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자리/* 여백(餘白)

퀴즈에서 읽는 세상사

月波 2009. 4. 21. 23:30

 

 

퀴즈에서 읽는 세상사

 


오랫만에 옛동료들과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술잔이 오고가고 옛 얘기와 새로운 얘기가 섞여 아기자기한 자리였습니다.

모두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옛날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겉으로는 달리 보여도 내면의 세계는 한 뭉치였습니다.

 

적당히 취한 상태로 돌아온 집에는 어느 텔레비젼의 <1:100>이라는 퀴즈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100회차 특집이었습니다.

매회 우승자 100명이 다시 나와 퀴즈 실력을 겨루는 자리이니 소위 왕중왕전이었습니다.

어느 여성분이 최후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본인은 얼마나 기뻤겠으며,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얼마나 뿌듯했겠습니까?

내 마음도 그러했으니까요.


그런데, 종전에 없던 <더블찬스>라는 추가 퀴즈가 있었습니다.

그 퀴즈를 맞히면 상금이 더블이 되고, 못맞히면 상금이 반으로 줄어드는 조건이었지요.

그 여성 왕중왕은 당연히 더블찬스를 택했지요.

 

문제가 나왔습니다.

퀴즈를 내는 사회자가 우리 말로 번역한 한시(漢詩) 한 편을 읽습니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내린 벌판을 밟아갈 때에는

           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오늘 걸어가는 나의 발자국은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라

 

 

 

  

백범 김구 선생이 즐겨 읊었다는 위의 한시(漢詩)를 지은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당연히 서산대사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객관식으로 보기 3개가 나왔습니다. 소위 3지 택1이지요.

앗, 이런 일이 !!!!! 

그 3개의 보기 중에  "서산대사"는 없고,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황당한 일이 있을까?

백두대간을 걷는 3년 6개월동안 세 차례의 겨울을 눈속에서 걸으며 그 얼마나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를 되뇌이었던가?

그것도 서산대사의 선시(禪詩)라고 굳게 믿어면서.......

퀴즈의 정답은 보기 셋중의 세번째의 "이양연"이었습니다.

이 시가 조선 순조 때 활동한 시인 이양연(李亮淵, 1771~1856)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 여성 왕중왕도 더블 찬스를 맞히지 못하고 상금이 반으로 줄었습니다.

 

 

 

 

서재로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합니다.

곳곳에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 "는 서산대사의 선시라고 옮겨져 있습니다.

심지어 백범 김구 선생의 한시라고도 합니다.

간신히 어느 한 귀퉁이에 짧게 언급되어 있는, 그러나 가장 신빙성 있는 검색결과를 찾았습니다.

 

한문학자 안대회 교수가 오래 전에 쓴 근거있는 주장입니다. 

그의 저서 <안대회의 옛글 읽기>에서 안대회 교수는 이 시가 순조 때의 문인 이양연(李亮淵)의 작품이라고 밝혔습니다.

<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과 <대동시선大東詩選>에 그렇게 실려 있다는 것이지요.

서산대사 문집인 <청허집淸虛集>에는 이 시가 수록돼 있지 않다고 합니다

안대회 교수는 이 시를 애송한 김구 선생이 서산대사의 작품이라고 했기 때문에 잘못 알려진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안대희 교수의 근거있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공간에는 서산대사의 선시라고 파다하게 널려 있습니다.

물론 나는 한문학자나 옛시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학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서산대사의 선시(禪詩)로 알고 오랫동안 되뇌였기에 마음의 충격은 컸습니다.

주변에서 들은 얄팍한 지식으로 그것이 사실인양 믿어버린 저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그것이 사실인양 철썩같이 믿어온 스스로가 부끄러워집니다.

 

오래된 학설이나 검증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글만으로 그대로 믿어버리는 일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요?

인터넷이 아니더라도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사실을 확인않고 얼마나 진실을 도외시하고 살아갈까요?

마타도어가 춤을 추는 세상에서 얼마나 주변을 의심하고 살아갈까요?

 

스스로가 부끄러워집니다.

종종, 아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자주, 진실은 가려져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퀴즈 한 문제에서,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는 저녁입니다.

 

 

  2009. 4. 21.

  역삼동 언덕에서

  월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