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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정맥 10] 청학동(靑鶴洞)에서 부치는 편지

月波 2010. 8. 9. 00:30

 

[낙남정맥 10] 청학동(靑鶴洞)에서 부치는 편지

  

1. 산행 개요

 

  1) 일 시 : 2010년 8월 8일(일) 무박산행

  2) 구 간 : 낙남정맥 제 10구간(배토재-하동 천왕봉-돌고지재-길마재-고운동재) 도상 19.9Km(실제거리 24.0Km), 누적 227.0Km/239.9Km

  3) 시 간 : 8시간 40분(식사, 휴식 80분포함)

  4) 참 가 : 좋은 사람들 32인 (6인의 동행자 : 보초, 월파, 친돌, 은종, 포도, 이튼)

 

2. 산행 후기 - 청학동(靑鶴洞)에서 부치는 편지

 
T형,
가을의 시작이라는 입추(立秋)가 어제였습니다. 그러나 여름은 그 절정(絶頂)의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절기(節氣)를 잊은 폭염(暴炎)에 아연할 따름입니다. 형은 이 더위에 무탈(無頉)하게 지내는지요? 꾸준히 운동하며 심신을 굳건히 다스린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있습니다.

 

오늘 지리산 청학동(靑鶴洞)을 다녀왔습니다. 낙남정맥 산행 말미(末尾)에 잠시 들렀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가 꿈꾸던 이상향(理想鄕), 그 청학동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그리던 그 세상은 지리산 어느 골짜기에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청학동이란 이제 깊은 산보다 도시의 그늘진 곳에서 양지(陽地)를 지향하며 우리가 손수 만들어야할 땅이 아닌가 생각하며, 산에서 돌아와 형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청학동이 저 푸른 숲에 있을까?


지리산과의 인연을 생각합니다. 태어나 자란 고향집 마당에 서면 항상 지리산 능선이 너울거렸습니다. 겨울이면 하얗게 눈 덮인 그 능선이 마치 히말라야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지리산을 드나들었지요. 꽃과 나무, 비와 안개, 눈과 바람, 샘과 폭포, 일출과 낙조 ..... 능선과 계곡에서 친구처럼 만난 자연입니다.

 
이 능선 저 계곡을 넘나들던 숱한 기억이 추억으로 치환(置換)됩니다. 운무(雲霧) 속에 시를 읊으며 걸었던 화엄사-대원사 종주, 단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던 피앗골, 명월(明月)을 탐했으나 폭우(暴雨)에 젖던 벽소령, 행선(行禪)하듯 순례한 북부 칠암자, 수없는 소(沼)와 담(潭)에 넋을 잃던 뱀사골과 한신계곡, 생사(生死)를 넘나들던 대성동계곡, 탁족(濯足)과 탁신(濯身)의 대원사 계곡 ........ 

 

여러 차례 지리산 종주를 했지만, 군(軍)에 입대하는 아들과 했던 작년 초여름의 주능선 종주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겁니다. 부자(父子)간에 꽤 의미 있는 산행을 했다는 생각입니다. 군복무중인 아들이 생각나면 그때의 산행기(*1)를 다시 들추어보곤 합니다. 반야낙조(般若落照)나 아미월(月)이 그리우면 아들 녀석과 다시 가지 싶습니다.                                  

 

지리(智異)는 곧 반야(般若)에 이르는 길이다

 

 

T형,

그러나 오늘의 지리산행은 더 각별했습니다. 5개월에 걸쳐 낮은 산을 걸어온 낙남정맥이 영신봉(迎神峰, 1652m)을 향해 그 등뼈를 솟구치며 지리산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그 마루금을 걷고 청학동을 거쳐 산을 떠나며, 지리산과 인연을 맺은 옛사람을 마음속으로 살폈습니다. 고운 최치원, 남명 조식, 가야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그들입니다.

 

청학동에서 묵계재를 넘으면 고운동(孤雲洞) 계곡입니다. 그 상류에 양수발전소가 건설되어 일견 을씨년스런 느낌입니다만, 그 계곡의 청정함은 아직도 유지되는 듯합니다. 고운(孤雲)은 최치원(崔致遠)의 자(字)가 아닙니까? 잘 아시다시피 고운(孤雲)은 통일신라 말에 국운이 기울자 '계림황엽 곡령청송(鷄林黃葉 鵠嶺靑松)'이란 참언(讖言)을 남기고 산으로 들어갔었지요.

