸었습니다.
양재천에는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고 봄꽃들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수양버들에는 제법 푸르름이 짙어지고 있었습니다. 계절을 빨리 타는 개나리가 한창이고, 이름모르는 작은 들꽃들도 앙증맞게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이제 아름다운 봄의 풍경을 산야의 곳곳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소동파(蘇東坡)는 '버드나무는 푸르고 꽃은 붉다(유록화홍,柳綠花紅)'라고 했었지요. 계절의 변화에서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자연현상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소동파는 왜 새삼스럽게 '버드나무는 푸르고 꽃은 붉다'라고 했을까요? 버드나무가 푸르고 꽃이 붉은 것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요? 있는 그대로의 봄 풍경이요, 진리인데 말입니다. 아내와 얘기를 나눕니다.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지요. 성철스님의 유명한 법문,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떠올립니다. 소동파의 '유록화홍(柳綠花紅)'이나 성철스님의 법문도 지극히 당연한 것을 자각(自覺)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너무나 당연한 것을,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스스로 실감하는 일은 실제로 그렇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선가(禪家)에서는 엄한 수련의 결과 그 깨달음을 얻고, 시인은 그 감성의 절정에서 진리를 노래하지 싶습니다. 오랜 수련 끝에 "눈은 옆으로 코는 세로로(眼橫鼻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도원(道元) 선사(1200∼1253)의 이야기가 새삼 가슴에 와닿는 아침 나절이었습니다.
새롭고 거창한 사실의 발견보다 자연 그대로의 진면목(眞面目)을 볼 수 있는 마음자세가 필요하지 쉽습니다. 오늘 아침나절은 산책을 한 것인지, 체력훈련을 한 것인지, 마음의 수련을 한 것인지 아리송합니다. 그러나, 어느 것인지 분간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피어나는 봄을 그대로 느끼며 아내와 생각을 나눈 것으로 오늘 하루는 충분히 즐거웠습니다. 나중에 해장국집으로 합류한 아들녀석의 발랄한 모습과 소담스런 얘기에 아침나절이 더욱 행복했지 싶습니다.
버드나무도 꽃도 명명백백하게 진리를 드러내고 있는 봄입니다.
모든 존재가 그대로 진실을 나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버드나무는 푸르고, 꽃은 붉습니다.
2009년 3월 29일(일)
역삼동에서
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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