 
계림(鷄林)은 신라를 지칭하고 곡령(鵠嶺)은 고려를 가리키니, 곧 신라는 누런 나뭇잎처럼 국운이 시들고 고려는 푸른 솔처럼 국운이 일어날 것이라는 얘기이지요. 천기를 누설했으니 신라의 벼슬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지리산 화개동천(花開洞天)이나 쌍계사 불일암, 가야산의 해인사 등에는 아직도 그의 행적이 남아 있습니다.

 

고운동 계곡에 들어선 양수발전소 상부댐


그러고 보면 이번 낙남정맥은 고운 최치원과의 인연이 깊습니다. 그가 이름 지었다는 마산의 무학산(舞鶴山)을 올랐었고, 오늘은 그가 산에 들어 선인(仙人)으로 지냈던 청학동과 고운동을 좌우로 두고 걸었습니다. 지난주에는 만물상을 거쳐 가야산 정상에 올랐다가 해인사로 내려오며 학사대에서 고운(孤雲)의 체취를 느끼고 왔습니다.

 

그런데 최치원이 말년에 세상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꿈꾸었던 혼자만의 세계는 무엇이었을까요? 백성이 사는 세상을 버려두고, 혼자서 신선(神仙)이 되려했던 그의 선택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형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고운(孤雲)의 절연(絶緣)이 저러했을까?  

 

 

T형,

고운동에서 산청 덕산으로 향했습니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이 만년(晩年)을 보낸 곳입니다. 산 마루금보다 산 아랫마을이 풍성한 법인데 바쁜 중생을 태운 버스는 덕천서원과 산천재(山天齋)를 그냥 지나칩니다. 중산리나 유평리로 지리산을 드나들 때는 들르곤 했던 곳입니다. 남명을 생각합니다. 이번 산행에 앞서 그의 지리산 유람록인 유두류록(遊頭流錄)을 다시 읽었습니다.

 

남명은 약관의 청년기부터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이르기까지 열 번(*2)이 넘는 지리산 유람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명이 그토록 지리산을 자주 찾았는지, 그의 유두류록에서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58세 되던 봄에 열한 번째 지리산행에서 돌아와 쓴 유두류록의 말미(末尾)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산수만을 탐하여 왕래한 것이라면 번거로운 산행을 꺼리지 않았겠는가? 평생 품고 있었던 계획이 있었으니, 오직 화산(華山)의 한 모퉁이를 빌어 그곳에서 여생을 마칠 곳으로 삼으려 했을 뿐이었다." (*3)  '지리산 한 모퉁이를 빌어 여생을 마칠 곳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라는 고백에, 삶이 그 정도로 간절하다면 이루지 못할 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산천재, 배롱나무 그 붉음을 토하고 

 

남명은 이 산행에서 돌아와 3년이 되던 그의 나이 61세에 합천 삼가의 향리를 떠나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덕산으로 아예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은거하며 10여년의 마지막 생을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남명이 산천재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읊었던 시를 되새겨 봅니다.

 

"천 석들이 종을 보게나!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네. 어찌하면 저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오히려 울지 않을까." (*4) 

작은 종은 살짝 건드려도 울리지만, 큰 종은 세게 치지 않으면 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천둥번개 치고 하늘이 울어도 끄떡 않는 지리산처럼 크고도 큰 종을 닮으려 했던 남명의 기상(氣像)에 고개를 숙입니다. 

 

그러나 남명이 왜 지리산 자락에 은거하며 고고한 선비정신으로 수신(修身)에만 치중했는지, 몇 번에 걸친 왕의 부름에도 현실정치로 나아가 큰 뜻을 펼치지 않고 극구 재야에 묻혀 있었는지 아쉽습니다. 유가(儒家)의 기본이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인데, 치인(治人)인 경세제민(經世濟民)을 마다하고, 어찌 수기(修己), 수신(修身)에만 머물렀을까요?

 

그래서 그의 삶이 진정 위민(爲民)과 일체(一體)였는지 궁금해지는 나의 옹졸함을 어쩔 수 없습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산천재, 불러도 나아가지 못한 곡절은?

 

 

T형,

어느새 산청 단성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남사마을의 예담촌을 스쳐 지나 문익점의 목화시배지 앞에서 경호강 건너편의 성철스님 생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의 고향집이 그 너머에 있습니다. 단성 나들목에 진입한 버스는 산청 금서와 함양 휴천이 맞닿은 곳을 순식간에 지납니다. 그곳에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무덤이 있지요. 왕릉이지만 돌무덤으로 조촐하기만 합니다.

 

국력이 쇠한 왕이 취할 수 있는 위민(爲民)의 길은 무엇이었을까요? 500년 가까이 지속된 가야국을 순순히 신라에 넘긴 구형왕의 마지막 결단이 갖는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백성의 피로 신라와 싸울 것인가, 스스로를 버려 백성을 구할 것인가?  병자호란을 예리한 필치로 쓴 김훈의 '남한산성', 그 속에 갇혀 고뇌하던 인조 임금의 선택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임금이 치욕을 겪어야 백성을 구할 수 있는 형국이었지요.

 

산청으로 향하는데 하늘은 마냥 푸르렀지요

 

구형왕은 가야국의 국권을 신라에 넘기고 김해에서 낙동강과 남강을 거쳐 이곳 지리산 자락까지 거슬러 올라와  말년을 보내다가 돌무덤에 묻혔습니다. 백성의 피로 강을 물들이기보다 스스로 권력을 내놓아 위민(爲民)의 길을 택한 그가 진정 백성들의 왕이 아닐까요? 나라 잃은 힘없었던 왕에 대한 연민으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요? 형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낙남을 시작하면서 산 마루금 뿐만이 아니라 산 아랫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살피려 했던 일, 특히 흩어진 가야국의 유흔(遺痕)을 살피고자 했던 일도 이렇게 겉핥기로 끝나갑니다. 산 마루금과 산 아랫마을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별도로 틈을 내어 인문지리 탐구의 길에 다시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구형왕릉, 돌 하나하나 위민(爲民)의 뜻이 담겼으니

 

 

T형, 

오늘의 산행을 반추합니다. 낙남산행에서 오랜만에 높은 산과 우거진 숲을 걸었습니다. 고도는 점점 높아지고 땀은 비 오듯 했지만, 중간 중간 산죽 밭에서 마음의 죽비를 스스로 두들기며 청아한 마음으로 걸었습니다. 청학동과 고운동을 지나 산청의 덕산, 단성, 금서에서 옛 사람의 향기를 찾으며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역시 산이 높아야 골도 깊고 삶의 향기도 후덕하지 싶습니다.

 

형에게 다시 묻고 싶습니다. 청학동(靑鶴洞)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제 우리가 발 딛고 사는 곳에서 청학동(靑鶴洞)을 찾아야하지 않을까요?

고운 최치원, 남명 조식, 가야국의 구형왕, 그 중에 진정으로 백성을 위했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현실의 삶을 저버린 혼자만의 도(道)가 무슨 의미이며, 백성을 아우르지 못한 이념은 또 무슨 소용이었을까요?

지금 발 딛고 선 세상에서 청학동(靑鶴洞)을 만드는 일이, 우리가 간절히 꿈꾸어야 할 오늘의 가치(價値)가 아닐까요?

 

화엄사-대원사 종주를 당일에 하겠다고 나섰던 30여년 전의 일이 떠오릅니다. 청춘에도 못했던 그 일을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이루었지요. 다음에는 형과 함께 한겨울에 그 화대종주를 하고 싶습니다. 무욕(無慾)의 스승인 겨울 산에서 현실의 청학동(靑鶴洞)을 그리며,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되묻고 싶습니다. 산악마라톤이 아니라 사나흘 천천히 걸었으면 합니다. 기꺼이 동행하시겠지요?

 

겨울 지리(智異)가 부르는 소리, 환청(幻聽)일까?

 

형에게 이런저런 생각을 털어놓으니 심신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이제 형과 함께 가까운 곳에서 청학동(靑鶴洞)을 만들고 싶습니다.

다음 주에는 일본 북알프스 야리-호다까 종주를 다녀올 계획입니다. 하늘과 맞닿은 곳을 걸으며 생각을 넓혀보고 싶습니다.

다녀와서 찾아뵙겠습니다. 늘 건안하시길 빕니다.

 

 

2010. 8. 8. 늦은 밤에

지리산 청학동을 다녀와

월파(月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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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註)       (*1)  "아들과 함께 한 지리산 종주" - 지리산 편지,  보러 가기  http://blog.daum.net/moonwave/16153678  왼쪽 클릭

               (*2)  頭流十破黃牛脇 (황소의 갈비같은 두류산 골짝을 열 번이나 답파했다), 남명 조식, 유두류록

               (*3)  豈直爲貪山貪水而 往來不憚煩也 百年齎計 唯欲借得華山一半 以作終老之地已, 남명 조식, 유두류록

               (*4)  請看千石鐘  非大扣無聲  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 남명 조식, 유두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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